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니나 그리고르브나의 무덤을 찾아갔나
송영 지음 / 문학세계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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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 오래 전부터 들어 본 이름이긴 했다. 하지만 난 언제나 그렇듯 우리나라 대표 작가들, 그것도 80년대 활동한 작가들 외엔 그다지 아는 바가 없다. 물론 그도 이때를 전후로 활동했을 것이다. 내가 이제야 그를 알아봤다는 건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다. 하긴 내가 이름만 알고 책 한 권 읽어보지 못한 작가가 어디 송영뿐이랴? 그렇게 생각하면 그는 차라리 늦게나마 운이 좋은 작가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작가는 지난 2016년도에 유명을 달리했고, 이 책은 그의 유고집이다. 그가 아직도 살았다면 게으른 독자인 나는 여전히 그를 외면했을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알고 봤더니 나름 꽤 유명한 작가겸 예술가다. <땅콩 껍질의 속의 연가>란 제목은 나도 들어 본 것 같다. 이게 난 영화 제목만으로 알고 있는데, 베스트셀러 소설이고 후에 뮤지컬과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밖에도 몇 편의 소설이 있긴 하지만 알려진 명성에 비하면 과작이고, 클래식과 바둑에도 조예가 깊다고 한다. 또한 책 제목에서 얼핏 알 수 있듯이 작가는 러시아 문학에 심취하기도 했다. 책에도 나오지만 <의사 지바고>를 무려 3번이나 읽었고, 표제작인 <나는 왜 니나 그리고브나의 무덤을 찾아갔나>에선 러시아 현지의 어느 문학 회의에서 대학교 때 읽은 톨스토이의 <참회록>아니면 <인생독본>을 읽고 전율하다시피 했다며 작가의 러시아 문학 사랑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이 단편집의 특징이라면 맨 마지막에 나오는 <투계> 정도를 제외하고 모두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겼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친했던 자신의 둘째 형이 눈앞에서 죽고 그로인한 충격으로 아버지가 정신분열을 앓게 된 사연. 탈영해 7년 동안 숨어 살다가 잡혀 모진 고문을 당한 이야기와 표제작을 비롯해 <라면 열 봉지와 50달러>, <금강산 가는 길> 같은 경우도 어디서 누구를 만나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시시콜콜하게 이야기 한다.

 

이를 두고 장석주는 해설에서 왜 송영의 소설 세계는 원체험을 되풀이하고 변주한다고 썼는지 모르겠다. 그는 또 사적 체험이 작품의 모티프를 이룬다고도 했는데, 솔직히 이건 여타 소설가들이 많이 하는 거 아닌가? 내가 볼 때 송영은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옮겼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본명을 밝힐 수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이니셜을 사용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거의 대부분 등장인물은 실명을 그대로 사용했다. 예를 들면 최인호 같은 작가는 이름 그대로 나온다. 물론 그래봐야 아주 짧게 나오지만 뭔가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것도 같고 약간의 흥미와 생동감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또 어찌 보면 작가가 그렇게 한 것은 그리도 경외해마지 않았던 <의사 지바고>처럼 리얼리즘을 추구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여기서 우린 무엇을 소설이라 하며, 소설은 어때야 하는 것인가를 좀 더 진지하게 물어봐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일단 소설에 붙는 용어가 다양해졌다. 순수소설, 장르소설은 기본이고, 비소설, 논픽션 소설, 르포 소설, 일명 교양 소설이라 부르는 자전 소설에 에세이 소설 등 이 모든 것을 어떻게 구분해야할지 대략 난감해졌다.

 

