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르센 자서전 - 내 인생의 동화, 개정판
한스 크리스찬 안데르센 지음, 이경식 옮김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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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 공주><성냥팔이 소녀>로 유명한 안데르센의 자서전이다. 어릴적 얇은 위인전으로 안데르센의 삶을 접하고, <미운 오리 새끼>는 바로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쓴 것이라고 생각했다. 안데르센, 하면 불우한 어린 시절, 귀족 위주 문단의 차별대우를 받으며 세상을 떠도는 '즉흥시인'의 이미지가 남았다.

 

좀 커서 생각해보니, 그의 동화에 나오는 여성 인물(반인반어 포함)들이 답답하고 안쓰러웠다. 게다가 <빨간 구두>는 마치 일베 회원이 쓴 것 같지 않은가? 혹시, 안데르센에게 여성에 대한 피해의식 같은 게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두꺼운 책을 찾아 읽었다.

 

일단, <빨간 구두>창작과 관련해 주목할만한 부분은 이하의 내용. 

 

어떤 나이 든 여자 재단사가 아버지가 입던 코트를 줄여 주었다. 교리문답반 졸업식 때 입을 옷이었다. 내가 입어본 옷 중에서 제일 멋진 옷이었다. 그리고 난생 처음으로 구두를 사서 신었다. 하늘을 날듯이 기뻤다. 사람들이 새 구두를 알아보지 못할까봐 그게 제일 걱정이었다. 그래서 바지를 구두 안으로 우겨넣었다. 그런 차림으로 교회 안을 뚜벅뚜벅 걸었다. 발밑에서 찌그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게 좋았다. 그래야 교회에 모인 사람들이 내 새 구두를 알아볼 테니까,,,, 하지만 기대와 달리 사람들은 내 구두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구두에 신경을 쓴 만큼 하나님에게도 신경을 썼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던 내 얉은 신앙심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하나님에게 기도했다. 내 죄를 용서해달라고 진심으로 빌었다. 그런 다음에도 구두에 대한 아쉬움과 뿌듯함은 지워지지 않았다.

- 본문 57 ~ 58쪽에서 인용

 

여성의 허영을 경계하는<빨간 구두>는  결국 작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왜 소년에서 소녀로 성별을 바꿨을까? 왜? 자서전 전체에는 자신을 경멸하는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도, 자신에게 친절한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특별히 안데르센이 여성 혐오자였다는 증거는 안 보인다.

 

아뭏든, 이 자서전은 '내 작품의 주석서가 되길 바란다'는 안데르센의 소망 그대로의 역할을 한다. 그의 일생 이야기와 작품 창작 배경 이야기가 같이 서술되어 있다. 우리에게는 동화 작가로 유명하지만 그는 사실 시인이고 극작가였다. 1835년 30세 때부터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동화를 발표했는데 그게 워낙 세

계적으로 유명해졌을 뿐이다.

 

1805년 덴마크 오덴세에서 가난한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1세때 아버지를 여읜다. 13세때 어머니는 재혼한다. 그는 14세때 무일푼으로 배우가 되고자 코펜하겐으로 간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독지가들의 도움으로 문법학교, 코펜하겐 대학을 다니게 되고,,,, 이후 극작가, 시인, 동화작가로 점점 성공한다. 그러나 그는 고국 덴마크가 아닌 나라에서 더 유명했고 더 대접받았다. 고국 사람들은 그를 근본 없고 배운 것 없는 천한 벼락 출세자로 보았다. 그는 자신의 성공을 기뻐하면서도 평생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다.  자서전 곳곳에도 그런 불안함과 억울함이 드러나있다. 읽다보면,,,, 안쓰러울 정도다. 내가 보기에, 그는 평생 못생긴 오리이고 성냥을 쥐고 맨발로 추운 거리를 떠도는 아이였다. 평생 독신으로 여행을 다니다가 1875년 친구인 멜키오르 부인의 별장에서 사망하기까지.

