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시민들은 촛불시위를 통해 평화적이고 성숙한 민주주의를 전세계에 선보였다. 또한 대한민국은 이미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했다. 7번째로 3050클럽에 가입되었으며 해당 7개 나라중 유일하게(또한 자랑스럽게도) 다른나라를 식민지로 둔 역사가 없는 국가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은 이런 민주주의 발전과 경제발전의 혜택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18년째 OECD국가중 자살률1위, 특히 노인 자살률1위(2019)이며, 10대,20대,30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고 40,50대 사망원인 2위가 자살이다. '헬조선'은 이런 실태를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81%의 학생들이 고등학교시절을 '전쟁터'으로 묘사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다른 보기:함께하는 '광장',거래하는 '시장') SKY와 명문대를 중심으로 한 입시과열경쟁은 학생들의 꽃 같은 시절을 악몽으로 만들고 사회진입 전부터 그들을 '능력주의'로 내몰고 있다. 자본주의가 확대될수록 불평등이 확대될것이라 주장한 '토마 피케티'가 불평등에 관한 여러가지 지표를 만들었는데 그 중 '베타지수'는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불평등했던 '프랑스 혁명시기'를 기준으로 한다. ㅡ소설 '레미제라블'의 시대(1789~1848). 당시의 불평등을 상징하는 베타 지수가 7.2라고 하면(높을 수록 불평등사회) 지금 한국의 베타 지수는 무려 9라고 한다. 한국인들은 자본주의 역사상 '프랑스혁명' 때보다 높은 불평등사회에 놓여있는 것이다. 김누리 교수는 이런 불평등 사회에서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를 '능력주의'때문이라고 분석한다.
2022년 '세계불평등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불평등 지수는 세계최고수준이다. 옥스팜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상위 10%와 하위 50%의 부의 차이가 무려 52배 차이가 난다. 또한 상위 10%가 전체 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8.5%나 된다. 하위 50%는 전체 부에서 겨우 5.6%를 가져간다. '입소스'에 따르면 한국은 각종 갈등지표도 심각하다. 남녀갈등,세대갈등, 빈부갈등, 이념갈등, 정당갈등, 종교갈등, 학력갈등이 각각 세계1위로 심각한 갈등사회인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갈등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능력주의'에는 한목소리를 낸다. '능력주의'는 이런 불평등,갈등상황을 구조적인 문제로 보지 않고 개인의 문제로 만든다.
http://www.yonhapmidas.com/article/220203173644_841200 한국, 부유해졌지만 불평등심해
재난은 한 사회에 잠재되어 있던 문제를 드러내는 동시에 그 문제가 개선될 수 있는 가능성의 시기다. P.210
코로나 19는 한국의 노동생태계의 문제를 곳곳에서 드러냈다. '아프면 쉴 권리'가 노동자에게 없음을 보여줬고, 비정규직 노동자, 하청 및 자회사 노동자, 노조가 없는 사업장의 노동자가 다층적불평등에 놓여있음이 밝혀졌다. 없던 불평등이 생겨난 것이 아닌 가려져 있던 불평등의 민낯이 재난상황에 적나라하게 공개되고 있다. 재난상황에 노동자는 연차강요, 무급휴가, 휴직강요, 무급휴직, 권고사직, 정리해고로 일과 휴식을 모두 잃어간다.
또한 4차산업시대로 접어들며 노동시간 유연화, 탄력근로라는 겉보기엔 '실용적'인듯한 어휘가 노동자의 '시간 권리'를 빼앗고 있다. '규제'란 만들긴 어렵고 풀리면 다시 만든는건 더욱 요원해지는 경우가 많다. 안전에 관한 '규제'는 더욱 그러하다. 누군가 많이 죽고 혹은 많이 다쳐야 뒤늦게 공론화되고 '규제'로 이어지는 경우를 본다.
4차산업화와 재난상황이 맞물려 새로운 고용형태와 노동자 관리시스템이 추가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특별연장근로 인가 확대는 노동자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장시간 노동을 제한하는 조치(주 52시간 상한제)를 사실상 무력화하고 과로위험을 배가시킬 것이 분명함에도, '특별한 사정'에 대한 이유가 더 크게 작동하는 형국임을 말해준다. p.181
한국의 공무원 수는 OECD국가와 비교해 최저수준이라고 한다. 이러한 인력의 과소 상태에서 반복된 재난상황(짧아지는 감염병발생 주기,해마다 발생하는 산불화재, 동물감염병으로 인한 살처분등등)은 과로사와 절대적 휴식부족, 심리적 트라우마를 반복 생산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사회적 불평등과 그에 따른 노동자들의 비극적인 과노동, 과로사회의 현실. 이 많은 고질적인 문제들은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 결과다. 소위 '능력주의'에 대한 맹신 때문에 소수 엘리트들, 기득권에 대한 관용적 태도가 사회에 만연해있다.
재난 시 공무원 과로사가 발생할 때면 헌신과 희생으로 미화하거나 영웅으로 호명한다. 재난 상황에서 봉사자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동원되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명감, 헌신, 희생이 전면에 내세워지는 가운데, 봉사자 이데올로기는 과로죽음을 유발하는 '과로'의 문제를 은폐하는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이다. 봉사자 이데올로기는 공무원 과로사를 양산하는 또 하나의 요인이다. p.192
대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을 하려면 우리 사회에 여성 50% 남성 50%이므로 의회에도 마찬가지 비율이 적용되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남성이 81%고 여성이 19%에 그치고 있다. 여성의 비율이 아주 서서히 높아지고 있지만 오랜 세월동안 엘리트출신 남성이,특히 50~60대가 국회에서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꼭 그렇게 억지스럽게 남녀비율을 맞춰야하냐고 내게 질문했다. 나는 그분에게 되묻고 싶다. 그럼 그동안 남성들이 대다수를 차지한 것은 왜 괜찮은거냐고? 왜 계속 그렇게 해야만 하는 거냐고? 그게 공정하냐고 말이다.
국회에서 균형있게 이루어지지 못한 대의민주주의는 사회에 그대로 반영이 되고 있다. 여성의 권리가 국회에서 '과소대표'되기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사회곳곳에서 사회적 불평등을 겪는다. 사회에 있는 다양한 직군들이 국회에서 대의를 실현해야만 한다. 대학 교수출신보다는 실제로 사회에 더 많이 있는 교사출신들이 국회에 들어가고 육체노동자와 주부, 회사원도 국회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만 한다. 30~40대가 충분히 국회에 들어가 그들의 대의를 실현해야만한다. 우리나라의 국회는 현재 법조인, 교수,언론인들이 과잉대표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선거법을 바꿔야만한다. 최다득표자만 당선되는 지금의 소선거구제로는 국민의 뜻을 국회에 반영하기 어렵다.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는 내 표가 사표가 되지 않는 투표방식이라고 한다.
지난 20대 선거에서도 보다시피 '신념투표'를 할 수 없는 이러한 선거구조는 차악을 향한 투표로 국민을 내몰았고 이는 결국 정치혐오로 이어졌다. 거대 양당의 대결구도로 이루어진 이러한'차악투표'는 정치인들의 막말과 갈등조장으로 얼룩졌고 이런 선거로는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개선하기 힘들다는 것을 모두가 목격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 누구보다 지식인들이 목소리를 내 주어야 한다. 소수 정치인들이 기만하며 왜곡하고 있는 사회현실을 지식인들이 바로 잡아주어야 한다. 더는 특권층만의 정치로 이 사회가 병들어 죽어가지 않도록 하는 '목소리'가 우리사회에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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