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기 7 대산세계문학총서 27
오승은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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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오공은 7권에도 연이어 만만찮은 요괴들과 대적한다. 파초선을 가진 우마왕과 나찰녀 부부와 싸우고, 재새국 금광사의 보물을 훔쳐간 도둑요괴를 물리치고 보물을 찾아주어 스님들의 누명을 벗겨준다. 나무요정의 초대에 응해 시를 읊다가 얼떨결에 장가갈뻔한 삼장을 구해내고 가짜 소뇌음사의 황미대왕의 황금바라에서 가까스로 탈출하기도 한다. 의원 흉내를 내서 주자국 국왕의 병을 고치고, 새태세 마왕에게 잡혀간 금성궁을 구하러 간다.

 

이번 7권을 다 읽고나니 <서유기>에서 손오공이 요괴를 무찌르는 패턴에 변화가 생긴 것이 느껴진다. 손오공은 전에 비해 진중해졌다. 무지막지하게 요괴만 보면 날뛰지 않는다. 전에는 꼭 필요하지 않은 살상도 저지르고 위협 당하기 전에 선제공격을 많이 했지만 이제는 자신의 폭력적 본성을 억누르는 편이다. 그래서 삼장이 손오공의 머리를 옭죄는 긴고아주 주문을 외우는 장면도 등장하지 않는다. 요괴들은 전에 등장하던 요괴들보다 강력해진다. 겸손해진 손오공은 자신 능력의 한계를 인식하고 부처님 힘을 빌리러 간다. 우마왕은 금강보살이, 황미대왕은 미륵보살이 도와 퇴치한다. 뭐랄까, 점점 주제에 다가가는 느낌이 온다.

 

우마왕과 손오공이 변신술법 재간을 겨누는 장면이 재미있다. 우마왕이 황새로 변해 도망가자 손오공은 보라매로 변해 황새를 잡는다.  우마왕이 사향노루로 변해 도망가자 손오공은 호랑이로 변해 잡는다,,, 이런 식의 변신 대결이 이어지는데, 오, 이 장면 익숙하다! 이거 <동국이상국집>에서 유화에게 청혼한 해모수를 하백이 시험하는 장면과 같다. 하백이 꿩으로 변해 달아나면 해모수는 매로 변해 잡고, 하백이 사슴이 되어 달아나면 해모수는 이리로 변해 잡는,,,, 그 장면이다. 또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헤라클레스가 강의 신 아켈로오스를 다스리는 것과도 비슷하다. 그외, 많다. 이런 화소는 무엇인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서유기>는 원전격인 현장의 <대당서역기>가 씌여진 당태종 시절과, 오승은의 세덕당본 서유기가 출판된 명말기의 배경을 다 생각하며 읽어야 한다. 그런데, 1권에서도 등장했던 당나라 승상 위징이 경하 용왕의 처형과 관련, 계속 나온다.

 

"법사, 그 현명한 신하는 어느 나라에서 온 사람이오?"

"바로 우리 임금 아래 있는 승상으로서 성씨는 위이며 이름은 외자로 징이라 하옵니다. 그는 천문 지리를 꿰뚫어 통달하고 음양을 파별할 줄 아는 안방입국의 위대한 재상이옵니다. "

- 본문 267쪽에서 인용

 

위징, 그가 어떤 사람이기에 7세기 당나라 승상인데 16세기 이후까지 이렇게 대중 소설에 등장하는가? 이점이 궁금한데,,,, 당 역사, 당태종, 위징, 정관정요,,, 등등을 파봐야 하나? 아, 이거 서유기 읽기 시작했다가 끝이 없네. 후~ (먼산 보고 한숨)

 

 참, 그리고 내게는 이런 복선 너무 웃기다. 새테세란 요괴가 주자국 국왕이 총애하는 금성궁 마마를 납치, 3년동안 부부로 지낸다. 이에 주자국 국왕이 병이 난 것이다. 손오공은 당연히 요괴를 물리치고 금성궁을 주자국 국왕 품에 돌려 주겠지. 그런데, 서유기를 즐기던 당시 사람들은 금성궁이 요괴의 육체적 사랑을 받았다면 손오공이 구해와도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했다보다. 아무리 그녀에게 잘못이 없어도 육체적 순결을 잃은 여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껄끄러우니까 말이다.