  

이 책은 거의 1Kg에 가깝다. 3권의 자서전을 한 권에 묶었기 때문이다. 41세이던 1846년에 쓴 첫 자서전이 1부,  50세이던 1855년에 쓴 <내 인생 이야기>란 자서전이 2부,  1869년 64세에 쓴  세번째 자서전이 3부이다. 문체는 유려하다. 19세기 유럽의 정세, 풍물, 생활 묘사가 자세하여 슈테판 츠바이크의 <어제의 세계>를 읽을 때처럼 사료의 가치도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특히 그가 극작가였기에 당시 대중 오락의 총아였던 연극,오페라와 관련한 정보가 많다. 희곡 쓰기부터 연극 제작 과정, 오페라 초연 때의 현장 반응 등등,,, 또 그가 평생 여행을 즐겼기에 위고, 디킨슨, 그림 형제, 바그너 등등 여행하면서 만난 유럽의 유명 인사들에 대한 에피소드 읽는 것도 재미있다. 어찌보면 이 자서전이 그랜드 투어 기록 같아 보이기도. 

 

전체적으로 책 읽는 내내 마음이 쓸쓸했다. 내게는 평생 열등감과 결핍감에 시달리던 한 소년이 끊임없이 남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평가받을지를 두려워하며 자기 변명하는 이야기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추운 마음이 너무도 이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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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냐 추녀냐 - 문화 마찰의 최전선인 통역 현장 이야기 지식여행자 3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마음산책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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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하라 마리 저서 총 16권 중에 10번째로 읽은 책. 그러나 이 책은 저자의 첫 책이다. 그전까지는 러일 동시통역사로만 유명하던 저자는 이 책을 쓴 이후 본격적으로 에세이스트의 길을 걸었다. 그래서인지 이 첫 책은 저자가 겪은 통역 현장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통역과 번역, 모국어와 언어 감각, 외국어 수련 등에 대한 정보를 얻고 풍부한 경험에 근거한 저자의 견해를 읽는 맛은 이 책의 기본. 게다가 요네하라 마리 전작을 읽으며 저자만의 글쓰기 방식과 개성표현을 "공부"하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저자의 글쓰기 과정의 초기를 볼 수 있어 좋았다. 말하자면 통역사에서 에세이스트로, 그 과정에 있는 마리 여사의 모습이 보인다는 것. (사실, 이 책은 구성이라든가 문장, 에피소드 사용하는 방식 같은 점이 이후 에세이보다 좀 거친 편이다. 그 점도 좋다! 글쓰기 초보자들에게 용기를 주니까!)

 

또 하나의 수확. 그동안 이 저자의 책을 10권 읽으면서 박학잡학스런 저자의 지식과 호기심의 원동력이 궁금했다. 이 책을 보니, 저자는 자신에게 통역 의뢰가 오면 그 분야의 러,일 용어를 외우고 관련 책을 찾아 읽고,,, 엄청나게 공부한다고 한다. 아아, 기한이 있는, 이런 공부가 비록 벼락치기라도 평생 긴장감있게 쌓인다면,,, 대단한 재산이 될 것이다. 혼자 읽고 글쓰며 마냥 늘어지는 전업작가들보다 스트레스는 훨씬 많이 받겠지만.


책 제목이 좀 특이하다. <인간 수컷은 필요없어>와 더불어 괜히 읽기도 전에 책 내용에 편견을 갖게 만들수도 있는 제목이다. 원제는  ‘부정한 미녀인가 정숙한 추녀인가’라고 한다. 이 제목 관련한 이야기는 아래와 같다.

 

원문에 충실한지 아닌지, 원 발언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는지 아닌지 하는 좌표축으로 정숙함을 측정하고, 원문을 잘못 전달하고 있거나 원문에 어긋난 경우에는 부정하다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 역문의 좋은 정도, 역문이 얼마나 정돈되어 있는지, 편안하게 들리는지를 여자의 용모에 비유하여, 정돈된 경우에는 미녀, 아무리 봐도 번역한 티가 나면서 어색한 역문일 경우에는 추녀라고 분류하면 네 가지 조합이 생기는데 다음과 같다. 정숙한 미녀, 부정한 미녀, 정숙한 추녀, 부정한 추녀.

