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같은 글쓰기 - 프레데리크 이브 자네와의 대담
아니 에르노.프레데리크 이브 자네 지음, 최애영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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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가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동료 작가 프레데리크 이브 자네와 메일로 대화한 내용을 엮은 책이다. 주로 자네가 질문하고 에르노는 답한다.  

 

아니 에르노는 20년전에 책세상 출판사에서 나온 <아버지의 자리>를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 이후 <어떤 여자><단순한 열정><탐닉>을 읽었다. 에르노는 자신의 삶을 글쓰기의 소재로 삼는 데 적극적이다. 정치적으로 좌파이고 페미니스트이며, 부모의 삶이나 연인과의 성애를 객관적으로 관찰하여 냉정하게 기술한다거나 하는 점때문에, 보수적이고 남성중심적 견해를 가진 평단과 독자의 공격을 받기도 한다. 저자는 독특한 문체를 구사한다. 초기작인<아버지의 자리>에서 내세운 글쓰기 입장을 시종여일 지키고 있다. 절제하는 문장 그리고 정확하고 첨예하게 진실을 허구의 바깥에서 탐구하는 입장 말이다. 이런 작가에게 프레데리크 이브 자네는 아니 에르노만의 작품 색깔을 결정짓는 것은 무엇이며 왜 그러한 글쓰기 형태를 추구하는 건지? 등등을 질문한다.   

 

아니 에르노는 답한다. 자신의 삶과 글쓰기에 대해. 파리 외 지방 하층 계급 출신으로 신앙심 깊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카톨릭 기숙 학교를 다니던 성장기. 두 아이를 낳고 20대에 이혼. 교사로 일하며 가사와 육아를 혼자 해결하며 글쓰기. 2시간만도 온전히 집중하기 어려웠던 환경. 불법인공유산의 경험. 여성 작가에 대한 편견,,,, 담담히 읽어 내려가다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아니 에르노는 참으로 여러 가지와 싸우며 글을 써 왔구나.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구나.

 

내겐 글쓰기가 칼처럼 느껴져요. 거의 무기처럼 느껴지죠. 내겐 그게 필요해요.

- 47쪽

 

정치적으로 좌파인 저자는 문학교사로 작가로 안정적 생활을 하고 있는 자신이 출신 계급을 배반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한 삶을 속죄하는 방법으로 글쓰기를 한다고.

 

속죄의 다른 방법은 글쓰기를 통해 세상에 대한 지배적인 관점들을 전복시키는 데 기여하는 것입니다.

- 69쪽

 

'당신은 자신을 여성작가라고 생각합니까?'라는 후진 질문에는 ‘남성적 글쓰기라는 분류는 없다. 유독 여성들에게만 해당된다고 명쾌히 답하며 아래와 같이 덧붙인다.

 

하지만 난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역사를 통해 형성되었으며, 그 역사가 글쓰기 속에 살아 있음을 확신합니다. 그러니까 가족소설, 출신 환경, 문화적 영향, 그리고 물론 성과 관련된 조건이 그 속에 포함되겠지요. 내 내면에는 여성으로서의 역사가 있어요. 그런데 그 역사가 한 순수한 작가만을 내 작업대 앞에 남기고 사라져 버리는 기적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겠어요? 게다가 그 순수라는 개념이 참 묘하잖아요.

129  ~130쪽

 

내 출신성분이 피지배 사회계층이라는 사실과 여자아이들에게 인위적으로 주어진 조건이 부과하는 이중적 무게가 내게는 무척 무거웠다는 사실을 힘주어 말하고 싶군요. 거의 파탄 지경까지 이르렀던 적도 있답니다. 그리고 보부아르를 만나게 되었지요. (<2의 성> 읽은 이야기가 이어진다)

- 133쪽

 

외설적이라는 비판을 받은 <단순한 열정>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남성들이 쓴 텍스트에 대해서는 그런 비난을 가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그들 작품 속 남근중심주의적 형태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남성 시각의 성애물에 익숙한 것이라는 말일 것이다. 작가는 이어서 말한다. 

 

사람들이 흔히 여성의 글에서 기대하는 로맨스’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그 책이 성적인 외설인 셈이었던 거죠. (중략) 내가 속해 있는 성에 내 존재를 빗대 이야기하는 아주 부당한 이중적 비방이었어요. 이렇게 말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좌파라고 일컫는 자들이었답니다.

