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아프리카하면 가뭄과 기아를 떠올리게 된다. 언제부터였을까? 아프리카 보도를 처음 접하게된 것은 말이다. 적어도 내가 10대 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로부터 얼마의 세월이 흘렀을까? 아프리카의 기아는 조금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뉴스들은 그것을 보도할 때마다 가뭄 탓을 한다. 그렇다면 아프리카는 정말 신이 버린 땅인지도 모른다. 어쩌자고 그 지역만 비가 오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나라 한반도에도 가뭄이 들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는가? 실제로 작년에 북한은 극심한 가뭄으로 가득이나 어려운 식량난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이 지역에 비만 오면 기아는 해결이 될까?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으므로 이것이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비단 기후나 환경의 문제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선진국 또는 다국적 기업의 횡포에 내전으로 인한 군벌의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얽켜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있는 나라가 없는 나라를 도와주며 사는 것 그것이 사람된 또는 나라된 도리가 아닌가? 실제로 선진국들이 기아로 허덕이는 나라를 도와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것을 그저 아무 조건없이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도와줄리 만무하다. 거기엔 많은 이해관계들이 복잡하게 얽켜있었던 것이다. 역시 부익부 빈익빈의 논리를 피해갈 수 없다. 어디 그뿐인가? 가난한 나라는 가난한 나라대로 한 움큼 밖에 안되는 권력 가지고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거기에 희생당하는 것은 저 굶주림에 허덕이는 어린아이들과 무고한 양민들이다. 어째서 자기 나라의 존망이 달린 문젠데 군벌에 의한 내전만을 거듭하고 있단 말인가? 하다못해 자기나라 기아문제를 무기로 들고 나오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야만도 그런 야만은 없을 듯 하다. 그러니 기아는 그냥 기아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는, 잘 사는 나라와 못 사는 나라의 박빙의 "빼쩨라"식 한판 승부의 장이라고나 해야할까? 결국 문제는 인간의 '탐욕'이다.

나는 결코 두껍지 않은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문득 중간중간, 나라의 균형, 즉 한 국가가 국가로써 존립하기까지 어떠한 균형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지금 아프리카나 기아로 시달리는 여타의 국가에서는 오늘의 한끼를 해결하기 위해 허우적대지만, 만일 그들이 이 밥의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을 때는 장차 어떤 불행한 사태가 일어날런지 아무도 장담 못할 것이다. 지리상으로만 불려지고 있고, 국경에 의한 나라가 과연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 결국 '국가 경영'이라고 하는 큰 틀에서 자신의 나라가 의식이 깨이지 않으면 결국 부자나라와 다국적 기업의 짓밟힘은 계속될 것이고, 군벌에 의한 우민화 정책 또한 계속 될 것이다. 그리고 부자나라나 다국적 기업 또는 부자에게만 유리한 철학(신자유주의) 역시도 언제까지 그들의 발목을 탄탄히 받혀 줄런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물론 그들이 쉽게 망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오랫동안 억압 받고 고통 당하는 가난한 자의 피맺힌 한을 언제까지고 외면하며 눌러만 놓을 수는 없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가난한 자는 그들의 문제일뿐이라고 언제까지 배만 두드리겠는가?

이 책은,  저자가 그의 아들에게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지 그 이유를 아주 쉬운 문체로 설명한 책이다. 너무 쉬운 문체로 써서 감탄이 다 나올지경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그런데 한가지 흥미로운 건, 학교에서는 '기아'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가르치지 않고 있는가? 그 이유는 너무나 간단했다. 그것을 아는 것이 부끄럽기 때문이라고 한다. 왜 부끄러운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 역시도 이 책을 읽기로 했을 때 그리 편안한 마음으로 첫 페이지를 펼쳐 나가지 못했던 것 같다. '분명 비참할 거야. 내가 이 책을 읽는다고 무엇이 달라지겠어?'하는 마음이었지, 기아에 대해 정말 알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은 아니다(물론 어느 정도 "왜 그럴까?"하는 의문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마음도 아프고, 편치마는 않은 것이 사실이지 않은가?

그런데 돌이켜 보면,  교육이란 게 너무 많은 맹점을 가지고 있다. 성취지향적이고, 양육강식 또는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잘 살아 남을 수 있을까를 가르칠 뿐이지, 정말 '기아'에 대해서 '인권'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는다.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그토록이나 '기아'에 대해서 가르치지 못하겠다면 차라리 인간의 탐욕에 대해서 가르치는 건 어떨까? 조금은 우회하는 방법이지만 무엇이 탐욕인가를 알면 나중에 기아에 대해서도 눈을 뜨지 않을까?

이 책은 아빠와 아들이 함께 대화하는 식으로 씌여진 것으로 보아, 아마도 저자는 이 책을 교육(기아교육)에 목적을 두고 썼던 것 같다. 이것이 부자 나라의 학생들을 위해 썼다고 한다면, 기아에 허덕이는 나라의 아이들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 한끼의 식사도 재대로 할 수 없는 나라에서 무슨 배부른 소리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결국 교육만이 희망이다. 그래야 자주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 그 나라 아이들이 언제까지 부자나라에 기대어 한끼의 식사를 구걸만 할 것인가?

그런데 생각해 보라. 부자 나라의 아이들이 기아에 대해서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이 문맹을 깨우쳤을 때 부자나라가 자신의 나라를 어떻게 했는지를 알게 된다면, 인간의 역사가 어떻게 쓰일지는 명약관화한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이 책은 분명 인도주의적 사명만을 가지고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인도주의면 어떠냐? 그것도 교육의 한 일환인 것을. 배웠다면 그 배운 것을 인류공영에 이바지 할 인물로 키워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저자와 같은 인물을 존경하고 부러워한다.

저자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석학들(제프리 삭스 같은)도 가난 또는 기아의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기아에 허덕이는 나라를 살리면 이 세계는 좀 더 풍요롭고 안전할 것이다. 그런 거시적 안목을 갖지 못하고, 근시안적으로 당장 나만 잘먹고 잘 살려고 한다면 그런 인간의 '탐욕'에 화살을 꽂고 불을 질러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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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11-18 22:07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갈라파고스 2007년 11월 도서목록에 있는 책으로 2007년 11월 8일 읽은 책이다. 관심분야의 책들 위주로 읽다가 알라딘 리뷰 선발 대회 때문에 선택하게 된 책인데, 이런 책을 읽을 수록 점점 내 관심분야가 달라져감을 느낀다. 총평 물질적 풍요로움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이기에 이 책에서 언급하는 "기아의 진실"은 가히 충격적이다. 막연하게 못 사..
 
 
2007-04-10 2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07-04-11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육에 관한 부분은 역설이기도 하고, 힘들지만 누군가는 해야되는 일이라고 여겨집니다. 꼼꼼히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