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데 여기저기 메모해 두었다가 다 흩어져 버렸다. 내가 쓰고 싶고 관심 갖는 주제들은 조금 어두워서 안 그래도 각자의 삶의 무게에 짐을 얹어 주는 것은 아닐까 주저하게 된다. 내가 쓰는 것들은 '나'이면서 오롯이 '내'가 아니기도 한데 몇 줄로 오해받을까 두렵기도 하고. 슬프게도 안 쓸 이유는 이렇게 차고 넘친다. 그런 와중에 끙끙대며 써내는 것으로-극히 일부 중의 또 일부임에도- 나에 대한 판단이 끝난 사람들이 있을 거란 생각에 조금 웃기단 생각도 한다. 그렇지 않은 이웃들을 생각하며 용기를 또 낸다. 아직은 배짱이 부족한 것 같다. 자기표현이란 배짱이 필요하다.
오늘날 우리는 서로 최선의 자아를 긍정하기는커녕 그것을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우정이라는 결속을 만들어내는 것은 오히려 우리 자신의 감정적 무능-공포,분노,치욕-을 인정하는 솔직함이다. 함께 있을 때 자신의 가장 깊숙한 부끄러움까지 터놓고 직시하는 일만큼 우리를 가까워지게 만들어주는 것도 없다. 콜리지와 워즈워스가 두려워했던 그런 식의 자기폭로를 오늘날 우리는 아주 좋아한다. 우리가 원하는건 상대에게 알려졌다는 느낌이다, 결점까지도 전부. 그러니까 결점은 많을수록 좋다. 내가 털어놓는 것이 곧 나 자신이라는 생각, 그것은 우리 문화의 대단한 착각이다.
p.28 . 짝 없는 여자와 도시.비비언 고닉
비비언 고닉의 이런 문장들 때문에 그의 책을 팔아 치울 수가 없다. 내 고민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훅 치고 들어오는 말들 .토닥거림,쓰디쓰고 냉정한 조언. 노련한 의사를 만나 처방 받는 느낌이다.
박하경 여행기 2화는 면담을 청해온 학생의 당돌함으로 시작된다. 대학 안 가고 음악 하고 싶다고. 학생의 표정은 쌤이 어찌 나오나 한 번 떠보는 것도 같다. 거기에 대고 박하경쌤은 걱정스러워하며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해줄 만한 조언을 한다. 대학 가서 해도 되지 않냐,음악으로 성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냐. 그러자 학생은 "저 성공 안할거예요" 그러니 쌤은 "부모님이 언제까지 널 먹여살려야 되냐"라며 현실적인 조언으로 맞받아친다. 실망했다는 제자. 결국 답답한 마음에 당일치기 여행을 떠나는 박하경. 이번에는 군산이다. 미술을 한다는 한 제자가 전시회를 열어 찾아가 본다. 한쪽에선 타로점도 봐주고 카페도 하는 그런 곳이다. 저녁이 되어 동네 사람들이 제법 모이고 제자는 춤으로 퍼포먼스를 한다. '라파 라구라구'를 주문처럼 외치며...그런데 사람들 반응이 영 시원찮다. 부모님 따라 찾아온 어린 꼬마도 찬물을 퍼붓듯 냉정하게 한 마디 던져 분위기는 더 썰렁해진다. 제자는 쌤을 향해 간절한 눈빛으로 다시 외친다. "라파 라구라구!" 박하경 쌤은 과연 어떻게 했을까? 제자가 쌤에게 바란 것은 무엇이었을까?우리 사회가 선생님들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 우리 딸은 꽃송이도 하나 못 받고 죽었다."
교권이 무너졌다고한다. 내가 학교 다닐 땐 선생님들에게 맞는 아이들이 있었고 나도 몇 번 맞은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선생님을 때리는 아이들이 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선생님들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자신을 때리는 아이를 붙잡거나 밀어냈을 때 아동학대로 신고 당할까 봐 스스로 머리만 감싸고 계속 맞는 경우도 있다 한다. 믿기지 않는 사례들이 연일 폭로된다. 일터에서 목숨을 끊는 것은 분명한 의도가 있다. 그렇게 해서 그 현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리고 싶은 거다. 관련 뉴스들을 찾아보는데 기자 회견장에서 한 아버지가 울먹이며 외쳤다. "우리 딸도 조사해 주세요." 사립 초등학교 기간제 교사의 아버지의 통곡은 현장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누군가의 죽음은 학교 주변을 조화로 가득 채우고 전국의 교사들이 모여 교권의 추락을 온 나라에 명시하지만 누군가의 죽음은 꽃 한 송이도 받지 못한다. 어떤 직업은 희생이 당연시된다. 왜 당연한지는 알 수 없다. 소중한 아이들을 맡기면서 왜 그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에게 주말에도 전화하는지 모르겠다. 수십 통의 전화를 걸때 어떤 말을 전했을지, 어떤 마음이었을지. 알기가 너무 무섭다.
'박하경 여행기'의 교무실 상담 장면을 보고 중학교 때 딱 저 모습으로 담임과 이야기 나누던 일이 떠올랐다. 독후감을 써냈었는데 담임은 굳이 원고지에 다시 써오라고 해서 난 너무 귀찮았다. 무슨 생각으로 그 글을 썼는지도 이젠 가물가물 기억나지 않는데 아직 선명한 건 담임이 나에게 계속 써보라며 내 글이 좋다고 한 장면이다. 내 글쓰기 실력이 뛰어나서라기보다-보시다시피 그럴리가 없잖아요?- 뭘 할지 방향을 못 잡는 나에게 이런 길도 있다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 목소리와 다정한 관심은 나도 나름 괜찮은 아이구나 하며 으쓱하게 해주었다. 그래서 나중에 학원에서 일을 하게 됐을 때 내가 맡은 아이들에게도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이 선생님~이라고 원장님이 나를 불러주었을 때 얼마나 설렜는지. 도를 아십니까 신도가 길 가던 내 앞을 막고 서서 잠시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직업이 혹시 선생님이냐고 불어볼 때 얼마나 기쁘던지.-애써 표정관리하고 도망쳤지만-그런 기억은 오래오래 남을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나도 그중 한 명이다) 해피엔드를 싫어한다. 우리는 속았다고 느낀다. 가해가 규범인데. 파탄의 길이 가로막히면 안 되는데. 산사태 때 산이 움츠린 마을을 불과 2,3피트 남겨놓고 무너지기를 그만둔다면, 산의 행동은 비정상일 뿐 아니라 비윤리적이다.
p.33 프닌.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그럼에도 요즘은 해피엔드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