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서유기 - 중국 역사학자가 파헤친 1400여 년 전 진짜 서유기!
첸원중 지음, 임홍빈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아! 무진장 재미있다. 실제 역사상 현장의 취경 여행이 서유기에 어떻게 나타났는지가 궁금해서 찾아 읽었는데, 예상 외로 7세기 당시 역사적 상황과 불교 문화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었다.

 

이 책은 중국의 불교학자 첸원중이 중국 CCTV 백가강단에서 소설 <서유기>의 바탕이 되는 현장법사의 여행에 대해 강연한 내용을 묶었다. 그동안  백가강단 강연록을 묶은 책으로는 김영사와 에버리치홀딩스에서 나온 이중텐 강의록을 4권 읽었는데, 이중텐 책은 좀 피곤한 느낌이었다. 주관적 인물평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순수히 지적 갈증을 해결해주는 정보 위주여서 좋다. 아주 깊고 전문적 내용이 아니어서 나같은 초보 독자에게 딱 알맞다. <서유기>를 재미있게 읽은 분들께 강추!

 

<서유기>에서 손오공에 밀려 주연인듯 주연아닌 존재로 등장하는 삼장법사는 역사상 실존 인물이다. 소설에서는 띨띨하고 소심한 겁보로 묘사되지만 사실 현장법사(600-664)는 당대의 불교학자, 여행가, 번역가로 불교 뿐만 아니라 인도와 중앙아시아 역사 기록을 남기고 문화 교류에 큰 기여를 했다. 시종 없이 혼자 걸어 인도에 불경을 구하러 가서 닐란다 사원에서 유학하고 유명 종교계 인물들과 경전 토론을 벌였다. 이 과정이 19년이다. 인도 왕들의 배려로 갈 때보다 비교적 편하게 당에 돌아온다. 다시 19년간 1335권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의 불경을 번역하는 작업에 힘쓴다. 그의 취경 과정은 당태종의 명령으로 <대당서역기>에 기록되었는데 자그마치 140여개국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이 책은 사라진 중앙 아시아 국가의 문물과 당시 기록이 없던 인도에 대해 기록한 거의 유일한 자료다. 그러나 <대당서역기>는 공적인 보고서성격이기에 저자는 현장의 제자가 쓴 <대자은사 삼장법사전>에서 개인적 에피소드를 꺼내어 함께 강의한다. 솔직히, 사적인 부분이 더 재미있기는 하다. 이 부분이 <서유기>의 소설적 상상력을 더 자극했음이 분명하다. 현장이 당나라에서 왔다는 말을 듣자마자 인도의 왕들이 '진왕파진악'이란 음악 이야기를 꺼내는 장면을 읽으니 동남아 여행가서 한국인이라고 하면 한류 가수들 이야기 꺼내거나 강남스타일 말춤 추는 장면이 떠올라 저절로 웃게된다. 이렇게, 책은 7세기가 배경이지만 전혀 따분하지 않고 생생하게 다가온다. 나는 본문 읽어나가다가 다시 앞 부분의 지도를 들춰보며 이 책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서유기 소설에 계속 등장하는 요괴와의 대결이 궁금했다. 소설이야 어차피 허구이니, 실재 현장의 여행에 그 단서가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취경길의 험난한 자연 환경을 요괴로 표현한 것이라는 것은 내 아둔한 머리로도 짐작 가능했다. 그러나, 두둥! 이 책을 읽다보니 놀라운 사실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당시 인도에는 각 종교 분파의 명예를 내건 학승끼리의 논쟁, 토론 대회가 있었다는 것!

 

인도에서의 경전 토론은 유난히 격렬한 것이어서 실패자는 경우에 따라서 소리 없이 종적을 감추기도 하고, 어떤 이는 자기 혀를 끊어버리는가 하면, 심지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자살하는 행위로 패배를 마무리하기도 합니다. 좀 가볍다 싶으면, 반드시 문파를 승자 쪽으로 옮기거나 자신이 믿던 종파를 바꿔야 합니다. 그리고 기꺼운 마음으로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승자를 스승으로 모셔야 합니다. 승자는 하룻밤 새 유명해지고, 단판 싸움에서 유명세를 타면 수많은 사람이 주목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신도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고, 국왕의 존경과 추앙을 받으며 국왕에게서 엄청난 기부를 받아 일대종사가 됩니다.

