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억 역사의 상상 - 우리시대의 지성 5-011 (구) 문지 스펙트럼 11
주경철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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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주경철 저자분 전작 읽기를 하던 시절에 읽었는데 리뷰를 쓰지 않고 미뤄 두었었다. 본문에 저자가 언급하는 책에 대해 아는 책, 읽은 책보다 모르는 책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이제 조금 더 읽고 조금 더 눈 뜬 것 같아서 다시 이 책을 읽고 리뷰 남긴다. 그 사이 게레멕의 <빈곤의 역사>도,<프라토의 중세 상인>도 번역본이 나와 이 책에 소개된 명저들의 국내 번역본이 다 나왔으니까.

이 책은 서양사학과 신입생들을 위해 학부 수업용으로 만든 프린트물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저자의 전공인 중세말 근대초 서양 사회경제사에 관련한 프랑스 학자들의 명저를 소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나같은 혼자 읽는 독자의 경우 참으로 고마운 책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두서없이 읽어대는 나는 피렌의 <중세유럽의 도시>를 읽고도 그 책에서의 주장이 현재 고고학적 발굴과정에 의해 거의 반박되었다는 것을 몰랐지 않았는가. 그냥 명저라고 귀동냥으로 들어 본 책을 띄엄띄엄 읽다보니 이런 일이 나도 모르는 사이 많이 있었을 것 같다. 덕분에 이 책을 읽으면서, 보다 체계적인 역사서 독서 커리큘럼과 스승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저자가 다루는 명저들은 다음과 같다. 게레멕의 <빈곤의 역사>, 엘리아스의 <문명화 과정>, 아리에스의 <죽음의 역사>와 <아동의 탄생>, 호이징하의 <중세의 가을>, 르 고프의 <연옥의 탄생>과 <서양중세문명>, 피렌의 <중세 유럽의 도시>, 포스탄의 <중세의 경제와 사회> , 이리스 오리고의 <프라토의 중세상인>, 브로델의 <물질 문명과 자본주의>, 긴즈부르크의 <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 맥닐의 <전염병과 인류의 역사>, 그리고 라스카사스, 홉하우스의 <역사를 바꾼 씨앗 5가지>, 크로스비의 <녹색 세계사>이다. 내가 읽은 책은 반밖에 안 된다. 이 쪽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지도라고 생각하고 책상에 갖추고 계속 들춰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 저자분의 매력인 쉬운 문장을 따라 읽어가다 보면 흐름과 주요 쟁점이 절로 파악된다. 정말로 나처럼 혼자 읽다가 오독에 빠지기 쉬운 독자에게 유용한 책이다.

대중 역사서 위주로 읽다보니, 이런 책들을 읽지도 않았음에도 요약 인용 내용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자칫 잘못하면 마치 다 읽은 것처럼, 안 읽어도 다 아는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하지만 이 책 머리에 저자가 인용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다음 말을 기억하자. "요약하는 자들은 지식과 사랑을 모두 망쳐놓는 놈들이다. "라는 말! 이제 저자의 이 책을 다 읽고 덮었으면 본문에 소개된 책들을 하나씩 읽어가야 하리. 앞으로 나의 독서작업은 좋은 스승님을 만난 덕에 참으로 즐거운 여정이 될 것 같다. 고마워요, 주경철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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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쟁 - 오늘의 유럽을 낳은 최초의 영토 전쟁 1618~1648
C. V. 웨지우드 지음, 남경태 옮김 / 휴머니스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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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올 여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이제스트 판으로 책을 접하고 그 내용을 다 아는 듯한 착각을 가지는 것의 위험성이 문학 뿐만 아니라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하는.

