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기의 발자취를 따라서 / 스가와라 아쯔시 저, 양기봉 옮김 / 보림사 /1987년 10월

 

리뷰로 쓸 수 없는 책이다. 28년전에 나온 책이며 오래전에 절판되었기 때문에 검색해도 안 나온다.

 

<서유기>에 관심이 생겨 자연스레 현장법사의 <대당서역기> 관련한 책을 찾아 읽게 되었다.  현장의 취경여행에 꽂혀서 그 길을 따라 간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음을 알게 되었다. 사막의 발자국처럼 냇물의 징검다리처럼 내 앞에 펼쳐지는 이미 떠난 자들의 흔적,,,, 그 중 한 권으로 <현장 서유기>의 역자이자 문지사 <서유기>의 번역자이신 임홍빈선생님이 추천하는 책이 스기와라 아쯔시 저 <서유기의 발자취를 따라서>였다. 그런데 구할 방법이 없었다. 검색해보니 우리나라 도서관 중 국립중앙도서관 한 곳에만 있었다. 그것도 종이책이 아니라 DB구축, 전자도서 시스템으로. 검색하다보니 이 책을 예찬한 리뷰도 한 편 만났다. 읽고 싶어 미치겠는데 방법이 없어 막막했다.

 

그러다, 이번 부산 강연길에 중고서점에서 이 책을 만났다. (더불어 <아날학파>등 귀한 절판본 역사서들도 득템했다) 부산 지역 도서관에서 폐기 처리되었다가 헌책방으로 들어온 책이었나보다. 1987년 10월 초판 인쇄, 2800원. '~습니다'가 아니라 '~읍니다'로 표기된 평서형종결어미라니! (잠깐, 이 대목에서, 오버 좀 하겠다. 아! 남자만 운명적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었어! 현장법사는 천축국에 가서 날란다 사원에서 강연하고 불경을 구해 왔지만 나 껌오정은 부산에 가서 강아지똥 서원에서 강연하고 절판된 책들을 구해 왔어! 이건 나의 취경 여행이야!  자, 손오공은 어디 있지? 료마는? 오버 끝. )

 

이 책은 일본의 불교문화역사 전공자인 스기하라 아쯔시 교수가 1978년 현장의 <대당서역기> 경로를 따라 현지답사한 기록이다. 인종, 풍속, 종교, 지리, 산업, 문화 등등 관찰한 내용을 사진이 아니라 직접 스케치한 그림으로 실은 점이 특이하다.  현장의 일생, 당시 당나라의 국제 관계, 불교 문화 관련 설명이 기본 <대당서역기>의 내용과 같이 등장한다.

 

책에는 현재 남아있는 고대 목간 자료들은 건조 기후 덕분에 주로 만리장성 서쪽 관문인 옥문관과 근처 봉화대 주변에서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라든가, 고창국 귀족들이 먹었던-아마 현장도 대접받아 먹었을 말린 과일이며 비스킷 이야기,,,등등  정식 역사서에서 읽을 수 없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예를 들자면 아래 부분,

 

현장이 통과했던 대여행의 코스는 오늘날의 이른바 '비단길'에 해당된다. 비단길이란, 19세기에 독일의 지리학가 리히트호헨이 붙인 이름이다. 비단을 운반했던 길이기는 하나 그 비단은 단지 무역품이란 의미보다, 화폐와 마찬가지 의미로 쓰였던 물건으로 보아도 될 것이다.

