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이준익

출연: 박정민, 김고운 외

 

 

 

 

처음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 그 영화가 어떤 스토린가, 누가 나오는가, 재미는 있는가 뭐 이런 걸 중점으로 볼 것이다. 그러다 배우가 연기를 잘하는가 못하는가를 따지고 또 그러다 감독이 누구냐를 따지게 되고 그 감독이 영화를 잘 만드냐 못 만드냐를 품평하게 된다. 그건 확실히 관객의 권리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면서 그런 것조차 품평할 줄 모른다면 그게 어디 관객이랴?

 

 

이 영화, 요즘 충무로에서 가장 핫한 배우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그것만으로도 후회할 일은 없을 것이다. 김고은이야 더 이상 말이 필요없고, 박정민 역시 그렇다. 난 박정민이 영화에서 그렇게 랩을 잘하는 줄 몰랐다. 물론 원래 랩을 잘 했는지, 이 영화를 위해 노력한 결과인지 아니면 립씽크인지 잘 모르겠다. 배우의 자존심을 생각하면 립씽크를 했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난 이 두 배우 때문에 이 영화를 선택하지 않는다. 영화는 결국 감독을 위한 예술이다. 나는 이준익이란 감독 때문에 이 영화를 선택했다. 처음 그의 영화를 대한다면 감독을 모르니까 당연 누가 나오는가를 보고 선택을 했고 것이다. 나 같은 경우 이준기 주연의 <왕의 남자>가 아니었을까? 그렇다고 그때만 하더라도 내가 이준기 배우를 잘 알았던 건 아니고, 그냥 영화에서 연기를 인상 깊게해서 이런 배우도 있었네 했을 뿐이다. 어쨌든 그후 난 기회있을 때마다 감독의 영화를 즐겨봤고 그 정점을 찍은 영화는 <동주>였던 것 같다. 너무 좋아 거의 연거푸 세 번을 봤다. 그건 아마도 윤동주라는 이름이 주는 메리트가 더해졌을 것이다.

 

물론 그가 내놓는 영화마다 성공했던 건 아닐 것이다. 나 역시 그의 영화를 빠짐없이 다 본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의 영화를 보면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감성이 고스란히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그는 모르긴 해도 요즘 보기 드문 로맨티스트인 것 같기도 하다. 그의 영화를 보면 그리 돈을 들인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난 그의 영화에 별점 3개 반 내지는 네 개는 줄 수 있다. 누구는 째째하게 그게 뭐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원래 영화 평점이 좀 짠 편이다. 그러니 그만한 별점이라면 꽤 높은 점수다.

 

스토리는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 언제나 그렇듯 해 아래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 비슷한 또는 정해진 플롯을 누가 얼만큼 잘 요리하느냐가 결국 관건인데 그렇게 얘기하자면 감독은 스토리를 참 잘 다룬다. 아마 모르긴 해도 문학에, 특히 소설과 시에 정통해 있지 않나 싶다. 더구나 김고은을 아예 소설가로 내세웠다. 난 또 이상하게도 영화든, 드라마든 심지어 소설에 작가를 전면에 내세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묘하게도 닭살이 돋는다. 동주처럼 아예 작가의 삶을 다루면 모를까. 좀 싸 보이고,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땜빵식이란 느낌이 든다랄까? 그래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더구나 책에 나오는 구절과 장면을 엮어 놓는 것을 보면 그게 꼭 싫은 건 아니지만 좀 아마추어적이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감독이 요즘 다시 회춘을 하는 건 아닌가? 

