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 - <미움받을 용기> 기시미 이치로의 아들러 심리학 입문
기시미 이치로 지음, 박재현 옮김 / 살림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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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적으로 병이 도지는 것 같다. 왜 내가 잘 해주려고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이 나를 이렇게 대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일단 떠오르면 평생 들었던 폭언들이 벽에서 마구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럴 때는 약을 먹어야 한다. 그래서 복용한 책.

 

아들러 심리학이라지만 아들러 본인이 쓴 것은 아니고, 아들러 심리학에 대해 기시미 이치로 저자가 자기계발서 성격으로 평이하게 쓴 책이다. 쉽고 빨리 읽기 좋다. 이 저자의 다른 아들러 책은 좀 웃긴 대화식이어서 집중이 안 되는 반면 이 책은 좀더 읽기 편하다.

 

저자가 말하는 아들러 심리학은 무의식이나 트라우마를 강조하지 않는다. 문제가 '어디에서' 생겨났는가를 문제 삼는 원인론이 아닌 '어디로' 향해 가는가를 중시하는 목적론이다. 자주 나오는 예는 응석받이 아이의 경우다. 받아주는 어머니 때문에 애가 응석받이가 된 것이 아니라 아이가 응석받이가 되겠다는 목적이 있었기에 자신의 목적을 위해 부모의 반응을 이용한 결과 응석받이가 되었다는 것. 결국 인간은 자신이 의미를 부여한 세상에서 자신이 의미를 부여한 모습으로 살게 된다는 것. 그러기에 저자는 말한다. 일이라는 과제, 친구들과의 교우 과제, 사랑이라는 과제가 인생의 3대 과제인데, 인생의 과제와 맞서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과 인내를 들이부어야만 한다고. 문제는 사람들이 종종 그와 같은 과제들을 해결할 능력이 자신에게 없다고 생각하고는 인생의 과제에서 도망치려 한다는 점이라고. 그 회피의 구실로 열등 콤플렉스를 끄집어 내는 것이라고. 너무 가난했다거나, 부모님이 사이가 아주 안 좋았다거나, 이런 이유들을 들으면 사람들은 그로 인해 어떤 사람이 방황하게 되는 것을 상당 부분 인정해 주니까.

 

그러나 아들러가 보기에 그건 핑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구실을 통해 타인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속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들러는 그와 같은 구실을 '인생의 거짓말'이라고 불렀다.

- 221 ~ 223쪽에서 인용

 

혼자 있노라면 과거의 힘들었던 일이 자꾸 떠올라서 괴로운데, 그렇다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상태가 내 현실과 내 인생의 과제를 회피하기 위한 '인생의 거짓말'인 건가? 그냥 지금 내 나이가 인생을 한 번 리셋할 나이어서 그런게 아닌가? (솔직히 부모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만,,, )

 

여튼 문제가 '어디에서' 생겨났는가를 문제 삼는 원인론이 아닌 '어디로' 향해 가는가를 중시하는 목적론. 이거 하나 명심하고, 너무 자학하지도 말고 경거망동하여 상황을 악화시키지도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정도만 해도 이 책의 약효는 괜찮은셈.

 

깊이있는 심리학 이론 책은 아니다. 남에게 잘 휘둘리거나 착한 아이로 사랑받는 것이 최고의 삶이라고 길들여져서 쓸데없이 상처받고 좌절해버릇하는 사람들이 빨리 읽어보기 편한 책이다. 결국은 '미움받을 용기'를 가지고 네 삶을 살란 이야기. 말은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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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해 식문화의 역사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20
다카히라 나루미 지음, 채다인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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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놔, 정말 궁금해 미치겠다. 이 시리즈 기획하고 집필한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이런 책이 있다는 것을 알고 국내 번역해서 출간한 사람들도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이 책은 음식사를 다룬다. 그런데 통사식도 아니고 대륙별이나 문화권 별 국가별 기술이 아니라 백과사전처럼 항목별로 온갖 관련 지식을 나열한다. 저자는 이미 음식사 몇 권 읽은 독자에게 '이거까지는 몰랐죠?'하며 별로 중요하지도 않지만 다른 책에서는 결코 읽을 수 없는, 그러나 덕후들은 좋아서 자지러질만한 잡스런 지식을 불쑥불쑥 내 놓는다.  뭐 중국에서는 인육을 팔면서 '이각양(二脚羊)'이라 불렀다던가 영국인들이 초기에 커피를 마시지 않은 이유는 '커피는 남성을 불능으로 만든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라든가,,, 읽다보면 정말 웃겨 미치겠다.

