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개의 심장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13
미하일 불가꼬프 지음, 정연호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7월
평점 :
최근 읽은 후안 마요르가의 희곡<스탈린에게 보내는 연애편지> 속 주인공이자 러시아 작가 불가코프의 중편소설을 읽었다. 잠자냥님의 추천으로 읽었는데 후반부로 갈 수록 너무 충격적이었다.
줄거리는 이렇다. 잘나가던 의사 필립은 길에서 떠돌던 개 한마리를 집에 들인 후 사람의 뇌와 생식기를 이식시킨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개는 인간의 외모를 갖추게 되면서 각종 문제를 일으켜 의사 필립과 갈등을 빚는다. 떠돌이 개로 지내며 거리에서 주워들은 온갖 욕을 쏟아내고 담배도 피운다. 그러다 고양이를 쫒던 중 수도꼭지를 뽑아 온 집안을 물바다로 만든다.
P.132 필립:아파트 안에서 그 상스러운 욕지거리는 이제 한마디라도 더 이상 내 귀에 들리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하라고. 그리고 또, 아무 데나 침 뱉지 말것. 침은 침통에다가 뱉으란 말이야. 오줌 누는 것도 변기에 정확하게 누고!....중략...
샤릭(개):아빠, 아빠는 왜 그렇게 나를 심하게 학대하고 그러세요? 갑자기 그는 울먹이며 말했다.
이렇게 제멋대로 굴던 샤릭(개)은 자유로운 사회생활을 하겠다며 신분증을 요구하고 샤리꼬프라는 새 이름도 얻는다. 심지어 앵겔스가 지은 사회주의 책도 읽고 있다고 말한다. 어쩐지 메리 셸리의 <프랑캔슈타인도 자주 떠올랐다. 그래서 검색해보니 <프랑캔슈타인>은 1818년에 완성됐고 불가코프의 <개의 심장>은 1920년 작품. 셸리 언니 역시 대단해.
P.166
보르멘딸리(보조의사):당신이 아무 책이라도 좀 읽는다면....
샤리꼬프(개의 새 이름):하지만 아실런지...? 나는 벌써 독서를 한다고, 독서하고 있다고...중략....
필립:로빈슨...뭐 그런 종류의 내용이 나올 테지.....
샤리꼬프(개):그 책이 ...그게 뭐더라....엥겔스와 그와의 왕복 서한인데....그게 누구더라...빌어먹을....이렇게 생각이 안 나....아, 카우츠키.
이 소설은 볼셰비키 혁명의 색체가 완연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의사 필립의 무모한 이식수술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사회주의 이상국가를 실현하려 했던 레닌과 스탈린의 실험을 상징한다. 샤리꼬프가 계속해서 말썽을 피우면서 결국 필립은 인위적인 수술을 했던 것을 후회하게 된다. 이마가 좁은 샤리꼬프의 외모는 스탈린을 상징해 논란이 되었다고 한다. 그토록 순하던 개가 인간의 뇌와 만나 이런 지경에 이르렀다면 인간의 심장과 만날경우 어떨 것인지 필립은 자문한다. 그로테스크한 풍자와 해학이 가득하다.
P.191 어째서 스피노자의 머리를 인공적으로 만들어 내는 게 필요합니까? 보통의 아낙네도 언제든지 그와 같은 머리를 출산해 낼 수 있는데 말이오! 바로 저 먼 시골구석 할마고르이의 평범한 아낙 로모노소프 부인은 당대의 유명한 학자 로모노소프를 출산하지 않았던가 말이오. ...중략....인류는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진화론적인 질서 속에서 매년 수없이 많은 대중으로부터 가치 없고 쓸모없는 사람들이 배출되어 나오면서도 이 세상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유명한 천재들이 수없이 창조되고 있다는 것을 말이오.
아직은 불가능한 상상력의 기록이지만 제법 재미있게 읽고 나니 우리집 개가 달리 보인다. 무섭다. 우리 개가 말을 한다면 어떤 불만들을 털어 놓을 것인지.
<개의 심장>과 <악마의 서사시> 두 편의 중편이 담겨 있는데 뒷쪽 <악마의 서사시>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분신>을 떠올리게 할 만큼 어지러운 서사로 이루어져있다. 전쟁 중 러시아. 생필품의 부족과 혼란한 혁명으로 인해 여러가지 문제가 개인에게 치명적으로 다가온다. 월급대신 성냥을 받았는데 불량이라 오히려 눈을 다치고 상사의 이름을 착각해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자리까지 잃는 등 시련이 이어진다. 조금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다시 읽어보고 싶다.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가 너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