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양준일을 알고 있긴 하다. 90년대 윤상, 심신, 박정운, 강수지 틈에 끼어 나왔다가 어느 틈엔가 대중으로부터 멀어진 가수. 들보단 서태지와 아이들이 워낙에 막강해서 미처 대중들이 못 알아 보지 않았을까.
지금이야 중성적 매력을 가진 연애인들도 많다지만 90년대만 해도 양준일은 좀 특별했던 것 같다. 묘하게 끌리긴 했지만 대놓고 좋아하기엔 그도 앞서 갔다면 앞서 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끔 궁금하기도 했지만 반짝했다 사라진 연예인이 양준일 하나뿐인가? 그도 곧 잊혀졌다. 책까지 나왔는데도 시큰둥이했다. 그런데 웬일. 그가 M본부의 <배철수 잼>에 나온단다.
요즘 방송가 트렌드는 레트로 열풍을 타고 옛날에 인기 있었던 가수를 다시 소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그에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EBS의 <싱어즈>란 프론데 최근 2, 3개월 사이에 생긴 것으로 알고 있다. 재밌긴한데 방송 특성상 그냥 잔잔하고 소박하고 정보 전달에 주력하는 느낌이다. 그런데 비해 <배철수 잼>은 나름 공을 많이 들였다는 느낌이 든다. 첫 시간에 정미조와 이장희가 나와 그들의 이야기와 음악과 초대손님으로 2주간 꾸며졌는데 꽤 볼만했다. 거기엔 기타리스트 박주원을 고정 게스트로 했다는 게 주효해 보이기도 한다. 박주원의 기타 실력은 거의 타의추종을 불허해 보인다.
난 정미조가 70년 대초 그저 입 큰 가수로만 기억했는데 그녀가 얼마나 지적이고 매력적인 가수였는지 다시 보니 알겠더라. 이장희는 말할 것도 없고. 그런 프로에 양준일이 두 번째 손님으로 나온다니 안 볼 수가 없다.
그런데 양준일. 생각 보다 훨씬 더 괜찮은 사람이었다. 내가 좀 보수적이어서 그런지 중성적 외모를 딱히 좋아하지 않는데 보면 볼수록 매력적이고, 자기 주관이 뚜렷하면서도 겸손함을 잃지 않고 있어 보는 내내 훈훈했다. 나는 그가 데뷔 곡'리베카'를 부를 때 검은 모자를 사용했다고 기억하는데, 모자는 'Dance with me 아가씨'에서 썼다니 헷갈린다. 놀라운 건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가 그가 처음 썼던 건 아니라는 것. 이미 오래 전부터 춤꾼들 사이에선 널리 사용됐고 대회가 있을 정도라고 한다. 양준일이 좋아하는 가수는 존트라볼타다. 마이클 잭슨과 존 트라볼타의 춤이 어떻게 다른가를 보여주는데 진짜 매력적이었다. 더 매력적인 건, 리베카를 들고 나왔을 때 프로 안무가의 안무를 무시하고 자기만의 안무로 무대를 평정한 것. 근성있다.
근데 그 프로를 너무 잘 봤나 보다. 꿈에 양준일인지 양준일 닮은 사람인지 하는 사람이 나와 나를 좋아한다고 해 놓고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 것을 보고 깼다. 이거 원, 양준일을 좋아해, 말아?ㅎㅎㅎㅎㅎ
아무튼 <배철수 잼>은 좋은 프로다. 이런 프로 오래 오래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