 

"재작년에 금성 황후를 잡아왔을 때 어디서 왔는지 신선 한 분이 나타나서 오채선의 한 벌을 바쳐 금성 황후에게 입혔지 뭐냐. 그 옷을 입자마자, 황후의 몸뚱이에 온통 바늘같은 가시가 돋아 나와, 우리 대왕님은 감히 손을 대지도 못하시고 어루만져보시지도 못하게 된 거야 어쩌다가 한번 잘못해서 건드렸다가 손바닥이 아프다고 펄펄 뛰셨으니, 이게 도대체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어. 그때부터 대왕님은 지금까지 황후의 몸을 건드려보지도 못하시고, 잠자리 한번 같이해보지도 못하셨단 말이다. "

-본문 335쪽에서 인용

 

그래서, 위의 인용 부분처럼 웃긴 설정이 있단다. 푸하하, 가엾은 새태세 대왕, 찌질한 당시 남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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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기자의 대당서역기
리처드 번스타인 지음, 정동현 옮김 / 꿈꾸는돌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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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서유기> 완역본 전집을 읽으면서, 서유기 관련한 책들은 검색해서 나오면 다 읽어보고 있다. 그동안 역사서, 해설서나 기행서 등등 여러 서적들을 만나보았건만 <서유기>의 원전이라 할 수 있는 <대당서역기>의 제목을 달고 있는 이 기행서적만큼 읽으면서 기이한 느낌을 받은 책은 다시 없을 것 같다.

 

진짜다. 이 책 기이하다. 정체, 즉 목적이 뭔지 모르겠다. <대당서역기>를 설명하거나 답사하는 책도 아니고, 자신의 여정 견문 감상에 충실한 기행문도 아니다. 지금도 가기 힘든 지역인지라, 확실한 여행 정보가 있기라도 한다면 좀 모를까? 그러나 그런 것도 없다. 여행 전후 필자의 변화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분량은 자그마치 520쪽이 넘고, 글씨는 빡빡하다. 절판이어서 먼 지역의 도서관까지 가서 구해 읽었는데(그것도 서고에 있어서 줄 서서 사서분께 신청해서) 내 노력과 시간을 들인만큼 뭐 남거나 건진 게 없다.

 

책 상세 설명 페이지에 의하면 "뉴욕타임스 기자인 저자와 당나라 승려 현장의 시간을 초월한 긴 모험. 중국 동부의 서안을 출발. 중국 대륙을 가로질러,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파키스탄을 거쳐 인도에 도착, 다시 중국으로 되돌아오는 긴 여행은 당나라 승려 현장이 진리를 찾아 인도록 갔다가 되돌아온 그 길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었다." 라는데, 그게 다다. 걍 그 길을 따라 가고, 중국사 전공인 자신이 아는 것(글쓴이는 그 대단하신 패어뱅크 교수의 제자임)과 현장에 대한 것, 자신의 사적 소회를 좀 풀어 놓는다. 자기 이야기도 하다 만다. 오래 저널리스트 생활을 해서 인지, 글 안에 자신을 숨기는 문체에 익숙한 것 같다. '1. 팽생 몇 번의 봄이 지나가는가''7.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병' 이런 제목은 멋지게 달았지만 별 내용 없다. 낚시 제목이다.  마지막 장 제목은  '21. 여행 끝에 도달한 진리'이지만, 난 글쓴이가 뭔 진리에 도달했는지 모르겠다. 걍 50넘게 방황하던 것을 정리하고 한 여성과 결혼해서 정착하기로 했다는 것? 일상이 소중하다는 것? 그게 다인가? 그걸 꼭 현장의 취경 여행길을 따라 개고생하며 다녀 봐야 도달하게 되나?

 