- 143쪽

 

이런 식으로 '여성' 작가로서 프랑스에서조차 받아내는 공격과 비난에 대해 아니 에르노가 당당히 말하는 대목이 특히 인상 깊었다. 저자나 질문자나 다른 프랑스 작가나 작품, 프랑스의 문화 풍조 등등을 광범위하게 인용하며 말하지만 이 관련해서 책 뒤에  주석 설명이 잘 되어 있어 그리 정신없지는 않다.

 

참, 아니 에르노는 단순과거시제는 거리를 두려는 태도처럼 느껴져서 복합과거시제를 사용한다고. 프랑스어의 복합과거시제는 과거에 일어난 사실의 결과나 여파가 현재까지 미칠 때 사용하는데, 이거 원서가 아니라 번역본을 읽으니 그 차이를, 맛을 모르니,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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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 - <미움받을 용기> 기시미 이치로의 아들러 심리학 입문
기시미 이치로 지음, 박재현 옮김 / 살림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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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적으로 병이 도지는 것 같다. 왜 내가 잘 해주려고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이 나를 이렇게 대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일단 떠오르면 평생 들었던 폭언들이 벽에서 마구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럴 때는 약을 먹어야 한다. 그래서 복용한 책.

 

아들러 심리학이라지만 아들러 본인이 쓴 것은 아니고, 아들러 심리학에 대해 기시미 이치로 저자가 자기계발서 성격으로 평이하게 쓴 책이다. 쉽고 빨리 읽기 좋다. 이 저자의 다른 아들러 책은 좀 웃긴 대화식이어서 집중이 안 되는 반면 이 책은 좀더 읽기 편하다.

 

저자가 말하는 아들러 심리학은 무의식이나 트라우마를 강조하지 않는다. 문제가 '어디에서' 생겨났는가를 문제 삼는 원인론이 아닌 '어디로' 향해 가는가를 중시하는 목적론이다. 자주 나오는 예는 응석받이 아이의 경우다. 받아주는 어머니 때문에 애가 응석받이가 된 것이 아니라 아이가 응석받이가 되겠다는 목적이 있었기에 자신의 목적을 위해 부모의 반응을 이용한 결과 응석받이가 되었다는 것. 결국 인간은 자신이 의미를 부여한 세상에서 자신이 의미를 부여한 모습으로 살게 된다는 것. 그러기에 저자는 말한다. 일이라는 과제, 친구들과의 교우 과제, 사랑이라는 과제가 인생의 3대 과제인데, 인생의 과제와 맞서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과 인내를 들이부어야만 한다고. 문제는 사람들이 종종 그와 같은 과제들을 해결할 능력이 자신에게 없다고 생각하고는 인생의 과제에서 도망치려 한다는 점이라고. 그 회피의 구실로 열등 콤플렉스를 끄집어 내는 것이라고. 너무 가난했다거나, 부모님이 사이가 아주 안 좋았다거나, 이런 이유들을 들으면 사람들은 그로 인해 어떤 사람이 방황하게 되는 것을 상당 부분 인정해 주니까.

 

그러나 아들러가 보기에 그건 핑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구실을 통해 타인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속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들러는 그와 같은 구실을 '인생의 거짓말'이라고 불렀다.

- 221 ~ 223쪽에서 인용

 

혼자 있노라면 과거의 힘들었던 일이 자꾸 떠올라서 괴로운데, 그렇다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상태가 내 현실과 내 인생의 과제를 회피하기 위한 '인생의 거짓말'인 건가? 그냥 지금 내 나이가 인생을 한 번 리셋할 나이어서 그런게 아닌가? (솔직히 부모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만,,, )

 

여튼 문제가 '어디에서' 생겨났는가를 문제 삼는 원인론이 아닌 '어디로' 향해 가는가를 중시하는 목적론. 이거 하나 명심하고, 너무 자학하지도 말고 경거망동하여 상황을 악화시키지도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정도만 해도 이 책의 약효는 괜찮은셈.