어린 시절 오빠의 교과서나 참고서 읽기를 즐겨했다. 오빠의 중학교 국어 완전정복 자습서를 읽어 보면 한 단원 끝날 때마다 세계 명작을 간략히 소개해 주는 코너가 있었다. 겉멋들린 초딩의 눈에 보기에 왠지 소개된 작품들이 멋져 보여서 두근거리는 가슴 지긋이 누르며 책장에 침 묻혀 넘겨가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맙소사, 자라서 그 작품들을 직접 읽어보니 그만 알게 되었지 뭔가. 그 다이제스트 판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웃긴 것인지를 말이다. 예를 들어,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수용소에 갇힌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묘사함으로써 당시 스탈린 체제를 비판한 작품'이라고만 알고 있는 사람과, 직접 그 작품을 읽어 보아서 따끈한 스프 한 그릇을 배급받는 이반의 그 순간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 느끼고 보는 세계는 엄밀히 다르지 않은가. 문학작품에만 그런 생각을 하다 올 여름, 내가 좋아라 읽는 역사서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통사류 책에서 그 사건 진행 과정과 역사적 의의, 이후에 끼친 영향을 저자의 시선으로 짧게 요약된 것만 읽는 것과, 내가 한 권의 책으로 그 사건 전체를 시종여일 더듬어 가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일 것 같았다. 마침 십자군 관련 책을 읽고 그외 유럽의 종교 전쟁에 대해 더 궁금하던 차에 영국의 역사학자 C. V. 웨지우드의 <The Thirty Years War>의 초판 번역본이 나왔다는 신문 기사를 접했다. 딱 지금의 나를 위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하하. 게다가 30년 전쟁은 지금의 유럽을 만든 전쟁이라지 않은가.

그럼, 이 전쟁의 배경과 진행 과정을 간략히 살펴보자.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이후 계속된 종교전쟁은 일단 1555년의 아우크스부르크 화의로 종결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트 중 오로지 루터파에만 적용되어 칼뱅파는 보호를 받지 못한 점은 분쟁의 불씨를 살려 둔 셈이었다. 게다가 정치적으로 주변국에서는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가 형성되어가고 있는 반면 독일에서는 분열상태가 계속되고 있었다. 이 분열상태는 제후들의 갈등요인에 단순한 종교 문제가 아니라 영토 문제가 깔려 있음을 암시해 준다. 게다가 발트해 진출을 노리는 덴마크와 스웨덴은 같은 프로테스탄트 국가였지만 정치 경제적으로는 독일제후들과 경쟁관계에 있었고, 같은 구교 국가인 프랑스와 합스부르크 왕조간도 경쟁자적 입장이었지 결코 종교적으로 동반자적 관계는 아니었다. 그 전 네덜란드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공식적인 30년 전쟁의 시작은 구교도 제후인 페르디난트 2세가 보헤미아의 왕이 되어 신교도 탄압에 나서자 보헤미아인들이 반란(유명한 프라하 창문 투척사건)을 일으키는 1618년에서 시작한다. 보헤미아의 신교도 귀족들은 팔츠 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를 보헤미아의 왕으로 추대하나 신성로마제국 황제 마티아스 사망 이후 황제가 된 페르디난트는 구교 연맹과 에스파냐의 도움으로 프리드리히 5세를 몰아낸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는 보헤미아인들의 종교적 자유 뿐만 아니라 정치적 독립의 열망이 큰 동인이 되었다. 여기에 루터파의 덴마크왕(신성로마제국의 한 제후인 홀슈타인 공이기도 하다) 크리스티안 4세가 개입하여 북독일 지방의 신교도들을 원조하고 북해의 항구를 지배하려 한다. 그러나 독일을 침공한 그의 군대는 황제군 지휘관 발렌슈타인의 군대에 격파되고 그는 신성로마제국의 제후로서의 독일 내 특권을 빼앗긴다. 승리에 고무된 황제는 반환령을 공포, 아우크스부르크 화의 이래 신교도들에게 들어간 구교회의 재산을 원상회복하려 든다. 이에 신교도 편에서 스웨덴의 구스타프 2세 아돌프 국왕이 참전한다. 스웨덴 국왕은 뇌르틀링겐 전투에서 대패, 전사하지만 아내와 딸 크리스티나 여왕이 뒤를 이어 전쟁을 지속한다. 독일은 이미 황폐화되었다. 용병들은 제때 급료가 지불되지 않거나 식량 보급이 늦어지면 약탈에 나서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다. 무덤을 파헤쳐 썩어가는 시체의 살까지 발라먹는 세월이 이어지지만 무능력하고 이기적인 제후들은 이익 따지기에 앞서서 민중들의 현실의 고통을 보지 못한다. 발렌슈타인 사후 궁지에 몰린 황제는 휴전을 제의하지만 어떤 지도자적 위치에 있는 사람도 종전과 평화를 독일에 가져다 주지는 못한다. 다들 여전히 자신과 자국령에 유리한가 불리한가만 따지고 있는데 또다시 외세가 개입한다. 즉 같은 구교 국가이지만 합스부르크 왕가의 숙적인 프랑스의 재상 리슐리외가 개입한 것이다. 이후 로크루아 전투의 대참패 이후 에스파냐와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 모두가 패색이 짙어가는 현실을 인정, 마침내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을 체결하면서 정확히 30년을 끌면서 독일전역을 황폐화 시킨 전쟁은 끝난다. 

