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내 얼굴은 순둥이과에 속한다. 그래서 길을 물어보거나 뭔가 궁금한게 있을 때 내 주변에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굳이 내게 질문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서비스 업종에서 일을 할때는 이런점이 장점이 될 때가 많았다. as대응업무때 화가 난 사람도 내가 나서면 진정되기도 해서 내 성격에도 어느정도 맞구나 싶었다. 그러다가 ㅡ꼭 모든게 외모탓은 아니겠지만ㅡ 그런일을 거의 독차지 하다시피 할뻔 할때, 내 대응력을 높이평가하는 것처럼 포장하면서 자기가 하기 싫은걸 떠넘기는구나 싶을때는 내 나름대로 선을 그었다. 그런 일이 결코 즐겁기만 한것도 아니고 나 혼자 해야할 일도 아니란걸 알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공원을 찾았다가 전망좋은 자리가 있어서 앉아 있었다. 마침 읽고 싶던 책이 생각나 미리보기로 들어가 내가 좋아할만한 책인지 몇 페이지를 읽어내려가고 있었다. 재밌어서 웃고 있던 걸로 기억한다. 귀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그러고 있었는데 누군가 내 앞에 서서 손짓하는게 느껴졌다. 놀라 앞을 바라보니 무슨 말인가 하고 있는데 분명하게 들리지 않았다. 이어폰을 빼고 무슨 일이시냐고 물었다. 상대는 "사진좀 찍어달라구요"라고 톤을 높여 말했다. 아마 조금전에 한 번 말했는데 내가 음악을 들으며 휴대폰을 들여다보느라 대답이 없자 높아진듯 보였다. 그런데 나는 분명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웃으며 거절했다. 나 말고도 주변에 사람에 많았으니까. 그랬더니 그 사람은 인상을 쓰며 "찍을 줄 몰라요?"라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안그래도 거절을 잘 못하는 편이다. 살면서 수없이 여러번 사진찍어달라는 요청을 받았었고 그때마다 늘 찍어줬었다. 그러다 이날 처음으로, 단 한번 사진사가 되기를 거절하고 불쾌감을 느꼈다. 상대에게 뭔가 요청했을때 그 상대가 거절하면 할 수 없는 거 아닌가? 받아주면 고맙고 감사한거지, 그게 당연한건 아닐텐데. 그런데 때때로 이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예전에 김영하의 팟케스트를 듣다가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들은 공원에 혼자 있는 사람을 가끔씩 내버려 두지 않는다고...뭐 그런 식의 이야기였다. 김영하 작가님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것 같았다. (작가님은 아무래도 인기 때문에 더 그랬겠지만) 혼자 있으면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고 홀로 있는 시간을 그 사람이 누려야할 권리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싱글에게 결혼 언제 할꺼냐고 묻는 것도 그런 맥락 아닐까 생각해본다. 혼자가 편할 수도 있는데 결혼을 반드시 누구나 해야 하는 것처럼, 개인의 판단보다는 다수의 의무인것처럼. 그래서 난 왠만하면 눈 화장은 조금 하고 다닌다. 아이라인만 살짝 잡아줘도 눈매가 강해보여서 사람들이 조심한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공부하다가 탈코르셋에 관심을 갖게 됐지만 눈화장은 그런 의미에서 내가 포기하지 않는 것 중 하나다. 요즘은 외출할 때 마스크를 쓰니까 귀찮아서 잘 하지 않지만 생각날 때마다 하고 있다. 이건 아마 경험해본 분들은 이해하리라 믿는다. 화장의 심리적인 역할이랄까? 문신과 피어싱도 그런 의미에서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타인이 얕잡아 보지 못하도록 고슴도치처럼 날을 세우는 의미로. 이런거 없이도 서로 존중하고 선을 넘지 않으면 좋은데 어찌보면 씁쓸한 일이다. 영화 밀러니엄의 여주인공 모습이 떠오른다. 진한 화장에 여기저기 피어싱으로 무장한(그건 그야말로 무장이다) 그래서 그런지 날이 선 사람을 보면 일단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을때가 있다. 이것도 때로 오만이고 섣부름일수 있지만. 내 눈엔 그런 사람들이 세상으로부터 많이 찔리고 너덜너덜해진 영혼 같아서다.
뭐든 겪어봐야 사람들은 비로소 조금 이해한다.
문학은 직접 겪어보지 않고도 조금은 경험할 수 있는 유익한 인간학의 도구다.
여성이라는 표지를 다 지워버리려 든 까닭은 얕잡아 보이기 싫어서였다. 내게 여성적인 것은 약점과 동의어였다. 정신은 남성, 몸은 여성이라는 이분법과 위계를 그대로 받아들인 셈이다. 짙게 화장하면 '골 비었다'욕먹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러니 내 면 티셔츠와 민낯은 '보기'위해서가 아니라 '보이기'위한 전술로, 다른 형태의 화장이었다. p.52 (나의 아름답고 추한 몸에게)
수사는 예상 밖의 것을 찾아내고 음미할 수 있게 해주어서, 이전 세대에서 물려받은 유산의 감옥을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p.158 (반려종 선언 중)
'나의 해방일지'에서 염미정은 구씨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다. " 껍데기가 없어. 되게 예의 바른데, 껍데기처럼 느껴지는 사람 있잖아. 뭔가 겹겹이 단단해서 평생을 만나도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사람. 이 사람은 껍데기가 없어."
그리고 만난 구씨에게 직접"당신은 투명하다"고 말한다. 구씨는 그런 미정에게 "제정신이냐?"며 되묻지만 그 말이 좋았는지 슬며시 웃고있다. 나도 투명한 사람이 좋다. 그런 사람이 흔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런 사람이 모두 성격이 좋지도 않았다. 그래도 그런 투명함이, 가식 없음이 부러웠다. 그런데 오늘 생각해보니 이런 투명함은 결코 쉽지 않은것 같다. 본질적으로 단단해야 투명할 수 있다. 나처럼 때로 바람에 휘둘리는 약하고 갈대같은 사람은 나를 지키기 위해 껍데기 속에,불투명에 숨어들어간다. 그러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껍데기를 조금 벗어 나를 보여준다. 나를 다치지 않게 할 사람이란 확신이 들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