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밤 , 한옥에서 달 구경 하다.

 

손수 관리할만큼 부지런할 자신도 없고, 개미떼나 버글거리는 벌레를 상상만해도 목이 짧아지는 주제에 "한옥," 아니 "한옥에 살기"를 부러워한다. 현실은 시멘트로 툭툭 찍어낸 아파트 거주민. 소유가 어렵더라면, 1박만이라도 빌려 머물고 싶다. 흙과 나무로 지은 한옥에서.

소박한 꿈에, 지인들이 추천해준  최적 목적지는 태안반도 "천리포 수목원"내 가든 스테이( http://www.chollipo.org/?menuKey=112)였는데, 오호 통재라! 주말 예약은 몇달 전에 완료될 정도로 이미 알만한 분들 많이 다녀가시는구나. 하지만 우리에겐 녹색창이 있잖아?  "태안반도," "한옥"을 검색어로 자판을 두드리니, "별궁"이라는 어여쁜 이름이 뜬다. "http://byulgung.com" 검색하며 더 찾아보니, 마음 맞는 친구 2분이 오랜 시간과 공을 들여 펜션을 지으셨다 한다. 초창기에는 소위 "매스컴 많이 탄" 듯, 후기며 자료가 많지만 2018년 근래의 리뷰가 없어 살짝 불안은 했으나, 당장 예약부터.

*

여행 당일, 천리포 수목원에서 감탄 +찬탄 +오도방정 좋아하다 오래 머무는 바람에, 늦은 오후에야 도착한 별궁. 예약한 방, 전망이 이렇다. 한지 곱게 발린 창문을 열면 작은 연못, 그 너머 서해와 작은 섬'이 보이네. 

 

 

 

마찬가지로 방 안에서 내다본 창 밖 풍경. 늦은 오후인지라 가까이 보이는 섬의 나무들이 석양 받아 따뜻한 색으로 달아올라 있다.

 

 

 

별궁 밖에서 별궁 쪽을 바라보면 이런 뷰가 나온다. 글 쓰거나, 마음 정리하며 머물고 싶을 때 다만 보름이라도 자리를 빌리고 싶어지는 집.

 

 

도시 빛공해에 시달리다 익숙해진 눈에는 확실히 어둠이 짙다. 별궁의 밤. 전기 덕분에 별궁의 자태를 밤에도 볼 수 있다. 나와 보니, 저 바다엔 달이 떠 있고 달 그림자를 저 아래에 심어 두었네. 달2개를 동시에 보는 기분이라니! 달 하는 하늘에, 달 둘은 별궁 앞 물구덩이(?)에.

 

 

 별궁은 한옥인지라, 옆방 투숙객들이 소주 혹은 아류의 알콜물에 취해 노래 부르고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여과 없이 들린다는 단점은 크더라. 자정 넘은 시간인지라 "민원" 넣고 심은 심정이 부글부글하건만, 그들의 여행기분에 후추 뿌릴 수야 없지. 달도 2개나 보았는데, 꾹꾹 참으리!  

그리고 아침, 아침의 산책길.

별궁에서 "자연에 도취를 흉내내는 놀이"를 하다, 민망해졌는데 다름 아니라 요 풀 때문. 꽃이 다 진 코스모스인가하고 쓰다듬어주는데 별궁지기(주인장)님이 "뭐 하세요?"라고 묻는다. "코스모스가 예뻐서요."라고 대답했다가, 차라리 침묵할 걸 하는 후회가 물밀듯. 그것은 코스모스가 아닌, 옛날 싸리비를 만들 때 쓰던 식물이었소.

 

만회를 해야겠다. 이 풀은 이름을 확실히 알지요. 채송화요!!

*

소박함과 정직함이 느껴지는 횟집. 별궁지기님께 물어보면 알려주심. 그러고 보니, 정작 푸짐한 횟감 접시 사진은 못찍었구나. 안면도 대하 축제 무렵이어서 대하를 놓치고 가면 아쉬울 듯, 한 접시 푸짐하게!  

 

별궁 여행, 올해가 가기 전에 정리하며

내년 봄에 또 찾아가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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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스마트폰에 밀린 책 읽기 기록



"2017 알라딘 서재의 달인"이라는 과분한 타이틀이 무색하리만큼, 2018년 책읽기 혹은 그 기록에 게을렀다. 스마트폰 왼손에 들고 멍때리기를 많이 한 탓일텐데, 이제와 후회한들 무엇하리......그래도 명색에 "서재의 달인"이라는데, 2018년 읽은 책 정리를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억을 더듬는다. 


회로가 꼬여서 읽은 순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어렸을 때는 한 권 다 읽기 전에 다른 책 집어드는 행위를 불경이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동시에 여러권 나눠 읽기를 생활화한지라 2018년 책 읽기 지도 그리기에 시간 요소를 집어 넣지 못하겠다. 그냥 무작위로, 기억나는 대로 적어본다.