이 전쟁이 이후 유럽과 세계 근현대사에 끼친 영향은 다음과 같다. 일단 베스트팔렌조약은 근대 국제 조약의 효시인 성격을 지닌다. 이 조약에서 승자의 입장에 있던 프랑스는 알자스(130년후 보불전쟁 때 다시 독일영토로 되어 도데의 <마지막 수업>에 등장하는 그 알자스)를, 스웨덴은 발트해와 북해연안의 영토를 얻고 브란덴부르크(나중에 프로이센이 되는) 선제후도 동부 폼메른 지방을 얻는다. 그러므로 독일의 경우 주요 강 지역의 영토를 다 외세에 빼앗긴 셈이 되어 바다로 진출할 수 있는 통로가 거의 막히게 된다.(이후 독일이 제국주의 후발주자가 된 이유 중 하나)그리고 이미 전쟁 이전 어느 정도 기정사실화 되어 있었던 스위스와 네덜란드의 독립이 정식으로 인정된다. 종교적으로는 칼뱅파도 가톨릭과 동등한 권리를 얻게 되며 교회 재산의 소속은 1624년을 기준으로 삼기로 한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이 조약은 신성로마제국을 구성하고 있던 국가들의 완전한 주권과 독립을 정식으로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독일민족의 제국은 황제와 8선제후, 96제후, 61자유시의 연합체가 되어 1871년까지 통일 국가를 이루지 못하게 된다. 신성로마제국은 사실상 붕괴하고 오늘날의 오스트리아로만 남게 된 셈이다. 그리하여 에스파냐와 오스트리아 양 쪽의 합스부르크 왕가는 힘을 잃고 프랑스가 유럽을 장악하게 된다. 이렇게 30년 전쟁은 독일의 종교전쟁으로 시작하기는 했지만 결국은 각국의 이해관계와 영토야욕이 얽힌 국제전쟁이 되어 결과적으로 근대적인 국제적 외교관계가 수립되게 되었던 것이었다. 즉 국가간의 세력균형이나 외교 조정 등은 이전에는 교황청에서 하던 역할인데 한동안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손을 거쳐 이제 각국의 동등한 주권행사와 외교관계가 성립되는 시기가 온 것이다. 또한 이 전쟁에서 생산력을 200여년 전 수준으로 되돌리고 3/4가 넘는 인구감소를 가져오게 한 주요한 원인인 용병집단의 학살과 민간인 살해, 약탈 등의 문제가 국제적 관심사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30년 전쟁은 근대 국가 자체의 성립보다 근대 체계의 성립에 큰 영향을 미친 전쟁이었다. 결코 종교전쟁만이 아닌 것이다. 십자군 전쟁과 마찬가지로 종교를 내걸었지만 속내는 영주들의 영토야욕이 기본으로 깔려 있던 전쟁이기도 하다는 점도 흥미롭다.