 

백과사전식 구성이지만 크게 보면 흐름은 있다. 1장은 인류고대문명의 음식을 다루는데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빵과 맥주가 메인 디쉬다. 간단히 말해 빵과 액체빵. 2장은 그리스 로마의 음식을 다룬다. 3장은 중세~근대 유럽의 음식이다. 일본인 저자가 썼지만 유럽의 음식문화 중심이다. 4장에서야 일본의 음식을 다루며 중국과 한국 등 세계의 음식을 조금 다룬다.

 

이집트인들이 신전에 바치는 제물 대신 동물 모양 빵을 만들어 바쳤다든가(제갈량과 만두의 유래가 생각난다), 스파르타인들은 평상시 먹는 스프에 일부러 담즙을 넣어 쓰게 해서 먹고, 전시에는 제대로 된 음식을 먹어서 사람들은 모두 전쟁을 기다렸다든가(이것도 와신상담?), 그리고 기독교의 육식 금지 때문에 생긴 해프닝(육고기는 금지인데 물에 사는 생선은 먹어도 된다고 해서 비버 고기를 먹었단다) 등등, 기본적인 서양 음식사는 물론 다른 책에서 읽을 수 없었던 시시콜콜한 에피소드가 많아서 참 재미있다. 그렇다고 흥미 위주만은 아니고, 아래처럼 음식 문화를 통해 그 시대를 보여주기도 한다.  

 

카롤링거 왕조 시대에는 큰 실수를 저지른 자나 심약한 자는 '평생 고기 금지'라는 벌을 받았다. 이것은 '무기 소지 금지'라는 벌과 같이 내려져 귀족의 신분을 박탈한다는 의미였다.

- 118쪽

 

계급사회였던 중세에서는 사회신분에 맞는 걸 먹는 게 좋다고 하였고, 분수에 맞지 않는 걸 먹으면 몸이 나빠진다고 생각했다.

- 116쪽

 

일본 저자가 쓴 책인지라 당연히 일본 음식문화에 대한 시시콜콜한 부분도 많다. 일본 군대 식량의 역사를 말하는 대목에서 전국시대 휴대 식량인 '이모가라와라 (芋幹繩)'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이모가라와라는 고구마 줄거리를 잘라 말린 후 노끈을 엮어 된장으로 조려서 만들어 이를 허리에 감거나 노끈으로도 사용한다. 그러다가 전장에서 물에 넣어 끓이면 그대로 국과 건더기가 되어 요긴하게 먹을 수 있다고. 아마 우거지된장국?  효로간(兵糧丸) 이야기는 다른 책에서 읽어 보았는데 이모가라와라 이야기는 처음 읽었다. 흥미롭다.

 

편집이나 인쇄는 그 옛날 문방구에서 팔던 괴수대백과사전 수준인데 내용은 참 알차다. 관심있는 분이라면 한번 시간 여유 있을 때 읽어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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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 프로젝트 - 남자들만 모르는 성폭력과 새로운 페미니즘 푸른지식 그래픽로직 5
토마 마티외 지음, 맹슬기 옮김, 권김현영 외 / 푸른지식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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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페미니즘 책이다. 여성이 일상에서 겪는 성폭력 사례와 대응법, 성폭력을 목격한 주위 사람들이 그녀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만화로 풀었다. 그런데 남성 등장 인물은 전부 악어로 그려져 있다. 범죄자이건 지나가는 행인이건. 이 시도가 몹시 흥미로웠다. 책이 담고 있는 구체적 사례나 대응법 내용 자체 보다. (이 말은, 내용이 별로라는 뜻이 아니다. 책 뒤에 만화 없이 악어 캐릭터에 대한 부분을 설명한 부분에 워낙 시사점이 많았기에 하는 말)

