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테릭스와 신들의 전당 아스테릭스 18
르네 고시니 지음, 오영주 옮김, 알베르 우데르조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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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스테릭스 : 신들의 전당>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읽었다. 이 책은 마법책인 것이 분명하다. 첫 페이지를 펼치자마자 나는 30여년 전의 어린 나로 되돌아갔기 때문이다.

 

80년대 전반기에 소년중앙이던가? 어린이 잡지 부록으로 이 만화를 처음 접했다. 본책에 있는 다른 명랑 만화보다 이 만화가 더 재미있었다. 여기에 나오는 지명과 인명, 소품들, 역사와 문화 배경이 너무도 궁금했다. 아, 나는 떡잎부터 껌정 떡잎이었구나.

 

내용은 이렇다. 기원전 50년 경, 로마의 카이사르는 베르생제토릭스까지 무찌르고 갈리아를 정복을 완료해 간다. 유일하게 정복 못한 골적의 마을은 아스테릭스가 사는 마을. 이에 카이사르는 무력 대결을 피하고 골족 마을을 에워싼 숲을 파괴하여 '신들의 전당'이라는 아파트, 신시가지를 건설해 자본과 문화적 침략을 꾀한다. 물론 우리의 아스테릭스와 골족 사람들은 이를 이겨낸다. 자연 파괴, 노예제, 문화와 경제적 침략 등등 날카로운 현실 풍자가 곳곳에 넘친다. 어린이보다 어른이 보아야 제대로 그 맛을 느낄 것 같다.

 

책을 읽어가는 내내 어른인 현재의 나와 어린 내가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 들었다. 30여년 전의 어린 나는 현재의 나에게 궁금한 점을 묻는다. 어른인 지금의 나는 이 책을 펼치고 만화 한 칸 한 칸 짚어주며 어린 나에게 이야기를 해 준다. 처음 등장하는 골족 마을의 지도를 보면 이 곳은 현재 프랑스 노르망디 주의 쉘부르야. 도무스는 상류층의 주택이고 인술라는 공동주택, 일종의 아파트지. 카이사르의 가장 큰 업적은 갈리아 정복이야. 8년 걸렸지. 서구인들은 이 전쟁이 지금의 유럽을 만들었다고 의미부여해. 하지만 <풀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따르면 이 전쟁 중에 로마는 100만 명을 죽이고 100만 명을 생포했다고 하지'. 당시 갈리아 총 인구는 1200만명이었는데 말이야. 이거 어떻게 생각해? 아스테릭스, 파라노믹스 같은 이름은 갈리아의  영웅 베르킨게토릭스(프랑스에서는 베르생제토릭스)의 이름 패턴에서 따 왔지. 로마인들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처럼 우스 패턴으로 이름 지었어. 로마인들은 스커트 형, 골족이나 게르만족은 바지 형태 옷을 입어. 베르킨제토릭스를 카이사르가 생포한 알레시아 전투가 벌어진 곳에는 지금도 대형 베르킨제토릭스 동상이 서 있단다. 이는 나폴레옹 3세가,,,,

 

어린 나는 입을 딱 벌리며 크게 웃는다. 어른인 나는 장난친다. 입에 '멸치 잼' 넣어야지! 하하.

(어릴 적 나는 이 만화를 읽으며 도대체 '멸치 잼'이 무엇인지 매우 궁금했는데, 이제 보니 일종의 멸치액젓인 '가룸'이었다. 아, 허무해라,,, )

 

여튼, 책도 영화도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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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4
찰스 디킨스 지음, 왕은철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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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하며 검지 손가락에 침 묻혀 빨리빨리 동화책을 읽어대던 어린 시절의 버릇을 못 버려서, 완역본 고전 읽을 때면 심신이 고되다. 한 번은 주인공의 행적과 관련한 줄거리 파악에 급급해서 미친듯 읽어댄다. 주인공의 운명을 확인한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야 안심이 된다. 다시 느긋하게 세세한 심리 묘사와 공간적 시대적 배경을 체크해가며 저자의 논평까지 즐기며 처음부터 읽는다. 그러나 이미 대강 훑어본 책이라 긴장도가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요즘은 같은 책 두번 읽는 방법 대신에 처음에 청소년용 축약본으로 한번 큰 내용을 파악하고 나서 두꺼운 원전 완역본을 세세히 읽는 방법으로 읽는다.

