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읽기 전에 작가에 관한 설명을 먼저 읽었는데 여기부터 압도당했다.뭐 이 짧은 설명으로 한 인간을 다 보여줄 수는 없어도 독자들에게 어느정도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는 곁눈질은 될테니까. 7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다는 에밀 졸라는 훗날 대학 입학 자격시험에서 재수까지 도전하고도 낙마한다. 그리곤 출판사에 취업했는데 자전소설을 발표한 다음해에 책이 좀 팔렸는지,스스로 가능성을 본 것인지 일을 그만두고 전업작가의 길을 간다. 보통 어지간한 확신이 없으면 직장은 유지하면서 작품쓰기를 할 텐데 결단력이 엿보인다. 게다가 그는 범상치 않은 계획을 구상한다. '루공마카르 총서'라는 대작을 기획해 무려 23년간 총 스무 권의 연작소설을 쓴 것이다.
이 총서가 어떤 방식인가하면 프랑스 사회를 총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아이디어로 루공 집안과 마카르 집안의 후손들이 주축이다. 예를들면 이<목로주점>에서 주인공인 제르베즈의 아들 클로드와 딸 나나가 각자 열네번째와 아홉번째 소설에 등장한다. 자세한 건 나머지 작품들을 다 읽어봐야만 알겠지만 일단 느낌상으로는 각계각층의 사회 인물들의 삶을 그려나감으로써 연작소설 전체가 특징적인 제2제정기 프랑스 인물들을 고루 보여주는 게 아닐까싶다. 이런 큰 기획을 목표로 세울만큼 포부가 컸던 에밀졸라는 대통령에게 <나는 고발한다>라는 공개서한을 보냈는데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도 여러번 등장하는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메시지다. 이것만으로도 그는 프랑스사회에 정치적인 파장을 일으키고 명성을 떨쳤다. (이로인해 영국으로 망명했다가 훗날 상황이 반전되어 귀국한다.)
아무튼<목로주점>은 루공마카르 총서 중 하나로 서민층 여성인 제르베즈의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인생을 담고 있다.이른 나이에 가정을 꾸리게 된 그녀는 파리에 정착하려 하지만 남편의 외도로 가진것도 없이 홀로 두 아이를 떠맡게 된다. 다행히 부지런하고 의지가 강한 제르베즈는 오래 걸리지 않아 적응하게 되고 어떤 남자도 자신의 인생에 들이지 않기로 하지만 건강하고 부지런한 쿠포의 계속되는 구애로 재혼을 하게 된다. 그들은 너무나 가난하고 궁핍했지만 서로 사랑하고 근면했다.각각 오랜 시간 일을 해야 했지만 돈을 모을 수 있었고 미래는 밝아보였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사고로 쿠포가 다치게 되면서 그는 전과 달리 술에 빠지고 나태해진다. 하지만 제르베즈에게는 순애보적 사랑으로 말없이 지켜봐주는 대장간의 구제라는 남자가 또 있다.
그들의 사랑은 봄이 다 지날 때까지 대장간을 폭풍우 같은 요란함으로 흔들어놓았다. 그것은 시커먼 검댕이 묻은 골조가 삐걱거리는 작업장의 들썩거림과 벌겋게 타오르는 불꽃 가운데, 거인의 노고 속에서 꽃핀 순수한 사랑이었다.p.306
제르베즈를 중심으로 쿠포와 쿠포의 누이들,주변 인물들의 살아가는 모습등 서로 아웅다웅하는 서민층의 삶이 디테일하게 서술된다. 마치 한 편의 인간극장을 보는 느낌이랄까 이들 하층민들에게도 예술에 대한 관심은 있지만 루브르 박물관에 방문한 그들은 오히려 주변 사람들의 독특한 구경거리가 된다. 먹고 사는 기본에 충실하다 보니 긴 식사시간에 관한 묘사는 프루스트의 그것과 달리 우아하지도 격식에 교양이 넘치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보다는 개걸스럽고 요란스러움에 가깝다. 그러나 당시 프랑스 사회에 분명히 존재했던 비주류의 삶, 하루하루의 생존에 전전긍긍하지만 그들만의 인간미 넘치는 풍경이고 교류이며 만족스러운 인생인것이다.
아, 이 경을 칠 돼지 같은 놈!
아, 이 경을 칠 돼지 같은 놈!
이제 구트도르 가 전체가 합류해 온 동네 사람들이 함께<이 경을 칠 돼지 같은 놈!>을 합창했다. 노래를 아는 시계 수리공과 식료품전의 청년들, 내장 가게 여주인 그리고 과일 가게 여주인은 목청 높여 후렴을 불러젖히면서 장난삼아 서로 따귀를 때리기도 했다. 거리 전체가 술에 취한 듯 보였다. 쿠포네 가게에서 풍겨 나오는 잔치 음식의 냄새만으로도 지나가던 사람들을 비틀거리게 하기에 충분했다.p.369
*국내 번역된 루공마카르총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