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향의 책 향기] 그림자 어루만지기
  • 로버트 존슨의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
  • 이주향 수원대교수·철학 
    • 나는 선한 사람이 되기보다 온전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융의 말입니다. 꽃은 지는 것까지 꽃이고, 사랑은 이별까지 사랑이듯이 온전한 사람은 제 그림자와도 진지하게 대화하는 사람입니다.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에코의 서재)에 따르면 그림자는 심리의 어두운 측면입니다. “우리 내면의 유쾌하지 않고, 수치스럽고,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라는 거지요. 자기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제일 잘 모르는 부분, 그것이 그림자입니다. 우리 마음속 벽장 깊숙한 곳에 꼭꼭 감춰둔 그림자는 어떤 것일까요?

      억누르고 외면하고 방치한 그림자는 감춰둔 채로 숨어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순간 내 머리끝까지 올라와서 삶을 훼방하고 파란을 만듭니다. 멀쩡한 줄 알았던 내가 그토록 충동적이었더니, 따뜻한 줄 알았던 내가 이렇게 잔인한 사람이었다니, 하면서 ‘나’에게 놀란 적이 없습니까? 버림받은 그림자 짓에 대한 ‘나’의 탄식입니다. 사실 성공한 자가 실패를 두려워하면 긴장과 불안을 안고 살아야 합니다. 똑똑하고 내성적인 사람이 겸손을 모르면 자기 꾀에 넘어갑니다. 이성적이고 외향적인 사람이 명상이나 기도를 모르면 세상에 욕할 일이 천지입니다. 정결한 성모 마리아가 거리의 여자를 품지 못하면 신경증인 겁니다. 방치된 그림자 힘에 되레 당하는 거지요.

      “그림자를 현명하게 다루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참담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곧 누군가에게 무례하게 대할 것이고, 내 성격의 끔찍한 면들을 타인에게 드러내게 되거나 아니면 우울증에 빠질 것이다.”

      존슨은 결코 그림자를 만드는 선이나 성공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면을 보지 못하고 소화하지 못하면 그 왜곡이 칼이 되어 우리를 찌른다는 거지요. 그렇다면 무의식 안에 방치된 그림자를 지혜롭게 다루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존슨은 마리 앙투아네트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왕비는 불현듯 화려한 궁전이 따분해졌다. 뭔가 땅과 접촉하기를 원했던 그녀는 직접 소젖을 짜보기로 했다. 최고의 건축가를 동원해 외양간을 짓고 품종 좋은 젖소를 스위스에서 수입하는 등 모든 준비가 끝난 날, 왕비는 젖 짜는 여인의 일을 시작하려 했다. 그 때였다. 갑자기 이 일이 혐오스럽게 느껴진 왕비는 하녀더러 젖을 짜라고 명한다.”

    • 이주향 수원대교수·철학
    • 만일 왕비가 그때 소젖 짜기를 했다면 프랑스 역사는 달라졌을 거라는 것이 존슨의 추측입니다. 왕비의 충동은 우아하고 형식적인 궁정의 삶을 평범한 농노의 일로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알려 주었던 거지요. 그러고 보면 그 충동은 왕비의 그림자 안에 있는 황금이었는데 왕비는 끝내 그 황금을 꺼내지 못했던 겁니다.

      진흙 속에서 연꽃이 피듯 그림자 속에는 황금이 있습니다. 삶에서 그 황금을 발견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빛이 없으면 보이지 않고 어두움이 없으면 깃들 수 없다고. 선이 없으면 희망이 없고 악이 없으면 활력이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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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ella.K 2007-04-02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