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실크로드 견문록>을 읽었다. 그런데 그 책의 '실크로드의 보물을 약탈한 서양인들' 챕터의 내용이 이미 다 아는
내용이었다. 그 앞의 현장법사의 취경 여행이나 8세기 당나라의 장안 등을 설명한 부분도 그랬다. 그동안의 독서로 인해 쌓인 배경 지식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얼쑤! 내 엉덩이를 내가 두드려주며 책의 성격은 애매했지만 신나게 읽어나갔다.
그런데 읽어갈수록 너무 이상했다. 나는 다음 장에 나올 내용까지 미리 맞출 수 있었다. 오, 드디어 내가 한 소식 들었나보다. 이제 경지에
올랐구나!,,, 하며 희희낙락하고 있다가,,,, 한 글벗님께서 이 책 <실크로드의 악마들>을 알려 주셔서 그제서야 두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 나는 이 책을 7,8년 전에 읽고 리뷰를 쓰지 않았다. 이 책을 읽었다는 사실도 잊고 있었다. 둘. <실크로드
견문록>은 이 책을 거의 베꼈다. 세상에나!
몇 시간쯤 갔을까, 헤딘은 물이 나올법한 곳에 이르러 땅을 파보도록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그러나 그제서야 자신들이 갖고 있던 유일한 삽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부하들 가운데 하나가 고대 가옥들을 파헤칠 때 깜빡 잊고 삽을 거기다 두고 왔던 것이다. 헤딘은 즉시 그 부하에게
말을 타고 가서 삽을 찾아오라고 했다. 삽을 갖고 돌아온 그는 도중에 모래 폭풍에 휩쓸려 길을 잃었는데, 그때 우연히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유적들을 발견했노라고 말했다. 언뜻 보기에도 무척 아름다운 목조상 몇 개가 눈에 들어왔다고 덧붙였다. 이 말을 들은 헤딘은 즉시 다른 부하들을
딸려 보내며, 그곳으로 가서 목조상들을 가져오라고 했다. 가져온 목각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헤딘은 흥분으로 '눈이 돌아버릴'지경이었다.
- <실크로드 견문록>본문 270쪽에서 인용
몇 시간쯤 갔을까, 그들은 물을 얻기 위해 모래를 파기로 했다. 그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삽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 중 하나가
자신이 깜빡하고 고대 가옥에 삽을 두고 왔다고 자백했다. 헤딘은 자기의 말을 타고 가서 찾아오라며 그를 돌려보냈다. 삽을 찾아 가지고 돌아온
그는, 모래 폭풍을 만나 길을 잃고 헤매다가 우연히 전에 발견하지 못한 유적을 보았다고 했다. 모래 밖으로 아름다운 목조상 몇 개가 삐죽이 나와
있더라고 말했다. 헤딘은 그에게 즉각 그것들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다른 사람들도 딸려 보냈다. 가져온 목조상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헤딘은
흥분해서 '거의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 <실크로드의 악마들> 본문 100-101쪽에서 인용
분기탱천, 나는 책꽂이 구석에서 이 책 <실크로드의 악마들>을 찾아냈다. 둔황 고문서처럼 쌓인 모래,,,아니고 먼지를 털어내고
다시 읽었다. 역시 이 책은 대단했다. 다른 책이 베낄만한 권위를 갖고 있다. 서양의 중앙아시아 유물 약탈사나 실크로드, 둔황에 대해 알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이 기본이다. 자, 이제 내 사설을 그만 두고 책 소개나 하자.
<그레이트 게임>의 저자로 유명한 지은이는 냉정하게 중앙아시아 유물의 발견자이자 약탈자들의 행적을 복원한다. 책은 실크로드에
대한 배경지식 설명으로 시작해서 사라진 오아시스 도시들, 강대국들의 발굴 경쟁, 스벤 헤딘과 오렐 스테인, 르콕, 펠리오, 오타니, 랭던 워너의
발자취를 숨가쁘게 쫓는다. 서구인인 저자의 입장은 '스타인이 돈황 고사본들을 영국으로 가져간 것에 대한 잘잘못을 떠나서, 그 중 가장 중요한 몇
권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일 듯 싶다(분문 249쪽)'에서 엿볼 수 있듯, 판단 없이 그들의 공적과 과오의 전과정을 독자에게
낱낱이 다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들의 행적과 더불어 둔황 문서고를 아니 자신들의 고대사를 털린 후 '우리 인민들을 이에 대한 원한으로
증오 속에서 이를 갈고 있다(본문 249쪽에서 인용)'라고 비판하는 중국 측의 입장 역시 다 보여준다. 판단은 독자에게 맡길뿐이다.
저자 뿐만 아니라 역자분 역시 대단한 정열을 갖고 이 책을 번역하신 티가 난다. 원서에 없는 사진(역자 개인 소장)까지 번역본에 넣어
편집하도록 했다. 중간 중간에 원저에 미흡한 내용을 역자 주로 보충해 놓았다. 역자는 [실크로드 길 위의 역사와
사람들]의 저자이기도 하니, 믿고 읽을만 하다. 읽다보니, 전에 읽은 실크 로드 관련 서양 책 번역서에서 '대안탑'을 '큰 야생 기러기
탑'으로,,,이딴 식으로 번역해놓은 것을 보다가 버린 나의 시력이 회복되는 기분이 든다.
책의 주 배경이 되는 지역은 동서 투르키스탄 지역이다. 한동안 <서유기>와 <대당서역기> 관련 책들을 읽고 나서 이
책을 읽어서 그런지. 이 지역에서 현장 법사가 얼마다 중요한 인물인지를 새삼 알게 되었다. 모래 속에 파묻혀 천 년 넘게 잊혀진 도시를
발굴해보면 현장의 기록과 일치한다니! 둔황에서 왕도사가 현장법사의 이야기를 꺼낸 스타인에게 의기투합, 마음을 여는 장면이라니! 실로, 현장
법사는 洋鬼子들에게도 '수호 성인'이라 불리며 존경받을만 하다.
이렇게, 이 책을 두번째로 읽으면서는 나는 역자와 현장 법사, 두 사람의 역할에 대해 중점적으로 보았다. 또한 현장의 시대에 있던 것과 사라진
것, 스타인과 왕도사의 시대에 있던 것과 사라진 것, 그리고 이라크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유적유물 파괴 만행에 대해 생각했다
잊었던 좋은 책을 재발견하게 해
주신 그분께 감사드린다. ^^
*** 그래도, 옥의 티 :
본문 42쪽, 굽타 왕조의 아쇼카 왕 => 마우리아 왕조
235쪽, 먼차우즌 => 뮌하우젠(Baron Munchausen, 독일 소설<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의 주인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