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민주주의가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은 상당 부분 생도맹그 노예들의 투쟁 덕분이다.
- 본문 19쪽에서 인용
서구인 입장에서 서구사 위주로 세계사를 배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티 혁명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서인도 제도에 있던 섬나라 아이티는 독립
이전에는 프랑스의 식민지 생 도맹그였다. 사탕수수와 커피 플랜테이션을 위해 식민지 지배자들은 아프리카인들을 이 섬에 노예로 끌고
왔다. 1791년, 이들 노예들은 봉기한다. 이때 프랑스는 혁명 와중에 있었다. 프랑스 공화파들은 이들과 동맹을 맺는다. 혁명 이념의 평등한
적용이라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진실은 식민지 반란을 당당 무력 진압할 형편이 안 되었고 오히려 흑인 병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군사적 지원을
받는 대가로 프랑스는 노예들에게 자유를 주었다. 이는 곧 식민지 노예제 폐지로 이어지고, 1794년, 프랑스 국민공회는 프랑스 영토내 노예들은
모두 프랑스 공화국의 시민이라고 선포한다. 한편, 프랑스가 대륙에서 전쟁에 휘말린 틈을 타, 산토 도밍고(현재 도미니카 공화국)를 식민지로
지배하고 있던 스페인과 자메이카를 식민지로 지배하던 영국이 생 도맹그를 침략한다. 흑인 군대들은 양대 제국과 싸워 이긴다. 그러나 프랑스 상황이
수습되자, 나폴레옹은 생 도맹그에 군대를 보내 '식민지 반란 진압'에 나선다. 혁명군은 삼색기의 흰 색을 찢어내고, 더이상 프랑스 공화국에
기대를 갖지 않는다. (생도맹그에서 삼색기는 흑인, 혼혈인, 백인의 평등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하지만 역부족, 혁명 지도자 투생
루베르튀르는 프랑스에 포로로 잡혀 간다. 1803년, 쥐라산맥에 있는 주 요새의 감옥에서 사망한다. 백인과 유색인의 보복 학살과 테러가 서로
자행되고, 남은 사람들이 버티고 버텨서 전쟁은 이어진다. 1804년, 드디어 생 도맹그는 프랑스로부터 독립해 본래 원주민인 타이노족이 그 섬을
부르던 이름인 '아이티'를 국명으로 삼는다.
아이티 혁명은 식민지 독립과 노예해방을 동시에 완수한, 세계사에서 가장 위대한 혁명이었다. 게다가 그시대의 막강한 제국인 스페인, 영국,
프랑스와 각각 전쟁을 해서 이겨 내지 않았는가. 이 혁명은 교과서에서 그렇게 위대하다고 말하는 프랑스, 영국, 미국 혁명보다 규모가 크고
더 전세계적으로 의미있는 혁명이었다. 유일하게 승리한 노예반란이기도 했다. 아이티 혁명은 카리브 해 식민지들은 물론,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독립과
혁명에 영향을 직접적으로 미쳤다. 유색인과 가난한 사람, 여성을 차별하던 서구 혁명의 실상을 보라. 재산과 성별에 따라 시민권이나 선거권을
주던 앞서 세 혁명의 성과와, 1793년에 이미 여성들에게도 투표권을 주던 송토나 시절의 아이티의 성과는 비교도 안 된다. 프랑스 혁명 이념의
전파와 혜택, 식으로 아이티 혁명의 동기를 왜곡해서도 안된다.
아이티혁명은 온갖 피부색을 띤 모든 사람이 자유와 시민권을 누리는 사회를 만들어 냄으로서 영원토록 세계를 바꾸어 놓았다. 이 혁명은
아메리카에서 노예제 페지의 핵심적 부분이었고, 따라서 인권을 위한 끊임없는 투쟁의 기초를 닦은, 인류의 민주주의 역사에서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아이티혁명의 후예들이고, 또한 우리는 이 조상들에게 책임을 다해야 한다.