 

깊이있는 심리학 이론 책은 아니다. 남에게 잘 휘둘리거나 착한 아이로 사랑받는 것이 최고의 삶이라고 길들여져서 쓸데없이 상처받고 좌절해버릇하는 사람들이 빨리 읽어보기 편한 책이다. 결국은 '미움받을 용기'를 가지고 네 삶을 살란 이야기. 말은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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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해 식문화의 역사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20
다카히라 나루미 지음, 채다인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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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놔, 정말 궁금해 미치겠다. 이 시리즈 기획하고 집필한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이런 책이 있다는 것을 알고 국내 번역해서 출간한 사람들도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이 책은 음식사를 다룬다. 그런데 통사식도 아니고 대륙별이나 문화권 별 국가별 기술이 아니라 백과사전처럼 항목별로 온갖 관련 지식을 나열한다. 저자는 이미 음식사 몇 권 읽은 독자에게 '이거까지는 몰랐죠?'하며 별로 중요하지도 않지만 다른 책에서는 결코 읽을 수 없는, 그러나 덕후들은 좋아서 자지러질만한 잡스런 지식을 불쑥불쑥 내 놓는다.  뭐 중국에서는 인육을 팔면서 '이각양(二脚羊)'이라 불렀다던가 영국인들이 초기에 커피를 마시지 않은 이유는 '커피는 남성을 불능으로 만든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라든가,,, 읽다보면 정말 웃겨 미치겠다.

 

백과사전식 구성이지만 크게 보면 흐름은 있다. 1장은 인류고대문명의 음식을 다루는데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빵과 맥주가 메인 디쉬다. 간단히 말해 빵과 액체빵. 2장은 그리스 로마의 음식을 다룬다. 3장은 중세~근대 유럽의 음식이다. 일본인 저자가 썼지만 유럽의 음식문화 중심이다. 4장에서야 일본의 음식을 다루며 중국과 한국 등 세계의 음식을 조금 다룬다.

 

이집트인들이 신전에 바치는 제물 대신 동물 모양 빵을 만들어 바쳤다든가(제갈량과 만두의 유래가 생각난다), 스파르타인들은 평상시 먹는 스프에 일부러 담즙을 넣어 쓰게 해서 먹고, 전시에는 제대로 된 음식을 먹어서 사람들은 모두 전쟁을 기다렸다든가(이것도 와신상담?), 그리고 기독교의 육식 금지 때문에 생긴 해프닝(육고기는 금지인데 물에 사는 생선은 먹어도 된다고 해서 비버 고기를 먹었단다) 등등, 기본적인 서양 음식사는 물론 다른 책에서 읽을 수 없었던 시시콜콜한 에피소드가 많아서 참 재미있다. 그렇다고 흥미 위주만은 아니고, 아래처럼 음식 문화를 통해 그 시대를 보여주기도 한다.  

 

카롤링거 왕조 시대에는 큰 실수를 저지른 자나 심약한 자는 '평생 고기 금지'라는 벌을 받았다. 이것은 '무기 소지 금지'라는 벌과 같이 내려져 귀족의 신분을 박탈한다는 의미였다.

- 118쪽

 

계급사회였던 중세에서는 사회신분에 맞는 걸 먹는 게 좋다고 하였고, 분수에 맞지 않는 걸 먹으면 몸이 나빠진다고 생각했다.

- 116쪽

 

일본 저자가 쓴 책인지라 당연히 일본 음식문화에 대한 시시콜콜한 부분도 많다. 일본 군대 식량의 역사를 말하는 대목에서 전국시대 휴대 식량인 '이모가라와라 (芋幹繩)'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이모가라와라는 고구마 줄거리를 잘라 말린 후 노끈을 엮어 된장으로 조려서 만들어 이를 허리에 감거나 노끈으로도 사용한다. 그러다가 전장에서 물에 넣어 끓이면 그대로 국과 건더기가 되어 요긴하게 먹을 수 있다고. 아마 우거지된장국?  효로간(兵糧丸) 이야기는 다른 책에서 읽어 보았는데 이모가라와라 이야기는 처음 읽었다. 흥미롭다.

