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대기근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63
피터 그레이 지음 / 시공사 / 199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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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5년부터 시작된 아일랜드 대기근과 그 여파를 다룬 책. 얇지만 작은 글자로 빽빽히 많은 내용이 들어가 있다. 우리야 아일랜드가 멀게 느껴지니 아일랜드 대기근, 아일랜드 감자기근이라 칭하지만, 서양사에서는 보통 ‘대기근’이라 할 정도로 이 기근은 끔찍했다. 100만명이 넘는 가난한 사람들이 굶주림과 역병으로 죽었다. 절망끝에 이민간 사람들도 많았기에, 1845년 기점으로 60년 후, 아일랜드의 인구는 절반이 되어 버렸다.

 

기근의 직접적 원인은 ‘감자마름병’이었지만 100만명의 사람들을 굶어 죽게 만든 것은 정치적, 인종적, 경제적, 종교적인 문제들이었다. 물론 이는 전적으로 영국 지배자들 때문이었다. 아일랜드는 12세기 이래 700년간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청교도 혁명 이후 크롬웰은 1652년 아일랜드 식민법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아일랜드의 토지를 수탈했다. 전체 경지 2/3는 영국인 지주 소유였다. 몰락한 아일랜드인은 소작인이 되어 수확한 곡물은 세금과 지대로 영국인 부재지주에게 바치고, 그들은 감자만 먹고 살았다. 

 

감자마름병으로 기근이 들고, 역병이 확산되어지만 영국 지배자들은 이들을 구제하지 않았다. 아일랜드 사람들이 게으르고 미개한 탓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신교도 영국인들은 이를 카톨릭을 믿는 아일랜드에 대한 신의 징벌이라고도 말했다. 감자 수확은 어려웠어도 들판에는 밀 등 곡식들이 잘 자라고 있었다. 하지만 가난한 아일랜드인들은 이 곡식을 살 돈이 없었다. 영국은 여전히 군대를 동원해 강제로 아일랜드에서 생산한 밀을 영국으로 가져 왔다. 당시 영국은 매년 50여만톤의 밀을 아일랜드에서 영국으로 가져왔는데, 이 양이면 충분히 당시의 아일랜드의 굶주린 사람들 전체를 먹일 수 있었다고 한다. 영국인 대지주들은 아일랜드인들이 지대와 임대료를 내지 못하자 그들을 강제로 내쫓았다. 쫓겨난 사람들은 빈민구제소까지 걸어가다가 길에서 굶어 죽거나 병에 걸려 죽었다. 종교 기관의 후원으로 설립된 구제소는 죽 한 그릇 주면서 개종을 요구하기도 했기에, 신앙심 깊은 아일랜드 사람들은 구호를 거부하며 죽어가기도 했다. 당장 무상 배급이 급한데 영국은 아일랜드인들이 게을러질까봐 공공사업을 벌여 일을 시킨 후에야 돈을 지불했다. 그런데 품삯도 충분히 주지 않아 그 돈으로는 식량을 구입해서 굶주린 가족을 먹일 수 었었다. 이상이 바로 네덜란드 등 전유럽에 감자마름병이 유행했지만 유독 아일랜드에서만 대기근이 발생한 이유다.

 

책은 아일랜드 내만 서술하지 않고, 이민간 아일랜드인들의 이후 이야기까지 추적해서 보여준다. 크롬웰 시대부터 영국(잉글랜드)로 이주해간 아일랜드인들은 대도시 공장에서 저임금으로 착취당하며 대영제국의 산업혁명에 기여했다. 대기근 이후 미국으로 이주해간 아일랜드인(케네디 대통령 조상들 포함)들 역시 저임금 노동자로 혹사당했다. 미국의 대륙 횡단 철도는 중국 쿨리들과 아일랜드인들이 만들었다.

 

재난의 발생은 하늘에 달려 불가피할지 몰라도, 희생자들을 더 늘이는 것은 항상 지배계급의 잘못된 대처때문이라는 것을 절실히 보여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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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나무 아래에서 산하세계어린이 26
마리타 콘론 맥케너 지음, 이명연 옮김 / 산하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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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역사소설이 다 왕자나 공주가 되거나, 모험을 하고 보물을 발견할 필요가 있을까. 이렇게 지난 시대의 참상을 알려주는 소설도 필요하지 않을까.

 

아일랜드의 동화 작가 마리타 맥케너가 1990년에 낸 <산사나무 아래에서>는 1845년에서 1851년까지 이어진 ‘아일랜드 대기근’의 참사를 담고 있다.