- 본문 24쪽에서 인용
그런데 왜 우리는 이 조상들을 알지도 못하는가? 그것은 서구인 시각에서, 서구인의 이익을 반영하여 쓴 세계사만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보는 대로 보다보니, 전쟁광 나폴레옹이 위대한 혁명가인줄만 알고, 자신의 영토욕을 위해 자유 평등을 외치는 것에 속아 편협한 위인전만
읽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이 생도맹그에 '반란군 진압'을 위한 원정 군대를 보내면서 "아메리카에 일어나고 있는 흑인 야만주의에 맞서는 서양
문명인들의 십자군(본문 396쪽)'이라는 헛소리를 한 것은 모르기 때문이다.
아아, 나는 이런 역사를 계속 공부하고, 나 역시 이런 잘 모르는 역사 이야기를 세상에 알려주는 글을 쓰고 싶다!
워워, 이 책에 있는 기본적 내용 소개만으로도 너무 흥분했다. 아이티 혁명 요약이 아니라 책의 특징도 말해야 하는데.
책은, 전체의 절반 분량이 투생 루베르튀르의 본격적 등장과 활약 이전을 다룬다.그래서 아이티 뿐만 아니라 1800년대를 전후한 서인도
제도 식민지들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볼 수 있어 더 좋았다. 아이티 혁명이 서구 식민주의자들의 시각으로 왜곡되기 쉬운 이유 중 하나가, 혁명
주역 당사자들의 기록이 너무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당시 농장주의 편지 등 혁명 상황을 반영한 기록을 인용해서 최대한 1차 사료를
보여 주려 노력했다. <제인 에어>의 광녀 전처, 크레올 여성 버사에게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반가운 자료들을 많이 접해서 좋았다.
하지만 책은 혁명 이후 아이티 역사의 어두운 면까지는 제대로 언급하지 않고 얼머무려 버린다. 혁명 후일담이랄까, 그런 점이 부족한 것이
아쉽다. 사실 그걸 다 써버리면 아이티 혁명이 기껏 독립했더니 내전 벌이고 독재하고 가난하게 살잖아? 하는 식의 반응을 받을 수도 있겠다.
'왜정 시대' 찬양하는 우리나라 어떤 분들같은 반응은 세계사 어디에서나 나온다.
그러나 알 건 알아야지. 이 리뷰에 내가 공부한 아이티 독립 이후 역사를 좀 덧붙인다. 아이티 정부는 프랑스와 국교를 맺기
위해 배상금(농장 등 재산을 상실한 망명 농장주의 요구)을 1825년에 지불한다. 돈이 없기 때문에 프랑스 은행에 돈을 빌려서 프랑스에
지불한다. 그래서 현재까지 프랑스에 부채를 지고 경제가 종속되게 된다. 또, 상업 작물 플랜테이션외에 산업이 없기에 경제가 취약한 점. 식민지
시절에 농업이 왜곡되었기에 주 식량까지 수입해야 하는 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또 플랜테이션에 집중하다보니 농업 노동자들이 농장에 다시
노예계약처럼 묶이게 되는 점, 독립 지도자들의 변질, 내전, 1915년 ~ 1934년까지 미국의 아이티 점령, 그 시기 미국이 자행한 6만 명
학살, 미국이 지원한 독재자 뒤발리에 부자의 독재,,,, 최근의 아이티 지진,,, 내가 아는 건 대략 이 정도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아이티
혁명이 위대하구나야, 나는 아는데, 하고 잘난척하듯 이 책의 리뷰를 쓰는 내가 부끄러워진다.
이 책을 읽은 나는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일단은, 이것을 하겠다 :
친구분들아! 이 출판사 책 좀 돈 주고 사 보시라! 촘스키 선생님이 쓰신 <쿠바 혁명사> 등 매우 좋지만 안 팔릴 책을 많이 낸 출판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