 

편집이나 인쇄는 그 옛날 문방구에서 팔던 괴수대백과사전 수준인데 내용은 참 알차다. 관심있는 분이라면 한번 시간 여유 있을 때 읽어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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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 프로젝트 - 남자들만 모르는 성폭력과 새로운 페미니즘 푸른지식 그래픽로직 5
토마 마티외 지음, 맹슬기 옮김, 권김현영 외 / 푸른지식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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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페미니즘 책이다. 여성이 일상에서 겪는 성폭력 사례와 대응법, 성폭력을 목격한 주위 사람들이 그녀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만화로 풀었다. 그런데 남성 등장 인물은 전부 악어로 그려져 있다. 범죄자이건 지나가는 행인이건. 이 시도가 몹시 흥미로웠다. 책이 담고 있는 구체적 사례나 대응법 내용 자체 보다. (이 말은, 내용이 별로라는 뜻이 아니다. 책 뒤에 만화 없이 악어 캐릭터에 대한 부분을 설명한 부분에 워낙 시사점이 많았기에 하는 말)

 

이 책을 접한 프랑스의 남성 독자들은 남성들이 모두 악어로 그려진 점을 불편해했다고 한다. 악어인 남성과 좋은 남성을 구분해서 그렸어야 했다고 한다. 결국 이 말은 '나는 악어가 아니야! 나는 좋은 남성이야! 일반화하지 말라구!' 이 뜻이다. 여기에 대해 책은 일갈한다. 일상에 만연한 성폭력을 겪고 있는 여성들에게 좋은 남성이란 존재하지 않다고. 있다치더라도 그건 남성 스스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고. (속이 시원했다. )

 

왜 프랑스건 우리나라건, 여성들이 피해보는 현실보다 가해자로 취급받을지도 모르는 자신들의 억울함이 우선인 남성들이 많은 것일까? 나만 이런 점이 의아한 것이 아니었나보다. 국내 번역판인 이 책 뒤에는 여성학자 권김현영 선생님의 글이 실려 있는데, 선생님도 이 점을 언급하고 있다. 남녀학생 같이 듣는 젠더 수업에서 여성 학우들이 성폭력 경험을 증언하면 듣는 남성들이 매우 불편해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자신을 가해자 취급하고 비난하는 것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란다. 권김현영 선생님은 남학생들에게 묻는다. 왜 너는 너의 친구보다 그 친구를 모욕한 낯선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하는지를. 이런게 호모소셜 사회의 특징 중 하나인가.

 

아마, 그래서 이 책은 남성들을 악어로 그려야만 했을 것이다. 일반 남성으로 그리면 십중팔구 남성 독자들은 가해자에게 더 감정이입을 하고 별 문제의식을 갖지 못했을 확률이 놓으므로. 그들은 자신이 악어로 일반회된다는 것이 불편하다, 악어는 나쁜 남자니까, 성폭력은 나쁜 것이다,,,라는 수준의 사고에조차 이르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에.

 

뭐, 나는 남성들은 원래 여성들보다 감정이입을 못한다는 말에 속지 않는다. 그렇다면 여왕님을 불쌍히 여기며 지지하는 저 많은 내시들은 다 뭐람? 여성의 처지를 이해하고 여성이 겪는 부당함에 감정이입하지 않도록, 그렇게 사는 것이 자신들에게 편하고 이익이니까 그렇게 사회화되었을뿐이다.

 

여튼, 나는 내 친오빠나 그 옛날 사귄 남성들조차 내가 겪은 폭력을 이야기하면 내 입장에서가 아니라 나에게 폭력을 행사한 악어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 참 이상하다. (밤길에 더듬고 간 새끼 이야기하면 그러게 왜 밤늦게 돌아다녀, 이럴 때 말이다. 야근했는데 어쩌라구? ) 그런데, 그들은 그점을 지적하면 화를 내곤 한다. 절망스럽다. 도대체 몇 권의 책을 더 읽고 얼마나 더 떠들어대야 세상이 나아질까. 세상에 악어아닌 좋은 남자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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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폴란의 주말 집짓기 - 한 칸짜리 작은 집을 지으며 건축의 세계를 탐구하다
마이클 폴란 지음, 배경린 옮김, 나기운 감수 / 펜연필독약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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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동물의 딜레마>로 유명한 마이클 폴란이 집 뒤뜰에 혼자만의 집필실을 스스로 지어가는 이야기이다. 친한 건축가와 목수의 도움을 받지만 대부분 자신이 육체노동을 해서 짓는다. 책은 집짓기 순서를 따라 집터, 설계, 골조, 지붕, 창문, 마감,,, 순으로 구성된다.

