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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스 갬빗 ㅣ 월터 테비스 시리즈
월터 테비스 지음, 나현진 옮김 / 어느날갑자기 / 2024년 7월
평점 :
월터 테비스의 <허슬러>에 이어 두 번째로 이 책 읽었다. 현재 같은 출판사에서 작가의 작품 5권이 번역되어 나와있다. 일단 이 두 권만 가지고 보자면 <허슬러>는 당구를, 이 책은 체스를 소재로 다뤘다. 둘 다 스포츠 소설이다. 그렇다고 작가가 스포츠 전문 작가는 아닌 것 같다. 이 둘은 좋게 말하면 두뇌 스포츠고 나쁘게 말하면 잡기다. 나야 잡기라면 화투 정도 밖엔 모르고, 그것도 혼자 하거나 100원 내기 또는 딱밤 맞기 정도의 미나토(?)여서 이 잡기의 세계가 얼마나 넓고 심오한지는 알 길이 없다. 그나마 화투도 어린 시절 외엔 잡아 본 적이 없으니 말 다 했지.
체스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츠바이크다. 워낙 오래전에 읽어 내용은 거의 기억에 없지만 그 문장의 우아함과 심리 묘사가 뛰어난 작품으로 기억하고 있다. 알다시피 츠바이크는 오스트리아 작가고 월터 테비스는 미국 작가다. 뭐 당연한 소리긴 하겠지만 같은 소재라도 어느 나라, 어떤 작가가 쓰느냐에 따라 그 문체나 사고방식이 많이 다르다.
월터 테비스는 가장 미국적인 작가 중 한 사람은 아닐까 싶다. 미국의 가장 세속적인 면을 여지없이 드러내 준다. 난 이미 <허슬러>의 리뷰에서도 그런 언급을 했지만 이어령 교수의 말마따나 미국은 거리의 문학을 표방한다. 이 소설도 8살짜리 소녀 베스 허먼이 사고로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고 고아원으로 가게 되는 게 첫 시작이다. 가정이 없어진 것이다. 좀 놀라운 건, 주인공이 하루아침에 고아가 됐는데도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인다는 거다. 뭐 8살짜리가 죽음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만 그래도 부모가 돌아갔는데 어떻게 그렇게 담담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하다못해 보모를 회상해도 좋고 아름다운 기억보단 불온하고 불만스러운 기억을 떠올린다.
더 놀라운 건 베스가 들어간 고아원에선 아이들에게 일괄적으로 약을 주는데 그게 일종의 신경안정제다. 하도 아이들이 울고 보채니 약으로 신경을 마비시킨다는 건데 그게 좀 충격적이었다. 문득 60년 대 미국의 고아원은 다 이랬을까? 다 그렇진 않더라도 있을 수 있는 이야기란 생각도 든다. 아무튼 이로 인해 베스는 약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성인이 된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일까? 고아원 수위 아저씨로부터 우연히 체스를 접하게 되고 베스는 그것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 비슷한 구성은 소설 '허슬러'에서도 보인다.) 하지만 고아원 원장은 어린아이에게 체스를 가르치는 걸 금지시켰다.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한 처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무튼 그로 인해 베스는 체스를 못하게 될 줄 알았는데 운 좋게도 비교적 늦은 나이에 입양을 가게 되고 거기서 계속할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된다. 하지만 완벽한 행운은 없어 베스가 입양되던 날 양아버지란 작자는 집을 나가버리고 결국 양어머니와 둘이 살게 된다. 하지만 역시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지 않다고 비록 짧은 인연이지만 베스는 체스로 양어머니를 기쁘게 하며 나쁘지 않은 모녀지간으로 지낸다.
작품을 읽으면서 새삼 놀랐던 건, 체스 선수가 그렇게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줄은 몰랐다. 베스는 어렸을 때부터 끊임없이 체스에 관한 책을 사고 공부를 한다. 특히 체스에 관한 잡지를 빼놓지 않고 사던데 문득 그렇다면 과연 우리나라에도 체스에 관한 책과 잡지가 있는지, 있으면 얼마나 있는지 잠시 알아봤다. 그랬더니 체스에 관한 책은 나름 꽤 있지만 잡지는 보지 못했다. 뭐 이해 못 할 건 없다. 우리나라는 잡지를 내면 낼수록 적자 구조고, 바둑이나 장기도 특정한 사람들 아니면 즐기지 않는데 이 서양장기는 또 얼마나 알겠다고 잡지까지 사 보겠는가.
책은 평이하게 잘 읽히는 편이다. 물론 체스의 기본 지식을 알고 봤다면 더 재미나게 읽었겠지만 모른다고 해서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난 베스가 체스를 어떻게 싸우고 이기며 어떻게 성장해 가는가를 보기보단 그녀의 앞으로의 인생이 자꾸만 궁금해졌다. 무엇보다 그녀는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었고, 약물중독에, 좋은 가정으로 입양되지도 못했다. 그나마 자신에게 잘 대해줬던 양어머니도 일찍 죽었다. 남자 친구도 사귀는 족족 그녀를 떠나간다. 그렇다면 그녀가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게 될까 궁금하고 걱정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나 스스로가 이런 인물은 불행할 거란 쪽으로 자꾸 상상하고 싶은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다 결국 작가에게 한방 먹었다. 작가는 주인공의 인생을 그리 길게 재단하지도 않았다. 주인공은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긴 채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그렇다면 그 인생이 앞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지 불행한 삶을 살지 판단하기엔 너무 이르다. 그 나이에 연애에 두어 번 실패했다고 앞으로도 계속 실패할 거라고 장담도 할 수 없다. 약물에 중독됐다고 해서 당장 폐인이 되어 거지 꼴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앞으로도 성공적인 인생을 살 거라고 할 수도 없겠지. (우린 약물중독에 걸린 인생이 어떤 최후를 맞게 되는지 너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사실 난 작가의 작품이 나와는 썩 맞는 편은 아니었다. 지난번 <허슬러> 때도 그렇고 이 작품도 그렇고 미국 특유의 세속적 낙관주의와 허무주의가 작품 전반에 흐른다. 그래도 작품의 구성이나 심리 묘사는 <허슬러>보단 훨씬 입체적이란 느낌이 든다. 문득 월터 테비스가 미국 문학에서 어느 정도의 위상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하지만 하나 인정하는 건 정말 열심히 썼던 작가임엔 틀림없는 것 같다. 지난 1984년에 50대의 나이로 타계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