 

이번 독서도 그랬다. 봉건시대 시녀 제도가 빅토리아 시기 '숙녀의 말벗'이란 직업으로 변한 부분을 생각하다 갑자기 에단 호크 나온 동명의 영화가 떠올랐다. 원작을 읽어서 확인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축약본을 검색했다. 고르다 보니 이 출판사의 '징검다리 클래식'에 마음이 갔다. 이 시리즈는 아무나 대강 편역한 책이 아니라 펭귄 출판사의 정본 축약본을 번역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책 뒤에 당시 시대배경 및 관련 배경 지식 설명한 부분도 맘에 든다. 영국 신사와 조선 양반을 비교한 내용까지 있다. 아, 난 이렇게 종횡무진 발랄한 생각을 펼치는 글이 참 좋다. 이 시리즈의 다른 책도 읽어 봐야겠다.

 

저자 디킨스는 에스텔라에게 반해 신사가 되기를 꿈꾸는 핍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 위대한 유산이 무엇인지를 독자에게 묻는다. 미스 해비샴이 인간병기 독소녀로 키운 에스텔라가 받은 유산은 결국 에스텔라를 파멸하게 만든다. 핍이 탈옥수 프로비스에게 받은 유산 역시 그를 진정한 신사로 만들어 주지는 못했다. 핍은 나중에야 뉘우친다. 핍은 이미 누나의 남편인 조 가저리에게서 위대한 유산을 받았음에도 몰랐던 것이다. (조의 직업이 대장장이인 것, 의미 심장하다!) 여튼, 마지막 장면에서 핍과 에스텔라가 폐허가 된 새티스 저택을 손잡고 걸어 나오는 장면은 희망적이다.

 

신사-상층 계급의 허구성, 빅토리아 시대라는 배경, 빅토리아 시대의 사랑과 결혼, 미스 해비샴과 에스텔라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봉건적 요소, 감옥선 등 이시대의 유형제도,,, 등등 내가 다뤄 보고 싶은 것들이 우글우글해서 가슴이 뛴다. 머릿 속에서 아이디어가 팡팡 터진다. 아아, 디킨스 선생은 늘 나를 흥분시키누나.

 

이제, 완역본으로 읽으며 내 아이디어를 구체적으로 다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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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노동계급의 상황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이재만 옮김 / 라티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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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마이크 테스트, 하나, 둘, 셋! 양촌리 주민 아니 글벗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1988년에 세계 출판사에서 나오고 26년간 절판되었던 전설의 그 책! 24세의 피 끓는 엥겔스 선생이 불끈거리는 성질 달래가며 엄청난 수치를 들어 19세기 중반 영국 노동자 계급의 비참한 현실을 고발한 그 책! <영국 노동자 계급의 상태>의 국내 번역본이 다시 나왔습니다! 당장 읽지 않더라도 고전 책 욕심 있으신 분은 무조건 사서 쟁여 놓으십시오. 이번에 절판되면 또 26년간 기다려야할 지도 모릅니다. 특히, 근대 산업혁명 시기 역사에 관심이 많으신 분, 관련 글쓰기를 하며 인용자료가 필요하신 분은 필독, 사재기에 나서십시오.

 

이 책은 1845년, 24세의 엥겔스 선생이 영국 북부를 중심으로 현지 답사한 후 세세한 수치를 들어 영국 노동자 계급의 상태를 보고한 책입니다. 군데군데 욱!하는 젊은 엥겔스 선생의 분노가 느껴지는 문장이 많아, 읽기에 그리 구닥다리 같지 않습니다. 아니, 그보다 당시 영국 현실이나 우리가 겨우 20, 30년전에 겪은 현실이나 마찬가지여서 시간의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기에 더욱 생생하게 읽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은 서술, 현재 한국에 대입해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이 모든 사실을 감안할 때, 영국 노동계급이 점차 영국 부르주아지와 완전히 다른 인종이 되어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영국 부르주아지는 그들을 둘러싼 노동자들보다 지구상의 다른 모든 민족들과 공통점이 더 많다. 영국 노동자들은 부르주아지와는 다른 방언을 말하고, 다른 생각과 이상, 다른 관습과 도덕 원칙, 다른 종교와 정치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는 상이한 두 인종인 것만큼이나 서로 근본적으로 다른 두 민족이다.