집은 필수이다. 집은 좋다. 집은 끔찍하다. 집에 대한 두려움이 50대가 되어서도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은 이유를 설명해준다. 하지만 미혼에 아이도 없는 남자는 반쪽짜리 남자라는 탈무드의 질책이 마음 한구석에 걸리기는 한다.
이제 여행의 최종 도착지가 보이는 감숙성 끝자락을 달리는 차 안에서, 나는 두려움의 정체를 깨달았다. 집은 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성 안에서 사람은 나이를 먹고 늙어 죽는다. 집에서 시간은 흐르고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은 늙어간다. 하지만 여행 길에서 시간은 멈춘다. 아니 멈추고 있는 것 같다. 너무 바쁘게 움직이느라 시간의 흐르는 것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처는 이것을 이해했다. 부처가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는 삶의 실체를 알고 나자, 아내와 아이들을 버리고 집을 떠나 방랑의 세월을 보낸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리고 오늘날 남루하고 약간 미친 듯한 힌두 성인들처럼 방랑의 삶을 시작했다. 집은 궁극적인 집착이고 깨달음을 얻는 것은 그 집착을 떨쳐버리는 것이다. 부처가 죽고 제자들이 첫 불교 집회를 열기 위해 독수리 산봉우리에 모인 후, 지도자 카시야파는 부처의 사촌이자 부처가 가장 아낀 애제자 아난다가 그들 사이에 좌정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난다는 다음날 아침 되돌아와 세상과의 모든 인연을 끊겠다고 선언하고 나서야 문을 통과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집은 원시의 끈이다. 나는 이 여행, 이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 이젠 너무 늙어서 앞으로 여행을 계속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큰 모험을 하고 싶었다. 가보지 못한 가장 먼 미지의 땅으로 떠나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 중국 맞은편의 안개 자욱한 푸른 산맥에서 도로를 바라보면서, 미지의 모험은 이미 지나갔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정시에 서안으로 되돌아가 직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 본문 495쪽에서 인용 

 

인용해보자면, 위와 같다. 뭔가 느낌이 오는가? 나만 이상한가? 그럴 수도 있겠다. 아마 내가 이런 스타일의 먹물 남자들에게 편견을 갖고 있기에 이 책의 내용이 시시했는지도 모르겠다. 페르귄트이건 오뒤세우스이건 성진이건 이 글의 필자인건, 세상을 맘껏 떠돌며 즐기다가 늙고 힘빠진다음에야 이런 말을 하며 돌아오는 남자들은 내겐 다 시시해 보인다. 똥인지 된장인지 손가락으로 찔러 먹어봐야만 아나?

 

그나마 흥미로왔던 것은 저자가 여행할 당시의 국제 정세가 잘 드러나 있다는 것. 중국, 파키스탄 등 국경을 넘나들며 각각 자국의 정치적 입장을 체화한 사람들의 모습을 덤덤히 묘사하고 있는 점은 저널리스트인 저자의 장점을 보여준다. (파키스탄이 최초로 핵무기 실험을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니 저자는 1998년에 여행한 것 같다. ) 흉노족에게 황제는 '성 외교'로 목숨과 나라를 건지면서 중국 처녀를 흉노족의 통치자에게 바쳤다(본문 91쪽)라는 식의 가차없는 표현은 신선했다. 화번공주, 혼인정책, 기미정책 등으로 표현하는 동양권 작가의 표현만을 보다 보니, 속이 후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렇게 한편으로 보면, 이 책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문화권의 역사를 서구 지식인이 좀 색다르게 표현하는 것을 읽는 재미가 있긴하다.

 

하지만 엘긴 등 서구 유물 약탈자들을 옹호하는 듯한 서술이나 돈황 벽화를 보고 사실적인 공간 논리가 부재(509쪽)하다고 평하는 등 서구 제국주의 지식인의 무식한 시선도 종종 보인다. 그리고 실크 로드를 통한 불교 미술사를 말하면서 신라와 석굴암은 빼고(아마 몰라서 그런 것 같다) 중국에서 바로 일본으로 넘어간다. 최고 활판인쇄본을 말하면서도 무구정광대다라니경도 모른다. 기타 등등 내가 보기에는 반편이 지식인이 쓴 책 같다.

 

그리고, 책의 내용만큼이나 번역도 만만찮게 시시하다. 역자는 걍 영어를 그대로 한글로 옮겨 놓으셨다. 그래서 '반초'는 '반차오'이고 '구마라습(혹은 구마라십, 구마라집)'은 '구마라즙'이다. 심지어 진시황제는 '첫 황제'이고 '대안탑'은 '큰 야생 기러기 탑'이다. 내가 알기로, 번역하시는 분들은 초벌 번역 후에 관련서적 여러 권을 대조하며 용어를 가다듬고 학계의 일반적 용어로 바꿔 쓴다고 들었는데, 이 분은 안 그러셨나보다. 그리고 편집실에서는 초고 들어온 것을 그대로 검토 없이 책으로 내었나보다.