- 본문 18쪽에서 인용

 

저자는 이렇게 서술하면서 현장이 여행 경비로 비단을 준비하거나 조각을 잘라 지불했을 경우를 상상한다. 이 점은 그동안 나는 전혀 생각도 못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쌀과 면포가 화폐로 쓰였기에 면포의 경우만 상상했을 뿐이다. 그런데 세상에, 실크 로드가 실크를 운반할뿐만 아니라 실크 조각을 여행 경비로 뿌리고 다니는 로드였다니. 지금도 사막을 여행하면 그 옛날의 비단 조각들이 건조 기후 덕분에 색이 하나도 바래지 않은 채 발견된다고 한단다. 아아, 사막에 나부끼는 천 년 전의 비단 조각들이라니! 상상력 돋는다. 이렇듯 이 책에는 굉장히 중요한 역사적 사실은 아니지만 독자의 상상을 자극하는 이야기들이 오밀조밀 실려 있다. <현장 서유기>를 읽을 때와는 또 다른 맛이다. 아, 재미있다. 

 

답사 당시 현지 상황도 곁들여 있는데, 이 내용 역시 겨우 30여년 전이지만 1300여년전 현장의 여행 당시 상황만큼이나 내겐 아득하니 멀게 느껴진다. 아마 지금 당장 내가 이 길을 따라 여행한다면 현장의 취경여행 당시 상황은 물론, 스기하라 교수의 답사여행 당시 상황과도 굉장히 다를 것 같다. 현장의 <대당 서역기>에는 바비얀 석불의 얼굴이 멀쩡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스기와라 교수의 이 책에는 이미 바비얀 석불의 얼굴 부분이 파괴되어 있다. 지금은,,,, 몸체도 다 파괴되어 있지 않은가.

 

현장의 여정과 달리, 바미얀(지금의 아프가니스탄) 지역에서 책이 끝나서 아쉽다.  

 

 

- 이렇게 책 본문 곳곳에 약간 엉성한듯한 지도와 그림이 있는데, 모두 저자 스기하라 교수가 직접 그린 것이라고 한다. 표지 역시 저자분 작품. 표지디자인도 삽화도 일본 원서와 똑같이 냈다고 한다.

 

- 일본 원서를 찾아 보니, 한국번역판과 표지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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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 3 대산세계문학총서 23
오승은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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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3권, 드디어 사오정까지 합류하여 라인업이 완성된다. 삼장, 손오공, 저팔계(저오능), 사오정, 백마(용마삼태자). 이들은 각각 자신의 사명을 위해, 업을 풀기 위해 머나먼 천축국으로 떠난다. 이제야 발단이 끝나고 전개가 시작되는 셈이다. 손오공은 길을 헤쳐 나가고 저팔계는 짐을 짊어지며 사오정은 말고삐를 잡는다. 백마는 삼장을 태운다. 삼장은,,,, 걍 존재한다. 중국 고전 소설에 종종 등장하는, 주인공 같지 않은 유약한 주인공(유비나 송강, 가보옥) 캐릭터의 특징을 가장 극대화시켜 구현하고 있는 인물같다.

 

3권의 큰 흐름은 황풍괴를 제압하고, 네 모녀의 유혹을 이겨내고, 인삼과를 훔쳐 먹고, 요괴에 농락당한 삼장이 손오공을 쫓아내는 이야기. 전체적으로 보아 큰 활약을 보이지 않던 용마가 미모의 시녀로 변신해 검무를 추기도 하는 등, 다른 편에서 못 볼 활약을 보여 준다. 이렇게 많은 재능을 그동안 어떻게 숨겨두고 말 노릇만 묵묵히 했나 싶다.

 