 

이 책을 접한 프랑스의 남성 독자들은 남성들이 모두 악어로 그려진 점을 불편해했다고 한다. 악어인 남성과 좋은 남성을 구분해서 그렸어야 했다고 한다. 결국 이 말은 '나는 악어가 아니야! 나는 좋은 남성이야! 일반화하지 말라구!' 이 뜻이다. 여기에 대해 책은 일갈한다. 일상에 만연한 성폭력을 겪고 있는 여성들에게 좋은 남성이란 존재하지 않다고. 있다치더라도 그건 남성 스스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고. (속이 시원했다. )

 

왜 프랑스건 우리나라건, 여성들이 피해보는 현실보다 가해자로 취급받을지도 모르는 자신들의 억울함이 우선인 남성들이 많은 것일까? 나만 이런 점이 의아한 것이 아니었나보다. 국내 번역판인 이 책 뒤에는 여성학자 권김현영 선생님의 글이 실려 있는데, 선생님도 이 점을 언급하고 있다. 남녀학생 같이 듣는 젠더 수업에서 여성 학우들이 성폭력 경험을 증언하면 듣는 남성들이 매우 불편해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자신을 가해자 취급하고 비난하는 것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란다. 권김현영 선생님은 남학생들에게 묻는다. 왜 너는 너의 친구보다 그 친구를 모욕한 낯선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하는지를. 이런게 호모소셜 사회의 특징 중 하나인가.

 

아마, 그래서 이 책은 남성들을 악어로 그려야만 했을 것이다. 일반 남성으로 그리면 십중팔구 남성 독자들은 가해자에게 더 감정이입을 하고 별 문제의식을 갖지 못했을 확률이 놓으므로. 그들은 자신이 악어로 일반회된다는 것이 불편하다, 악어는 나쁜 남자니까, 성폭력은 나쁜 것이다,,,라는 수준의 사고에조차 이르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에.

 

뭐, 나는 남성들은 원래 여성들보다 감정이입을 못한다는 말에 속지 않는다. 그렇다면 여왕님을 불쌍히 여기며 지지하는 저 많은 내시들은 다 뭐람? 여성의 처지를 이해하고 여성이 겪는 부당함에 감정이입하지 않도록, 그렇게 사는 것이 자신들에게 편하고 이익이니까 그렇게 사회화되었을뿐이다.

 

여튼, 나는 내 친오빠나 그 옛날 사귄 남성들조차 내가 겪은 폭력을 이야기하면 내 입장에서가 아니라 나에게 폭력을 행사한 악어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 참 이상하다. (밤길에 더듬고 간 새끼 이야기하면 그러게 왜 밤늦게 돌아다녀, 이럴 때 말이다. 야근했는데 어쩌라구? ) 그런데, 그들은 그점을 지적하면 화를 내곤 한다. 절망스럽다. 도대체 몇 권의 책을 더 읽고 얼마나 더 떠들어대야 세상이 나아질까. 세상에 악어아닌 좋은 남자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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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폴란의 주말 집짓기 - 한 칸짜리 작은 집을 지으며 건축의 세계를 탐구하다
마이클 폴란 지음, 배경린 옮김, 나기운 감수 / 펜연필독약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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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동물의 딜레마>로 유명한 마이클 폴란이 집 뒤뜰에 혼자만의 집필실을 스스로 지어가는 이야기이다. 친한 건축가와 목수의 도움을 받지만 대부분 자신이 육체노동을 해서 짓는다. 책은 집짓기 순서를 따라 집터, 설계, 골조, 지붕, 창문, 마감,,, 순으로 구성된다.

 

밥을 짓다, 옷을 짓다, 집을 짓다.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의식주와 관한 노동에 쓰는 동사는 '짓다'이다. 글도 '짓다'인데, 이것 참 구미가 당기구료,하면서 뭔가 수렁에 빠진 내 글쓰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싶어 가볍게 찾아 든 책이다. 그런데 펴자마자 머리말에서부터 강력한 감동의 물결이 밀려왔다. 강적을 만났다.