그렇더라도 난 여전히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특히 박정민의 랩을 유심히 봤다. 내가 원래 뮤지컬에 관심이 많고, 또 요즘 갑자기 뮤지컬 작업을 하게 될 기회가 생겨서 더 유심히 보게 된다. 반주는 단조로우면서도 나긋나긋하고, 그러면서도 고독함이 느껴진다. 가사는 자유로우면서도 다소 거칠고 반항적이고, 역시 고독하다. 처음 오페라가 그랬을 것이다. 물론 그 전에 가곡이 있었겠지만 그것이 갖는 정형성을 탈피해 조금 더 자연스럽게 말에 곡을 입히지 않았을까? 그러나 오페라는 거의 동선이 없고 뻣뻣하게 서서 노래만 불렀다. 조금 더 현대적이면서 연기적 요소와 포퍼먼스를 가미한 새로운 뭔가가 필요해 뮤지컬을 탄생시키지 않았을까? 그러다 음악적 요소만 따로 떼어놓고 봤을 때 더 강하면서도 저항적인 랩이란 장르를 탄생시킨 건 아닌지? 아무튼 가사를 보면 아무나 자유롭게 써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나도 한번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 어느 초등학교 교사가 자신이 가르치는 모든 교과를 랩으로 만들어 부르는 걸 봤는데 꽤 잘하더라. 어쨌든 감독은 영화에서 랩을 사용할 생각을 했던 것을 보면 분명 이제까지 안 해 본걸 시도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건 감독으로선 새로운 도전이었고 감독의 청년 정신을 나름 잘 표현한 장치로도 읽힐 수 있을 것 같다. 다음 영화에선 무엇을 보여줄까? 기대가 되기도 한다.

 

이 영화는 또한 외디푸스컴플랙스에도 꽤 충실해 보인다. 여기, 가정을 돌보지도 않고 바깥으로만 돌며 아내에게 폭력까지 행사하고 그것을 지켜만 보며 증오의 감정을 키운 아들이 있다. 게다가 조그만 시골 동네에서 사춘기까지 보낸 그는 고향에 대한 기억이 그리 아름답지 않다. 그래서 고향을 떠났는데,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함께 자란 여자 친구가 아버지가 편찮다며 고향으로 호출한다. 

 

고향이 지겨워 떠났을텐데 12년만에 돌아 온 고향은 자꾸 그의 안 좋은 기억을 건드린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 고향을 떠나건 과연 그곳에 관한 기억이 그렇게 안 좋은 기억만 있을까? 그렇지마는 않다고 감독은 말하는 것 같다. 또한 영화는 그 과거에 묻어두고 도망친 자신의 풀지못한 인생을 마주하라고 (관객에게) 주문하기도 한다. 하긴 심리학에서는 현실에 불만이 있는 건 과거에 풀지못한 여러 가지 욕구불만과 인간관계 등이 꼬여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그것과 화해를 시도하기도 하는데 뭐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다시 기억하기 싫은 추억도 시간이 흘러 다시 떠올리면 그다지 나쁘지 않고 긍정할 수 있는 부분도 꽤 있음을 상기시켜 주기도 한다. 

 

아버지를 증오하는 아들의 마음은 이해하겠는데, 예전에 드라마나 영화는 그 증오의 마음을 삯히기 위해 주먹을 불끈 쥐거나 애꿎은 거울을 깨거나 그런 것으로 화를 표현하기도 한다. 아버지를 증오할망정 폭력을 쓰는 건 패륜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런데 이 영화에선 실제로 아버지에게 폭력을 쓴다. 물론 그게 나중에 아버지와 화해를 하는데 구실을 하기도 하지만, 감독은 여기까지 표현하게 만들었구나 기존의 아날로그적 방식에서 조금 다른 방식을 썼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영화는 어떤 개연성 보다는 그냥 관객의 입장에서 보고 즐기라고 하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해피엔딩은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래서일까? 마지막 엔딩은 뮤지컬의 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는데 그게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도 있는데 혹시 이 영화를 별로 재미없게 봤더라도 그 엔딩에선 만족하게 되지 않을까? 

 

아무튼 감독은 관객을 위한 감독이다. 그의 일련의 작품들을 보면 자기 세계를 고집하기 보단 관객과의 공감, 소통 적어도 관객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난 이런 감독의 자세가 마음에 든다. 부디 좀 더 오래 감독의 영화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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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8-10-10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미있게 봤습니다. 믿고 보는 감독이랄까...포스터 보고 뭐야? 이러다가 감독 이름 보고 한번 봐야지...결과는 꽤 만족입니다.

stella.K 2018-10-10 15:23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어요.^^
그렇죠? 이준익의 영화를 보는 건 결코 작지않은 기쁨입니다.
그나저나 날씨는 쓸쓸해져 가니
<동주> 한 번 더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