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어인들에 대해서 조금 섬뜩하게 묘사되다가 흥미로운 부분이 나와 공유해본다. 이들이 네덜란드인이다 보니 빈센트 반 고흐도 생각나고 최근에 본 영화'브림스톤'에서의 가이 피어스도 떠오른다. '브림스톤'에서 가이 피어스가 분한 목사는 네덜란드에서 미국으로 이주해온 사람이고 개혁교회 목사인데 그의 잔인하고 비이성적인 면,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한나 아렌트가 설명한 보어인들을 떠올리게 했던 것. 모든 네덜란드인이 그렇진 않겠지만 그들안에 잠재해 남아프리카 원주민들처럼 유랑하고 살며 얽매이지 않으려했던 욕구가 고흐와 목사에게도 있는것 같다. 누군가는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켰고 누군가는 악마와 같은 잔혹함으로 분출시켜 자식의 삶을 지옥으로 물들였다.
영화 속 가이 피어스
보어인들 사진
남아프리카의 보어인들(네델란드계 백인들)
1923년 전체 백인 인구의 10퍼센트를 이루던 남아프리카의 가난한 백인들, 그 생활수준이 반투족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백인들은 오늘날이런 가능성을 경고하는 사례이다. 그들의 가난은 거의 전적으로 노동에 대한 경멸의 결과이며, 흑인 부족의 삶의 방식에 동화한 데서 비롯되었다. 가장 원시적인 경작 방법이 필요한 소출을 내지 못하면, 또는 그들이 지역의 동물들을 말살하면 그들은 땅을 불모로 만들었다. 그들은 흑인 노동자들이 떠나면 어김없이 농장을 포기했고, 과거의 노예성, 말하자면 약간의 순수함이 있다. 문헌학이나 다른 지적 업적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 진술의 최고 증인이다." (...) 사태는 영국인의 도착과 함께 일어나기 시작했다. 영국인들은1849년에도 여전히 군사 기지로 불리던 그들의 새 식민지에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영국인들의 존재 다시 말해 원주민들을 다른 동물 종으로 간주하지 않은 영국인들은 그들에게 다른 태도를 보였으며, 노예제를 폐지하려던 그들의 차후 시도(1834년 이후)와 무엇보다도 부동산에 분명하게 정해진 경계를 설정하려던 그들의 노력―는 정체되어 있던 보어인 사회에 격렬한 반작용을 촉발했다. 이런 반작용이 19세기 내내 동일하게 반복되는 유형을 따른다는 것이 보어인들의 특징이다. 즉 보어 농장주들은 후회 없이 집과 농장을 버리고 내륙의 황무지로 이주해 들어갔다. 자기 재산의 제한을 받아들이기보다 차라리 그 모든 것을 버렸던 것이다. 이는 보어인들이 가는 곳마다 적응을 하지 못하고 불편함을 느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나중에 이민해온 어떤 사람들보다 아프리카에 잘 적응했고, 적응하고 있지만 아프리카에서였지 어떤 제한된 특별 지역에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광적인 이주 여행은 영국의 행정기관을 대경실색하게 만들었는데, 그것은 분명히 그들 스스로 하나의 부족으로 변했으며 한 지역에 대한 유럽인의 애착심을 상실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들은 수세기 동안 암흑 대륙을 유랑한 흑인 부족과 똑같이 행동했다. 유랑의 무리가 우연히 머무르는 곳에서는 항상 편안함을 느꼈고 정착하려는 시도는 마치 죽음처럼 느꼈다. - P3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