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으로 미디어는 행복 이미지를 나날이 다각화하고 새롭게 개발하여 유통시킨다. - P24
자본주의는 똑똑하다. 똑똑할 수 밖에 없다. 상품을 더 많이 더 오래 팔기위해선 막강한 자본과 그로써 얻어낸 두뇌들을 총 동원해 사람들의 의식속에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집어 넣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건 단순히 물건에 대한 욕망이 될 수도 있지만 이제는 행복과 같은 '가치관'으로 변화하고 있다. '가치관'의 스펙트럼에는 욕망보다 더 포괄적인 것들이 들어갈 수 있으니까. 갈수록 이 방식은 교묘하고 지능화되고 있다. 마치 구매자들이 스스로가 원해서 자본주의의 방식에 따라가는것처럼. 자본주의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본주의를 '이용'하는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다행히 이러한 문제에 천착하는 이론가들이 늘어나고있다.
나는 이론가들만큼 똑똑하지 않지만 내 삶에서 자본주의의 힘을 냉정하게 보기 위해 매 순간 노력하는 편이다. 그게 늘 실천으로 이어져 제대로 견제한다고는 말할 수는 없다. 그래도 할 수 있는한 견제하고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 신경을 쓴다. 늘 말하지만 넋놓고 당하는것 보다야 정신을 차리려 노력하는 편이 그나마 낫다고 생각하니까. 노력이 쌓이다보면 결과적으로 침해당하는 일이 어느정도 쌓이더라도 과정에서 각성이라는 순기능 또한 적립된다고 믿는다. 예를들면 어떤 뉴스기사들은 디지털성범죄에 착취당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쓰면서 필수품이긴 하지만 (어떤면에서) 여성의 대상화,상품화할 수 있는 제품들을 나란히 광고한다. 수년째 큰아버지에게 강간당한 소녀의 기사에 브라광고가 뜬다던지, 성형광고, 부부관계를 원활하게 해준다는 상품이 전시되는 식이다. (물론 어떤 것들은 내가 검색한 키워드나 조회한 것들을 기반으로 타깃광고가 뜨는데 앞의 예로 든 것들은 내가 요즘 검색하고 있지 않는 유형이다. ) 물론 광고는 외주를 주는 방식이고 그러한 광고료없이 생존할 수 없는게 언론사의 현실이란것도 알고 있다. 그래도 적어도 어떤 종류의 기사에 어떤 광고를 올릴지는 '선택'이 가능하지 않은가? 잘 찾아보면 민감한 내용의 기사에는 아예 광고를 걸지 않는 언론사도 있다. 비교가 된다.
이러한 자본의 맹렬한 공격 속에서 우리는 '행복'의 정의를 새롭게 구축해 나가야 한다. 외부적으로 주입된 고정적이고 자본주의화된 행복이 아니라 새로운 자아와 만나는 사건으로서 정동의 흐름에 부유하는 '행복'으로 말이다. 마르크스,레닌의 사회주의가 그랬고 프로이트의 이론이 그랬듯 기존에 주어졌던 한정적 개념에 자유로운 인식이 더해져 새로운 가능성으로 이러한 '행복'이 길을 열어줄 것이다.
원망, 가능, 의지로서 정동의 운동력이 행복을 향해 움직일 때 그것을 행복의 윤리라고 할 수 있다면 ㅡ 푸코가 윤리의 요소로서 '윤리의 재료, 주체화의 양식, 윤리적 실천, 목표를 제시했듯이ㅡ행복은 그러한 요소들을 아우르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P.27
구별되어진 소수자들은 기성의 질서 안에서 자신의 다름을 감추고 침묵하기를 암묵적으로 강요받는다. 그러나 이들이 행동을 하고 말을 시작하여 소수성이 수행될 때, 세계' 일반'이 유지하고자 하는 거짓된 흥, 부당한 즐거움,헐거운 평화의 허상이 깨지고 새로운 삶의 방식이 생성될 수 있다.P.29
행복은 정동의 휘몰아치는 운동의 흐름을 겪어내고 새로운 가능성을 만드는 우연의 궤적들이다. 때론 기쁘고 때론 슬픈 마주침을 체험, 체현하면서 나는 더 이상 이전의 내가 아니고 다른 나이며 새로운 나로 태어난다. 되어간다. 또 다시 태어난다. 이로써 매순간 더 이상 자신에게 갇히지 않고 자신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자아와 만나는 사건, 그러한 사건들의 지속을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영원히 회귀하는 과정속에서 주체에게 부여되었던 취약성이 생성과 차이와 변화를 포괄하는 긍정의 힘으로 전환되면서 행복이 생성된다. 아니 끊임없이 행복이 "약속"(Ahmed, 2010)된다. - P37
행복을 향하는 움직임은 곧 주체로 되어가기와 가능성의 열림이므로 행복은 "주체의 도래"를 뜻한다.P.35
정동은 존재와 행위의 능력으로, 무엇에게 무엇인가를 바라고 지향할 수 있도록 이끄는 힘이다. 그 문자 의미 그대로 정동은 고정되거나 획일적인 감정이 아니라 그들의 움직임‘이다. 정동의 선율에서 기쁨은 고양과 강화의 힘이고 슬픔은 저하와 약화의 힘이다(김예란,2018b). - P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