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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 베이징 古家와 중국근대사 인물이야기에서 역사를 보다
천광중 지음, 박지민 옮김 / 현암사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베이징 답사 가기 전에 읽고 기록 안하고 서가에 꽂아 버린 책이다. 오늘 다른 책 검색하다 찾아보니 리뷰가 한 편도 안 달려 있기에 안타까워서 읽은 지 몇 달 지나 세세한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몇 자 적는다.
한 마디로, 이 책 참 좋다.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아, 행복해!'하고 혼자 중얼거렸는지 모른다.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책 갈피에서 은은한 차향이 풍기는 것 같고 온 정신과 몸이 기분좋은 노곤함에 빠져든다.
이 책은 베이징의 낡은 뒷골목인 후퉁에 숨은 사합원과 회관에 대해, 그곳에 머물던 중국 근현대사의 기라성같은 문인과 혁명가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중국 근대문학의 대가 루쉰이 살던 사오싱 회관, 변법자강운동의 캉유웨이가 살던 미시 후통의 난하이회관, 중국의 국부 쑨원이 살던 주차오지에의 중산회관, 마오쩌둥이 잠시 머물렀던 란만후통의 후난 회관,,, 등등 베이징의 수많은 회관과 그곳을 거쳐간 유명인이 이야기는 역사책에서 건조하게 만나던 이들을 그들의 공간에 담긴 육체가 있는 존재로서 다시 만나게 해 준다. (중국의 회관이란 명, 청시절 동향 사람들에게 주거를 제공하고 모임의 장소를 마련해주는 목적으로 수도 베이징등 대도시에 설립한 일종의 관사이다)
회관 아닌 사합원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미로같은 후통을 보물찾기하듯 더듬어 가 보면 위안스카이(원세계)를 피해 차이어가 베이징 미엔화후통을 탈출하는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베이징 대학 초대 총장이었던 차이위안페이(채원배)가 살던 동청취 동탕즈후통의 옛집, 반청 혁명가 장즈지엔과 그의 딸 장한즈와 결혼한 중국 외교계의 거물 차오관화, 2대의 역사적 유명인이 살았던 스지아후통, 아, 나는 동청취 베이고우옌 후통 23호 량치챠오(양계초)의 사합원에, 시산티아오의 루쉰의 서재 '호랑이 꼬리'에 가 보았어야 했다! 이 책에서 나는 좁은 후통을 지나치는 그들의 낡은 옷소매자락을 몇 번이고 스치며 그들의 몸내음을 맡는다. 옷자락을 도대체 몇 번이나 스쳐야 나는 이 남자들의 진면목을 알게 될까.
기쁘고 다행한 일은 '호랑이 꼬리'라 불린 작디작은 방에서 역사적이고, 문학적이고, 혁명적인 루쉰이 만들어졌고, 동시에 평범한 인성을 가진 루쉰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것이다. 이 방에서 루쉰은 입체적이고 완전하고, 진정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 121쪽
우리가 보존하는 것은 단순히 보통 명사의 집이 아니라 하나의 상징을 보존하는 것이고 그들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역사에 대한 존중인 것이다. - 269쪽
베이징 자유여행 가는 분들께 이 책을 권한다. 저자분이 직접 찍으신 흑백사진의 풍경, 직접 보고 느끼고 싶지 않으신가. 베이징 도시 재개발로 인해 이 유서깊은 후퉁들이 사라지기 전에 이 풍경을 오롯이 맘 속에 담아 오고 싶으시다면, 이 책이 답이다.
,,, 그리고 이 책이 내 마음에 들어온 지극히 사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공학을 전공한 저자분이 나이 마흔에 하던 일을 때려 치고 낸 책이라는 것. 그런데도 문장과 서술 방식이 오래오래 고민하고 공부한 티가 난다는 것. 나는 이런 열정적인 비전문가의 생생한 역사 이야기를 읽는 것이 참 좋다. 닮고 싶다.
*** 사소한 지적
본문 92쪽의 朝花夕拾은 조화석'십'이 아니라 조화석'습'이라 읽고 표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