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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민간 신화
체렌소드놈 지음, 이평래 옮김 / 대원사 / 2001년 4월
평점 :
'민간 신화'라는 제목이 좀 생소하지만 (생각해보니 신화, 전설, 민담이란 설화의 3분류도 동양권에서는 꼭 정확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일단 책 소개를 한다. 몽골의 체렌소드놈 저자가 10년동안 몽골 설화 161개를 모아 원 자료를 해설과 함께 수록한 책이다. 내용은
다른 신화들과 마찬가지로 우주, 별과 천체, 식물, 가축, 야수, 조류, 인간과 인간 관련 동물, 종교와 신앙, 문화와 문명, 각 씨족 부족의
기원을 밝혀주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참, 마두금의 기원도 있다.
모든 설화들이 그렇듯, 이 책 <몽골 민간
신화>는 몽골인들이 자신이 속한 세상을 어떻게 보고 해석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길고 추운 겨울을 납득하기 위해 좀생이별 이야기를 여러
버전으로 전승하며, 각 동물들의 생김새를 설명하기 위해 결과론적으로 현재 모습에 맞춘 이야기가 생겨 난다. 여러 씨족들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백조 선녀가 등장하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의인화된 동, 식물 이야기가 많아서 자연 속에서 모든 생명체와 동등하게 살아가는 몽골인들의 가치관이
반영된 것 같다. 그래서일까? 더 혹독한 겨울을 보내는 몽골이지만, 북구 신화처럼 인간과 대결하는 서리거인 같은 추위와 겨울을 의인화한 악한
존재는 없었다.
그리고, 우리 민족 설화와 비슷한 이야기가 눈에 많이 띄었다. 우리 민담에 자주 등장하는 재주 많은 형제들
이야기라든가, 암콤과 같이 사는 사냥꾼이 자식곰과 아내곰을 버리고 도망가자 곰이 강가에서 울부짖는 설화는 웅진의 지명 유래 설화와 거의 같았다.
그외 늙은이의 지혜 덕분에 늙은이를 죽이는 풍습이 사라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우리나라, 일본 민담과 유사했으며 진흙으로 사람 빚는 이야기는
성서와, 외눈박이 랄라르 물리치는 모험담은 오디세우스 이야기랑 비슷했다. 세계 어느 곳을 가나 비슷한 화소를 가진 설화는 늘 있는 법이지만,
가까운 일본 설화보다 몽골 설화가 우리 설화와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은 꽤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몽골만의 특징으로는, 신화의
주인공으로 '보르항 박시'라는 존재가 많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 보르항 박시는 천지 창조, 인간 창조 그외 중요한 조물주의 역할을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어느 날 샥지투브 보르항(석가여래)과 마이다르 보르항(미륵불)이 누구의 그릇에 꽃이 자라는지 내기를 했다.
그런데 샥지투브의 그릇에 먼저 꽃이 피자, 마이다르가 샥지투브의 꽃을 몰래 자기 그릇에 옮겨 먼저 꽃이 피었다고 주장했다. 온순하고 관대한
보르항 샥지투브는 모든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고는 마이다르 보르항에게 말했다. "잘된 일이구나. 다가오는 시대는 너의 시대가 될 것이다.
그러나 네 시대에 사람들은 거짓말쟁이, 도둑이 될 것이다." - 본문 30쪽에서
라는 이야기가 제주 무가와 거의 같았다는 점.
우리나라 서사무가에서 토착신들, 특히 여신들이 석가, 미륵불에 본래의 자리를 잃듯 몽골도 불교 전래에 따라 샤머니즘 시대의 이야기 주인공이
부처로 바뀌는 과정을 겪었나 보다. (주석에 보니 보르항은 신, 붓다, 불상이란 의미이며, 박시는 선생이란 뜻으로, 몽골 설화가 16세기 불교
수용후 불교적 색채가 덧칠해졌다는 점 고려해서 그냥 신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고 한다.) 중세 유럽도 기독교 전파에 따라 본래 다신교 신들의
이야기 속 역할을 가톨릭의 성인들이 맡기도 하였다고 하는데, 세계 어디서나 설화 속 주인공들의 세대교체는 있었나 보다. 참 당연한 이야기인데
새롭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불교 전래 이전, 이 설화들의 본래 모습은 어떠했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몽골 공산정권을 거치면서 현재 이
설화들이 어떻게 구비전승되고 있는지, 새롭게 변모한 점은 있는지도 궁금하다. 기나긴 구비문학의 역사에 비추어 비교적 최근 인물인 칭기스칸도 몽골
설화에 많이 등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외, '허파와 염통이 입으로 나올 듯이 놀라다' '푸른 간이 뻣뻣해해지도록 웃다' 등
재미있고 신선한 관용 표현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