- 143 ~144쪽에서 인용

 

여성혐오적 냄새가 솔솔 풍겨서 의외이지만, 마리 여사가 그렇게 쓴 이유에도 역사적 배경이 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에  ‘번역은 여자와 비슷하다. 충실할 때에는 살림 내를 풍기고 아름다울 때에는 부정하다’라는 격언이 있다고 한다. 또 17세기 프랑스의 학자인 메나주가 아름답기로 이름이 높았던 저명한 번역가의 문장을 가리켜  “내가 투르에서 깊이 사랑했던 여인을 연상시킨다. 아름답지만 부정한 여인이었다”라고 비평한 사실도 있다고 한다. 

 

이후, 부정한 미녀Belles Infieles라는 프랑스어는 ‘아름답지만 원문에 충실하지 못한 번역’을 가리키게 되었다고 한다.

- 145쪽에서 인용


 

재미있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책의 윗 부분 역시 '부정한 미녀'이다. 책에 있는 'Infieles'는 d가 빠져있다. ' infidèles'가 맞다. 정확한 표기는 프랑스어 정관사와 악상그라브까지 넣어서  'Les belles infidèles' 여야 한다. 뭐,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사실, 이런 지적하는 내가 좀 별나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재미있지 않은가, 부정한 미녀에다가 번역 통역 오역 말하는 부분에 잘못된 표기-또 부정한 미녀-가 있다는 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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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민담 속에 왜 그렇게 왕자와 공주가 많이 나오는가? 그 이유는 왕자 공주가 실제 많았기 때문이에요... 17, 18세기만 해도 독일은 한 300개 정도의 왕국이었어요. 그 중에서도 작은 나라 왕은 요즘 치면 그냥 이장 정도쯤 되는거에요. 그렇게 많으니까 왕자가 별 게 아니었던 거에요."


"왜 그렇게 백마탄 왕자가 떠돌아다니는가? 실제로 첫째가 아닌 (물려받을 땅이 없는) 왕자들이 말을 타고 다니면서 어디 '아들없는 왕국'을 찾아다닌 거에요. '겨울왕국'에 등장하는 왕자도 그런 상황인 겁니다."

 

- 이동진의 빨간 책방 127회 중에 제가 쓴 책 이야기가 잠깐 나왔다고 합니다.

- 알려주신 유부만두님,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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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빠 2015-06-28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책 소개 하시네요

자유도비 2015-07-01 11:01   좋아요 0 | URL
<전을 범하다>도 <백마 탄 왕자 ~ >도 다 재미있습니다.
 
물의 가족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춘미 옮김 / 사과나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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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야마 겐지의 최근 에세이를 주욱 읽고 있다가 신작가 표절 뉴스때문에 생각나서 다시 읽었다.

 

내가 읽은 <물의 가족>은 1994년 12월에 현대문학에서 김춘미 선생 번역으로 나온 초판본이다. 혹시나, 이 리뷰를 읽고 구입하고픈 글벗들이 계실까봐 편의상 이 책에다 리뷰를 붙인다.

 

소설 내용에 대해서는 요약해 소개할 도리가 없다. 1인칭 화자인 나는 등장하자마자 죽는다. 나는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물의 고장인 고향을 떠돌며 가족과 집을 기웃거리다가,,, 구원받는다. 이게 전부이다. 별 스토리는 없다. 하지만 묘사가 대단하여 산문시같은 느낌을 주어서 한 행 한 행 묵묵히 음미하며 읽어내려가야한다. 읽다보면 내 입 안에서 물비린내가 느껴지고, 내 몸에 물이끼가 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압도적인 문장이다. 소설은 문학이고, 문학은 '학문'할 때 쓰는 學자가 붙는다는 의미에서, 정말 문학 읽는 맛이 나는 소설이다.

