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느냐
옥한흠 지음 / 국제제자훈련원(DMI.디엠출판유통)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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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돌이켜 보면, 한때나마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수 있었다는 건 축복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목사님의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건, 그분이 암 투병 때문에 잠시 강단을 떠나 있다가 다시 복귀한지 얼마 안 되는 때였다.

 

먼저 다니던 교회도 있었지만 웬지 교회를 옮기고 싶었다. 교회를 옮길 요량이라면 교회를 어디로 하면 좋을까 한동안 투어를 다녀보는 것도 좋을 텐데 여기 저기 쑤시고 돌아다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목사님의 교회를 다니기로 했다. 왜 그랬는지는 그때도 모르고, 지금도 모른다. 취향이라고 하기엔 이 새로운 교회가 나와 맞느냐면 꼭 그렇지도 않는 것 같았다. 내가 이 교회를 다니면서 당했던 설움과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생각하면 교회는 함부로 옮기는 게 아닌가 하는 회의도 들었다. 물론 그러기엔 내가 교회라는 속성을 너무 몰랐던 거겠지만. 아마도 내가 이 교회를 오래도록 다닐 수 있는 요인 중 하나는 목사님의 설교 때문이란 걸 부인하지 못하겠다. 목사님의 설교의 깊이는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하지만 그만큼 쉽게 들리는 설교도 아니다. 정말 쉼호흡을 크게 한번하고, 각잡고 들어야 들릴 수 있는 설교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내가 목사님의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때는 20대 중반무렵이었다. 그 나이에도 깊이를 추구하는 사람이 없으란 법은 없겠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20대는 20대다. 가끔은 목사님의 설교가 버거울 때가 있었다. 그때는 내가 주일학교 교사를 하던 때이기도 했는데, 교사란 이유만으로 주일학교 예배에 참석해야 했던 나는 가끔은 피곤하다는 핑계로 목사님이 주관하시는 예배를 따로 참석하지 않는 때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목사님은 강단으로 복귀를 했다고는 하지만 주일 날 하루 네 번있는 예배를 다 주제하시는 건 아니었다. 거진 대부분은, 정말 가물에 콩나기를 제외하고 목사님은 1부 예배만 주제를 하셨고 나머지는 녹화 설교로 대치했다. 그런데도 그 녹화 설교를 들으러 원근각처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걸 보면 목사님은 정말 난 분이란 생각이 들긴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목사님의 설교를 거부한 나 같은 신자가 있었다는 건 확실히 목사님의 불행인지도 모르고, 나는 문제적 신자임에 틀림없다.

 

목사님의 설교는 그야말로 지성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목사님 이전에 또 목사님 이후에도 명설교가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목사님은 자칫 크리스찬 지성을 대표하는 C.S 루이스나 20세기 초 명설교가였던 로이드 존스 목사에 비견되기도 했다. 그분이 그만큼 탁월한 설교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디에 있었을까?

 

목사님은 살아생전에 남의 교회나 여타 집회에 강사로 나선 적이 거의 없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것을 사람들은 당신이 지병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서문을 대신한 지난 2006년도에 월간 <디사이플>과의 인터뷰를 보면, 목사가 유명해지면 여기저기서 설교 청탁을 많이 받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목자로서 내 교회 교인들을 챙기는 건 자연 소홀하게 된다. 목사님은 양심상 그것을 감당할 수 없으셨다. 그러니 당신의 병 때문에 외부 청탁설교를 응하지 못했다는 건 그분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목사님은 또 그런 말씀도 하셨다. 좋은 설교란 회중이 의무적으로 들어주는 설교가 아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들리는 설교라고. 아뿔사! 나는 앞서 그분의 설교는 마음을 정제해야 비로소 들리는 설교라고 했다. 이거 원, 목사와 성도간에 이렇게 생각이 달라서야... 그런데 그 다음 말씀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지난 날을 돌이켜보면, 입맛이 까다로운 아이를 위해 그 어미가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들 듯, 저 역시 만족할 수 없으나 비슷한 몸부림을 친 것 같습니다. 그러한 까닥인지 저는 설교를 즐거운 소명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무거운 십자가로 생각하는 체질이 되었습니다. 행복한 설교자의 자격을 잃었다고나 할까요?

 

그러니까 난 어미가 자식을 위해 좋은 음식을 만들어주면 한사코 안 먹겠다고 떼쓰는 어린아이와 같았다는 말도 될 것이다. 목사님의 설교가 그렇게 어려운 거라면 난 몇번 듣다가 말았어야 한다. 하지만 목사님의 설교는 기꺼이 나의 무릎을 꺽고, 들어 청종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늘 몸이 안 좋으셔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어느 때고 목사님의 설교를 만족하게 들었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던 것 같다. 늘 아쉽고, 감질나고, 너무 귀해 주일 날 목사님이 설교를 들을 수 있는지 아닌지가 늘 초미의 관심사였다.  