- 본문 174쪽에서 인용

 

엥겔스 선생은 전체적인 산업 혁명 시기 노동자들의 상황을 서술한 후 도시 문제, 빈곤, 이주 노동자 문제, 여성과 어린이 노동 문제를 고발합니다. 세세한 수치 인용이 많아 이 시기에 대한 글을 쓰는 분께는 거의 사전처럼 옆에 끼고 들춰 볼만한 책입니다.  특히 이 시기 여성 노동자들에게 관심 있으나 관련 사료 구하기 어려워하는 저에게는 보물같은 책이죠. 공장주의 여성 노동자에 대한 초야권(200쪽)이나 여성 노동자들은 당시 사람들, 같은 노동자 계급 남성들에게도 성적으로 문란하다며 멸시를 받았다는 것 등등을 읽어보면 성적 억압과 계급적 억압을 동시에 받던 당시 여성 노동자들의 상황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뭐 지금도 여성의 권리 주장에 대해서는 그 내용보다 성적 도덕적 꼬투리부터 잡고 공격하고 있으니, 역시 당시 영국이나 현재 한국이나 마찬가지죠. 이런 젠장젠장젠장젠장!(아니, 마이크가 고장났나? )

 

그동안 절판 되어서 노구를 이끌고 도서관 왕래하며 읽었는데(귀한 책이라 대출도 안 됨), 이제야 내 품에 간직하고 내 맘대로 박박 줄 치며 읽게 되어서 행복합니다. 출판사에 그저 고마운 마음이죠. 자, 마지막으로 한번 외쳐보고 마이크 끌게요. 라티오 출판사 포에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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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받지 못한 존재 - 19세기 영국 노동계급여성의 삶과 재현
정미경 지음 / 한국학술정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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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책 소개도, 리뷰도 없지만 빅토리아 시기 영문학 속 여성들을 분석하는 글에서 많이 접해봤던 저자여서 믿고 주문했다. 책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주로 당대 문학작품을 통해 성적, 계급적 이중으로 억압받던 19세기 노동계급 여성의 삶과 사회적 지위를 분석한 글이다. 제목은 '필자를 힘들게 했던 것은 이들이 그 어디에서도 주목받지 못하고 있었다는 냉혹한 사실이었다.'라는 책 머리 글에서 유래한 것 같다.

 

책은 19세기에 대한 배경 지식이 될 수 있는 정치, 경제, 문화, 역사, 철학적 배경을 기본으로 서술하면서 산업화 이후 여성 노동자들의 위상 변화를 논한다. 흥미로운 책이다. 공장 노동자, 하녀, 가정교사, 창녀 등 경제 활동에 나선 다양한 여성들의 현실을 바람직한 논평과 함께 보여준다. 노동 시장에서의 여성 노동자들의 착취(성적 착취 포함)와 저임금 노동이 부르주아 남성, 노동계급 남성과의 밀접한 상호관련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짐작은 해지만 전문가의 시선으로) 알게 되어 좋았다.