출판사측의 책 소개글에 따르면, 유럽 근대사가 전공인 저자는 학자의 길을 택하지 않고 저술가의 길을 택한 사람이며, 대여섯개의 언어로 된 1차 사료들을 뒤져서 놀랍게도 29세(!)의 나이에 이 책을 저술했다고 한다. 초판은 1938년에 출간됐는데, 7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증쇄를 거듭할 만큼 30년 전쟁을 다룬 최고의 책이자 전쟁사 가운데서도 인정받는 책이라고 한다. 나는 30년 전쟁만을 온전히 단행본으로 다룬 책은 처음 읽었기에 이 소개가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30년 전쟁에 대해 다른 책에서 짧게 언급한 내용이 다 이 책에 자세히 나와 있음은 확실히 알겠다. 또 책 소개글에 따르면 이 책의 특징이 연대기적 서술이 아니라 생생하게 인물을 살려 내는 이야기식 구성이라고 하는데 이 점은 내게 그리 눈에 띄지는 않았다. 대개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익숙한 시오노 나나미나 이덕일식 역사 서술에 익숙한 독자라면 이 책은 좀 밋밋하다는 느낌을 받을 것 같다. 읽어가다 무릎을 치며 감탄할 만한 논평도 그리 많지 않았다. "독일 지배자들 등 누구도 집을 잃고 한겨울 추위에 나앉은 사람도, 입에 풀을 문 채 죽은 사람도, 아내와 딸이 성폭행을 당한 사람도 없었다. 극소수만 흑사병에 걸린 게 고작이었다. 그들은 목숨이 위태롭지도 않았고 먹고사는 데 걱정이 없었기 때문에 인간의 고통이 아니라 정치의 견지에서 생각할 여유가 있었다. (본문 327쪽)" 정도의 모범생적 논평 뿐이다. 이는 아마 집필 당시 저자의 나이와 관계있지 않을까, 싶다.

700 페이지가 넘는 두께가 사람을 좀 질리게 하지만, 산술적으로 7시간이면 읽을 수 있는 분량이기에 두께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내게는, 신성로마제국, 즉 지금의 독일 지역의 공국, 백국 등의 위치와 지명, 그리고 다 비슷비슷한 등장인물들의 이름과 혼맥, 가계도 등이 머리속에 확실히 잡혀 있지않아서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읽다가 한 번 맥을 놓치면 지도와 가계도를 찾고 다시 수십 페이지 거슬러 올라가 읽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상보다 꽤 오래인 3주 동안이나 이 책을 잡고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다른 통사류에서 간단히 몇 페이지 요약적으로 언급하고 지나가던 내용을 세밀히 살펴 볼 수 있어서 올 여름, 꽤 보람을 느끼며 읽었다. 말하자면, "간단히 신교와 구교 갈등만 아닌 영토 야욕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던 전쟁이다" 라는 문장에서는 미처 다 보지 못했던 것들, 즉 각국 지배자들의 영토야욕과 명예욕, 피지배 민중을 고려하지 못하는 이기심과 근대 민족국가 설립 이전 외세를 끌여들어 자리를 보전하려 했던 통탄할만한 현실과 전쟁을 거쳐 지나치게 성장한 용병집단들의 문제 등등이 지금 현재 세계에까지 어떤 전례를 남겼는지를 나는 이번에 볼 수 있게 되었다.

저자는 말한다. "전쟁을 멈출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하지않은 사람들에게 가장 무거운 책임을 지워야 한다."라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더불어 지배계급의 이익을 둘러싼 종교 전쟁 와중에, 종교랑 상관없이 생존을 위해 민란을 일으킨 당시 독일 민중의 역사 사례도 눈물겹게 기억해 두고 싶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역사 사실 자체보다 그를 서술하는 역사가의 눈길을 느끼는 방법을 배우기도 했다. 나는 뻔뻔하게도 조금 알 것도 같다.  1차대전을 목격하고 대공황을 겪고 히틀러의 부상을 보며 스페인 내전이 진행중인 1930년대에 2백년 전의 전쟁의 참상을 사료를 뒤져 재현해주는 저자의 펜이 얼마나 떨렸을지를.