- 본문 428쪽에서 인용

 

아, 이것은 무협영화에서 보던 각 문파의 쿵푸배틀이 아닌가? 앞서 읽은 <서유기 즐거운 여행>이란 책에서 요괴와의 대결은 인도 내에서는 불교 내 이단 종파와의 논쟁, 중국 내에서는 도교 대 불교의 권력 다툼을 의미한다는 내용을 얼핏 읽고 지나쳤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실제로 요괴와의 대결이 이단 종파와의 논쟁 배틀을 의미한다는 그 책의 설명을 다시 찾아 읽게 된다.

 

이 책에는 이렇듯 소설 속 허구의 내용과 실제 역사 사실을 오가는 내용이 많이 실려 있다. 서유기의 사오정은 해골 목걸이를 걸고 다닌다. 그런데 인도엔 해골을 목걸이로 삼는 '누만외도'라는 이단 종파가 있었단다. (본문 448쪽) 아무리 자신들을 이단이라고 해도 마지막에 가서는 자신들을 비난하는 너희 역시 해골로 바뀐다는 의미로, 자기네들은 세상 모든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본다는 표시로 해골을 걸고 다닌다고. 또 서유기의 마지막 81번째 시련, 불경을 구하고 귀국하다가 통천하에 빠진 일화는 실제 현장법사가 귀국길에 인더스강을 건너다가 빠져서 불경을 잃어버린 일화를 반영했다. 여인국도 실제 있어던 주변 모계 사회 국가 이야기를 반영한다고 한다. 이런 내용을 현장에서 강의 듣는 듯, 구어체 문장으로 술술 읽어가는 재미가 만만찮다. 각 강연 회차 끝에 다음 회차 내용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는 문장을 남겨두는 방법도 눈여겨 볼 만하다. 

  

번역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실크로드 가는 길에 있는 '고창국'은 '코초'라고 되었는데, 인도의 왕 이름은 '계일왕'이라고 적었다. 나야 뭐 우리식 한자음 표기거나 중국 발음 표기거나 현지음 표기거나 큰 상관없는데, 한 책 안에 일관된 원칙이 없어 보이는 것은 좀 그렇다. 불경 관련 부분 번역도 내가 모르는 분야이니 할 말이 없다. 어차피 번역자가 그 텍스트에 담긴 모든 분야의 전문가일 수는 없으니 이런 건 출판사 편집팀에서 따로 외부 전문가에게 의뢰해서 책의 완성도를 높여야한다고 생각한다. 계속 서유기 소설과 관련 도서 읽다보니 번역자에게 비난이 과중하게 쏠려 있는 것 같아 내 생각을 조금 적어 본다.

 

나는 오히려 역자 후기에서 본문에 없는 부분에 대한 명쾌한 해설을 접했기에 이 번역자분께 신뢰가 간다. 특히 마지막 역자 후기 덕분에 왜 삼장법사 캐릭터가 역사상 실존했던 현장법사와 달리 띨띨하게 표현되었는지에 대한 오래묵은 궁금증이 풀렸다. 그것은 오승은이 세덕당본 서유기를 지을 당시 명나라 말기 정치사회 상황과 관련 있다고 한다. 불교가 고통받는 민중에게 아무 위안을 주지 못한 채, 가정제 신종의 총애를 받는 도교 세력과 종교적 세력 다툼이나 벌이고 있었기에 삼장법사에게 부정적 이미지가 씌워졌다고.

 

여하튼, 참 재미있는 책이다. 내용은 물론, 강연과 대중적 글쓰기 면에서도 많이 배웠다. 이어서 현장법사가 쓴 <대당서유기>원전과 역자가 소개한 <서유기의 발자취를 따라서>와 <동아시아 구법승과 인도의 불교유적>을 읽어 봐야겠다.

 

그외 궁금증 :

1 명말 혼란기에 주의해서 본다면, 소설 요괴와의 대결은 지방 토호 세력이 된다. 그런데 나는 요괴 대결을 토론 배틀로 보는 것이 더 재미있다!

2 소설 속에서 삼장법사 일행을 유혹하는 여자 요괴들은 그럼 뭘까? 일행과 결혼해서 일행을 정착시키려 하고 있는데, 이들 여자 요괴들은 여행과 귀국길을 막고 자기네 나라에 머물러 주십사 감언이설로 설득하는 각 나라의 왕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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