 

산업현장에서 부르주아들이 지지한 가정이데올로기는 근본적으로 중류계급의 이해를 토대로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노동계급에게 적용하기는 적절치 못한 것이었다. 노동계급가정의 경우, 기술이 있고 안정된 직업을 가진 남성노동자는 전 노동자의 10~20%를 넘지 않았으며 특히 19세기 초 어린이의 노동이 점차 줄어들자 여성의 임금은 노동계급 가정경제에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대부분의 노동계급가정은 남성부양자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으며 이러한 노동계급의 현실은 여성을 피부양자로 정의하는 가정이데올로기와는 양립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당대의 정부 보고서에는, 노동계급의 엄연한 현실을 무시한 채, 노동하는 아내와 어머니는 여전히 부자연스럽고 부도덕적인 것으로 묘사되었다. 여성 노동자들은 가난한 가정주부와 부적절한 어머니로 혹평되었으며, 기혼 여성의 임금노동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이들 여성 노동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노동을 독립의 수단이 아닌 수치로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

- 본문 165쪽에서 인용

 

사실, 남자는 밖에서 일해서 돈 벌어오고, 여자는 집안에서 살림하며 아이를 양육한다는 개념은 산업화 이후에 생겨났다. 가부장제 역사와 함께한 오래된 전통관념이 아니다. 전통적 가족에서 여성은 경제활동에 참여하여 가정 경제에 공헌했으며 가정 내에서 상당한 권력을 가졌다. 그러나 산업화 이후 고용의 기회가 제공되지 않은 여성들은 점차 남성 부양자에게 의존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가족 부양자로서 남성, 이란 이데올로기는 이 시기의 산물이다. 남성 부양자 운운한다고 자본가들이 남성 노동자들에게 가족 부양에 충분한 임금을 준 것은 아니다. 고용주들은 저임금 여성노동자를 선호했다. 대부분 기혼 여성들은 집을 나서서 임금노동을 해야만 했다. 일자리를 빼앗긴 남성노동자들은 자본가와 여성 둘다 증오했다. 남성 노동자들은 여성의 역할을 집안 살림과 아이 양육에 국한함으로써 자신들의 노동권을 주장했다. 반면 여성들은 피부양자가 아닌 자신들의 역할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차별과 저임금, 찌질한 남성의 공격에 순응하도록 강요받았다. 경제 활동을 하는 여성들은 품행에 문제가 있을 거라는 편견을 감수해야했다. 미혼인 여성들은 그녀들에게 노동 시장이 닫혀 있기에 결혼 시장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다. 이래저래 노동계급 여성들은 억압받았다. 자본가는 물론 같은 노동 계급 남성에게서도, 높은 계급에 있지만 같은 여성에게서도. 이런 점에서 볼 때 가장 여성 차별이 심했던 시기는 중세가 아니라 근대이다. 바로 지금까지인 것이다!

 

서양 여성사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건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성 비하 논쟁 등등은 우리 사회의 급격한 산업화와, 급격히 닫혀버린 계급 이동의 문에 원인이 있는 것 같다. 서구에서 200여년에 걸쳐 일어난 일을 우리는 30여년만에 압축하여 겪지 않았나. 이런 근대 여성사 쪽 읽다보면 내가 어릴적이던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보고 듣고 겪은 모든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내 눈 앞에 펼쳐진다. 이것들을 어떻게 요리한담.

 

여튼, 강추할만한 책이다. 단, 책에서 예로 드는 영국 소설들을 안 읽어본 분들에게는 재미없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엥겔스의 <영국 노동계급의 상태>가 계속 인용되고, 해나 컬윅이란 실존 인물의 일기도 인용되니 그리 문학 비평같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참, 해나 컬윅이란 인물을 알게 되어 기쁘다. 더 파 보리라.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에 나오기는 하지만, 그때는 이 인물에 관심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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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의 역사
카리 우트리오 지음, 안미현 옮김 / 자작나무(송학)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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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에서 많이 인용되어 찾아 읽었는데, 이 책, 다양한 의미에서 대박!이다.

 

좋은 의미에서는, 기존 여러 여성사에서 산만하게 접했던 내용을 한 권에 모아 맥을 잡아 주어서 대박이다. 다 읽고 나니 '빡! 끝!'이런 소리가 환청으로 들릴 정도다. 물론 유럽 여성사 위주라는 한계는 있다. 또 좋은 점은 저자는 핀란드 역사 학자라는 점. 기존 여성사가 아무래도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여성 인물과 역사 위주인데 비해, 스웨덴 등 북유럽과 독일 쪽이 많이 소개되기 때문에 이 역시 대박!이었다. 좀 교만해보일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내가 처음 들어본 이름이 많이 나온 책은 참 오랫만이다. 이 책에 등장한 몇몇 인물은 잘 메모해두었다가 나중에 더 파 봐야겠다. 너무 날 세우지 않고 이야기식으로 술술 풀어놓는 문체도 배울만했다.