 

 

 

1845년, 감자가 썩어들어가는 감자마름병이 퍼진 아일랜드의 농촌. 주식인 감자를 수확할 수 없게되어 굶주림에 시달리는 와중에 역병마저 번졌다. 주인공 에일리의 아기 동생 브리짓은 역병에 걸려 제대로 된 관도 없이 집 근처 산사나무 아래에 묻혔다. 아버지는 공공 근로사업에 나간 후 소식이 끊겼다. 아버지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난 어머니마저 돌아오지 않는다. 아이들은 수용소로 끌려갈 처지에 놓였다. 이에 12살인 에일리는 9살인 마이클과 7살인 페기를 데리고 수용소로 가는 길에 대열에서 도망친다. 엄마의 이야기로 들었던 이모할머니 두 분이 사시는 먼 마을을 향해 가던 아이들은 기근의 참상을 생생히 목격한다. 수용소로 가는 길에 죽은 사람들, 죽 한 그릇 얻어 먹기 위해 구호소에 길게 줄 서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사람들, 그 와중에 곡식을 수출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지켜주는 군인들,,, 페기가 병에 걸리는 등, 수많은 위기를 넘긴 아이들은 마침내 이모할머니 댁에 도착하여 보살핌을 받게 된다. 일단 배를 채운 후, 에일리는 고향 집의 산사나무를 그리워한다.

 

아동 소설이어서 그런지, 실상보다 덜 끔찍하게 그려졌다. 하지만 재난의 원인이 감자마름병이 아니라 영국 지배자들의 잘못된 대처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읽는 내내 저자에게 호감이 생겼다. 대기근을 이렇게 아동 소설로 담아낸 것도 그렇지만, 특히 기존 설화 속 마녀 이미지를 새롭게 해석하고 묘사해낸 점에 관심이 간다. 에일리네를 도와주는 옆집 메리 케이트 할머니는 약초 등 민간요법 지식을 갖고 있다. 암염소 내니도 키운다. 전통적인 마녀 캐릭터이다. 아이들이 찾아가는 이모할머니는 빵과 과자를 굽는 제과점을 운영한다. 헨젤과 그레텔이 찾아간 과자집의 마녀 캐릭터 재해석이 아닌가!

 여러 면으로 멋진 작품이다. 작가의 내공이 느껴진다.

초등 고학년부터 성인까지, 강추. 아일랜드 감자기근을 다룬 역사책과 같이 읽으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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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세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곽복록 옮김 / 지식공작소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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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차 대전 발발 후 1941년 브라질에 정착한 츠바이크가 지난 시대의 유럽과 자신의 생애를 회고한 내용을 담고 있다.

 

나의 오늘은 나의 어제의 어느 것하고도 너무나 다르며 또 나의 상승과 전락이 너무도 기막히기 때문에, 나는 다만 하나의 인생뿐만 아니라 여러 개의 완전히 서로 이질적인 인생을 살았다고 이따금 생각할 정도이다.

- 본문 11쪽에서 인용

 

 

십년 전에 읽었는데, 이번에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보고 다시 통독했다. 그동안 독서 이력이 좀 쌓여서 다시 보니, 의외로 많은 역사책들이 <어제의 세계>를 1차 사료로 인용하고 있다는 것이 눈에 새롭게 들어왔다. 에세이이지만, 거의 역사서로 생각하고 읽어두면 좋을 듯하다.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쓸 말이 없다. 요약할 수 없는 성격의 책이다. 걍 읽고, 그의 운명을 만나야 한다.

 

이로부터 여러 해가 지난 후에 비로소 나도, 시련은 사람을 자극하고, 박해는 사람을 굳세게 만들며, 고독으로 파괴당하지만 않는다면 고독은 사람을 드높여 준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인생의 모든 본질적인 것들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인식도 다른 사람의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오직 자신의 운명을 통해 배우는 것이었다.

- 421쪽에서 인용

또한 그가 관심가진 인물들의 운명도 만나야 한다.

그러나 이 희곡은 소위 '영웅'의 편에 서지 않고 항상 패배자 가운데서 비극을 보고자 하는 나의 내적이고 개인적인 성향을 이미 담고 있었다. 나의 소설에서 주인공은 늘 운명에 의해 쓰러진 자이며, 전기 작품에서도 현실적인 장()이 아닌 도덕적인 의미에서 성공한 인간의 참된 모습에 마음이 쏠렸다. 즉 루터가 아니라 에라스무스, 엘리자베스가 아니라 메리 스튜어트, 칼빈이 아니라 카스텔리오에 쏠렸다.

- 본문 211쪽에서 인용

 

 

 

 

 

 

그의 마음이 쏠린 운명은 각각 '정신적 도덕적 히로이즘'을 체현하는 인물의 운명이 아니었을까.