결론적으로 솔직히 지금의 내 수준에서 내가 이 책의 내용을 완전히 다 이해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 책은 왠지 이후 나의 독서생활에 큰 영향을 줄 것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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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미망과 광기
찰스 맥케이 지음, 이윤섭 옮김 / 창해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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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7,8년 전에 읽은 책인데 문득 떠올라 다시 훑어 보고 리뷰 올린다.

돈은 대중을 광기로 몰아 놓었다. 진지한 성향의 민족이 갑자기 도박꾼이 되어 모든 것을 투기에 걸었다. 이 책의 목적은 모든 광기를 추적해서 소개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집단적 사고에 사로잡혀 미치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한 사람씩 천천히 제정신으로 돌아온다.  - 본문 14쪽

이 책이 처음 소개 되었던 시점에는 주식 투기 등과 관련하여 미시시피 계획, 남해 회사 거품사건, 튤립 투기 대소동에 중점을 두어 각 언론이 소개했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투자 관련 서적에서는 이 책을 거의 고전으로 언급, 인용한다고 한다. 그러나 내게는 십자군 전쟁, 마녀 사냥, 연금술 등의 부분이 인상깊었다. 그래서 이 책을 기본 가이드북으로 하여 관련 서적들을 더 깊게 파고들었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내 사고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경험한 듯한 착각을 했더랬다.

지금 다시 보니, 1814년에 태어난 저자가 1841년에 이 책을 저술하면서 어쩌면 이런 시각을 보여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물론 계몽주의와 이성 신봉의 시기에 살았기에 이런 비판적 시각의 서술이 나올 수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당시 똑같이 계몽주의의 세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계몽과 이성의 방향이 오로지 자신들만의 세계 옹호와 타자들에 대한 폄하에만 머물러 있었던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광신에서 비롯되었고 잘못이 많았으나, 십자군이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봉건 영주들은 우월한 문명과 접촉해서 좀더 각성하게 되었다. 민중들의 권리도 조금은 향상되었다. 유럽인들은 힘든 경험을 통해 미신에서 조금씩 벗어나 다가오는 종교개혁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광신을 통해 서구인들에게 문명의 발전을 가져오게 한 것이다. - 본문 266쪽에서

1841년 당시에 이슬람권 문명의 우월성과 종교의 광신을 인식할 수 있었던 저자라니. 역사서를 읽어 가면서 이런 생각을 종종 한다. 한 사람이 자신이 속한 시대와 사회의 틀을 뛰어넘어 사고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생각을. 읽던 당시에도 나를 변화시키고 일깨운 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다시 보니 책의 기본 내용 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아쉽게도, 절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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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학파의 역사세계
김응종 지음 / 아르케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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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 블로크의 <역사를 위한 변명>을 읽다가 역자분이 달아놓은 주를 읽다보니 계속 나오는 기본적인 아날학파 연구서가 바로 이 책이었는데, 품절이었다. 구립 도서관을 찾아가 보니 구비되어 있지 않았다. 중고 서점을 수배해 보니 한 곳에서 팔기는 하지만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는 게 아닌가. 오기가 생겼다. 대학에 근무하는 교직원 친구에게 부탁해서 대학 도서관에서 대출받아 끝내 읽고야 말았다. 하, 하, 하.

이 책은 아날학파를 세 개의 세대로 나누어 각각의 세대가 추구했던 역사 서술을 살펴본 책이다. 즉, 제1세대 뤼시엥 페브르와 마르크 블로크, 제2세대 페르낭 브로델, 제3세대인 조르주 뒤비, 자크 르 고프, 엠마뉘엘 르 롸 라뒤리의 저서와 역사 연구 방향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제4세대인 로제 샤르티에는 저자의 개정판인 <아날학파의 역사세계>에 실려 있고, 이 책에는 없다.  위 학자들의 대표작을 띄엄띄엄 건성건성 읽은 내 입장에서는 전체적 흐름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어서 좋았다. 또 혼자 공부해서는 절대 몰랐을 이들의 한계라든가, 다른 역사학자들의 비판이나 다른 나라 사학계 비교까지 읽게 될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이들 아날학파 저서들을 문학서처럼 그 문장 표현에 감동받으며 읽는 편인데, 바로 이 점이 이들이 비판받는 한 요소이기도 한단다.

