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학파의 역사세계
김응종 지음 / 아르케 / 2001년 4월
평점 :
품절


마르크 블로크의 <역사를 위한 변명>을 읽다가 역자분이 달아놓은 주를 읽다보니 계속 나오는 기본적인 아날학파 연구서가 바로 이 책이었는데, 품절이었다. 구립 도서관을 찾아가 보니 구비되어 있지 않았다. 중고 서점을 수배해 보니 한 곳에서 팔기는 하지만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는 게 아닌가. 오기가 생겼다. 대학에 근무하는 교직원 친구에게 부탁해서 대학 도서관에서 대출받아 끝내 읽고야 말았다. 하, 하, 하.

이 책은 아날학파를 세 개의 세대로 나누어 각각의 세대가 추구했던 역사 서술을 살펴본 책이다. 즉, 제1세대 뤼시엥 페브르와 마르크 블로크, 제2세대 페르낭 브로델, 제3세대인 조르주 뒤비, 자크 르 고프, 엠마뉘엘 르 롸 라뒤리의 저서와 역사 연구 방향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제4세대인 로제 샤르티에는 저자의 개정판인 <아날학파의 역사세계>에 실려 있고, 이 책에는 없다.  위 학자들의 대표작을 띄엄띄엄 건성건성 읽은 내 입장에서는 전체적 흐름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어서 좋았다. 또 혼자 공부해서는 절대 몰랐을 이들의 한계라든가, 다른 역사학자들의 비판이나 다른 나라 사학계 비교까지 읽게 될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이들 아날학파 저서들을 문학서처럼 그 문장 표현에 감동받으며 읽는 편인데, 바로 이 점이 이들이 비판받는 한 요소이기도 한단다.

아날학파라는 이름은 제 1세대 학자인  뤼시엥 페브르와 마르크 블로끄가 1929년 아날 지<사회 경제사 연보 Annales d'Histoire economique et sociale >를 창간하면서 붙여진 명칭이다. 이들은 독일 랑케의 전통적인 실증주의적 역사학, 정치사 위주 서술에 대한 반발로 시작하여 인문지리, 사회학 등을  역사 서술에 접목한다. 이들은 역사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며 현재 사회 속에서 살아있는 인간을 위한 현재사 , 문제사, 종합사를 강조한다. 즉, 페브르는 <필립 2세와 프랑쉬 꽁떼>란 저술에서 기존의  연대기적 서술을 사용하지 않고  특정 시대와 지방에서의 정치, 종교, 경제 사이의 관계 파악하여 문제사를, 블로끄는 <봉건사회>란 저술에서 9세기 이후 아랍, 노르만 침입의 혼란기로부터 봉건적 사회질서 탄생하였음을 물질적 도덕적 지적 요인을 살펴 봉건 사회 구조의 제반 측면을 총체적으로 재생시키는 전체사를 서술한 것이다.

저자는 2세대 브로델의 서술에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브로델의 대표작인 <필립 2세 시절의 지중해>에서 그는 장기 지속의 시간에서 움직이지 않는 구조와 서서히 움직이는 국면(꽁종뛰르)를 논한다. 이 저술은 아날학파의 일종의 교과서이며 프랑스 외에서도 성공한 현대의 고전이 되었다. 같은 저자의<물질문명과 자본주의>는 역사학자가 쓴 경제사인셈인데, 15-18세기까지의 세계 경제사를 인구와 시간, 의복, 주거, 기술, 화페, 도시 등 물질적 도구를 사용하여 경제 활동 영역을 파악한 방대한 저술이다. 이 학자, 브로델에 이르러 아날은  하나의 학파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저자의 서술에 따르면 브로델의 특징은 장기지속적인 지리적 시간으로 역사 구조를 파악한 점이지만 물질주의, 결정주의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고 한다. 그래도 나는 프랑스를 하나의 국가로 묶이게 만든 계기는 잔 다르크나 프랑스혁명이 아니라 철도 혁명과 국민학교의 보급이라고 <프랑스의 아이덴티티>에서 한 그의 말에 공감한다.

70년대 이후 아날을 계승한 제 3세대 소장 학자들은 레비 스트로스의 구조 인류학의 영향을 받아 인류학적 역사 서술을 시작한다. 르 롸 라뒤리는 <랑그독의 농민들>에서 프랑스 남부 지방의 오래된 토지 대장을 분석하여 자본주의 발생의 한 측면을 규명했다.  쟈크 르 로프는 <연옥의 탄생>에서 연옥의 신학적 차원 존재여부가 아니라 연옥이 일상 사람들 속에 들어온 사회사적 문제, 도시민 등장등을 연구하였다. 추상적 문제를 계량적으로 확인하여 증명하려는 과학적 욕구는 보벨의 유언장 연구로 나타난다. 그의 <18세기 프로방스 지방의 바로크적 신앙심과 비기독교화>는 혁명 전부터 이미 종교적 무관심이 서서히 진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계량적으로 확인(장례식 때 사용된 초의 총 무게가 1770년까지 증가하다가 이후 감소!)한다.  저자는 그외 아이에스의 심성사,  뒤비의 <삼위격 - 봉건제의 상상세계><결혼>도 살펴 준다. 

이렇듯 아날학파의 각 세대는 인간 중심의 역사라는 기본 정신에 충실하면서 전 세대가 누락한 내용을 다시 강조, 세대간 갈등과 균형이란 측면에서 발달해온 역사 학파인 셈이다. 1세대는 독일 정치사 반발로 시작하였으며, 2세대 브로델의 경우 페브르가 누락한 부분 보완, 제 3세대는 물질주의적 브로델에 반발하는 식으로 말이다. 저자는 아날학파의 새로운 역사에 대한 도전을 이렇게 정리한다.  현대에 들어와 그외 지역의 새로운 역사 운동은 개인적이거나 철학적인 성격을 띄는데 프랑스에서는 집단적 장기적인 운동으로 발전한 데에 차이가 있다고. 

이상, 아는 바가 없어 책 내용 요약 위주로 쓴, 비겁한 리뷰다. 평소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이렇게 요약이라도 해 놓아야 이 책의 개정판인 <아날학파의 역사세계>를 읽었을 때 내가 발전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으니 말이다. 쩝.

전체적으로 안 읽은 책이 많아 그 많은 내용이 등장하는 흐름을 따라 가기도 벅찼다. 한편으로는 내가 혼자 읽은 책들(특히 중세사)이 점점이 엮어져 뭔가 의미있게 재구성되는 듯한 착각이 들어 뿌듯하기도 했다.  읽고 난 후인 지금 느낌은 좋은 선생님께 개론 강의를 들은 것 같다. 주경철씨의 <역사의 기억 역사의 상상>과 더불어 계속 공부하며 참고하고 싶은데 절판이어서 아쉽다. 뭐 나머지 빈 부분은 뭐 내가 독학하면서 채워야겠지? 나도 정말 내가 커서 뭐가 될지 궁금하다. 오래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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