 

반면, 이 책은 나쁜 의미에서 대박이기도 하다. 일단 번역이 엉망이다. 독문학 전공인 역자는 독어 번역본을 놓고 번역했다. 그런데 역사 용어 번역이 엉망이다. 인명은 현지 표기가 아니라 독어식 표기이다. 15년전에 나온 책이니, 봐 줄 주 있다. 그런데 일관되게 독어식으로 인명이 표기된도 아니고 군데군데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표기가 섞여 있다. '리처드'가 '리샤'로 나온 것이 제일 대박이었다. '난방도 되지 않는 어둠과 끔찍한 추위 속에서(150쪽)'라는 식의 비문도 자주 등장한다. 오류와 비문 부분은 읽으면서 연필로 계속 표시해 두었는데, 너무 많아서 지금 이 리뷰에 옮기지 못하겠다. 현재 절판이니, 여기에 적어 놓아봤자 출판사에서 수정해 줄 가능성도 없다. 내 수고가 아깝다. 도판도 대박이다. 153 ~154쪽에 실린 메리 여왕,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 9일 여왕 레이디 제인 그레이의 초상화는 그림과 밑에 붙은 이름 설명이 다 틀렸다. 이건 해도 해도 너무했다. 편집팀은 반성해야한다.

 

역자나 편집의 문제가 아닌 내용상의 문제도 있다. 이따금 정사가 아닌 야사, 현재 사실이 아닌 루머로 밝혀진 내용을 버젓이 서술한 부분이 종종 있다. 그런데 원래 이 책이 핀란드에서 1984년에 나왔다는 것을 감안해 읽는다면, 뭐 그리 큰 오점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이 책에는

 

식민지의 유일한 마녀 재판이 피고인의 무죄 석방으로 끝났던 것이다.

펜은 마녀라고 고발당한 여자에게 물었다.

"당신은 정말 마녀요? 당신은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았소?"

그 여자는 그렇다고 인정했다. 그러자 윌리엄 펜이 말했다. 여자는 원한다면 빗자루를 타고 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자신은 빗자루를 타고 날으는 것을 금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고.

- 본문 148쪽에서 인용

 

위와 같은 멋진 서술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제목과 같이 이브의 이야기, 기독교 성립 시절부터 시작한 여성 억압의 역사를 다루지만, 이 책은 폭넓고 유머러스하고 따뜻하다. 그런 저자의 시선으로 마녀사냥, 산업 혁명기 여공, 하녀와 창녀, 작가와 예술가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유럽 여성들의 삶을 엿볼 수 있어 좋았다. 솔직히, 예나 지금이나 기본 차별과 여성 혐오 구도는 똑같기에 읽으면서 그리 기분 좋지는 않다. (역사는 당연히 진보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 제대로 자세히 좀 읽고 나서 아는 척 했으면 좋겠다.)

 

위에 서술한 것과 같은 대박 결점들도 많지만, 여성사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한 번 읽어볼만 하다. 예스에서는 품절이지만 알라딘에서는 현재 판매 중이다.

 

(역자 후기에 보니, 번역할 때 사용한 독어본은 원전에서 유럽 여성사 위주로 줄인 판본이라고 한다. 원전을 다 살린 좋은 번역본이 다시 나왔으면 좋겠다. 제대로 한번 더 이 책을 읽고 싶다. )

 

 

 

 

 

- 본문 228쪽 도판 인용 

'여류작가'라는 19세기 풍자화다. 글쓰는 여인은 나쁜 엄마이고 칠칠치 못한 가정 주부로 여겨져 이런 풍자화가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끓어 넘치는 냄비와 방해하는 고양이,,, 너무 낯익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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