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에서 많이 인용되어 찾아 읽었는데, 이 책, 다양한 의미에서 대박!이다.
좋은 의미에서는, 기존 여러 여성사에서 산만하게 접했던 내용을 한 권에 모아 맥을 잡아 주어서 대박이다. 다 읽고 나니 '빡! 끝!'이런
소리가 환청으로 들릴 정도다. 물론 유럽 여성사 위주라는 한계는 있다. 또 좋은 점은 저자는 핀란드 역사 학자라는 점. 기존 여성사가 아무래도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여성 인물과 역사 위주인데 비해, 스웨덴 등 북유럽과 독일 쪽이 많이 소개되기 때문에 이 역시 대박!이었다. 좀
교만해보일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내가 처음 들어본 이름이 많이 나온 책은 참 오랫만이다. 이 책에 등장한 몇몇 인물은 잘 메모해두었다가 나중에
더 파 봐야겠다. 너무 날 세우지 않고 이야기식으로 술술 풀어놓는 문체도 배울만했다.
반면, 이 책은 나쁜 의미에서 대박이기도 하다. 일단 번역이 엉망이다. 독문학 전공인 역자는 독어 번역본을 놓고 번역했다. 그런데 역사
용어 번역이 엉망이다. 인명은 현지 표기가 아니라 독어식 표기이다. 15년전에 나온 책이니, 봐 줄 주 있다. 그런데 일관되게 독어식으로 인명이
표기된도 아니고 군데군데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표기가 섞여 있다. '리처드'가 '리샤'로 나온 것이 제일 대박이었다. '난방도 되지 않는 어둠과
끔찍한 추위 속에서(150쪽)'라는 식의 비문도 자주 등장한다. 오류와 비문 부분은 읽으면서 연필로 계속 표시해 두었는데, 너무 많아서 지금 이
리뷰에 옮기지 못하겠다. 현재 절판이니, 여기에 적어 놓아봤자 출판사에서 수정해 줄 가능성도 없다. 내 수고가 아깝다. 도판도 대박이다. 153
~154쪽에 실린 메리 여왕,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 9일 여왕 레이디 제인 그레이의 초상화는 그림과 밑에 붙은 이름
설명이 다 틀렸다. 이건 해도 해도 너무했다. 편집팀은 반성해야한다.
역자나 편집의 문제가 아닌 내용상의 문제도 있다. 이따금 정사가 아닌 야사, 현재 사실이 아닌 루머로 밝혀진 내용을 버젓이 서술한 부분이
종종 있다. 그런데 원래 이 책이 핀란드에서 1984년에 나왔다는 것을 감안해 읽는다면, 뭐 그리 큰 오점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이
책에는
식민지의 유일한 마녀 재판이 피고인의 무죄 석방으로 끝났던 것이다.
펜은 마녀라고 고발당한 여자에게 물었다.
"당신은 정말 마녀요? 당신은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았소?"
그 여자는 그렇다고 인정했다. 그러자 윌리엄 펜이 말했다. 여자는 원한다면 빗자루를 타고 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자신은 빗자루를 타고
날으는 것을 금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고.
- 본문 148쪽에서 인용
위와 같은 멋진 서술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제목과 같이 이브의 이야기, 기독교 성립 시절부터 시작한 여성 억압의 역사를 다루지만, 이
책은 폭넓고 유머러스하고 따뜻하다. 그런 저자의 시선으로 마녀사냥, 산업 혁명기 여공, 하녀와 창녀, 작가와 예술가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유럽 여성들의 삶을 엿볼 수 있어 좋았다. 솔직히, 예나 지금이나 기본 차별과 여성 혐오 구도는 똑같기에 읽으면서 그리 기분 좋지는 않다.
(역사는 당연히 진보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 제대로 자세히 좀 읽고 나서 아는 척 했으면 좋겠다.)
위에 서술한 것과 같은 대박 결점들도 많지만, 여성사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한 번 읽어볼만 하다. 예스에서는 품절이지만 알라딘에서는 현재
판매 중이다.
(역자 후기에 보니, 번역할 때 사용한 독어본은 원전에서 유럽 여성사 위주로 줄인 판본이라고 한다. 원전을 다 살린 좋은 번역본이 다시 나왔으면 좋겠다. 제대로 한번 더 이
책을 읽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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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228쪽 도판 인용
'여류작가'라는 19세기 풍자화다. 글쓰는 여인은 나쁜 엄마이고 칠칠치 못한 가정 주부로 여겨져 이런 풍자화가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끓어 넘치는 냄비와 방해하는 고양이,,, 너무 낯익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