 

어떠한 공격도, 어떠한 술책도 그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는 없었다. 그는 두려움 없이 현명하게 세계의 혼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에게서 나는 다른 히로이즘, 하나의 살아 있는 기념비라고도 할 수 있는 정신적 도덕적 히로이즘을 보았다. (중략) 광기의 발작에 빠졌던 유럽의 양심을 유지한 사람이 바로 그였던 것이다.

- 본문 327

베르하렌, 엘렌 케이, 로맹 롤랑, 톨스토이, 고리키, 릴케,,, 등등 그와 교류하고 영향을 주고받은 당시 유럽의 지성들 이야기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리고 현재 내 입장에서는 젊은 책벌레였던 그가 작품을 쓰고 무작정 투고하고,,,, 작가로 자리잡아 가는 과정에서 겪고 느낀 이야기들도 재미있었다.

 

나의 '어제의 세계'를 회고해 보니, 고교 1학년 때의 국어 선생님 덕분에 알게 되어 그의 책과 보낸 세월이 어언 25년,,,, 그의 문장에 빠져 있다가도,,, 자유주의 서구 지식인의 전형적 모습에 의도적으로 멀리하다가도,,, 언제나 그를 다시 읽으면 가슴이 뛴다. 10년 전의 나는, 양차 대전을 거치며 잃어버린 유럽만을 안타까워하는 그가 조금 실망스러웠다. 그 정도의 지성을 갖춘 남자가 유럽이 일으킨 전쟁에 신음하는 다른 지역 사람들의 고통을 거시적으로 보지 못하는 것이 의아했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읽고 나니, 생각이 좀 바뀌었다. 그래, 그런 기질을 가진 사내가 있고, 그런 사내를 좋아하는 것이 뭐가 어떤가? 나는 그의 장점과 단점을 다 알고 사랑하는데!  앞으로 나는 아무 죄의식 없이 그를 읽고 사랑하리.

 

(2003년의 2판 2쇄로 읽었지만, 여기 2014년 개정판에 리뷰 남김. 인용문의 페이지는 이 개정판과 다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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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종말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타임라이프 세계사 18
타임라이프 북스 지음, 김훈 옮김 / 가람기획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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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놓은 것이 있어, 프란츠 요제프 황제 시절을 다룬 책이나 전시는 놓치지 않으려 한다. 이 책 <제국의 종말>은 타임라이프북스 세계사 시리즈의 전형적인 장점을 보여준다. 치우치지 않는 시각, 풍성한 도판, 다양한 각도의 접근과 당시 인물들과 문화 소개,,, 사실 시리즈의 다른 권은 좀 무미건조하고 지루해서 의무감으로 읽었던 적이 많았는데, 이번 권은 그렇지 않았다. 이 책이 워낙 잘 되어 있어 그런지 내가 이 시기와 이 시기의 인물들에게 관심이 많아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여튼, 친구분들께 추천할 만한 책이다.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합스부르크 가'는 프란츠 요제프 황제와 에레제베트 황후 위주로 황실 인물들을 다룬다. 1차 대전 발발과 관련한 황태자 이야기 등등. 이쪽 역사 이미 읽고 아는 분들께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 다만 좀더 생생하다고나 할까. 책의 장점은 2부에 있다. 2부 '백성들의 다양한 열망'에는 황실 가족 외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당대를 열정적으로 살았던 세 인물을 통해 그 시대를 다각적으로 보여준다.  반전 작가 베르타 킨스키, 노동운동가 아델하이트 드보르자크, 빈 시장 카를 뤼거를 통해서. 특히 카를 뤼거가 지지를 얻는 과정을 보면, 이후 나치즘이 오스트리아에 '먹히게 된' 싹이 보여 흥미롭다. 3부 '오스트리아의 참된 소리'는  음악가인 요한 슈트라우스, 화가인 클림트, 작가인 츠바이크, 심리학자 프로이트를 통해 그 시대의 문화와 시대정신을 다룬다. 이 부분도 각각 이들의 책이나 전기를 읽었으면 그리 새로울 것 없는 내용이긴 하지만, 그 '직조' 과정을 통해 그 시대의 면면을 대략 볼 수 있는 점이 재미있다.

 

그래도 역시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은 풍부한 도판과 설명이다. 링 슈트라세 사진과 그 설명을 보자.

 

1857년, 황제의 명령을 받은 빈의 건축가들은 중세의 성벽을 허물고 도시를 아름답게 꾸미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렇게 해서 옛 성벽의 토대 위에는 링슈트라세로 알려진, 구 시가지를 둘러싼 길이 3km 가량의 아름다운 환상 도로가 들어섰다. 그러나 1867년에 이르러 교회와 군대라는 불안정한 토대를 기반으로 한 유일 통치자로서의 지위가 무너지면서 전제정치는 종말을 고했다. 그 잿더미 위에 오스트리아의 새로운 입헌 군주정의 상징물들이 들어셨으며, 신흥세력인 시민계급은 그런 건물들을 세속문화와 법치의 전당으로 여겼다.