나는 어릴적부터 <서유기>에 나오는 요괴와의 싸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궁금했다. 앞서 <현장 서유기>를 읽으면서 요괴와의 대결이 경전 토론 배틀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점은 처음 알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사막, 고열, 모랫바람 등등 여행길에 겪게되는 자연적 고난, 재해였던 것 같다. 이번 3권에서 황풍대왕의 바람(29쪽) 묘사를 보니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들 수 있겠다. 이렇게 힘든 여행길, 왜 근두운을 타고 쉽게 가지 않고 이들은 사서 생고생하는 것일까? 그 답이 되는 "사부님은 범태 육골이라 무겁기가 태산 같아서, 내 구름 가지고는  사부님을 모셔갈 수 없소."  "태산을 옮겨 보내기는 겨자씨보다 더 가볍지만 인간을 데리고 홍진을 벗어나기는 어렵다." 라는 대화가 이번 3권의 62쪽에 나온다. 현장이 인간, 죄업을 지닌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 육체의 물리적 무게, 라기보다는 영혼의 죄업의 무게가 그만큼 무겁다는 것. 그래도 절망하기에는 이르다. 우리 인간에게도 구원의 길은 있다. "다만 우리 사부님은 이역 만리 궁벽한 땅을 고생해가며 두루 편력하시지 않고서는 고해를 초탈하실 수가  없단 말일세.  " 아아, 백마 탄 왕자 현장이 싸돌아다니는 것에는 이런 슬픈 이유가 있었다!

 

또 궁금한 것은, 소설에 계속해서 보이는 도교 외단술(신선의 불로장생 선약을 만드는 방법)의 서술이다. 이번 3권도 55쪽을 보면 "우선은 영아와 차녀를 거두고 다음에는 목모(木와 금공(金公)을 내놓았다"라는 서술이 있다. 역자 주를 보니 목모는 도교 내단술 용어로 수은을 의미한다고 한다. 수은은 해(亥)를 낳는데, 해는 돼지이므로 목모는 저팔계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풀어가면 금공은 납, 납은 경을  낳는다. 경신(庚申)은 금, 신(申)은 원숭이이므로 손오공이라고 한다. 그럼 손오공과 저팔계의 티격태격이 다 납이 수은을 만나 황금으로 변하는 과정을 의미한 것일까? 고된 취경길 이후 죄업을 씻고 영혼이 성장하는 것을 황금이 되는 것으로 표현한 것일까? 아니면 소설을 빌어 도교 연금술의 비법을 서술한 것일까? 이거 서유기 코드인가? (이 부분은 아무래도 나카노 미요코의 <도와 연단술의 심벌리즘 : 서유기의 비밀>을 읽어봐야 해결될 것 같다.)

 

하지만 3권 최고의 상상력은 인삼과 부분이다. 나는 어릴 적에 <서유기>이야기를 읽고 인삼과 이야기에 매혹당했다. 중국의 인삼과 아기가 자라서 조선에 와서 전설의 고향 출연,내 다리 내놔, 하며 쫒아오는 산삼귀신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상상도 했다.

 

손행자는 나무 밑에 기대어 서서 꼭대기를 올려다보았다. 과연 남향으로 벌어진 나무 가장귀 위에 인삼과 한 개가 드러나 보이는데, 정말 갓난아기와 똑같이 생겼다. 꼬리 부분에는 꼭지가 있어 가지에 매달려 있고 손발을 마구 휘저으면서 끄덕끄덕 고갯짓도 할뿐더러, 바람결이 스쳐가는 대로 어린아이의 울음소리와도 같은 소리를 내기까지 한다.

- 본문 155쪽에서 인용

 