 

밥을 짓다, 옷을 짓다, 집을 짓다.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의식주와 관한 노동에 쓰는 동사는 '짓다'이다. 글도 '짓다'인데, 이것 참 구미가 당기구료,하면서 뭔가 수렁에 빠진 내 글쓰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싶어 가볍게 찾아 든 책이다. 그런데 펴자마자 머리말에서부터 강력한 감동의 물결이 밀려왔다. 강적을 만났다.

 

건축가들은 이상과 현실의 경계 지대에서 일하며 아이디어의 조각들을 실제 구현 가능한 형태의 것으로 번역해 내고, 또 목수들은 뛰어난 손재주로 현실 속에 유형의 산물을 더한다.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 속에서만 겨우 통하는 창작물을 만드는 작가들에게 있어, 이런 물적 형태의 창출은 격한 질투심을 불러 일으킨다. 우리같은 글쟁이에게 '건축'이나 '목공'이라는 단어는 그저 우리의 짧고 덧없는 창조를 치장하기 위해 쓰는 허세 가득한 비유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왜 무언가를 직접 지어 볼 결심을 하게 되었느냐고 묻는다면 밤을 지새워 답을 해도 모자랄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만드는 사람' 곧 호모 파베르의 세계에 몸담아 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주 잠깐만이라도 언어라는 허상의 세계를 떠나 있고 싶은 마음 말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컴퓨터 스크린 앞에 앉아 바깥 자연 세계와는 동떨어진 채 일하고 있는 나의 추상적인 삶에 말하자면 해독제가 절실했다. 또 슬슬 중년에 접어들면서 권태기가 왔던 것 같기도 하다.

- 머리말에서 인용

  

이렇게 책 내용은 중년의 권태에 시달리는 전업 작가로서 자신에 대한 성찰이 집 짓기와 어우러진다. 미국 역사나 중세 서양 역사와 건축 관계 서술 부분의 경우, 이런 식의 접근을 좋아하는 내게 매우 고급스런 읽는 맛을 주었다. 아래, 맛뵈기 문장을 인용한다.

 

실제로 초창기 식민지 시대의 창문은 유리에 비해 나무가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높고 빛도 거의 들지 않았는데 이는 당시 사람들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반영하는 것이리고 했다. 청교도와 중세 기독교 교리에서는 실내라는 성역과 외부 세상의 불경스러움을 칼같이 구분해 왔다. 창문 너머의 세계에 그토록 많은 부정이 도사리고 있다면, 창문은 최대한 작고 잘 열리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당연지사였을 것이다.

- 368쪽 제 7장 창문 중 '창문과 투명성' 꼭지

 

집 짓는 과정와 건축에 대해 공부하는 과정을 건축 관련 책 이야기와 같이 풀어가가는 방식 자체도 흥미로웠다. 집짓기에 대한 서구의 유명 도서는 다 섭렵하고 언급한다. 집과 생활 환경과 삶의 자세에 대한 이야기도 많다. 소로우 선생이 많이 인용된다. 그렇다고 책이 지나치게 진지한 흐름으로만 일관하는 것은 아니다. 틈틈이 프랭크 로이드 등 유명 건축가들의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은근 웃기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클라이언트가 비 새는 것에 대해 항의했더니 이렇게 말했단다. "어휴, 예술 작품을 비 내리는 데 방치해 두니까 그런 거죠." 예술을 위해 불편함을 기꺼이 견딜 줄 아는 자세가 무슨 모던 건축의 전제처럼 되어 버렸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

- 353쪽 7장 창문 ' 안으로 열리는 창문'

 

저자 주변 사람들 이야기도 재미있다. 현장 작업을 돕는 육체 노동자 조와 책상에서 도면으로 일하는 건축가 찰리, 두 남자와 유치하게 기싸움하며 티격태격하는 에피소드를 읽다보면 막 웃음이 나온다. 그러다가도 또 저자는 진지해진다. '물을 막기 위해 설계자는 스스로가 물의 입장이 되어 생각을 해봐야 한다(349쪽  창문 '안으로 열리는 창문)'등 아, 하는 깨달음을 주는 문장도 곳곳에 있다. 도대체, 이 책의 정체가 뭔지 모를 정도로 매력만발!


다 읽고나니 무언가 쫓겨 부글거리던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 이 저자처럼 스스로 몸을 움직여 무언가 실제적인 것을 짓고 경험하면서 내 사고를 확장시키고 다시 내 글을 지으며 살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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