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 기자의 대당서역기
리처드 번스타인 지음, 정동현 옮김 / 꿈꾸는돌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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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서유기> 완역본 전집을 읽으면서, 서유기 관련한 책들은 검색해서 나오면 다 읽어보고 있다. 그동안 역사서, 해설서나 기행서 등등 여러 서적들을 만나보았건만 <서유기>의 원전이라 할 수 있는 <대당서역기>의 제목을 달고 있는 이 기행서적만큼 읽으면서 기이한 느낌을 받은 책은 다시 없을 것 같다.

 

진짜다. 이 책 기이하다. 정체, 즉 목적이 뭔지 모르겠다. <대당서역기>를 설명하거나 답사하는 책도 아니고, 자신의 여정 견문 감상에 충실한 기행문도 아니다. 지금도 가기 힘든 지역인지라, 확실한 여행 정보가 있기라도 한다면 좀 모를까? 그러나 그런 것도 없다. 여행 전후 필자의 변화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분량은 자그마치 520쪽이 넘고, 글씨는 빡빡하다. 절판이어서 먼 지역의 도서관까지 가서 구해 읽었는데(그것도 서고에 있어서 줄 서서 사서분께 신청해서) 내 노력과 시간을 들인만큼 뭐 남거나 건진 게 없다.

 

책 상세 설명 페이지에 의하면 "뉴욕타임스 기자인 저자와 당나라 승려 현장의 시간을 초월한 긴 모험. 중국 동부의 서안을 출발. 중국 대륙을 가로질러,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파키스탄을 거쳐 인도에 도착, 다시 중국으로 되돌아오는 긴 여행은 당나라 승려 현장이 진리를 찾아 인도록 갔다가 되돌아온 그 길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었다." 라는데, 그게 다다. 걍 그 길을 따라 가고, 중국사 전공인 자신이 아는 것(글쓴이는 그 대단하신 패어뱅크 교수의 제자임)과 현장에 대한 것, 자신의 사적 소회를 좀 풀어 놓는다. 자기 이야기도 하다 만다. 오래 저널리스트 생활을 해서 인지, 글 안에 자신을 숨기는 문체에 익숙한 것 같다. '1. 팽생 몇 번의 봄이 지나가는가''7.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병' 이런 제목은 멋지게 달았지만 별 내용 없다. 낚시 제목이다.  마지막 장 제목은  '21. 여행 끝에 도달한 진리'이지만, 난 글쓴이가 뭔 진리에 도달했는지 모르겠다. 걍 50넘게 방황하던 것을 정리하고 한 여성과 결혼해서 정착하기로 했다는 것? 일상이 소중하다는 것? 그게 다인가? 그걸 꼭 현장의 취경 여행길을 따라 개고생하며 다녀 봐야 도달하게 되나?

 

집은 필수이다. 집은 좋다. 집은 끔찍하다. 집에 대한 두려움이 50대가 되어서도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은 이유를 설명해준다. 하지만 미혼에 아이도 없는 남자는 반쪽짜리 남자라는 탈무드의 질책이 마음 한구석에 걸리기는 한다.
이제 여행의 최종 도착지가 보이는 감숙성 끝자락을 달리는 차 안에서, 나는 두려움의 정체를 깨달았다. 집은 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성 안에서 사람은 나이를 먹고 늙어 죽는다. 집에서 시간은 흐르고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은 늙어간다. 하지만 여행 길에서 시간은 멈춘다. 아니 멈추고 있는 것 같다. 너무 바쁘게 움직이느라 시간의 흐르는 것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처는 이것을 이해했다. 부처가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는 삶의 실체를 알고 나자, 아내와 아이들을 버리고 집을 떠나 방랑의 세월을 보낸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리고 오늘날 남루하고 약간 미친 듯한 힌두 성인들처럼 방랑의 삶을 시작했다. 집은 궁극적인 집착이고 깨달음을 얻는 것은 그 집착을 떨쳐버리는 것이다. 부처가 죽고 제자들이 첫 불교 집회를 열기 위해 독수리 산봉우리에 모인 후, 지도자 카시야파는 부처의 사촌이자 부처가 가장 아낀 애제자 아난다가 그들 사이에 좌정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난다는 다음날 아침 되돌아와 세상과의 모든 인연을 끊겠다고 선언하고 나서야 문을 통과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집은 원시의 끈이다. 나는 이 여행, 이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 이젠 너무 늙어서 앞으로 여행을 계속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큰 모험을 하고 싶었다. 가보지 못한 가장 먼 미지의 땅으로 떠나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 중국 맞은편의 안개 자욱한 푸른 산맥에서 도로를 바라보면서, 미지의 모험은 이미 지나갔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정시에 서안으로 되돌아가 직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 본문 495쪽에서 인용 