116쪽에 달린 역자 주에 따르면, 인삼과는 먹으면 불로장생하는 사람형태의 신비스런 영약이란다. 그런데 도교에서는 이런 사람 형태의 영약이 또 있다고 한다. <포박자> 선약 편에는 동물처럼 움직이는 '육지'와 나무뿌리에 달린 '인형복령'이 등장한다고. <선술비고>에 양정이라는 사람이 물을 길러 샘에 가다가 아주 깔끔하고 새햐얀 어린애 하나가 샘터에서 놀고 있기에 하도 귀여워 집에 데려갔는데, 집에 당도하고 보니 어린애는 마치 나무뿌리처럼 빳빳하게 굳어져서 인형복령이라는 것을 알고 먹었더니 신선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그런데 아기 형태의 영약, 도교 연단술에서 납을 의미하는 '영아(嬰'의 다른 버전 이야기 아닐까? 혹시 이거 이거,,, 아이 유괴와 식인을 이런 식으로 표현한 것 아님?하는 지극히 껌정다운 생각도 드는데? 서양의 맨드레이크(만드라골라)와 우리나라 동자삼 전설은 또 어떻게 연결되는 거지? 흠. 더 파 보리라! 껌오정의 취경여행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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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당서역기 - 진리를 구함에 경계가 없다 서해클래식 10
현장법사 지음, 권덕녀 옮김 / 서해문집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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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서유기>를 읽다보니 자연스레 소설의 모태가 되는 현장법사의 <대당서역기>가 궁금해졌다.  읽었다. 그런데 이 책은 완역본이 아닌 것 같다. 상품 상세 페이지에는 '권덕녀 옮김'으로 나와 있지만 실제 책에는 '권덕녀 엮어 옮김'이라 표시되어 있다. 즉, '편역'이란 말이다. 어느 정도 축약을 했는지 원전의 어떤 내용을 어떻게 편집했는지 알 길이 없다. 인터넷 서점 측은 제발 책 관련 정보를 정확히 올려 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모르는 분야를 처음 읽을 때에는 대중서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책 뒤편의 참고 문헌 목록을 보고 전문서적 쪽으로 슬슬 옮겨가 읽는다. 원전이 목침 대여섯 개 수준인 고전 소설의 경우에는 아동 청소년용 축약본으로 먼저 읽어 워밍업을 하고 나서 원전으로 읽는다. 이번 <대당서역기>도 검색해보니 단 두 권밖에 없어서 먼저 좀더 쉬워보이는 이 책으로 시작했는데,,,, 읽다보니 짜증이 난다.

 

번역본이므로 원래 기본 내용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원저자인 현장이 살던 7세기, 당나라 때 불경은 오역이 많았다. 왜냐하면 인도의 원전을 중국어로 바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 불교가 전해지던 실크로드 노선의 국가들의 언어로 일차 번역되었다가  다시 중국어로 2차 번역되었기 떄문이다. 즉, 중역 본으로 불교 사상 토론을 하다보니 문제가 많았다. 용어 역시 원 의미를 제대로 밝혀 번역되지 못했다. (인도에 다녀온 후 현장은 관음보살을 관자재보살로, 천축을 인도로 바로잡아 번역했다) 그래서 627년, 27세의 현장은 국가의 금지령을 어기고 홀로 국경을 넘어 인도로 향한다. 불경 원전을 구하기위해. 고생끝에 도착한 인도 마가다국 날란다 사원에서 15개월동안 유학한다. 645년 현장은 불경 640질과 사리, 불상 등 귀중한 자료를 가지고 당나라로 돌아온다. 환속하여 높은 벼슬을 하라는 당태종의 명령을 거절하고 이후 19년간 불경 번역에 힘쓴다. 당태종의 명령으로 <대당서역기>, 바로 이 책을 쓴다. (정확히 말하자면 구술, 제자가 받아 적어 기록했다) 그러기에 <대당서역기>의 성격은 기본적으로 정보제공이란 목적에 투철하다. 여정 견문 감상을 담은 흥미진진 여행기가 아니라 자신이 지나가거나 들은 중앙아시아와 인도의140여개국에 대한 지리문화 정보를 담고 있는 드라이한 보고서이다. 소설<서유기>의 모태이지만, 소설과는 성격이 매우 다르다. 이 책은 현재 사라진 국가들, 자국인이 자국어로 기록한 문헌이 없는 중앙아시아, 인도에 대해 당시 7세기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값진 자료이다. 그러니 기본 원전의 가치야 내가 이 리뷰에서 논할 필요가 없다. 전세계의 구전설화에 관심이 많은 나는 이 책에 실린 불교 설화를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관심있는 독자라면, 한번쯤은 읽어볼만 한 책이다.