 

이래저래, 여러 면으로 이 책에 내가 들인 에너지와 시간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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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 5 - 대산세계문학총서 025 대산세계문학총서 25
오승은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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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5권, 삼장법사 취경길의 절반을 따라왔다. 5권에도 요약본에 늘 등장하는 유명한 사건들이 이어진다. 홍해아, 타룡, 차지국의 사악한 도사들, 통천하의 금붕어 등 막강한 요괴들이 등장한다. 얼마나 막강한지 손오공의 힘으로는 무찌를 수 없어 관세음보살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역시나, 원양이 한 방울도 새 나가지 않아 살코기가 맛있는 삼장법사는 요괴들에게 납치되곤 한다. 그런데 늘 목숨을 건진다. 요괴들은 삼장법사를 납치하는 즉시 요리해 먹지 않는다.  늘 손님이나 부모 친지 어르신을 초대하고 도착하기까지 기다린다. 결과적으로 요괴들은 스스로 손오공 등에게 삼장을 구할 시간을 벌어 주는 셈이다.  헐, 서부영화의 악당은 결정적 순간에 말이 많아 화를 자초하고, <서유기>의 요괴들은 너무 착해서 삼장을 못 먹는다. 아, 이 요괴들은 왜 이리 착하고 효성이 지극한가! 게다가 지네들끼리 위계 질서는 왜 이리 잘 지키는가! 요괴월드에도 도덕과 법질서가 있다니,,, <서유기>의 세계는 결국 인간세계의 여러 면을 보여주는 거 아닌가?

 

홍해아가 <화엄경>의 선재동자가 되거나, 통천하 강물의 요괴가 알고보니 관음보살의 애완 금붕어였다거나,,, 이런 식으로 요괴와 사람이 선악의 경계를 넘나들며 변화하는 이야기 구조가 인상깊다. 이렇게 누구나 개심하고 거듭나고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 <서유기>의 세계다. 하지만 어떤 요괴는 독경 소리를 듣고 깨우치기는 커녕, 더 고약한 요괴가 되기도 한다. 이것도 <서유기>의 세계다,,, 결국 다 인간 세계이다. 내가 살고 있는. 그렇다면 <서유기>를 읽고 리뷰를 쓰고 있는 나는 사람인가 요괴인가. (그래요, 이 리뷰 액체빵 마시고 쓰고 있어요! ) 나는 내 목표에 도달할만큼 충분히 변화하는 과정에 와 있는 존재인가. 내 마음 속에 있는 미친 원숭이를 나는 어느 정도 길들였는가,,,, 서유기에서 손오공을 '심원(心猿)'이라 칭하는 이유를 조금 알 것 같다.

 

그밖에 소소한 재미, 발견, 궁금증은 이하.

 

1 90쪽에 달린 역자 주에 따르면, 후스는 화엄경의 선재동자가 110개 성지를 방문하는 여행 이야기가 서유기에 영항을 주었다고 보고 있다고.

 

2 본문 곳곳에서 손오공은 말장난을 즐긴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동음이의어를 사용한 언어유희를 한다. 이를 중국어표현으로는 해음쌍관어(諧音雙關語)라고 하나보다. 뿐만 아니라 변소를 '오곡이 윤회하는 곳'이라고 표현하는 등 서유기에는 유머가 넘친다. 제대로 된 원전 번역서로 읽지 않으면 서유기를 읽으면서도 이 맛을 못 볼 것같다.

 

3 탄탄대로(坦坦大路)는 황제가 사는 도성 앞에 뚫린 넓은 길이란 뜻의 한자어였다.

 

 

 

 

5 통천하의 요괴에게 동남동녀를 제물로 바치는 이야기에서, 중국은 어느 시대까지 황하 등 강에 인신제물을 바쳤는지 궁금.

 

6 원래 통천하(通天河) 강물의 주인이었던 자라가 일행을 등에 태워 강을 건네준다. 그리고 서천에 가거든 여래님께 언제 짐승의 탈을 벗고 인간이 될 수 있는지 여쭤 달라고 부탁한다. 삼장은 흔쾌히 약속한다. 앗싸! 복선 찾았다. 아, 이래서 나중에 돌아가는 길에 삼장 일행이 통천하에 빠지게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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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구법승과 인도의 불교 유적 - 인도로 떠난 순례자들의 발자취를 따라
강희정 외 지음 / 사회평론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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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를 읽다보니 현장의 <대당서역기>에 관심이 갔다. 자연스레 현장을 비롯한, 목숨을 걸고 인도로 불경을 가지러 간 구법승들이 궁금해졌다. 각각의 기록을 읽으면 되지만, 이 분야 지식이 없는지라 그 기록이 갖는 역사적 의의나 어느 정도 사실성이 있는지의 여부 등을 알지 못하니 그냥 <대당서역기>만 읽어도 수박 겉핧기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 책을 찾아 읽었다.