 

건축가들은 이상과 현실의 경계 지대에서 일하며 아이디어의 조각들을 실제 구현 가능한 형태의 것으로 번역해 내고, 또 목수들은 뛰어난 손재주로 현실 속에 유형의 산물을 더한다.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 속에서만 겨우 통하는 창작물을 만드는 작가들에게 있어, 이런 물적 형태의 창출은 격한 질투심을 불러 일으킨다. 우리같은 글쟁이에게 '건축'이나 '목공'이라는 단어는 그저 우리의 짧고 덧없는 창조를 치장하기 위해 쓰는 허세 가득한 비유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왜 무언가를 직접 지어 볼 결심을 하게 되었느냐고 묻는다면 밤을 지새워 답을 해도 모자랄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만드는 사람' 곧 호모 파베르의 세계에 몸담아 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주 잠깐만이라도 언어라는 허상의 세계를 떠나 있고 싶은 마음 말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컴퓨터 스크린 앞에 앉아 바깥 자연 세계와는 동떨어진 채 일하고 있는 나의 추상적인 삶에 말하자면 해독제가 절실했다. 또 슬슬 중년에 접어들면서 권태기가 왔던 것 같기도 하다.

- 머리말에서 인용

  

이렇게 책 내용은 중년의 권태에 시달리는 전업 작가로서 자신에 대한 성찰이 집 짓기와 어우러진다. 미국 역사나 중세 서양 역사와 건축 관계 서술 부분의 경우, 이런 식의 접근을 좋아하는 내게 매우 고급스런 읽는 맛을 주었다. 아래, 맛뵈기 문장을 인용한다.

 

실제로 초창기 식민지 시대의 창문은 유리에 비해 나무가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높고 빛도 거의 들지 않았는데 이는 당시 사람들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반영하는 것이리고 했다. 청교도와 중세 기독교 교리에서는 실내라는 성역과 외부 세상의 불경스러움을 칼같이 구분해 왔다. 창문 너머의 세계에 그토록 많은 부정이 도사리고 있다면, 창문은 최대한 작고 잘 열리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당연지사였을 것이다.

- 368쪽 제 7장 창문 중 '창문과 투명성' 꼭지

 

집 짓는 과정와 건축에 대해 공부하는 과정을 건축 관련 책 이야기와 같이 풀어가가는 방식 자체도 흥미로웠다. 집짓기에 대한 서구의 유명 도서는 다 섭렵하고 언급한다. 집과 생활 환경과 삶의 자세에 대한 이야기도 많다. 소로우 선생이 많이 인용된다. 그렇다고 책이 지나치게 진지한 흐름으로만 일관하는 것은 아니다. 틈틈이 프랭크 로이드 등 유명 건축가들의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은근 웃기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클라이언트가 비 새는 것에 대해 항의했더니 이렇게 말했단다. "어휴, 예술 작품을 비 내리는 데 방치해 두니까 그런 거죠." 예술을 위해 불편함을 기꺼이 견딜 줄 아는 자세가 무슨 모던 건축의 전제처럼 되어 버렸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

- 353쪽 7장 창문 ' 안으로 열리는 창문'

 

저자 주변 사람들 이야기도 재미있다. 현장 작업을 돕는 육체 노동자 조와 책상에서 도면으로 일하는 건축가 찰리, 두 남자와 유치하게 기싸움하며 티격태격하는 에피소드를 읽다보면 막 웃음이 나온다. 그러다가도 또 저자는 진지해진다. '물을 막기 위해 설계자는 스스로가 물의 입장이 되어 생각을 해봐야 한다(349쪽  창문 '안으로 열리는 창문)'등 아, 하는 깨달음을 주는 문장도 곳곳에 있다. 도대체, 이 책의 정체가 뭔지 모를 정도로 매력만발!


