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중재법이 요즘 뜨거운 감자다. 개인적으로 올것이 왔다고 보고 있다. 언론사들이 알아서 잘 했으면 일이 이렇게 까지 진행되긴 어려웠을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알아서 잘 하기엔 자본의 영향력에 잠식당하는 측면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 단적인 예로 중간광고를 들 수 있다. 뉴스,드라마나 각종 예능,영화 중간중간 광고가 떡하니 자리잡았다. 시청자 입장에서 맥이 끊기는 건 기본인데 언론사 입장에서는 밥그릇이 커진다는 의미니 생존이 달렸다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이 언론사 생존의 역학관계에 많은 것들이 얽혀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알테지. 밥그릇 크기에 너무 연연하다 보면 질적인 측면은 무시당하기 일쑤다. 이건 역시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나보다.
p.11 한 민족을 죽이듯 언론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자유를 줌으로써. -오노레 드 발자크(기자 생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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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허름한 하숙소에 한 남자가 경멸을 담은 표정을 뿜어내고 있다. 그가 노려보는 것은 오랫동안 함께하고 있는 그의 룸메이트 바퀴벌레. 가난한 시골 농부의 자식인 조르주 뒤루아는 군에서 퇴교한 후 성공한 삶을 살아보겠다고 막연히 파리로 상경했다. 하지만 하루하루 겨우 버텨내는 그에게는 당장 살아내는 일 조차 아득하기만 하다. 그러다 군대에서 함께했던 포레스티에를 만나 상황이 급변한다. <라 비 프랑세즈>신문사 기자가 되고 타고난 외모를 적절히 활용해 귀족 여성들의 도움까지 받아 승승장구하게 되는 것이다.
p.50 노르망디 사람으로 타고난 기질은 매일같이 반복되는 병영 생활 속에서 길들여졌고, 아프리카에서 행해지는 약탈,불법적인 이득, 수상한 속임수 등을 겪으면서 느슨해졌다. 또한 군대에서 통용되는 공명심,무공,애국심,그리고 하사관들 사이에 떠도는 거창한 이야기,직업에서 오는 허영심 같은 것들이 더욱 그의 마음을 부추겼다. 그렇게 해서 결국 뒤루아의 마음속은 바닥이 세 겹으로 되어 있는 상자처럼 온갖 잡동사니가 다 들어앉아 버렸다. 그중에서도 출세하고자 하는 욕망이 가장 강했다.
잘생긴 친구(벨 아미)라는 별칭까지 얻은 그에게 여인들은 누구나 호감을 느낀다. 하루 빨리 성공하기 위한 수단이 그에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어수룩하던 처음과 달리 그는 어떻게 하면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을지,어떤 기사를 쓰면 대중의 이목을 잡을지 점점 간파한다. 때때로 마주하는 거울은 그의 성장하는 허영심을 여실히 비춰준다. "Vanity, definitely my favorite sin"("허영, 내가 제일 좋아하는 죄악이지." ㅡ영화 데블스 에드버킷) 특히 그의 신문사에서 사회면은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뉴스에 은밀히 소문을 함께 담아내서 여론을 이끌고 정부의 공익사업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이다. 즉 잘만하면 큰 돈이 되는 사업이 이 신문사의 주 목적이었고 마침 뒤루아의 욕망과 잘 맞아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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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41 사회면을 지휘하고 취재기자들의 전투를 끌어가려면 늘 깨어 있어야 하고,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아야 하며,쉽게 믿지 않고 앞을 내다볼 줄 알아야 한다. 또 교활하고 민첩하고 융통성이 있어야 하고, 온갖 술수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하며, 정확한 후각으로 한눈에 거짓 소식을 간파해 내야 한다. 또 할 말과 숨길 말을 판단하고, 어떤 것이 독자에게 영향을 미칠지 알아내고,그렇게 얻은 소식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던 중 벨 아미는 노 시인의 삶의 허무를 담은 조언을 듣고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을 맞는다. 거기다 뜻하지 않은 결투로 죽음 직전까지 경험한 것. 이부분에서 특히 결투에 관한 묘사가 나를 사로잡았다. 위대한 시인 푸시킨의 삶을 영원한 속임수로 만들어버린 결투를 상징하듯 '시베리아처럼 추운 날' 벨아미는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벨아미는 삶을 되돌아보긴 커녕 불나방처럼 오히려 성공에, 돈벌이에 더욱더 집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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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심은 만족을 모른다. 허영심은 타인의 그것과 내것을 계속 비교하며 남보다 더 갖고자 하고 더 욕망하고 갈구한다. 그러다 보면 파리도 꼬이고 그러다 보니 구더기도 살찐다. 인생은 과연 뭣이 중헌지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벨아미의 타락한 거울을 보고 웃다보면 우리 삶의 방향이 맞는지 가늠하게 된다.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할 것인가 물질적이고 외적인 가치에 매몰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