 

우선 정리하자면, 이 책은 현장, 혜초 등 구법승들이 남긴 기록과 그들에 대한 기록, 기록에 언급한 인도의 유물과 유적을 답사, 연구한 방대한 기록이다. 8인의 전문가들께서 동아시아 구법승들이 갖는 역사적 의의를 계속 중간 정리를 해 주고 계셔서 두꺼운 분량이지만 그리 힘들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이 분야에 관심 있다면 구입, 서재에 비치하여 두고두고 들춰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 구법승들 관련 문헌 정리, 도표, 지도 등등 이 책을 딛고 더 뻗어나갈 자료가 풍부하다. 문헌 자료 뿐만 아니라 보드가야, 날란다 등 현지 유적 답사 자료도 알차다.

 

하지만 나는 제대로 이 책을 읽지 못했다. 솔직히, 한글을 깨쳤으니 글자만 읽은 셈. 역사 배경은 좀 알겠는데 불교 철학 나오면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하니까 말이다. 예를 들어, '<자은전>이 최종적으로 성립되는 688년까지도 여전히 유가론학파와 유식학파의 분파의식은 지속되었으며, 여기에 자은학파와 서명학파의 갈등은 점점 커져 가고 있었다 (본문 58쪽에서 인용)'는 서술을 접하면 유가론과 유식학파의 불교철학적 입장이 각각 뭔지 전혀 배경지식이 없는 나는 그저 글자의 음만 읽게 된다. 그래서 내가 관심있는 현장 관련 부분만 이 리뷰에 메모해 두겠다.

 

3세기부터 11세기말까지  동아시아 지역에서는170여명의 구법승들이 인도로 향한다. 이름이 기록된 사람만 이 정도이다. 학자들은 이들을 700여명으로 추정한다. 그럼 여기에서 궁금해진다. 동아시아 구법승이란 어떤 존재인가? 그들은 왜 떠나야만 했던가?  본문 설명에는 이렇다. 

 

동아시아 불교란 한역 경전을 매개로 하는 한자 문화권의 불교를 가리킨다. 즉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래된 경전이 한역되고 이것이 한자문화권인 한국, 일본, 베트남 등지로 전해짐으로써 동아시아 불교가 성립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역'은 단순히 번역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도와 중국의 자연환경과 역사, 문화적 배경 및 정치, 사회적 제 조건의 차이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인도 불교의 중국적 변용은 필연적이다. 서력 기원을 전후하여 인도 불교는 이미 원시불교와 부파불교를 지나 대승불교 시대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인도 불교가 순차적으로 중국에 전해지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교란되고 때로는 역전된 채 중국에 전해지기도 하였다. 이 역시 위진남북조의 정치, 사회적 분열상과 겹쳐지면서, 중국 불교 나아가 동아시아 불교는 매우 복잡다단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이러한 동아시아 불교계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것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목숨을 걸고 서역으로의 여행을 시도한 승려들이 바로 구법승이다.

- 본문 43쪽에서 인용

 

그랬구나. 단순하게 중앙아시아 실크로드 국가의 언어로 중역된 불경의 원전을 구해 제대로 공부하여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종교적 열망만이 아니었구나. 당시 국제정치적 상황도 큰 변수였구나. 또 새로운 이야기도 읽었다. 현장의 <대당서역기>나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등 이들 구법승들이 취경길에 남긴 기록과 행적, 그들이 가져온 불경과 불교 미술품은 불교사는 물론 동서교류사 연구에 큰 역할을 하고 있긴 하지만 일방적으로 인도의 불경과 미술품이 중국, 우리나라, 일본에 영향을 주기만 한 것은 아니다. 문화란 상호 교류되는지라, 이들 구법승이 호신불로 가져간 불교 미술품이 현지 인도의 불교 예술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다.

 

이 책 전체를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일단은 내가 지금 관심을 갖고 있는 현장 관련 자료의 의의를 객관적으로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현장관련 3대 문헌자료는 <대당서역기> 12권, <속고승전> 중 권4 <현장전>, <자은전>이다. 그런데 최근 647년 무럽 기록된 것으로 보이는 현장전 초고 필사본이 일본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내용이 현장 입적 후 탈고된 기존의 <속고승전> 중 <현장전> 내용과 상당한 부분에서 다르다고 한다. 갈수록 현장을 영웅시하고 업적 미화, 신화화가 이뤄진 과정이 보이는데 이는 현장의 제자 파벌 유가파 법상종 중심으로 중국 불교를 재조직하는 과정을 반영한다고. 그리고 현장의 방대한 불경 번역 사업 이후 중국 불교는 신역불교와 구역 불교의 사상적 갈등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후 양 진영의 사상 투쟁을 극복하는 것이 동앙시아 불교의 과제가 되었다고 하니,,, 여튼 그저 <대당서역기>만 읽고 와~ 대단하다~ 하고 지나갈 일이 아니었다. 현실의 디테일은 이렇게 다르다.