아날학파라는 이름은 제 1세대 학자인  뤼시엥 페브르와 마르크 블로끄가 1929년 아날 지<사회 경제사 연보 Annales d'Histoire economique et sociale >를 창간하면서 붙여진 명칭이다. 이들은 독일 랑케의 전통적인 실증주의적 역사학, 정치사 위주 서술에 대한 반발로 시작하여 인문지리, 사회학 등을  역사 서술에 접목한다. 이들은 역사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며 현재 사회 속에서 살아있는 인간을 위한 현재사 , 문제사, 종합사를 강조한다. 즉, 페브르는 <필립 2세와 프랑쉬 꽁떼>란 저술에서 기존의  연대기적 서술을 사용하지 않고  특정 시대와 지방에서의 정치, 종교, 경제 사이의 관계 파악하여 문제사를, 블로끄는 <봉건사회>란 저술에서 9세기 이후 아랍, 노르만 침입의 혼란기로부터 봉건적 사회질서 탄생하였음을 물질적 도덕적 지적 요인을 살펴 봉건 사회 구조의 제반 측면을 총체적으로 재생시키는 전체사를 서술한 것이다.

저자는 2세대 브로델의 서술에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브로델의 대표작인 <필립 2세 시절의 지중해>에서 그는 장기 지속의 시간에서 움직이지 않는 구조와 서서히 움직이는 국면(꽁종뛰르)를 논한다. 이 저술은 아날학파의 일종의 교과서이며 프랑스 외에서도 성공한 현대의 고전이 되었다. 같은 저자의<물질문명과 자본주의>는 역사학자가 쓴 경제사인셈인데, 15-18세기까지의 세계 경제사를 인구와 시간, 의복, 주거, 기술, 화페, 도시 등 물질적 도구를 사용하여 경제 활동 영역을 파악한 방대한 저술이다. 이 학자, 브로델에 이르러 아날은  하나의 학파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저자의 서술에 따르면 브로델의 특징은 장기지속적인 지리적 시간으로 역사 구조를 파악한 점이지만 물질주의, 결정주의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고 한다. 그래도 나는 프랑스를 하나의 국가로 묶이게 만든 계기는 잔 다르크나 프랑스혁명이 아니라 철도 혁명과 국민학교의 보급이라고 <프랑스의 아이덴티티>에서 한 그의 말에 공감한다.

70년대 이후 아날을 계승한 제 3세대 소장 학자들은 레비 스트로스의 구조 인류학의 영향을 받아 인류학적 역사 서술을 시작한다. 르 롸 라뒤리는 <랑그독의 농민들>에서 프랑스 남부 지방의 오래된 토지 대장을 분석하여 자본주의 발생의 한 측면을 규명했다.  쟈크 르 로프는 <연옥의 탄생>에서 연옥의 신학적 차원 존재여부가 아니라 연옥이 일상 사람들 속에 들어온 사회사적 문제, 도시민 등장등을 연구하였다. 추상적 문제를 계량적으로 확인하여 증명하려는 과학적 욕구는 보벨의 유언장 연구로 나타난다. 그의 <18세기 프로방스 지방의 바로크적 신앙심과 비기독교화>는 혁명 전부터 이미 종교적 무관심이 서서히 진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계량적으로 확인(장례식 때 사용된 초의 총 무게가 1770년까지 증가하다가 이후 감소!)한다.  저자는 그외 아이에스의 심성사,  뒤비의 <삼위격 - 봉건제의 상상세계><결혼>도 살펴 준다. 

이렇듯 아날학파의 각 세대는 인간 중심의 역사라는 기본 정신에 충실하면서 전 세대가 누락한 내용을 다시 강조, 세대간 갈등과 균형이란 측면에서 발달해온 역사 학파인 셈이다. 1세대는 독일 정치사 반발로 시작하였으며, 2세대 브로델의 경우 페브르가 누락한 부분 보완, 제 3세대는 물질주의적 브로델에 반발하는 식으로 말이다. 저자는 아날학파의 새로운 역사에 대한 도전을 이렇게 정리한다.  현대에 들어와 그외 지역의 새로운 역사 운동은 개인적이거나 철학적인 성격을 띄는데 프랑스에서는 집단적 장기적인 운동으로 발전한 데에 차이가 있다고. 