링슈트라셰는 서구의 다양한 건축 양식을 보여 주었으며 (중략) 맨 왼쪽에 자리잡은 국회의사당은 고전시대 그리스 양식의 외관을 보여주며, 그 다음에 보이는 시청은 플랑드로 고딕 양식을, 대학 건물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을, 그 너머로 높이 솟은 성당은 프랑스 고딕 양식을, 육각형의 돔을 갖춘 극장은 바로크 양식을 각각 따랐다.

- 본문139쪽에서 인용

 

저물어가는 제국의 마지막 총역량 집중으로 보여준 모든 시대 유럽의 영광. 그리고 부르주아지의 의미 부여라니! 이런 도판과 설명만으로도 그 시대 프란츠 요제프와 슈테판 츠바이크의 성격을 에둘러 보여주는 듯하다. 

 

나는 어린 왕자처럼 의자를 옮겨가며 이 장엄한 제국의 저녁 노을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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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나날
로랑 세크직 지음, 이세진 옮김 / 현대문학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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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계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1881-1942)의 말년 150여일을 재구성해낸 소설이다. 츠바이크를 흠모하여 자신의 의학박사 논문까지 그에게 헌정했을 정도의 저자이니, 소설 행간 사이사이 엿보이는 츠바이크의 <어제의 세계><모르는 여인의 편지><체스>등의 영향을 찾아보는 즐거움이 있다.

 

빈의 황금시대에 태어나 그 문화적 유산을 계승한 츠바이크는 1차 세계 대전을 겪으며 그의 정신적 고향인 유럽의 파괴를 목격한다. 그는 2차 대전 발발 후,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브라질로 망명하지만 고향에서 들리는 친지들의 암울한 소식과 전쟁 확대, 브라질에서도 자행되는 유대인에대한 테러 현실에 절망한다. 끝내 츠바이크는 1942년 2월 22일, 늘 소지하고 다니던 약물로 자살한다. 27세 연하의 두번째 아내 로테와 함께.

 

이제는 신성한 안식처도, 고정 거주지도 없었다. 삶은 영원한 방랑의 장이 되었다. 기억할 수도 없는 아득한 탈출기가 되었다.

- 본문 12쪽에서 인용

 

그가 알던 세상은 폐허가 되었다. 그가 살뜰히 여기던 이들은 죽었다. 그들에 대한 추억마저 무참히 훼손당했다. 그는 인류의 가장 풍요로운 시간을 증언하는 전기 작가가 되고 싶었다. 야만의 시대를 아무 생각 없이 기록만 하는 글쟁이는 될 수 없었다. 그에겐 너무 많은 기억과 너무 큰 두려움이 있었다. 노스탤지어는 그의 글쓰기의 유일한 원동력이었다. 그는 과거에 대해서만 글을 썼다.

- 본문 47 -48쪽에서 인용

 

카스텔리오, 에라스무스, 몽테뉴,,,, 지난 시대 유럽의 야만에 맞선 역사적 인물들을 즐겨 그려냈던 그에게, 눈앞에 펼쳐지는 새로운 유럽의 야만, 아니 전 세계로 확대되는 야만은 결코 견딜 수 없는 것이었으리라.  츠바이크 신봉자가 쓴 이 책을 통해 나는 그의 아픔과 두려움을 읽는다.

 

하지만 그의 시대와 그가 그려낸 작품의 시대를 그리워하는 나. 그란 남자와그란 남자가 숭상한 남자들을 그리워하는 나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츠바이크의 어린 아내 로테처럼 이 소설과 그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다.

 

“난 당신의 모든 것을 알고 싶다고요. 현재와 과거 모두를요. 당신 인생의 매순간을 지켜보는 관객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당신 품에 안겨 오롯이 당신에게 속하고 싶어요. 당신과 함께 베토벤 카페에, 부르크 극장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함께 폴크스가르텐을 산책하고 막시밀리안플라츠를 바라보며 감탄하고 싶어요. 당신과 나란히 오페라 극장의 계단을 오르고 마리엔바트의 공기를 호흡하고 싶어요. 운명이 나를 너무 늦게 태어나게 했으니 잃어버린 시간을 따라잡고 싶어요. 내가 당신과 떨어져 살았던 그 세월을 모두 다 이야기해줘요!“

-  본문 60쪽에서 인용

 

내게 먼 남자를 읽고 뒷북치며 사랑하는 일은, 고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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