 

인용해보자면, 위와 같다. 뭔가 느낌이 오는가? 나만 이상한가? 그럴 수도 있겠다. 아마 내가 이런 스타일의 먹물 남자들에게 편견을 갖고 있기에 이 책의 내용이 시시했는지도 모르겠다. 페르귄트이건 오뒤세우스이건 성진이건 이 글의 필자인건, 세상을 맘껏 떠돌며 즐기다가 늙고 힘빠진다음에야 이런 말을 하며 돌아오는 남자들은 내겐 다 시시해 보인다. 똥인지 된장인지 손가락으로 찔러 먹어봐야만 아나?

 

그나마 흥미로왔던 것은 저자가 여행할 당시의 국제 정세가 잘 드러나 있다는 것. 중국, 파키스탄 등 국경을 넘나들며 각각 자국의 정치적 입장을 체화한 사람들의 모습을 덤덤히 묘사하고 있는 점은 저널리스트인 저자의 장점을 보여준다. (파키스탄이 최초로 핵무기 실험을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니 저자는 1998년에 여행한 것 같다. ) 흉노족에게 황제는 '성 외교'로 목숨과 나라를 건지면서 중국 처녀를 흉노족의 통치자에게 바쳤다(본문 91쪽)라는 식의 가차없는 표현은 신선했다. 화번공주, 혼인정책, 기미정책 등으로 표현하는 동양권 작가의 표현만을 보다 보니, 속이 후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렇게 한편으로 보면, 이 책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문화권의 역사를 서구 지식인이 좀 색다르게 표현하는 것을 읽는 재미가 있긴하다.

 

하지만 엘긴 등 서구 유물 약탈자들을 옹호하는 듯한 서술이나 돈황 벽화를 보고 사실적인 공간 논리가 부재(509쪽)하다고 평하는 등 서구 제국주의 지식인의 무식한 시선도 종종 보인다. 그리고 실크 로드를 통한 불교 미술사를 말하면서 신라와 석굴암은 빼고(아마 몰라서 그런 것 같다) 중국에서 바로 일본으로 넘어간다. 최고 활판인쇄본을 말하면서도 무구정광대다라니경도 모른다. 기타 등등 내가 보기에는 반편이 지식인이 쓴 책 같다.

 

그리고, 책의 내용만큼이나 번역도 만만찮게 시시하다. 역자는 걍 영어를 그대로 한글로 옮겨 놓으셨다. 그래서 '반초'는 '반차오'이고 '구마라습(혹은 구마라십, 구마라집)'은 '구마라즙'이다. 심지어 진시황제는 '첫 황제'이고 '대안탑'은 '큰 야생 기러기 탑'이다. 내가 알기로, 번역하시는 분들은 초벌 번역 후에 관련서적 여러 권을 대조하며 용어를 가다듬고 학계의 일반적 용어로 바꿔 쓴다고 들었는데, 이 분은 안 그러셨나보다. 그리고 편집실에서는 초고 들어온 것을 그대로 검토 없이 책으로 내었나보다.

 

이래저래, 여러 면으로 이 책에 내가 들인 에너지와 시간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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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 5 - 대산세계문학총서 025 대산세계문학총서 25
오승은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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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5권, 삼장법사 취경길의 절반을 따라왔다. 5권에도 요약본에 늘 등장하는 유명한 사건들이 이어진다. 홍해아, 타룡, 차지국의 사악한 도사들, 통천하의 금붕어 등 막강한 요괴들이 등장한다. 얼마나 막강한지 손오공의 힘으로는 무찌를 수 없어 관세음보살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역시나, 원양이 한 방울도 새 나가지 않아 살코기가 맛있는 삼장법사는 요괴들에게 납치되곤 한다. 그런데 늘 목숨을 건진다. 요괴들은 삼장법사를 납치하는 즉시 요리해 먹지 않는다.  늘 손님이나 부모 친지 어르신을 초대하고 도착하기까지 기다린다. 결과적으로 요괴들은 스스로 손오공 등에게 삼장을 구할 시간을 벌어 주는 셈이다.  헐, 서부영화의 악당은 결정적 순간에 말이 많아 화를 자초하고, <서유기>의 요괴들은 너무 착해서 삼장을 못 먹는다. 아, 이 요괴들은 왜 이리 착하고 효성이 지극한가! 게다가 지네들끼리 위계 질서는 왜 이리 잘 지키는가! 요괴월드에도 도덕과 법질서가 있다니,,, <서유기>의 세계는 결국 인간세계의 여러 면을 보여주는 거 아닌가?