 

하지만 이 책, 서해클래식판 <대당서역기>를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일단 이 책은 대중역사서의 목적에 충실하지 않다. 나는 도대체 출판사에서 예상 독자층을 어떻게 잡고 이 책을 기획했는지가 궁금하다. 편역서이고 시각자료 많이 쓴 편집으로 보아, 대중서를 지향한 것 같은데, 전혀 친절하고 대중적인 설명이 없다. 책 페이지 양쪽에 본문 관련 용어 풀이가 있지만 그냥 사전적 풀이 수준이다.

 

게다가 도판! 문제가 심각하다. 출전을 밝히지 않았다. 둔황 석굴 벽화 정도야 나도 아니까 그런갑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너무 설명이 불충분하다. 그냥 '붓다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고 부처가 되는 모습이다'이 정도 설명만 그림 아래 달아놓으면 어쩌란 말인가? 몇 년도 제작된, 어디에 있었던, 누가 그린, 현재는 어느 박물관에 있는,,,, 이런 설명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한 마디로 이 책은, 원전은 가치가 있지만 번역본 책은 가치가 떨어지는, 그런 책이라고 하겠다.

 

 

- 본문 77쪽에서.

 

도판 중 최악은 이 것. 나는 본문에 실린 이 그림 보고 경악했다. 이 사진에는'인도의 작은 나라들 사이에는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는 설명만이 달려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라. 이 그림이 인도의 전투 장면인가? 아니다, 중세 유럽의 전투 장면이다. 내가 노란 동그라미를 친 오른쪽 파란 망토를 보라. 프랑스 왕가의 상징인 백합이 있다. 왼쪽 위 상대 진영을 표시하는 깃발을 보라. 빨간 바탕에 금빛 사자가 있다. 이는 사자왕 리차드 등 영국의 상징이다. 즉, 이 사진은 프랑스와 영국의 전투 장면을 그린 그림이란 말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 그림이 여기 <대당서역기>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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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5-02-14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도판은 정말 어이가 없네요. 검토도 안하고 그냥 냈단건가요?

껌정드레스 2015-02-15 09:2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저거 말고도 이상한 그림이 꽤 있는데 그것들은 제가 확실히 몰라서 리뷰에 언급 안 했어요.
 
현장 서유기 - 중국 역사학자가 파헤친 1400여 년 전 진짜 서유기!
첸원중 지음, 임홍빈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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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무진장 재미있다. 실제 역사상 현장의 취경 여행이 서유기에 어떻게 나타났는지가 궁금해서 찾아 읽었는데, 예상 외로 7세기 당시 역사적 상황과 불교 문화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었다.

 

이 책은 중국의 불교학자 첸원중이 중국 CCTV 백가강단에서 소설 <서유기>의 바탕이 되는 현장법사의 여행에 대해 강연한 내용을 묶었다. 그동안  백가강단 강연록을 묶은 책으로는 김영사와 에버리치홀딩스에서 나온 이중텐 강의록을 4권 읽었는데, 이중텐 책은 좀 피곤한 느낌이었다. 주관적 인물평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순수히 지적 갈증을 해결해주는 정보 위주여서 좋다. 아주 깊고 전문적 내용이 아니어서 나같은 초보 독자에게 딱 알맞다. <서유기>를 재미있게 읽은 분들께 강추!

 

