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y?] 고(古)서점은 그 시대 정신의 ‘사랑방’
  • 박대헌 칼럼

    박인환의 1945년 종로 책방‘마리서사’ 문화예술인 천국이었다는데…

    한 15년쯤 됐을까. 내가 운영하는 고서점 ‘호산방’ 손님 중에 젊은 화가 황모씨가 있었다. 하루는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책 중에 한 권을 들고 와 자랑했다. 1955년 10월 산호장에서 발행된 박인환의 ‘선시집(選詩集)’이었다.

    원래 그 책은 1955년 10월에 출판되어 서점에 배포되기 직전에 인쇄소에서 화재로 인해 모두 불탔다. 그래서 이듬해인 1956년 1월 다시 제작했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박인환 연구자나 몇몇 수집가 정도이다. 박인환의 ‘선시집’은 1956년 1월에 초판본이 출판되었으며, 표지는 호부장으로 되어 있다. 호부장은 제본에서 옆을 매는 방식의 하나로, 속장을 철사로 매고 표지를 싼 다음, 표지째 함께 마무리 재단을 하는 제본 방식이다.

    그런데 황씨의 것은 하드커버의 고급 양장이었다. 판권지의 발행 일자를 확인해 보니 ‘1955년 10월’이었다. 바로 화재 직전에 출판된 오리지널 판본이었다. 물론 나도 그 판본은 처음 보았다. 흥미롭게도 그 책은 저자가 시인 장호강에게 증정한 친필 사인이 있었고, 그 옆엔 박인환의 캐리커처를 만화가 코주부 김용환이 직접 그렸다. 또한 면지와 속표지 그리고 뒷표지 면지 등에는 김광주, 이진섭, 송지영, 박거영, 차태진, 김광식, 조영암 등의 친필 메모가 적혀 있었다. 여기에는 ‘1956년 1월 16일’에 썼다는 기록도 있다. 또 같은 날짜의 신문 서평이 스크랩되어 붙어 있기도 하다. 이로써 미루어 본다면 1월 16일 출판기념회가 있었고 이 자리에서 지인들이 이 책에다 축하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박인환은 화재 직전에 이 책을 인쇄소로부터 직접 전해 받은 듯하다. 그리고 출판기념회 때 이 오리지널 판본을 장호강에게 기증한 것으로 보인다. 화재를 피한 오리지널 판본이 몇 권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이 현재로서는 유일본이 아닌가 싶다. 책에는 당시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여러 문인들의 친필 메시지가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그때 이미 특별한 의미를 부여받은 것으로 보인다.

    • “寅煥이 인환이가
      冊가게에서 처음 만난 그 寅煥이가
      十年을 하로같이
      詩속에서 詩를 찾으며 읊으며
      용하게도 오늘까지 뻗혀왔다는 게
      진정 반갑구나.”


    • 소설가이자 당시 언론인이었던 송지영의 축하 메시지다. 이 메모에 등장하는 책 가게란 박인환이 종로에서 경영하던 고서점 ‘마리서사(茉?書肆)’를 말한다. 박인환은 1945년 해방이 되자 평양의학전문학교를 다니다 말고 그해 말 종로에 고서점 ‘마리서사’를 차렸다.

      마리서사란 이름은 프랑스의 화가이자 시인인 마리 로랑생의 이름에서 연유하였다 한다. 마리 로랑생은 19세기 프랑스 모더니즘 선구자인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연인이었고, 당시 몽마르트의 젊은 예술가들에게 싱싱한 영감을 불러일으키게 했던 화가였다. 아폴리네르는 마리를 만나 많은 예술적 자극을 받아 시를 썼으며, 마리에게 바치는 시 ‘마리’를 남기기도 했다.

      박인환이 아폴리네르와 마리를 통해 프랑스 문학과 그 예술적 삶을 지향하려고 했음은 박인환 부인의 회고나 김수영의 글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 후 마리서사는 한국 모더니즘 시운동의 모태 역할을 하면서 문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였다. 송지영과 박인환은 이때부터 아주 절친한 사이였다.

      박인환은 마리서사를 생활의 방편으로써 운영하였다기보다 일종의 문학수업의 한 과정으로 여겼던 것 같다. 그곳에 진열된 책들 대부분은 그가 소장하고 있던 책들이었다. 앙드레 브르통, 폴 엘뤼아르, 마리 로랑생, 장 콕토와 같은 외국 현대 시인들의 시집과 일본의 시잡지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마리서사에는 시인이나 소설가, 화가들이 모여들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었다. 박인환이 마리서사를 운영하던 2년여 동안을 “박인환이 제일 기분 내던 때”였다고 김수영은 회고하기도 했다. 이처럼 박인환 ‘선시집’ 오리지널 판본은 인간 박인환의 정취가 물씬 베어나는 책이다. 따라서 이런 내력을 갖고 있는 책이라면 누구든 욕심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그날 나는 안복(眼福)을 누린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나는 이처럼 귀한 고서를 소장하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다. 그렇다고 남의 귀한 장서를 내놓으라고 말한 적은 거의 없다. 내가 욕심나는 책이라면 남도 귀하게 여기기는 마찬가질 텐데 어떻게 그것을 내놓으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기껏 한다는 소리가, “이 다음에 책을 처분할 의사가 있으면 내게 제일 먼저 알려 주시오” 하는 정도다.

      그리고 2~3년 후, 화가 황씨로부터 고서 일부를 정리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고서를 수집하다 보니 그림 공부를 게을리 하는 것 같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 때 300~400권의 문학서적을 구할 수 있었는데, 물론 여기에는 앞서 말한 박인환 ‘선시집’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 이 책 한 권 때문에 300~400권의 책을 샀던 셈이다.

      고서점은 고서를 사고파는 곳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고서를 사고파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고서점은 문화예술인들의 사랑방이고 학문탐구의 젖줄 역할을 하는 곳이다. 이러한 고서점이 지금은 시류에 밀려 쇠퇴일로에 있다. 서울 시내 중심가에는 물론, 학문의 전당이라는 대학가에도 변변한 고서점 하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 ▲박대헌 씨
    • 박대헌은

      고서점 ‘호산방’ 주인, 영월책박물관 관장. 저서로 “서양인이 본 조선”과 “우리 책의 장정과 장정가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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