 

홍해아가 <화엄경>의 선재동자가 되거나, 통천하 강물의 요괴가 알고보니 관음보살의 애완 금붕어였다거나,,, 이런 식으로 요괴와 사람이 선악의 경계를 넘나들며 변화하는 이야기 구조가 인상깊다. 이렇게 누구나 개심하고 거듭나고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 <서유기>의 세계다. 하지만 어떤 요괴는 독경 소리를 듣고 깨우치기는 커녕, 더 고약한 요괴가 되기도 한다. 이것도 <서유기>의 세계다,,, 결국 다 인간 세계이다. 내가 살고 있는. 그렇다면 <서유기>를 읽고 리뷰를 쓰고 있는 나는 사람인가 요괴인가. (그래요, 이 리뷰 액체빵 마시고 쓰고 있어요! ) 나는 내 목표에 도달할만큼 충분히 변화하는 과정에 와 있는 존재인가. 내 마음 속에 있는 미친 원숭이를 나는 어느 정도 길들였는가,,,, 서유기에서 손오공을 '심원(心猿)'이라 칭하는 이유를 조금 알 것 같다.

 

그밖에 소소한 재미, 발견, 궁금증은 이하.

 

1 90쪽에 달린 역자 주에 따르면, 후스는 화엄경의 선재동자가 110개 성지를 방문하는 여행 이야기가 서유기에 영항을 주었다고 보고 있다고.

 

2 본문 곳곳에서 손오공은 말장난을 즐긴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동음이의어를 사용한 언어유희를 한다. 이를 중국어표현으로는 해음쌍관어(諧音雙關語)라고 하나보다. 뿐만 아니라 변소를 '오곡이 윤회하는 곳'이라고 표현하는 등 서유기에는 유머가 넘친다. 제대로 된 원전 번역서로 읽지 않으면 서유기를 읽으면서도 이 맛을 못 볼 것같다.

 

3 탄탄대로(坦坦大路)는 황제가 사는 도성 앞에 뚫린 넓은 길이란 뜻의 한자어였다.

 

 

 

 

5 통천하의 요괴에게 동남동녀를 제물로 바치는 이야기에서, 중국은 어느 시대까지 황하 등 강에 인신제물을 바쳤는지 궁금.

 

6 원래 통천하(通天河) 강물의 주인이었던 자라가 일행을 등에 태워 강을 건네준다. 그리고 서천에 가거든 여래님께 언제 짐승의 탈을 벗고 인간이 될 수 있는지 여쭤 달라고 부탁한다. 삼장은 흔쾌히 약속한다. 앗싸! 복선 찾았다. 아, 이래서 나중에 돌아가는 길에 삼장 일행이 통천하에 빠지게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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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구법승과 인도의 불교 유적 - 인도로 떠난 순례자들의 발자취를 따라
강희정 외 지음 / 사회평론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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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를 읽다보니 현장의 <대당서역기>에 관심이 갔다. 자연스레 현장을 비롯한, 목숨을 걸고 인도로 불경을 가지러 간 구법승들이 궁금해졌다. 각각의 기록을 읽으면 되지만, 이 분야 지식이 없는지라 그 기록이 갖는 역사적 의의나 어느 정도 사실성이 있는지의 여부 등을 알지 못하니 그냥 <대당서역기>만 읽어도 수박 겉핧기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 책을 찾아 읽었다.

 

우선 정리하자면, 이 책은 현장, 혜초 등 구법승들이 남긴 기록과 그들에 대한 기록, 기록에 언급한 인도의 유물과 유적을 답사, 연구한 방대한 기록이다. 8인의 전문가들께서 동아시아 구법승들이 갖는 역사적 의의를 계속 중간 정리를 해 주고 계셔서 두꺼운 분량이지만 그리 힘들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이 분야에 관심 있다면 구입, 서재에 비치하여 두고두고 들춰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 구법승들 관련 문헌 정리, 도표, 지도 등등 이 책을 딛고 더 뻗어나갈 자료가 풍부하다. 문헌 자료 뿐만 아니라 보드가야, 날란다 등 현지 유적 답사 자료도 알차다.