<서유기>에서 손오공에 밀려 주연인듯 주연아닌 존재로 등장하는 삼장법사는 역사상 실존 인물이다. 소설에서는 띨띨하고 소심한 겁보로 묘사되지만 사실 현장법사(600-664)는 당대의 불교학자, 여행가, 번역가로 불교 뿐만 아니라 인도와 중앙아시아 역사 기록을 남기고 문화 교류에 큰 기여를 했다. 시종 없이 혼자 걸어 인도에 불경을 구하러 가서 닐란다 사원에서 유학하고 유명 종교계 인물들과 경전 토론을 벌였다. 이 과정이 19년이다. 인도 왕들의 배려로 갈 때보다 비교적 편하게 당에 돌아온다. 다시 19년간 1335권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의 불경을 번역하는 작업에 힘쓴다. 그의 취경 과정은 당태종의 명령으로 <대당서역기>에 기록되었는데 자그마치 140여개국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이 책은 사라진 중앙 아시아 국가의 문물과 당시 기록이 없던 인도에 대해 기록한 거의 유일한 자료다. 그러나 <대당서역기>는 공적인 보고서성격이기에 저자는 현장의 제자가 쓴 <대자은사 삼장법사전>에서 개인적 에피소드를 꺼내어 함께 강의한다. 솔직히, 사적인 부분이 더 재미있기는 하다. 이 부분이 <서유기>의 소설적 상상력을 더 자극했음이 분명하다. 현장이 당나라에서 왔다는 말을 듣자마자 인도의 왕들이 '진왕파진악'이란 음악 이야기를 꺼내는 장면을 읽으니 동남아 여행가서 한국인이라고 하면 한류 가수들 이야기 꺼내거나 강남스타일 말춤 추는 장면이 떠올라 저절로 웃게된다. 이렇게, 책은 7세기가 배경이지만 전혀 따분하지 않고 생생하게 다가온다. 나는 본문 읽어나가다가 다시 앞 부분의 지도를 들춰보며 이 책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서유기 소설에 계속 등장하는 요괴와의 대결이 궁금했다. 소설이야 어차피 허구이니, 실재 현장의 여행에 그 단서가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취경길의 험난한 자연 환경을 요괴로 표현한 것이라는 것은 내 아둔한 머리로도 짐작 가능했다. 그러나, 두둥! 이 책을 읽다보니 놀라운 사실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당시 인도에는 각 종교 분파의 명예를 내건 학승끼리의 논쟁, 토론 대회가 있었다는 것!

 

인도에서의 경전 토론은 유난히 격렬한 것이어서 실패자는 경우에 따라서 소리 없이 종적을 감추기도 하고, 어떤 이는 자기 혀를 끊어버리는가 하면, 심지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자살하는 행위로 패배를 마무리하기도 합니다. 좀 가볍다 싶으면, 반드시 문파를 승자 쪽으로 옮기거나 자신이 믿던 종파를 바꿔야 합니다. 그리고 기꺼운 마음으로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승자를 스승으로 모셔야 합니다. 승자는 하룻밤 새 유명해지고, 단판 싸움에서 유명세를 타면 수많은 사람이 주목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신도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고, 국왕의 존경과 추앙을 받으며 국왕에게서 엄청난 기부를 받아 일대종사가 됩니다.

- 본문 428쪽에서 인용

 

아, 이것은 무협영화에서 보던 각 문파의 쿵푸배틀이 아닌가? 앞서 읽은 <서유기 즐거운 여행>이란 책에서 요괴와의 대결은 인도 내에서는 불교 내 이단 종파와의 논쟁, 중국 내에서는 도교 대 불교의 권력 다툼을 의미한다는 내용을 얼핏 읽고 지나쳤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실제로 요괴와의 대결이 이단 종파와의 논쟁 배틀을 의미한다는 그 책의 설명을 다시 찾아 읽게 된다.

 

이 책에는 이렇듯 소설 속 허구의 내용과 실제 역사 사실을 오가는 내용이 많이 실려 있다. 서유기의 사오정은 해골 목걸이를 걸고 다닌다. 그런데 인도엔 해골을 목걸이로 삼는 '누만외도'라는 이단 종파가 있었단다. (본문 448쪽) 아무리 자신들을 이단이라고 해도 마지막에 가서는 자신들을 비난하는 너희 역시 해골로 바뀐다는 의미로, 자기네들은 세상 모든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본다는 표시로 해골을 걸고 다닌다고. 또 서유기의 마지막 81번째 시련, 불경을 구하고 귀국하다가 통천하에 빠진 일화는 실제 현장법사가 귀국길에 인더스강을 건너다가 빠져서 불경을 잃어버린 일화를 반영했다. 여인국도 실제 있어던 주변 모계 사회 국가 이야기를 반영한다고 한다. 이런 내용을 현장에서 강의 듣는 듯, 구어체 문장으로 술술 읽어가는 재미가 만만찮다. 각 강연 회차 끝에 다음 회차 내용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는 문장을 남겨두는 방법도 눈여겨 볼 만하다. 