 

그래서, 이 책 내용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독서는 역시 다각도로 접근해서 해야한다"는, 책 전체 주제와 상관없는 독후감을 남기며 이 질 낮은 리뷰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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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게 박물관이 왜 필요했을까 박물관학총서 1
류정아 외 지음, (사)한국박물관학회 엮음 / 민속원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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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의 역사를 간단하게 빨리 볼 수 있는 책이다. 박물관의 정의, 명칭의 유래로부터 시작해서 영국 프랑스 등 서구 근대 박물관의 역사를 거쳐 일본 중국 등 서구 박물관을 도입하려 했던 나라들의 역사를 소개하고 제국주의 시절 약탈한 문화재 반환 문제로 마무리한다. 전체적인 구성이 좋다. 읽다보면 통사식으로 다 연결이 된다. 굳이 내용 요약 소개할 것도 없다. 이런 경우는 목차를 리뷰에 옮겨 놓는 편이 나중에 찾아보기 훨씬 쉬우니, 목차를 옮겨 놓기로 한다.

 

- 목차 -

무엇을 박물관museum이라고 하는가∥최종호
동서양 ‘박물관博物館(museum)’ 명칭의 어원과 용례∥서원주
세계 각 지역에서 박물관 기능을 한 기관들∥박윤옥
수집행위의 인류학적 기원과 상징적 가치∥류정아·김현경
지리상의 발견과 유럽의 수집문화∥이은기
시민혁명과 박물관∥박윤덕
동아시아의 박람회와 박물관∥하세봉
일본의 박람회와 박물관∥권혁희
중국의 박물관과 박물관학∥오일환
제국주의와 식민지 한국의 박물관∥국성하
제국주의와 영국 및 인도의 박물관∥서원주
제국주의 시대의 프랑스 박물관∥신상철
미술품의 위작과 도난∥이연식
도굴 미술품의 불법 여정∥김미형
박물관과 문화재 반환∥이보아

 

관심있었던 부분은 서구 제국주의와 박물관의 관련성이었다. 17세기 서구 근대 박물관의 출발은 절대왕정 시기 수집한 예술품을 대중에게 공개하고 교육적 목적으로 사용하려는 계몽주의적 입장이었다. 그러나 19세기 이래 서구의 박물관은 제국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본국의 박물관 뿐만 아니라 식민지에 설립한 박물관도 그랬다. 영국이 인도에 설립한 박물관은 인도의 문화 유산을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줌으로써 식민지 보호국으로서의 자신들의 선량한 지배 의도를 선전했다. 또, 약탈 문화재를 전시하는 방법에도 제국주의적 의도를 담았다. 다윈의 진화론을 인류 문명 발전 과정에 적용하여 각 문명권의 발전 수준을 비교하여 전시했다. 물론 가장 발전한 단계는 서구 문명이었다. 이렇게 서구 박물관은 계몽주의적 성격과 제국주의적 성격을 동시에 지녔다.

 

반면, 함포외교에 문호를 연 중국과 일본이 경우, 동도서기적 관점으로 서구의 박물관 제도를 도입한다. 정부 주도로 산업 박람회를 개최하고 그 전시물이 바로 박물관으로 옮겨지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에 비서구권 박물관 역사의 특징이 보인다. 그외 지역에서 마을의 공동 유산을 마을 창고에 보관, 전시하는 형태의 박물관 이야기도 흥미롭다.

 

사실, 읽어가면서 너무 쉽고 내가 예상했던 내용들이 나왔다. 서술은 요약 위주여서 건조하다. '세이난 전쟁이후 일본 메이지정부는 박물관,,,,이런 식이다. 세이난 전쟁에 대해 설명은 없다. 각 나라 근대사를 기본적으로 알고 있지 않으면 좀 힘들게 읽힐 수도 있을법하다. 그러나 박물관 나들이를 즐겨하는 분들이라면 한번 읽어볼만한 책이다. 단, 여러 저자가 나눠 쓴 책이라, 질적 편차가 좀 있다는 것은 감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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