다 읽고나니 무언가 쫓겨 부글거리던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 이 저자처럼 스스로 몸을 움직여 무언가 실제적인 것을 짓고 경험하면서 내 사고를 확장시키고 다시 내 글을 지으며 살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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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의 역사 - 근대 영국사회와 생산, 언어, 정치
이영석 지음 / 푸른역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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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사례 중심으로 공장 시스템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공장제도의 발전과 지식인의 담론, 공장 노동에 대한 국가 간섭을 기본축으로 하여 19~20세기 영국사를 정리한다. 이런 식으로 근대 영국사에 접근하다니, 읽으면서 매우 흥미로웠다. 전체적으로 좋았지만, 특히 혼자 공부하는 내겐 면공업 공장을 중심으로 산업 혁명기 공장과 19세기 전반기을 다룬 2부가 유익했다.

 

내가 나중에 다시 찾기 위해 간략하게 내용을 정리해본다. '1부 전시대의 유산'은 산업화 이전의 생산방식, 생산조직, 노동과정을 다룬다. 수공업자 사회의 장인, 직인, 도제 시스템이 잘 설명되어 있다. 16세기 이래 농촌 공업이었던 선대제도 다룬다. 

 

'2부 산업화와 공장의 원형'은 영국 산업 혁명기 면공장을 중심으로 공장의 역사를 재구성한다. 방적기에서 증기기관까지 기술 개량의 역사를  개관해준다. 면공업 공장이 시기에 따라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알 수 있다. 공장 시스템을 둘러싼 지식인의 담론을 분석하고 정부가 공장법을 제정한 배경을 설명한다. 이 부분이 흔히 아는대로, 산업 혁명기 공장 제도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는 점을 알게되어 좋았다. 1833년 공장법은 18세 미만 연소자 야간 작업 금지 및 12시간 노동일, 9세 미만 아동 고용 금지를 법에 명시하고 있어서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그 입법 의도까지 선의는 아니었다. 대자본가들은 법안에 찬성했지만 아동고용 제한 및 보호 규정 반대한 자본가의 주류는 중소 수력 공장주들이었다는 점에서 엿볼 수 있듯, 이에는 중소 공장을 몰락시키기 위한 대공장주의 잇속 계산이 깔려 있었다. 면공업 분야 방적기의 지속적인 개량과 더불어 신식 기계를 도입한 대규모 자본가의 공장에는 솜줍기나 실잇기를 맡는 아동 보조노동력이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었다. 아동 보호나 인권 차원만은 아니었다. 아, 이래서 통사로 훑어보지 말고 세부적으로 파고들어 역사서를 읽어야 하나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1833년 공장법은 대자본과 중소자본의 이해관계 대립을 암묵적으로 반영한 것일지도 모른다. 대자본가들은 공장실태에 비판적인 사회여론을 진정시키고 가능하면 그 병폐의 대부분을 중소공장주의 책임으로 돌리고 싶어 했을 것이다.

- 212쪽에서 인용

 

'3부 무거운 근대성과 공장제도'는 포디즘 체제를 다루고 있다. 20세기 초 공장은 내구소비재 산업 중심이 된다.  작업의 기계화, 부품 표준화, 일관작업 생산방식이 중요해짐에 따라  이른바 포디즘 체제가 등장했다.  이 체제는 인간의 노동을 둘러싼 시간과 공간의 재구성 초래했다. 그외 노사동거체제 확립 이전의 공장법 체제가 대공장을 대상으로 어떻게 변모해왔는가 등등 노사 관계 역사가 전개된다.

 

'4부 탈공장의 시대'에서는 정보통신 혁명, 디지털 혁명, 물류혁명이 가져온 변화를 논한다. 이러한 변화를 저자는 무거운 근대성에서 가벼운 근대성으로의 전환이라 말한다. 

 

책은 재미있고 유익했다. 산업혁명기 영국사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읽어볼만한 책이다. 저자 이영석 선생님의 영국사 책은 다 지식욕을 충족시키면서 현학적이지 않아서 읽기 편하다. 이런 흥미로운 책을 기획해 출판해내는 푸른 역사 출판사에도 관심이 간다. 뭐, 그냥, 나란 인간은 좋은 책을 읽고나면 저자와 출판사에 마냥 고마워지는, 한없이 착한 마음이 생기는 독자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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