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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 - 하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9년 7월
평점 :
우선, 나는 시오노 나나미 작가의 열성팬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이 저자의 대표작 <로마인 이야기> 전 15권을 포함, 거의 40권에 이르는 저작들을 다 읽고, 현재 소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시오노의 전작들을 다 읽어 보지도 않고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쓴 평이라는 태클은 미리 정중히 사양한다.(반대로 이 시리즈 상,하를 역시 시오노,소리가 절로 나오게 만드는 명작이라는 생각을 가진 분이 있으시다면 내가 묻고 싶다, 과연 시오노의 전작을 다 읽어 보았습니까,라고)
상권을 읽으면서, 저자 자신의 전작에 이미 쓴 이야기들을 연대순으로 재배열하고만 있는 듯한 느낌에 나는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하권까지 읽으면 저자의 말대로 '나무 아닌 숲'이 보이려나, 하고 끝까지 읽었다.
하지만, 하권까지 다 읽은 지금, 여전히 당혹스럽다. 단언하건대, 수필집까지 포함한 시오노의 전체 작품들 중에 이 책이 가장 수준낮은 작품이다.
일단, 이 책은 이 책만을 읽으려는 독자도, 전작을 다 읽은 독자도 만족시키지 못한다. 기존 시오노의 <바다의 도시 이야기> <전쟁3부작> 등을 기본으로 읽지 않은 독자라면 전체 연대순으로 사건만 배열하는 이 책의 서술상, 뭔 소리인지 모르고 책장을 넘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기존 시오노의 전작을 다 읽은 독자라면 새로운 이야기 없이(몰타섬 공방전 부분만 새롭다) 그냥 아는 사실을 재확인시키는 정도의 독서체험을 할 뿐이다. 그런데, 그런 체험은 굳이 작가가 나서서 해 줄 것이 아니라 독자가 자신의 머릿속에서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자, 그렇다면 어차피 고급 독자라면 비단 시오노 전작이 아니라 다른 서적을 통해 이 지역 역사를 다 알고 있을 테니, 역사 사실 생략이나 재확인 문제는 한 쪽으로 밀쳐 놓고 더 중요한 이야기를 해 보자. 이 두 권의 시리즈를 다 읽고 나서, 전체 '숲'이라고 작가가 내세우는 것이 보이는가? 역사 사실의 재해석과 작가의 주관에서 신선한 '무엇'이 느껴지는가? 내가 시오노의 열성팬이었던 이유는 역사사실을 작가만의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력으로 재해석하여 보여주는 그 능력 때문이었다. 이번 저작에서도 그런 점이 느껴지는가?
불행히도, 나는 그런 점을 보지 못했다.
로마제국 멸망후 7세기부터 18세기까지 천 년 넘는 세월의 지중해 역사를 북아프리카에서 유럽쪽을 습격하는 이슬람 해적과의 관계에서 서술하는 시점은 일단 신선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지중해 세계의 평화란 문제를 강대제국의 안보의 부재라는 측면에서 전체를 조망하는 시선을 느꼈다. 결국 18세기에 들어 지중해의 해적문제는 나폴레옹의 출현과 프랑스, 영국의 북아프리카 침략으로 해결되지 않는가.
다음으로, 왜 북아프리카의 이슬람인들이 해적 행위로 생존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충분한 해설이 없다. 북아프리카의 자연환경과 농업의 문제 등에 대한 설명을, 2권이라는 분량상 별도의 한 장으로 구성해서 서술해도 좋을텐데 말이다. 이 점, 이탈리아 해양도시국가들을 다룬 다른 저작의 경우, 그 발생 배경설명을 충분히 한 점과 비교된다.
그리고 시오노 나나미 특유의 인간성에 대한 명쾌한 해석의 펜이 많이 무디어 졌다. 하권에서 제일 중요한 인물로 볼 수 있는, '안드레아 도리아'라는 매력적 인물을 별로 생생히 살려 내지 못했다. '투르구트'를 풀어준 대목은 절로 미소짓게 만들었지만, 다른 책에서 '안드레아 그리티'나 '장 파리소 라 발레타'를 그려낸 실력에 비해 많이 아쉽다. 대체로 이번의 인물분석은 다 밋밋하다.
아쉽다.
차라리 십자군 전쟁이라든가 터키의 시각에서 본 지중해를 다루었다면 기존 저작과 겹치지 않고 새로운 시각으로 서술할 수 있었을 텐데. 이 책은 거의 <바다의 도시 이야기>와 연대도, 활동 무대도, 역사사건도 겹친다.
그리고 저자의 사관도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