  

번역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실크로드 가는 길에 있는 '고창국'은 '코초'라고 되었는데, 인도의 왕 이름은 '계일왕'이라고 적었다. 나야 뭐 우리식 한자음 표기거나 중국 발음 표기거나 현지음 표기거나 큰 상관없는데, 한 책 안에 일관된 원칙이 없어 보이는 것은 좀 그렇다. 불경 관련 부분 번역도 내가 모르는 분야이니 할 말이 없다. 어차피 번역자가 그 텍스트에 담긴 모든 분야의 전문가일 수는 없으니 이런 건 출판사 편집팀에서 따로 외부 전문가에게 의뢰해서 책의 완성도를 높여야한다고 생각한다. 계속 서유기 소설과 관련 도서 읽다보니 번역자에게 비난이 과중하게 쏠려 있는 것 같아 내 생각을 조금 적어 본다.

 

나는 오히려 역자 후기에서 본문에 없는 부분에 대한 명쾌한 해설을 접했기에 이 번역자분께 신뢰가 간다. 특히 마지막 역자 후기 덕분에 왜 삼장법사 캐릭터가 역사상 실존했던 현장법사와 달리 띨띨하게 표현되었는지에 대한 오래묵은 궁금증이 풀렸다. 그것은 오승은이 세덕당본 서유기를 지을 당시 명나라 말기 정치사회 상황과 관련 있다고 한다. 불교가 고통받는 민중에게 아무 위안을 주지 못한 채, 가정제 신종의 총애를 받는 도교 세력과 종교적 세력 다툼이나 벌이고 있었기에 삼장법사에게 부정적 이미지가 씌워졌다고.

 

여하튼, 참 재미있는 책이다. 내용은 물론, 강연과 대중적 글쓰기 면에서도 많이 배웠다. 이어서 현장법사가 쓴 <대당서유기>원전과 역자가 소개한 <서유기의 발자취를 따라서>와 <동아시아 구법승과 인도의 불교유적>을 읽어 봐야겠다.

 

그외 궁금증 :

1 명말 혼란기에 주의해서 본다면, 소설 요괴와의 대결은 지방 토호 세력이 된다. 그런데 나는 요괴 대결을 토론 배틀로 보는 것이 더 재미있다!

2 소설 속에서 삼장법사 일행을 유혹하는 여자 요괴들은 그럼 뭘까? 일행과 결혼해서 일행을 정착시키려 하고 있는데, 이들 여자 요괴들은 여행과 귀국길을 막고 자기네 나라에 머물러 주십사 감언이설로 설득하는 각 나라의 왕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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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 2 대산세계문학총서 22
오승은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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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에 와서야 삼장법사의 취경 여행이 시작된다. 몰래 국경을 넘어가던 현장의 역사적 사실과 달리, 소설에서 삼장법사는 당태종의 의동생이 되어 전폭적 지지와 협찬을 받아 떠난다. 그 이유는 11회에 드러난 당태종의 저승 유람에 나와 있다.

 