 

이 소설의 첫 문장은 '물기척이 심상치않다'이다. 이 강렬한 문장. 이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20년전에 처음 읽었을 때에는 귀기까지 느껴져 밤에 읽어내려가기가 무서웠는데, 씩씩한 대한민국의 아줌마가 된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다. 뭐 내가 둔해졌다기보다, 나이 먹은 덕분에 내 정서가 좀 안정되었나 싶다.

 

 

 

 

- 내가 가진 1994년 판본 속표지에 실린 마루야마 겐지 사진.

요즘 나온 마루야마 겐지 책에는 머리 빡빡 밀고 눈 부릅뜬 노년 사진만 있기에 친구분들께 이 사진을 보여주고 싶어서 리뷰에 사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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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빠 2015-07-03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덕분에 겐지라는 작가 알게되었네요

자유도비 2015-07-04 21:46   좋아요 0 | URL
이 분, 소설과 에세이가 다 독특해요.
 
설탕, 세계를 바꾸다 - 마법, 향신료, 노예, 자유, 과학이 얽힌 세계사
마크 애론슨.마리나 부드호스 지음, 설배환 옮김 / 검둥소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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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관련한 역사서들 중에, 나는 이 책이 가장 읽기 편했다. <설탕 커피 그리고 폭력><설탕과 권력>보다 설탕 자체의 역사에 집중한 서술이어서 읽기 깔끔하다.

 

책은 설탕의 단맛을 추구하는 인간의 역사에서 시작한다. 2부, 3부로 가면 사탕수수 플랜테이션과 노예제, 아이티 혁명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온다. 미국과 프랑스의 혁명 뿐만 아니라 설탕 덕분에 맥주 대신 홍차를 마시게 된 영국 노동자들과 산업혁명의 관계 이야기도 나온다. 4부에서는 노예제 폐지 이후 설탕 생산에 투입된 계약 노동자 문제를 다룬다. 묘하게, 저자들의 가족사와도 얽힌다.

 

이 책의 최대 장점은 서인도제도 사탕수수 플랜테이션과 노예제의 역사를 고발한 점이다. 더불어서 그 역사가 아이티 독립혁명과 이후 역사에 미친 영향도 잘 보여준다.

 

신세계로 아프리카인들을 보낸 노예제를 이해하기 위해서 여러분은 설탕 농장의 사망률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는 종종 노예제를 미국의 특정한 문제로 여기곤 한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 보낸 노예의 4퍼센트만이 북아메리카로 보내졌다. 이는 노예 가운데 96퍼센트가 카리브 해와 브라질, 여타 남아메리카로 갔고 대부분 설탕 관련 노동에 종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아메리카의 노예 인구는 부모가 아이를 가질 수 있을 만큼 장수하면서 점차 증가했다. 노예 약 50만 명이 이곳으로 보내졌고 노예해방 당시 아프리카게 미국 노예는 400만 명이 있었다. 그러나 설탕 섬들에서는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아프리카에서 건너왔지만 해방 당시 겨우 67만 명이 있었다. 혹독한 노동량 때문에 설탕은 일종의 살인마였다. 이 모든 죽음과 이 모든 무자비함과 이 모든 학대는 단 한 가지 목적, 곧 "새하얀 금"을 생산하기 위한 것이었다.

- 본문 78쪽에서 인용

 

위의 인용처럼, 카리브해 사탕수수 농장의 노동조건은 가혹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이티 혁명을 가능하게 했다. 미국 목화 농장에서 노예로 태어난 노예들과 달리, 아이티의 노예들은 높은 사망률 때문에 아프리카에서 최근 도착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들 중에는 고국에서 전사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부분의 연관성도 볼만했고, 아이티 독립 이후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이 쿠바로, 미국 남부로, 하와이로 이전해감에 따라 아프리카인 대신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 인도인 계약 노동자들이 현대의 노예로 사탕 수수 농장에서 일하게 된 맥락도 책에 잘 서술되어 있다.

 

책 괜찮다.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가지 힘>같은 식으로, 커피나 차의 역사를 다루면서 서구 제국주의 진출사 위주로만 서술하는 후진 책이 아니다. 얇지만 핵심을 올바르게 다루고 있기에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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