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진보 - 카렌 암스트롱 자서전
카렌 암스트롱 지음, 이희재 옮김 / 교양인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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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닥터가 처방해준 약을 먹고, 마음이 아프면 내가 처방한 책을 읽는다. 그런데 아, 이 책 약발 끝내준다!

 

이 책은 <축의 시대>로 유명한 종교 저술가 카렌 암스트롱(1944 ~ )의 자서전이다. 영적인 삶에 관심있던 저자는 17세에 수녀원에 들어간다. 명민한 그녀는 옥스포드 대학에 진학해 영문학을 전공한다. 그러나 경직된 수녀원의 조직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7년만에 환속한다. 신경 쇠약을 앓는다. 세상에 적응하기 어려워한다. 공부에 몰두하지만 수녀원에서 7년동안 익힌 삶의 방식 때문에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 힘들다. 최우등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박사 논문을 쓴다. 자신의 한계를 알기에 자신이 교수 재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학교 외 세상에 적응해 살 자신이 없다. 간질 발작이 시작된다. 박사 논문은 통과되지 못한다. 대학에 남지 못하게 된다. 여고 교사로 취직해 영문학을 가르친다. 수녀원 경험을 다룬 첫 책을 쓴다. 병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게 된다. 저자는 자신이 번번이 실패하는 사람이며 낙오자, 주변인이라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그런데 자신을 이렇게 망가뜨린 수녀원과 종교를 비판하면서도 저자는여전히 영적인 것에 끌린다. 방황한다. 생계를 위해 덥석 맡은 방송 작가 일로 예루살렘에 취재하러 갔다가 유대교와 이슬람교를 접하며 종교, 신, 영성에 대해 새로운 각도로 보게 된다. 종교 공부를 시작한다. <신의 역사>와 <마호메트>를 저술하며 드디어 신과 종교의 본질에 대해 깨닫는다. 다른 문화권의 종교에 대한 편견, 혐오를 없애는 역할을 하며 종교와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그동안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넓고 근사한 계단이 아니라 좁은 나선형 계단(책 표지 이미지)을 빙빙 돌며 번번이 제 자리에 있다고 생각한 자신의 삶이 그래도 빛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 도중에 있었다는 의미 부여를 하며 책은 끝난다.  

 

큰 내용은 위와 같지만 얼핏 보기와 달리 그리 종교적이며 근엄한 내용만을 갖고 있지는 않다. 1944년생인 저자는 2차 대전 후 영국에서부터 2001년 911테러까지 세계사의 굽이굽이와 자신의 방황을 함께 이야기한다. 그 굽이와 방황이 어떻게 자신을 성장시키고 '마음의 진보'를 이루어냈는지를. 종교에 관심이 없어도 마음이 힘든 분이나 세상이 말하는 성공과 별개로 자신의 길을 찾으며 성장을 꿈꾸는 분들이라면 이 책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아래 인용 부분, 뭉클하지 않은가. '남의 괴물과 싸우지 말고 자신의 괴물과 싸워야,,, 자기 삶에서 빠져 있었던 것,,,' 이 문장에, 나는 그만 책상에 머리를 박고 한참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위대한 신화를 보면 남이 갔던 길을 따라가는 사람은 번번이 길을 잃는다. 영웅은 낡은 세상과 낡은 길을 버리고 스스로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지도도 없고 뚜렷한 발자취도 없는 미지의 어둠으로 뛰어 들어야 한다. 남의 괴물과 싸울 것이 아니라 자기의 괴물과 싸우고 자기의 미궁을 탐색하고 자기의 시련을 감내해야만 자기 삶에서 빠져 있었던 것을 결국 찾아낼 수 있다. 이렇게 거듭나야만 자기가 두고 온 세상에도 무언가 쓸모 있는 것을 안겨줄 수 있다.

- 본문 453 ~ 454쪽에서 인용

 

문학 전공자인 저자는 곳곳에 영미 명시를 인용하고 신화, 전설을 예로 든다. 문장도 솔직하면서 품위 있다. 게다가 내 입장에서는 저자가 문학 덕분에, 또 글을 쓰면서 자신을 성찰하고 스스로 성장에 이르는 과정을 서술한 것이 참 좋았다. 나는 그동안 이 저자가 종교학 박사 출신인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 박사 학위도 없었고 문학 전공자였으며 종교는 독학으로 공부한 것이었단다. 정신 병원에 입원도 하고, 거식증도 앓는 등 병든 심신을 추스리고, 독학을 하고, 모든 실패를 딛고 글쓰는 삶에 도전하고,,, 이 모든 것이 저자 나이 40대에 이룬 성과였다. 그리고 결국 저자는 지금 어린 시절에 꿈꾸었던 영적으로 충만한 삶을 추구하며 살게 되었다. 과거의 자신을 넘어서게 되었다.

 

나는 독학으로 신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아마추어였지만 아마추어라고 해서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아마추어는 어차피 자기가 좋아서 무언가를 하는 사람 아닌가. 나는 고독한 나날을 말없이 나의 주제에만 몰두하면서 보냈다. 매일 아침 어서 빨리 책상으로 달려가서 책을 펼치고 펜을 쥐고 싶어서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애인과 밀회라도 하는 것처럼 나는 이 순간을 기다렸다. 밤에는 침대에 누워서 그날 하루 배운 내용을 뿌듯하게 음미했다. 가끔 책상 앞에 앉아 있다가 혹은 국립 도서관에서 먼지가 쌓인 두꺼운 책을 읽다가 내가 연구하던 신학자나 신비론자의 마음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싶은 초월과 외경, 경이의 순간을 잠깐씩 체험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는 음악회나 극장에 와 있는 것처럼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나 자신을 넘어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본문 482 ~ 483쪽에서 인용

 

입시 준비하듯 책의 정보만 흡입하는 독서를 하다가, 오랫만에 감정 이입해서 500쪽이 넘는 책을 단숨에 읽었다. 몹시도 추운 날씨에 거리를 한참 헤매다가 난방 잘된 까페에 들어가 갑자기 뜨거운 커피를 마셨을 때처럼, 책을 읽어가며 좋은 문장이 나올 때마다 머리가 띵했다. 우지직, 살얼음에 금이 가는 소리가 났다. 한 240쪽 정도 읽어나가니 그냥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래, 다리가 아프니 좀 주저앉아 이 책을 읽으며 쉬어가자. 나의 나선형 계단, 지금 있는 자리가 가장 춥고 어두운 모퉁이도 아닌데 뭘.

 

좋은 책 읽을 때마다 호들갑 떨며 친구분들께 강추니 어쩌니 리뷰에 적곤 했지만, 이 책에는 그런 말을 못 쓰겠다. 읽는 사람이 각각 처한 상황에 따라 이 책이 각각 다른 무게로 느껴질 것 같아서.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절망 속에 있는 누군가에게는 정말 큰 위안을 줄 수 있는 책임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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