 

하지만 나는 제대로 이 책을 읽지 못했다. 솔직히, 한글을 깨쳤으니 글자만 읽은 셈. 역사 배경은 좀 알겠는데 불교 철학 나오면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하니까 말이다. 예를 들어, '<자은전>이 최종적으로 성립되는 688년까지도 여전히 유가론학파와 유식학파의 분파의식은 지속되었으며, 여기에 자은학파와 서명학파의 갈등은 점점 커져 가고 있었다 (본문 58쪽에서 인용)'는 서술을 접하면 유가론과 유식학파의 불교철학적 입장이 각각 뭔지 전혀 배경지식이 없는 나는 그저 글자의 음만 읽게 된다. 그래서 내가 관심있는 현장 관련 부분만 이 리뷰에 메모해 두겠다.

 

3세기부터 11세기말까지  동아시아 지역에서는170여명의 구법승들이 인도로 향한다. 이름이 기록된 사람만 이 정도이다. 학자들은 이들을 700여명으로 추정한다. 그럼 여기에서 궁금해진다. 동아시아 구법승이란 어떤 존재인가? 그들은 왜 떠나야만 했던가?  본문 설명에는 이렇다. 

 

동아시아 불교란 한역 경전을 매개로 하는 한자 문화권의 불교를 가리킨다. 즉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래된 경전이 한역되고 이것이 한자문화권인 한국, 일본, 베트남 등지로 전해짐으로써 동아시아 불교가 성립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역'은 단순히 번역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도와 중국의 자연환경과 역사, 문화적 배경 및 정치, 사회적 제 조건의 차이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인도 불교의 중국적 변용은 필연적이다. 서력 기원을 전후하여 인도 불교는 이미 원시불교와 부파불교를 지나 대승불교 시대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인도 불교가 순차적으로 중국에 전해지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교란되고 때로는 역전된 채 중국에 전해지기도 하였다. 이 역시 위진남북조의 정치, 사회적 분열상과 겹쳐지면서, 중국 불교 나아가 동아시아 불교는 매우 복잡다단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이러한 동아시아 불교계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것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목숨을 걸고 서역으로의 여행을 시도한 승려들이 바로 구법승이다.

- 본문 43쪽에서 인용

 

그랬구나. 단순하게 중앙아시아 실크로드 국가의 언어로 중역된 불경의 원전을 구해 제대로 공부하여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종교적 열망만이 아니었구나. 당시 국제정치적 상황도 큰 변수였구나. 또 새로운 이야기도 읽었다. 현장의 <대당서역기>나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등 이들 구법승들이 취경길에 남긴 기록과 행적, 그들이 가져온 불경과 불교 미술품은 불교사는 물론 동서교류사 연구에 큰 역할을 하고 있긴 하지만 일방적으로 인도의 불경과 미술품이 중국, 우리나라, 일본에 영향을 주기만 한 것은 아니다. 문화란 상호 교류되는지라, 이들 구법승이 호신불로 가져간 불교 미술품이 현지 인도의 불교 예술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다.

 

이 책 전체를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일단은 내가 지금 관심을 갖고 있는 현장 관련 자료의 의의를 객관적으로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현장관련 3대 문헌자료는 <대당서역기> 12권, <속고승전> 중 권4 <현장전>, <자은전>이다. 그런데 최근 647년 무럽 기록된 것으로 보이는 현장전 초고 필사본이 일본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내용이 현장 입적 후 탈고된 기존의 <속고승전> 중 <현장전> 내용과 상당한 부분에서 다르다고 한다. 갈수록 현장을 영웅시하고 업적 미화, 신화화가 이뤄진 과정이 보이는데 이는 현장의 제자 파벌 유가파 법상종 중심으로 중국 불교를 재조직하는 과정을 반영한다고. 그리고 현장의 방대한 불경 번역 사업 이후 중국 불교는 신역불교와 구역 불교의 사상적 갈등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후 양 진영의 사상 투쟁을 극복하는 것이 동앙시아 불교의 과제가 되었다고 하니,,, 여튼 그저 <대당서역기>만 읽고 와~ 대단하다~ 하고 지나갈 일이 아니었다. 현실의 디테일은 이렇게 다르다.

