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사례 중심으로 공장 시스템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공장제도의 발전과 지식인의 담론, 공장 노동에 대한 국가 간섭을
기본축으로 하여 19~20세기 영국사를 정리한다. 이런 식으로 근대 영국사에 접근하다니, 읽으면서 매우 흥미로웠다. 전체적으로 좋았지만, 특히
혼자 공부하는 내겐 면공업 공장을 중심으로 산업 혁명기 공장과 19세기 전반기을 다룬 2부가 유익했다.
내가 나중에 다시 찾기 위해 간략하게 내용을 정리해본다. '1부 전시대의 유산'은 산업화 이전의 생산방식, 생산조직, 노동과정을 다룬다.
수공업자 사회의 장인, 직인, 도제 시스템이 잘 설명되어 있다. 16세기 이래 농촌 공업이었던 선대제도 다룬다.
'2부 산업화와 공장의 원형'은 영국 산업 혁명기 면공장을 중심으로 공장의 역사를 재구성한다. 방적기에서 증기기관까지 기술 개량의 역사를
개관해준다. 면공업 공장이 시기에 따라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알 수 있다. 공장 시스템을 둘러싼 지식인의 담론을 분석하고 정부가 공장법을 제정한
배경을 설명한다. 이 부분이 흔히 아는대로, 산업 혁명기 공장 제도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는 점을 알게되어 좋았다. 1833년
공장법은 18세 미만 연소자 야간 작업 금지 및 12시간 노동일, 9세 미만 아동 고용 금지를 법에 명시하고 있어서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그 입법 의도까지 선의는 아니었다. 대자본가들은 법안에 찬성했지만 아동고용 제한 및 보호 규정 반대한 자본가의 주류는 중소 수력
공장주들이었다는 점에서 엿볼 수 있듯, 이에는 중소 공장을 몰락시키기 위한 대공장주의 잇속 계산이 깔려 있었다. 면공업 분야 방적기의 지속적인
개량과 더불어 신식 기계를 도입한 대규모 자본가의 공장에는 솜줍기나 실잇기를 맡는 아동 보조노동력이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었다. 아동 보호나 인권
차원만은 아니었다. 아, 이래서 통사로 훑어보지 말고 세부적으로 파고들어 역사서를 읽어야 하나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1833년 공장법은 대자본과 중소자본의 이해관계 대립을 암묵적으로 반영한 것일지도 모른다. 대자본가들은 공장실태에
비판적인 사회여론을 진정시키고 가능하면 그 병폐의 대부분을 중소공장주의 책임으로 돌리고 싶어 했을 것이다.
- 212쪽에서 인용
'3부 무거운 근대성과 공장제도'는 포디즘 체제를 다루고 있다. 20세기 초 공장은 내구소비재 산업 중심이 된다. 작업의 기계화, 부품
표준화, 일관작업 생산방식이 중요해짐에 따라 이른바 포디즘 체제가 등장했다. 이 체제는 인간의 노동을 둘러싼 시간과 공간의 재구성 초래했다.
그외 노사동거체제 확립 이전의 공장법 체제가 대공장을 대상으로 어떻게 변모해왔는가 등등 노사 관계 역사가 전개된다.
'4부 탈공장의 시대'에서는 정보통신 혁명, 디지털 혁명, 물류혁명이 가져온 변화를 논한다. 이러한 변화를 저자는 무거운 근대성에서 가벼운
근대성으로의 전환이라 말한다.
책은 재미있고 유익했다. 산업혁명기 영국사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읽어볼만한 책이다. 저자 이영석 선생님의 영국사 책은 다 지식욕을
충족시키면서 현학적이지 않아서 읽기 편하다. 이런 흥미로운 책을 기획해 출판해내는 푸른 역사 출판사에도 관심이 간다. 뭐, 그냥, 나란 인간은
좋은 책을 읽고나면 저자와 출판사에 마냥 고마워지는, 한없이 착한 마음이 생기는 독자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