무엇보다 송영의 작품들은 장석주의 말마따나 심심할 정도로 사건이 없다. 그래서 읽는 사람에 따라 지루할 수도 있고, 기승전결을 따지고, 플롯과 장르 따지는 사람들은 이게 무슨 소설이냐며 읽다가 던져버릴지도 모른다. 나 역시 좀 지루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흥미롭게 읽었다. 한 작가의 삶의 기록으로서의 소설로 읽힌다면 말이다. 어차피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 소설이라면 굳이 그것을 모티프로 하고 변주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냥 나의 있는 그대로 써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소설은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오래 전 나도 소설가을 쓰고 싶어 했던 적이 있었다(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때 누가 그렇다면 무슨 소설을 쓰겠냐는 말에 대답을 못한 적이 있다. 그건 정말 말문이 막혀서가 아니라 나도 송영 같은 사실주의 소설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그땐 그런 것도 소설로 볼 수 있는지 확실하게 장담할 수가 없어 말할 수가 없었다. 자전 소설이라면 모르겠는데. 그리고 설혹 있다고 해도 뭉뚱그려서 자전 소설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만큼 소설을 보는 시야가 그리 넓지 못했다는 얘기다. 하긴 카프카의 소설은 미완성 소설이 대부분이다. 그러면서도 그 자체로도 소설이라고 본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나라 같은 문학 풍토에서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일까? 이런 되다만 소설을 감히 들이 대냐고 화를 내야 맞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어느 문학상 후보에도 들지 못하고 몇 줄 읽다 자동 폐기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완성 소설은 이 소설집에도 나온다. 이를테면 첫 번째 수록작 <화롄의 여인>이나 <나는 왜 니나 그리고르브나의 무덤을 찾아 갔나>가 그것인데 그에 대한 작가의 변이 작가노트에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습작 같은 느낌도 드는데 우린 또 습작을 얼마나 우습게 보는가? 습작이야 말로 미완성 작품이라고 보기도 하는데 어쩌면 우린 그 작가의 완성작 보단 이런 습작 또는 미완성작에 더 주목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완성작은 어찌 보면 독자와 평론가의 입맛을 만족시키기 위해 다듬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책으로 나오기 전 편집자 같은 타인들이 초고라고 받는 작가의 작품은 사실 작가에겐 최소한 재고를 거친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러니까 습작 또는 미완성작은 어떤 의미에서 작가에겐 최초의 초고(?). 누구 눈치 보지 않고 쓴 그야말로 날것 그대로의 원고. 그것을 보는 건 좀 더 의미가 있을 것도 같다. 이를테면 정사 보단 야사가 더 흥미롭고 진실에 더 가까울 수 있는 이치와 같지 않을까.

 

사실 작가는 처음부터 어떤 소설을 쓰겠다고 해서 쓰지는 않는 것 같다. 물론 큰 그림을 그리고 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작가는 자신이 뭘 추구하는지도 모르고 단지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욕망을 가지고 블록을 쌓듯이 한 작품, 한 작품 쓸 뿐이다. 그러다 보면 작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비로소 자신도 알아듣고 그때야 비로소 자신의 작품 세계를 말하지 않을까?

 

사람들 저마다 자신이 습관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그게 그 사람을 말해주기도 한다. 작가와 작가가 아닌 사람을 구분하는 건 바로 그런 것일 게다. 작가가 아닌 사람은 말만하지만 작가는 자신의 말을 글로 쓴다. 말은 휘발성이 있지만 글은 문자로 남는다. 작가는 누구를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글은 나를 세우는 글이어야 하고, 자기 성찰적이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물며 그것을 소설로 풀어내는 건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가. 또 그런 의미에서 장석주의 해설은 너무 기존의 소설의 틀에서 작가의 글을 풀이한 것 같아 조금은 아쉬웠다. 다른 장르는 몰라도 소설은 언제나 열린 사고를 가지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작가가 성공한 작가일까? 난 솔직히 작가가 작품에서 어떤 문인 협회에 가담하고 그 덕에 중국도 가고(화롄의 여인), 러시아도 가고(나는 왜 니나 그리고르브나의 무덤을 찾아갔나), 금강산도 가고(금강산 가는 길), 몇몇의 우리가 잘 알만한 작가들과 교류했다는 게 부럽긴 했다. 하지만 그게 반드시 성공한 작가일까?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궁극적인 건 아닌 것 같다. 독자로서 어떤 작가의 작품을 한 번 읽어주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 작가가 구축하는 문학을 이해하고 지켜봐 주는 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독자를 한 명이라도 가진 작가가 있다면 그 작가야 말로 행복하고 성공한 작가는 아닐까? 송영. 그가 지금도 살아 여전히 작품 활동을 했더라면 오래 지켜보고 싶은 작가임에 틀림없다. 사람이 잊힌다는 게 제일 서럽다는데 작가는 내게 너무 늦게 온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고, 동시에 유고집이란 이름으로 만날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늦게나마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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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4-18 16: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로필사진 바꾸셨군요. 어느 집 앞 자전거네요.
stella.K님, 즐거운 수요일 보내세요.^^

stella.K 2018-04-18 16:15   좋아요 0 | URL
ㅎㅎ 네. 좀 지루한 것 같아서요.^^

2018-04-18 1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4-18 17:58   좋아요 0 | URL
ㅎㅎㅎ 할렐루야! 알겠습니다.
꼭 첫번째 독자로 모시도록하겠습니다.ㅋㅋㅋ

페크pek0501 2018-04-19 23: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이상한,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점을 정확하게 포착해 그것에 대해 깊게 이해하게 되어 소설을 쓰게 되는 경우가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안 비밀을 독자들에게 터뜨려 주겠어.‘ 하는 생각으로. ㅋ

stella.K 2018-04-20 14:27   좋아요 0 | URL
ㅎㅎ 그렇죠. 그런 이유로 소설을 쓰기도 하죠.
그러고 보면 언니도 뭔가 생각해둔 소설이 있는 것 같습니다.
터뜨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