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에 비친 돈

“詩는 개인의 실존 차원서 접근
소설에선 시대와 밀접하게 결합”

돈은 문학의 거울에 어떻게 비쳐졌을까. 문학평론가 김화영씨와 김주연씨가 우리 현대 문학 속에 등장하는 돈의 다양한 모습을 분석했다. 월간지 현대문학 12월호는 특집 ‘문학과 돈’을 꾸몄다.

김화영씨는 김수영의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며’를 예로 들며 “궁핍의 두려움이 초래한 증오의 마음을 고통스럽게 토로한다”고 분석했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 분개하는가/…/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또 가난은 사회의 구조적 모순으로 인식되기도 했다고 김씨는 말했다. ‘남들은 다 배우러 간다는데/ 원수놈의 돈을 벌어 보겠다고/ 이른 새벽 종지불 밝혀서 쑥국밥을 먹고/ 네가 고향을 떠나던 날/…’(정호승 ‘마지막 편지’).

가난은 젊은 날의 추억이나 가장(家長)의 마음을 드러내는 시적 방편이기도 했다. ‘악아 악아 잘 자라/ 오늘 아침 네 엄마한테 안부 한 장 보냈단다/ 보름살이 살림 비용도 부쳤으니 받으리라/ 아으 여름날 부용꽃이여/…’(고은 ‘아버지의 자장가’). ‘밤 새어 긴 글 쓰다 지친 아침은/ 찬 술로 목을 축여 겨우 이어 가나니/ 한 수에 오만원짜리 회갑시 써 달라던/ 그 부자집 마누라 새삼스레 고마워라/…’(서정주 ‘찬 술’)

시인이 개인의 실존적 차원에서 돈 문제에 접근했다면, 소설 속의 돈은 시대와 밀접하게 결합한 것으로 분석됐다. 김주연씨는 ‘천변풍경’(박태원)과 ‘태평천하’(채만식), ‘인간문제’(강경애) 등 일제시대 소설에 등장하는 수전노들을 분석하고, 우리 문학은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돈이 처음으로 이데올로기가 되는 경험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반면, 서기원·오상원·선우휘·장용학 등 1950년대 작가들이 돈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것은 ‘전쟁으로 인해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존의 문제가 더욱 절실하게 사회를 지배한 현상의 반영’으로 해석됐다. 김씨는 이어 1970~80년대 문학은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조세희), ‘아홉컬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윤흥길) 등을 통해 돈 문제에 적극 개입하며 ‘민중문학’의 길을 열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궁핍을 벗어난 1990년 이후 소설에서 돈은 새롭게 탈바꿈 한다. 김씨는 “최인호 소설 ‘상도’가 욕망(돈)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며 돈을 대하는 소설의 새로운 자세를 주목했다.

이와 별도로 문학평론가 김미현 교수(이화여대 국문과)는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를 예로 들며 이 소설이 “돈을 삶을 장식하는 요소로 경쾌하게 그리는, ‘돈과 문학의 새로운 함수관계’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김태훈기자 scoop87@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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