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게 된 계기? 숨길 게 뭐 있나. 야하다기에 찾아 읽었다. 언젠가는 고급지면서 관능적인
문체로 <여성을 위한 19금 세계사> 같은 에로틱한 책을 한 권 써 보고 싶기에, 공부 삼아 읽은 거다. (믿거나 말거나죠
^^)
저자인 다나베 세이코는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로 유명한 일본의 국민 작가란다. 이
책에는 자신의 남편을 모델로 한 '가모카(오사카 사투리로 잡아먹겠다는 뜻이라 한다) 아저씨'와 남녀간의 성에 대해 격의없는 대화를 나누는
설정으로 써서 연재한 에세이가 실려 있다.
역시, 성(性)스런 책인지라 책장이 빨리 넘어간다. 성자(田邊 聖子, 다나베 세이코)분이 쓰신 성담론이라니,
일단 웃기지 않은가. 만담가처럼 느물느물 상대와 주고 받고 치고 빠지는 남녀의 대화를 객석에서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가모카 아저씨가
말하는 대목을 읽으면 새롭다. 이건 뭐 여자인 내가 상상도 못하는 부분이 막 튀어나오는데,,, 아아, 난 아직 모르는게 너무 많구나, 더
공부해야겠구나, 야한 책을 더 읽어야겠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학구적이어서 그런겁니다. ㅋㅋ)
하지만 다 좋았던 것은 아니다. 여자의 '평생에 걸친 성욕'을 이야기하면서도 결혼을
강조한다거나 정관수술한 남자는 성적 매력이 떨어진다거나 하는 식으로, 시대에 뒤떨어진 부분도 종종 있었다. 저자분이 1920년대 생이어서
그런가. 반면, 이런 점이 소소한 역사문화에 관심이 많은 내겐 뜻밖의 수확을 얻게 해 주었다. 연배가 있으신 두 분의 경험담과
견문이기에, 이론서에서 찾아 읽을 수 없는 생생한 부분이 종종 있다. 전근대 일본의 '요바이', '침소 사퇴식'에 대한 서술 부분이 특히
그렇다. (요바이는 남성이 밤에 여성의 침소에 찾아가 성관계를 하고 날이 밝기 전에 돌아오는 것. 결혼, 약혼이나 연애 관계랑 상관없이 성관계만
목적. 침소사퇴식은 장군 혹은 영주의 부인이 서른이 넘기면 부군의 침소에 드는 것을 스스로 사양하고 첩을 추천하는 것. - 이런 거 어떻게
아냐고 묻지 마세요. 일본사나 일본 역사 소설 읽으면 많이 나옵니다. -_-)
요바이에는 기나긴 세월 동안 그것을 체험한 사람들이 생활의 지혜를 발휘해 만들어 온 '요바이
법'이라고 할 만한 룰이 엄연히 존재한다. 그런데 그 룰이 지금 엉망이 돼 버렸다. 룰이 어그러지면 요바이를 진심으로 즐길 수 없다. 지금의
일본인은 요바이를 진심으로 즐길 만한 문화적 수준에 이르지 않은 것이다.
- 189쪽에서 인용
저자는 프리섹스나 원나잇의 성행을 요바이 문화의 확대라고 보지 않는다. 마을의 여러 남자를
상대하다 처녀가 애비 모를 아이를 임신하면, 그녀가 아버지라고 지목한 남자는 무조건 그녀와 아이를 책임진다는 '요바이 룰'이 지켜지지 않기에,
남자들이 쾌락만 맛보고 여성을 이용하려 드는 이런 프리 섹스 문화가 만연한 현대 일본은 오히려 요바이 풍속이 성행하던 전근대보다 문화적 수준이
낮다고 일갈한다. 흠, 이런 시선, 멋지다.
침소를 사퇴하는 건 여자의 체면 때문이었어요. 색을 밝히는 여자라고 여겨지는 건 옛날
여자들에게 있어서 죽기보다 싫은 수치스러운 일이었으니까요. 게다가 침소를 물리는 본래 목적은 고령 출산을 피하기 위해서였대요. 책에서 봤어요.
옛날 귀족의 정부인은 머나먼 도쿄에서 온 대단한 집안 따님이 많았는데, 그런 사람들은 바람 한 번 쐬어 본 적 없이 자란지라 몸이 약한 사람이
많았고, 따라서 고령 출산을 하게 되면 죽게 될 수도 있었대요. 고귀한 가문의 따님이 시가에서 죽으면 자칫 정치 문제로도 번질 수 있었기 때문에
정성껏 모셨던 것이지요. 이게 관습이 되고 규율이 된 거랍니다. 부인들이 조신해서 침소를 물린 게 아니라고요.
- 228쪽
이런 식으로 저자는 침소 사퇴식에 대해서도 본질적인 면을 이야기한다. 본처를 몇년 상대하다가
질릴 즈음 그녀를 물리고 새 여자를 상대할 판타지에 젖어서 현대에도 침소 사퇴식이 있었으면, 하고 좋아라하는 가모카 아저씨를 말로 물리친다.
재미있다.
그런데, 40대 중년 남녀가 대화하는 형식이고, 1970년대가 배경이어서 그런지, 가모카
아저씨는 너무도 당당하게 유부남의 불륜과 성매매 경험을 말한다. 거사를 앞두고 출격 준비를 말하는 대목에서 여자인 오세이는 생리 주기 체크와
화장품 속옷 등을 말하는데 이 아저씨는 지갑과 '아내에 대한 알리바이'를 말한다. 뜻밖에 허를 찌르는 웃음을 주기는 하지만, 불쾌한 기분이
든다. 게다가, 아내를 속이고 꼬신 상대 여성에게 돈을 많이 들여 근사한 대접을 해서 분위기를 잡았는데 결정적 순간에 상대 여성이 생리
기간이라고 거부하자, 가모카 아저씨가
"그럼 그렇다고 처음부터 말했으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것 아닙니까. 이건 사기
아닌가요? 편취아닌가요?(127쪽)"뭬야? 먹고 튀겠다는 거야. 뭐야?(128쪽)"
이런 말을 하는 것에서는 아주 질렸다. 그런데 상대 여성은 매우 미안해하며 아저씨를 달래주고
있다! 나원참, 나 같으면 당장 지갑에서 그날 저녁값을 꺼내 아저씨 면전에 뿌린 다음, 하이힐을 벗어 들고 마구 패 줄텐데. 이 견공의
자제분아! 사기에 먹튀라니? 하고 소리지르면서. 아놔, 나는 이 분야의 경험과 공부 부족 때문만이 아니라 성격이 이래서 평생 관능적이고 에로틱한
책은 못 쓰겠구나!
참, 제목인 '여자는 허벅지'는 가모카 아저씨가 첫 경험을 할 때 여자의 허벅지가 상상보다
너무 두꺼워서 놀랐다는 경험담에서 유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