 

목사님은 남들보다 일찍 은퇴를 하셨는데, 보통 다른 교회 같으면 원로 목사를 위해 1부 예배 정도는 원로 목사가 설교를 하거나 어쨌든 교인들이 그 존재를 잊지 않도록 배려를 하는데 목사님은 은퇴하고부턴 정말 사정의 사정을 거듭해야 겨우 한 번 응낙을 할 정도였다. 이를테면 송구영신 예배나 부활절 연합 예배 같은 아주 특별한 때 말이다. 어찌보면 그분의 말년은 은둔자의 설교자였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 목사님의 설교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때가 왔다. 오랫동안 암과 투병하신 것을 생각하면 역시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렸다는 말이 맞는 것도 같지만, 인간의 평균 기대 수명이 80을 넘는 상황에서 그분의 부고 소식은 정말 안타까웠다. 무엇보다 이젠 가물에 콩나기로도 그분의 설교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것이 제일 아쉬웠다.

 

그날을 확실히 기억한다. 목사님이 돌아가시던 날을 말이다. 늦은 밤부터 유독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태풍이었을까? 그건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그전부터 오늘, 내일하신 상황이긴 했지만 성경의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지 않은가? 목사님도 그런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바람이 홀연히 목사님을 천국으로 인도했을 것만 같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이른 아침 바람이 겨우 잦아들자 교회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돌아가셨다고. 당연히 나는 목사님의 교회 교인으로 목사님 영전에 꽃을 헌화하고, 그 돌아오는 주일은 눈물의 예배를 드렸다. 

 

그로부터 1년 후 추모의 의미를 담아 이 책이 나왔다. 78년도에 개척하시고 은퇴하실 때까지 몇 번의 설교를 하셨을까? 그중 10편의 설교를 묶었으니 옥중의 옥에 해당하는 설교일 것이다. 몇 편은 나도 기억이 어럼풋한데, 목사님이 언제 이런 설교도 하셨나 싶은 설교가 다수다. 그런 걸 보면 그 옛날 주일학교 교사를 하고 하필 땡땡이 쳤을 때 하신 설교인지도 모르고, 또 어쩌면 내가 목사님의 교회를 다니기 전에 하신 설교인지도 모른다.

 

난 이 설교집을 발간 당시 샀고, 최근에서야 읽었다. 감회가 새롭다. 마치 타임 캡슐을 꺼내 보는 느낌 같기도 하고, 멀리 시간의 바다를 돌아 도착한 병속의 편지를 꺼내 보는 느낌이다. 목사님이 천국에서 나에게 편지를 보내주신 것만 같다.

 

나도 내가 이렇게 오래 신앙생활을 하게될 줄은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젊었을 때 지어 볼 수 있는 죄는 다 지어보고, 할 수 있는 방탕은 다 해 보고 이 나이쯤 해서 신앙생활을 할 걸 그랬다고 농담으로 말하곤 하는데, 그건 정말 농담이다. 내가 그 어린 날 신앙을 갖지 않고, 젊은 날 교회생활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만큼이라도 사람 구실을 했겠나 싶다. 추억도 교회에서 쌓은 게 90% 이상이다. 하지만  신앙 생활을 오래하면 어쩔 수 없이 타성이 붙는다. 그럴 때 목사님 생각하며 이 책을 읽었다. 설교의 여러 가지 구성 요소들이 있겠지만 성도들의 신앙을 독려하는 것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니 목사님의 육성을 듣는 것만 같고, 다시 옛날로 돌아간 것만 같다.

 

목사님의 설교는 지성주의 설교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목사님으로선 그럴수 밖에 없었던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그때 한국 기독교는 너무 은사주의로 흐르고,  무당이 신내림을 받듯 강력한 성령 체험과 능력을 받아야 한다는 식의 신앙이 팽배했다. 그것을 당신은 굉장히 경계하셨다. 목사님은 하나님의 은혜는 늘 삶속에서 지속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세월이 흐르고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분명 기독교의 질적인 변화를 가져왔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너무 그러다보니 성령의 역사하심을 제한하거나 축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그점은 좀 아쉽긴 하지만 목사님이 한국 교회에 미친 영향력은 결코 가볍지 않다. 

 

책을 덥고나니 목사님 설교는 일생에 한 번이겠구나 싶다. 천국에 가도 목사님의 설교는 못 듣겠구나 싶다. 평생 지고가야 할 십자가로 여기셨고, 살아생전에도 설교를 한사코 거절하셨었다. 천국은 십자가가 풀어지는 곳이다. 비로소 안식하는 곳이다. 그런 목사님이 천국에서 설교를 하실 리 없다. 목사의 설교가 필요한 건 지상에서지 천국이 아닌 것이다. 그러니 그런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살았던 적이 있었다는 것이 어찌 축복이 아니겠는가? 지금은, 너도 곧 천국에 이를테니 그때까지 신앙생활 잘하고 있으라고, 신앙생활은 항상 전진이지 퇴보란 있을 수 없다고 그 특유의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마음속으로 존경하는 사람 한 사람쯤 품어 보는 것도 괜찮은 인생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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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18-07-27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신교 신자가 아니고 앞으로도 될 생각이 없지만 스텔라님의 이 글을 읽고 나니 그 분의 설교를 듣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더운데 건강 조심하시길..

stella.K 2018-07-27 19:42   좋아요 0 | URL
이거 영광인데요?ㅎㅎ
그리 말씀하시니 제가 오히려 감사합니다.
언제고 기회되시면 꼭 한번 들어보세요.
설교집 읽어보셔도 좋구요. 고맙습니다.^^

2018-07-27 17: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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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7 19: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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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7 19: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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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7 19: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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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0 18: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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