출발하자마자 삼장법사는 호랑이 굴에 빠진다. 이는 아마 시종을 다 잃게 만드는 장치겠지? 이어 손오공을 구해주고 제자로 삼아 함께 여행한다. 백마로 변신한 용왕의 아들인 용이 삼장을 모시는 데 합류한다. 16회는 관음선원에서 보물인 금란가사를 도둑맞는 이야기다. 이 일화는 남에게 헛된 자랑을 삼가라는 의미가 있는 듯. 어떻게 보면 서유기가 마음 수양 여정을 우의적으로 돌려 말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드디어 고로장 사위인 저팔계 등장이요! 그 역시 제자가 되어 취경 여행에 합류하게 된다. 제 1권이 손오공 위주라면 이번 제 2권은 저팔계 위주이다. 팔계는 오훈삼염(五葷三厭 즉 마늘 부추 파 달래 생강, 기러기 뱀장어 개)을 먹지 않는 계율을 지켜서 팔계이다. 물론 성은 돼지 저(猪). 식욕과 성욕이 강하며 쇠갈퀴 하나로 척척 농삿일을 해 내는 저팔계는 중국 농민의 전형적 성격을 반영한 것 같다.

 

그런데 재미있다. 죽었다가 당태종의 여동생 옥영궁주의 몸으로 환생한 여자가 궁궐을 보고 "황달 걸린 병자들이나 사는 싯누런 집구석"이라고 말하는 대목(57쪽)이나 "늙은 호랑이가 동헌에 자리 잡고 앉았으며, 푸른 이리 떼가 낭청에서 주부 노릇을 한다. 사자와 코끼리는 저마다 왕이라 일컫고, 호랑이와 표범은 저마다 임금 노릇을 하고 있느니"라고 읊는 대목(324쪽)을 보면 체제 비판적인 면도 꽤 있어 보인다. 이는 아마 여러 서유기가 집대성되어 오승은에 의해 세덕당본으로 정착되는 1592년, 명말의 역사적 상황과 관련이 있는 것이리라.

 

나는 서유기와 도교, 연금술 관련 부분에 관심이 있었는데, 이 책 296쪽에서 실마리를 조금 잡은듯하다. "영아(嬰兒)와 차녀(䒲女)로 음양을 배합하니, 납과 수은이 서로 어울려 일월을 분간했다." 라는 대목이 있는데, 여기서 영아는 갓난아기가 아니라 선약을 구워 만들 때 쓰는 납을 가리킨다고 한다. 유레카! 이렇게 본문 주석에 도교, 불교 관련 지식들이 나와 있어서 이들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앞길에는 스스로 도와줄 신명(神 있으리니, 고되고 어렵다고하여 경을 가지러 가는 길을 원망하지 마라.

- 본문 109쪽에서 인용

 

위는 삼장 법사에게 태백금성이 남긴 쪽지에 적힌 말이다. 이 부분 읽고 마음이 좀 말랑말랑해졌다. 서유기는 경을 가지러 가는 구도의 길이다. 서유기를 읽고 메모해가는 나의 길 역시 나의 경, 나의 글을 가지러 가는 구도의 길이다. 아, 그렇다면 지금 날 도와주고 응원해주는 글벗들은 다 나의 태백금성님들이시구나. 이런,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다 못해 분홍분홍해지는 걸. 후후.

 

1권에서는 여우 요정, 이런 식으로 나와 좀 그랬는데 2권부터는 '요괴'로 번역되어 나온다.

 

그외 궁금증:

1 서유기랑 상관 없지만, 영아가 납을 의미하는 연금술적 상징어라면, 에밀레종 전설처럼 아기를 희생시켜 금속광물 관련 작업을 하는 전세계의 설화 역시 제작과정을 설명하는 한 상징이었을뿐인가?

2 손오공이 변신했다가 본색을 드러내는 장면에서 '한 손으로 얼굴을 쓰윽 훑어내려 본색을 드러냈다(293쪽)"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이거 변검 등 중국 연극의 영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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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5-02-01 0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서유기 읽고싶어져요. 예전에 읽은 기억으론 (빨간양장 금박 글씨 전집...같은..) 요괴들이 보통 사람으로 변신해서 친해지다 탄로나고 .. 그런 장면들을 재밌어 했어요.ㅡㅡ

껌정드레스 2015-02-01 13:09   좋아요 0 | URL
그 요괴들, 알고보면 원래 귀여운 애들이 많더라고요. 관음보살댁 연못의 애완 금붕어 같은,,,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