 

그래서, 이 책 내용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독서는 역시 다각도로 접근해서 해야한다"는, 책 전체 주제와 상관없는 독후감을 남기며 이 질 낮은 리뷰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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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게 박물관이 왜 필요했을까 박물관학총서 1
류정아 외 지음, (사)한국박물관학회 엮음 / 민속원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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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의 역사를 간단하게 빨리 볼 수 있는 책이다. 박물관의 정의, 명칭의 유래로부터 시작해서 영국 프랑스 등 서구 근대 박물관의 역사를 거쳐 일본 중국 등 서구 박물관을 도입하려 했던 나라들의 역사를 소개하고 제국주의 시절 약탈한 문화재 반환 문제로 마무리한다. 전체적인 구성이 좋다. 읽다보면 통사식으로 다 연결이 된다. 굳이 내용 요약 소개할 것도 없다. 이런 경우는 목차를 리뷰에 옮겨 놓는 편이 나중에 찾아보기 훨씬 쉬우니, 목차를 옮겨 놓기로 한다.

 

- 목차 -

무엇을 박물관museum이라고 하는가∥최종호
동서양 ‘박물관博物館(museum)’ 명칭의 어원과 용례∥서원주
세계 각 지역에서 박물관 기능을 한 기관들∥박윤옥
수집행위의 인류학적 기원과 상징적 가치∥류정아·김현경
지리상의 발견과 유럽의 수집문화∥이은기
시민혁명과 박물관∥박윤덕
동아시아의 박람회와 박물관∥하세봉
일본의 박람회와 박물관∥권혁희
중국의 박물관과 박물관학∥오일환
제국주의와 식민지 한국의 박물관∥국성하
제국주의와 영국 및 인도의 박물관∥서원주
제국주의 시대의 프랑스 박물관∥신상철
미술품의 위작과 도난∥이연식
도굴 미술품의 불법 여정∥김미형
박물관과 문화재 반환∥이보아

 

관심있었던 부분은 서구 제국주의와 박물관의 관련성이었다. 17세기 서구 근대 박물관의 출발은 절대왕정 시기 수집한 예술품을 대중에게 공개하고 교육적 목적으로 사용하려는 계몽주의적 입장이었다. 그러나 19세기 이래 서구의 박물관은 제국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본국의 박물관 뿐만 아니라 식민지에 설립한 박물관도 그랬다. 영국이 인도에 설립한 박물관은 인도의 문화 유산을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줌으로써 식민지 보호국으로서의 자신들의 선량한 지배 의도를 선전했다. 또, 약탈 문화재를 전시하는 방법에도 제국주의적 의도를 담았다. 다윈의 진화론을 인류 문명 발전 과정에 적용하여 각 문명권의 발전 수준을 비교하여 전시했다. 물론 가장 발전한 단계는 서구 문명이었다. 이렇게 서구 박물관은 계몽주의적 성격과 제국주의적 성격을 동시에 지녔다.

 

반면, 함포외교에 문호를 연 중국과 일본이 경우, 동도서기적 관점으로 서구의 박물관 제도를 도입한다. 정부 주도로 산업 박람회를 개최하고 그 전시물이 바로 박물관으로 옮겨지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에 비서구권 박물관 역사의 특징이 보인다. 그외 지역에서 마을의 공동 유산을 마을 창고에 보관, 전시하는 형태의 박물관 이야기도 흥미롭다.

 

사실, 읽어가면서 너무 쉽고 내가 예상했던 내용들이 나왔다. 서술은 요약 위주여서 건조하다. '세이난 전쟁이후 일본 메이지정부는 박물관,,,,이런 식이다. 세이난 전쟁에 대해 설명은 없다. 각 나라 근대사를 기본적으로 알고 있지 않으면 좀 힘들게 읽힐 수도 있을법하다. 그러나 박물관 나들이를 즐겨하는 분들이라면 한번 읽어볼만한 책이다. 단, 여러 저자가 나눠 쓴 책이라, 질적 편차가 좀 있다는 것은 감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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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 4 대산세계문학총서 24
오승은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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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4권은 요약본 서유기에서 가장 흥미롭게 다뤄지는 중심 사건들이 다 모여있다. 손오공은 황포 요괴에게 납치된 보상국 백화수 공주를 구해내고, 금각대왕 은각대왕과 대결하며, 홍해아를 만난다. 도사에게 살해당하고 왕국을 빼앗긴 오계국 황제 이야기는 대부분 축약본에서 소개하지 않는 이야기인지라,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명말에 세덕당본으로 집대성된 서유기에는 도교 도사에게 미혹당하는 황제를 조롱하고 부패가 만연한 조정 시스템을 풍자하는 내용이 곳곳에 등장한다. 예를 들자면, 오계국 황제의 유령이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정을 하소연하자 삼장법사가 저승에 내려가 염라대왕에게 고소하지 않은 까닭을 묻는 이 대목.

