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원정치극 ‘하얀 거탑’에 메스 대보니
  • 의사 세계, 실제로도 그런가?
  • 최보윤기자 spica@chosun.com 
    • MBC 주말 드라마 ‘하얀 거탑’. 대학병원 외과 과장 자리를 두고 정치판 못지않은 권력 암투를 벌이는 내용으로 극을 끌어가고 있다. 마이니치 신문 기자 출신 작가 야마자키 도요코가 1969년에 발표한 동명의 소설이 원작으로, 일본에선 78년과 2003년 드라마로 만들어져 큰 인기를 끌었다. 60년대 일본과 2000년대 한국을 동일시하긴 어렵다는 전제를 염두에 두고, 그 허구와 실제의 사이를 엿본다.



  • 1.대학병원 외과 과장이 뭐가 좋길래!

    과장의 가장 큰 권한은 인사·재정권. 스태프나 레지던트 등을 뽑는데 최종 권한은 임상 과장이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각 과가 쓰는 약품 선택도 좌지우지(물론 약품선정위원회를 거쳐야 한다) 하는 등 전반적인 살림을 결정하기 때문에 권한이 비교적 막강하다. 아주대학병원 관계자는 “세브란스 등 국내 대형 대학 병원 외과는 교수, 펠로우(fellow), 수련의 등이 100여명 가까이 되는데 그들을 책임지는 수장이라는 건 대단한 자리”라며 “다른 과와의 협진 등에서도 주요 결정권을 갖기 때문에 상당한 권한이 있다”고 말했다. 또 과장이라는 자리는 신뢰도의 상징. 개원을 하게 되면, 환자들이 ‘과장님’을 따라가기 때문에 간접적 ‘환금 가치’도 적잖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과장님’은 우리 실정과는 많이 다르다. 아주대병원 관계자는 “60년대 일본에서 과장직은 보통 주임 교수를 겸임했는데, 딱 한 명뿐인 데다 종신직이었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권한을 가졌던 게 사실”이라며 “우리나라에는 전임강사, 조교수, 부교수 등 여럿인 데다, 대부분 임기제로 전환해 과장도 4~6년 정도면 교체되기 때문에 ‘절대 권력자’로 보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예전엔 정형외과, 흉부외과, 성형외과 등이 다 외과에 포함돼 대단한 권력을 지녔지만, 현재는 여럿으로 분과돼 예전보다 파워가 약해졌다는 설명. 게다가 외과가 대표적인 ‘기피과’로 꼽히면서 최근 들어 국립대 외과 전공의 지원자가 정원의 10%도 채우지 못하는 경우까지 발생하는 실정이다.

    2.베이터가 열리는 순간, 대기하고 있던 20명이 꾸벅?

    절대 없는 일. 영동 세브란스 관계자는 “진짜 웃긴다”며 “그렇게 몰려 다니면서 회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현재 전반적으로 외과 인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고 갑상선, 유방, 췌장 등 분야별로 나눠져 있는 터라, 과장이라도 보통 자기 분야만 맡아서 회진을 한다”고 말했다. “보통 한 교수에(과장도 포함) 레지던트 1년차 주치의와 4년차 치프(chief) 등 3~4명만 회진을 돈다”는 것. “바빠 죽겠는데 누가 엘리베이터에서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느냐”는 게 일반적 반응. 단, 학생들이 파견 나오면 한 과당 8명 정도 배분돼, 회진마다 학생 4~5명이 붙어 다니긴 한다.

    3.의사는 가족을 수술하지 않는다?

    불문율이다. 이대 목동 병원의 한 교수는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자기 자식에게 칼을 대지 못하는 게 사실”이라며 “냉정해지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객관적으로 진단 내리기 어렵다는 설명도 있다. 신촌 세브란스의 한 외과 교수는 “가족 중에 암환자가 있을 경우 원리 원칙대로 하면 다 도려내야 할 것도 마음이 약해서 절반밖에 못 도려내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며 “사실상 자기 판단력이 흐려질 텐데 일부러 일을 망칠 필요없다”고 말했다.
    • 4.‘부인회’의 존재 유무는? 학연과 뇌물은?

      드라마 자문을 맡고 있는 순천향대 부천병원 외과 주종우 교수는 “부교수 장준혁(김명민)이 부인을 통해 부원장 우용길(김창완)에게 그림을 보낸 것처럼 뇌물과 각종 비리의 온상이 되는 ‘부인회’ 역시 우리나라엔 없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과장이 대학 후배 노민국(차인표)을 외과 과장으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된 것처럼 “다른 업계처럼, 학연을 끌어들이는 사람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이주완(이정길)이 후배 노민국의 방 문 앞에서 무릎을 꿇는 장면, 부원장과 합세해 장준혁 같은 에이스를 지방으로 보내려는 구도 등은 현실에선 무리한 설정이라는 설명이다.

      그 외에 드라마에서처럼 우리나라엔 천장에서 수술 장면을 참관할 수 있는 시설은 아직 없다. 이 장면은 15억원을 들여 경기도 이천에 지은 1200평짜리 세트장에서 촬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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