이상, 아는 바가 없어 책 내용 요약 위주로 쓴, 비겁한 리뷰다. 평소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이렇게 요약이라도 해 놓아야 이 책의 개정판인 <아날학파의 역사세계>를 읽었을 때 내가 발전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으니 말이다. 쩝.

전체적으로 안 읽은 책이 많아 그 많은 내용이 등장하는 흐름을 따라 가기도 벅찼다. 한편으로는 내가 혼자 읽은 책들(특히 중세사)이 점점이 엮어져 뭔가 의미있게 재구성되는 듯한 착각이 들어 뿌듯하기도 했다.  읽고 난 후인 지금 느낌은 좋은 선생님께 개론 강의를 들은 것 같다. 주경철씨의 <역사의 기억 역사의 상상>과 더불어 계속 공부하며 참고하고 싶은데 절판이어서 아쉽다. 뭐 나머지 빈 부분은 뭐 내가 독학하면서 채워야겠지? 나도 정말 내가 커서 뭐가 될지 궁금하다. 오래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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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다르크 한길로로로 27
헤르베르트 네테 / 한길사 / 199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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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읽었던 잔 다르크 전기는 너무 '애국 소녀' 혹은 '성 처녀'적인 면에 촛점을 두고 그녀를 이야기했다. 이번에 읽은 잔 다르크 전기는 여타의 가치 판단이나 개입 없이 객관적 자료만을 의지하여  그녀의 출생에서 죽음까지, 그리고 사후에 일어난 일까지 서술하고 있어 마음에 든다.

그녀, 잔 다르크는 일단 1431년 마녀란 죄목으로 화형당한다. 1455년 파리의 노트르남 대성당에서 복권 재판이 열린다. 그리고 사후 끊임없이 잔 다르크가 사형당하지 않았다거나 사생아였다거나 하는 황색 저널리즘적 주장이 출간된다. 결국 그녀는 세 번  재판받은 셈이다.

모든 것을 다 떠나서, 시대별로 각 측의 입장별로 잔 다르크가 '소비'되는 방식에 나는 관심이 갔다. 잔 다르크가 승전할 때 그녀에게서 프랑스인은 성녀를, 영국인은 마녀를 동시에 본다. 양 측 모두 신이 자신들의 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잔 다르크가 패전하고 정치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처할 때에 프랑스 왕은 그녀를 외면한다. 그러나 그녀 사후 프랑스군이 루앙을 회복하자 그녀 역시 복권된다. 1870년 이후 잔은 전투적 국가주의의 상징이 되며 1차 세계대전 기간동안에는 국수주의자들에게 이용당한다. 1920년에는 가톨릭 성인이 되어 그녀의 시성식이 거행된다. 이렇게 한 인간이 어떻게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오해되고 각색되었는지, 한 소녀의 열정이 어떻게 당시의 집단적 정치적 종교적 분위기에 이용되었는지를 목격하는 것은 소름끼치는 일이었다. 난, 무섭다.
 
주의 : 당시 프랑스를 별개의 3개 나라로 볼 것. 프랑스, 브르고뉴 공국, 영국. 그래야 브르고뉴 군에 포로로 잡힌 잔이 1만 프랑의 몸값에 영국군에게 넘겨진 것이 이해가 간다. 또 당시 중세인들의 심성을 이해할 것. 그녀가 환영을 보고 계시음성을 들은 것 자체가 이단이란 것이 아니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있는 것이었고, 다만 그 음성이 누구의 것인가가 중요했다. 또 렝스에가서 대관식을 해야만 했던 이유, 쉴러의 낭만주의 희곡 <오를레앙의 처녀>, 마녀 재판 과정, 심지어 죄목 중 하나가 남장을 했다는 것,,, 등등을 살펴 보자. (이 문단은 혼잣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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