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지침 걷는사람 희곡집 3
오세혁 지음 / 걷는사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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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 여러 장르가 있지만 희곡은 내놓은 자식 같아 왠지 짠한 느낌이 든다. 일반 독자들도 소설이나 에세이, 시는 읽어도 희곡은 잘 안 읽지 않는가. 나도 한때는 연극  대본을 썼고 지금도 간간히 기회 있을 때마다 쓰고 있긴 하지만 희곡은 잘 읽지 않는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아무리 TV 드라마와 영화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도 책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유독 희곡은 공연으로 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헤겔은 희곡은 시와 소설의 특성을 다 갖춘 변증법적 형식이라며 가장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유럽의 이렇다 할 작가들도 희곡을 쓰기도 하고, 독자들 역시 일상적으로 희곡을 즐겨 읽는다고 한다. 과연 그런 풍토가 우리나라엔 언제쯤이면 정착이 될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희곡집을 읽었다. 이 책은 저자의 두 번째 책이라고 한다. 저자는 연극 연출도 겸하고 있는데 첫 번째 책이 나오기까지 10년이 걸렸고, 두 번째 책은 그로부터 5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쯤 되면 작가로서는 엄청 게으른 작가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공연을 해야 하는 연출가의 입장이라면 꼭 게으르다고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작가의 입장에서 자신의 작품이 공연이 되든 안 되든 꾸준히 쓰는 노력을 한다면 독자들도 언젠간 희곡을 공연용이 아닌 문학의 한 장르로 인식하고 읽게 되지 않을까? 아님 우리나라의 지명도 있는 작가들도 영역을 넓힌다는 의미에서 가끔 희곡도 써 주시던가. 시와 소설의 특성을 함께 두루 갖춘 분야가 희곡이라지 않는가. 보통 우리나라에 알려진 소설가들 그들의 시작은 시였다가 소설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젠 그러지 말고 희곡을 경유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저자가 필력이 있어 보인다. 수록작 모두 수준 있어 보이는데 그중 나는 '괴벨스 극장'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괴벨스는 알다시피 히틀러가 총애하던 인물이었고, 극은 그가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히틀러의 눈에 띄어 나치 시대를 열어 나갔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선동가로서 문학 및 예술을 사랑했고 그것을 교묘히 나치 선동에 이용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장애자였고 삐뚤어진 종교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알고 보면 그 자신 스스로가 그랬다기 보단 주위의 사람들이 그를 잘못된 시선으로 바라봤기 때문에 그런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이 괴벨스란 인물을 작품 속에서 살려내면서 오늘날의 세태를 풍자하고 비판하기도 하는데 그 엮는 솜씨가 제법 근사하다. 작가의 이런 풍자와 비판은 다른 여타의 작품에서도 보이고 있는데 희곡의 장점은 바로 이런 것에 있지 않을까 싶다. 특별히 이런 파편화된 포스트모더니즘의 사회에서 예술은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까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작품 전반에 깔려 있기도 한데 과연 예술가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언제 한 번 작가의 작품을 귀로 들어봤으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맨 마지막 수록작 '분장실 청소'는 연극의 마지막 공연과 함께 철거될 분장실에서의 철거반원과 배우, 가수의 처남 등이 펼치는 일종의 콩트 같은 느낌이기도 한데, 재치도 있으면서 웃픈 연극이기도 하다.      

      

앞서 희곡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했는데 다행히도 요즘은 희곡집들이 꽤 괜찮은 판형으로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이제 일반 독자들도 시야를 넓혀 희곡도 즐겨 읽었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추천할만하다.  

 

햄릿이 연극에 대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잊지 말게. 연극은 인간의 영혼을 빛추는 거울이어야 하네.‘ 뭔 뜻인지 알아? 연극을 하기 전에 인간이 되란 소리야.너희들은 연극 하려면 멀었어. 왜냐? 인간이 덜 되었거든. 내가 너희를 배우가 되기 전에 인간으로 만들어 주겠다. - P20

생각하면서 살지 마라. 살면서 생각해라. 시대는 바뀌고 바뀌고 또 바뀐다. 그때마다 시대의 부끄러움도 달라진다. 그때마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라. 그럼 너는 부끄럽지 않게 살 수 있다. 이 온갖 가능성이 열려 있는 파릇파릇한 놈아. - P23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가혹한 운명의 화살이여. 환난의 파도를 이 손으로 막아낼 수 있을까. 죽는다는 것은 잠든다는 것 잠든다는 것은 꿈꾼다는 것. 내게 꿈꿀 권리가 없다면 세상의 비난과 조소를 어찌 견뎌낼 수 있을까. 폭군의 횡포, 세도가의 모욕, 사랑의 고통, 무성의한 재판, 관리들의 오만, 세상 곳곳 악취를 풍기며 썩어들어가는 부패, 이 더러운 똥통 같은 세상을 어찌 참아낼 수 있을 쏘냐. 한 자루의 단도면 깨끗이 청산할 수 있을 것을.

주혁들, 박수

이게 바로 독백이야. 마음의 말이지. 일상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말이지. 마음속에 흐르는 생각을 혼자만의 시공간에서 말하는 것이 독백이다. 연극이 위대한 이유는 독백이 있기 때문이야. 일상에서는 한 사람이 긴 시간 동안 말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저마다 자기 말을 하지. - P29

인간이란 존재는 그런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행복과 살아가길 바랍니다. 다른 사람의 불행과 살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누굴 싫어하거나 경멸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의 지식은 우리를 냉담하게 만들었으며, 우리의 영리함은 우리를 차갑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생각은 많이 하면서, 느끼는 건 정말 짧습니다. 우리는 기계보다는 인간성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영리함 보다는 친절함과 상냥함이 필요합니다. 이것들이 없다면, 인생은 폭력이 될 것이며, 우리 모두 헛되이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미워하지 마십시오. 사랑받지 못한 미움일뿐이고, 자연스럽지 못한 증오일뿐입니다.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왜냐하면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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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2 2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11-13 14:42   좋아요 0 | URL
그래도 셰익스피어 정도는 읽으시지 않으셨을까요?
기회되시면 함 읽어 보세요. 시나 소설과는 또다른 맛이 있어요.^^

페크pek0501 2019-11-14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희곡 읽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예전에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다 읽었지만 소설에 비해 스피드를 내어 읽을 수 없었죠.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름까지 기억해 가며 읽는 게 부담스러워 이번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의 희곡 <관객 모독>을 사지 않고 그의 소설로만 두 권을 샀어요.

좋은 희곡 있으면 추천해 주세요. 읽어 보겠습니다.

stella.K 2019-11-14 14:27   좋아요 0 | URL
ㅎㅎ 맞아요. 솔직히 셰익스피어 좀 어려워요. 그런데 왜 셰익스피어를 읽지 않고는 희곡을 논할 수 없는 것처럼 되어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그래서도 희곡을 가까이 할 수 없는지도 모르겠어요.
저도 희곡은 많이 못 읽어서 감히 추천할 수 있는 수준은 못되구요,
얼마전에 읽은 범우사에서 나온 희곡 안중근도 괜찮고, <현대 명작 단만극 선집>이란 책도 꽤 괜찮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저는 나혜석의 생애를 다룬 희곡집으로 나온 게 있어 찜해 둔 적이 있는데
읽어보고 싶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