 

"그 도사란 놈은 신통력이 제법 정도가 아니라 워낙 너르고 커서, 천지간에 이승과 저승 할 것 없이 모든 관리들과 절친하게 사귀고 있소. 도성 안의 서낭신이 그놈과 술자리를 같이하고, 바다의 용왕들이 모두 그놈과 일가친척간이요, 동악제천이 그놈과 절친한 벗으로 사귀고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저승의 십대 염라왕조차 그놈의 배다른 형제가 된단 말이오. 사세가 이러니, 짐도 어디다 호소할 데가 없는 거요. "

- 본문 235쪽에서 인용

 

그동안 왜 그렇게 요괴들은 삼장법사를 잡아 먹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지 명확한 설명이 없었는데 이번에 본문 중 금각 은각의 대화에 그 이유가 나왔다.

 

"당나라 화상이란 자는 아래 보통 승려가 아니라, 바로 금선장로가 속세에 내려온 사람으로서, 십세(十世)를 두고 수행한 아주 굉장한 인물이라는데, 도를 닦는 데 전념하느라고 원양(元陽)이 한 방울도 새어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살코기를 한 점 먹기만 해도 수명을 늘이고 불로장생할 수 있다는 걸세. "

- 본문 85쪽에서 인용

 

그런데 '원양'이 뭔지 역주에 설명이 없었다. 뭘까?

 

여튼, '십세를 두고 수행한'이란 위 인용부분에서도 보이듯, 서유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다들 전생의 인연과 죄과가 얽혀있다. 요괴나 신들도 마찬가지다. 황포 요괴가 백화수 공주를 납치해 강제로 부부의 연을 맺은 이유도 알고보니 안타깝다. 황포 요괴는 원래 천상의 별인 규성, 규목랑이었다. 그는 선녀와 사랑에 빠졌다. 선녀는 벌받아 인간계로 떨어져 보상국 공주로 환생했다. 규목랑은 황포 요괴로 변하여 공주를 납치, 못다한 사랑을 이어간다. 하지만 전생의 기억이 지워진 공주는 요괴를 죽이고 부모에게 데려다달라고 손오공 일행에게 부탁한다,,, 이럴 수가. 요괴에게 이런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다니. 이 대목을 읽고, 나는 죽기 전에 총명탕을 한 드럼 마시리라고 다짐했다.

 

또 "손대성이 그것을 그냥 보아넘길 리가 있으랴. 훙포한 야성이 되살아난 그는 철봉을 휘둘러 닥치는 대로 후려갈기면서 동굴 쪽으로 다가섰다. 요괴들은 불쌍하게도 인간의 몸을 얻으려고 애쓴 보람도 없이 이날 이때껏 힘들여 갈고닦은 공과(功果)를 모조리 잃어버린 채 한낱 털 가진 짐승으로 돌아가 허망한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본문 178~179쪽)' 이런 부분도 가슴 아프다. 난 영웅으로 등장하는 손오공보다 손오공에게 맞아 죽는 요괴에게 더 마음이 간다. 이들도 다 나름 노력하며 더 나은 존재가 되고자 노력하며 살아온 존재들이었다니 말이다.

 

'수(水, 저팔계)와 화(火, 손행자)가 서로 도와 저마다 인연이 있으니, 온전히 토모(土母, 사오정)에 의지하여 짝을 이룸이 당연하다. (본문 223쪽)' 여전히 이런 식으로 음양오행이나 도교 관련 서술이 이어진다. 가만보니,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 보다  당시 중국문화를 반영하다보니 자연스레 자꾸 이런 표현이 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참, '아바마마께서는 저 당나라 이세민이 왕위에 올라 스스로 황제라 일컬으며 강산을 통일하고 나서도 만족할 줄 모르고 다시 군사를 일으켜 바다 건너 땅을 정벌하엿던 사실을 상기하옵소서.(본문 316쪽)'라는 오계국 태자의 말을 보면, 바다 건너 땅을 정벌 - 당태종이 나당 동맹을 맺고 고구려를 침공한 사실이 언뜻 보인다. 궁금하다. 이 소설을 즐기던 명말 이후의 일반 중국 민중들은 이 정도만 언급되어도 알아들을 정도로 역사 지식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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