1. 소설의 재발견 


 꽤 오래 전엔, 미셸 투르니에니 에밀리 노통브 등 프랑스 소설가 작품이 나오자마자 찾아 읽을 정도로 열성이었는데 소설을 서가에서 밀어낸지 오래다. 그러다가, 알라디너 중 "책 덕후" 고수님들끼리 통하는 이름에 '이언 메큐언Ian McEwan'을 엿듣고 찾아 읽었다. 총 3권 중, <Solar>를 가장 먼저 읽고 <Nutshell>을 가장 마지막에 읽었다. 누군가가 올린 리뷰를 통해 알게 된 사실처럼 이언 메큐언의 소설에는 전문직 주인공들이 등장하나본데, 개인적으로 <솔라>에서 묘사한 괴짜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의 생각법과 행동양식에 가장 공감이 많이 갔다. 몇몇 문단은 아예 통째 외워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는데, 리뷰를 꼼꼼하게 쓰기도 전에 도서반납일이 다가와서 빠이빠이!  <Nutshell>은 태아를 인격체로 그려내는 독특한 발상도 기이하지만, 그 태아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와 뜨거운 복수의 계략을 모체 안에서 발현시키는 게 무서웠다. 


   

 

    













2018년, 록산 게이를 글로나마 만나서 행복했다. 그녀를 face - to -face 실제 만날 기회가 오기를 꿈꿔보기로 했다. <Hunger>가 하도 센세이셔널한 소재와 작가의 체형 때문에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기에 일부러 똥배짱. 읽고 싶은데 일부러 늦추고 늦추다가 <어려운 여자들>부터 만났다.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평탄해보이지 않는 삶을 사는데도 묘하게 담대하고 강인한데다 살아 남는다. 소설을 먼저 읽고, <Hunger>를 뒤에 읽으니 그제서야 <어려운 여자들>의 소설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록산 게이는 어려웠던 시절을 글쓰기로 이겨냈다. 현재형이기도 하고. 문체가 아름다운 그녀의 책, 구어체는 어떠할까 궁금해서 스토킹하듯 그녀의 강연과 인터뷰를 훑고 다녔다. 내 눈에 그녀는 사랑스럽고 카리스마 넘친다. 만나고 싶다. 

















2. 읽고 다시 또 돌아가서 읽은 책














2018년(아직 한 달 남았지만), 가장 시원한 지적 자극을 준 책은 브래드 에반스의 <국가가 조장하는 위험들>

개발 담론, 회복력 담론, 환경 재앙 담론을 이렇게 새롭게 해석할 수 있구나. 단지 해석의 문제강 아니라 독자, 나아가 사람들에게 '그저 위험 앞에 생존하는 수준으로 웅크리고 있지 말고 야생의 삶, 유토피아를 꿈이라도 꿔보라'고 도발하니 참 신선하다. <사피엔스>는 처음 읽을 땐, 쉬웠는데 되레 두번 세번 읽으니 챕터마다 맛이 다르다. 


정치철학자 브래드 에반스에 반해서, 영국 유학가서 제자가 되고 싶다는 엉뚱한 꿈도 꾸었다. 엉뚱한데다가 실현가능성이 낮기에 그냥 책읽기로 스승 삼기로 한다. <만화로 보는 세기의 철학자들, 폭력을 말하다>는 책 펴들자 마자 한 자리에서 다 읽었는데, 해외주문으로 받은 <Disposable Futures>는 서문만 읽었을 뿐이다. 2019년으로 넘어갈 듯. 















3. 아프지 말자, 아프려면 같이 아프자. 


유독 2018년은 건강 불평등의 문제를 고발하는 책들이 많이 쏟아져 나왔다. 김승섭 교수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숱한 도서관에서 늘 "대출중"인 도서이며 베스트셀러였다. 사회학자 콘래드의 <어쩌다 우리는 환자가 되었나>는 "의료화"를 수십년 꾸준히 연구해온 그가 대중 눈높이에서 쓴 책이라 두껍지만 술술 넘기며 읽을 수 있다. 
















4, 사회학자 오찬호 


'사회학자'란 단어를 쓰다 생각났는데, 올해 오찬호 박사의 책을 많이 읽었구나. 어떤 블로거는 "믿고 찾는 작가"라며 오찬호 박사를 치켜세우는데, 오찬호 박사 역시 종종 자신을 "작가"로 확인하는 듯 하다. 일상의 수다와 학생들의 레포트에서조차 의미를 캐내고 시원한 사이다 스타일 문체로 휙휙 풀어나가는 그의 필력 덕분에 인기가 한동안 계속될 듯 하다. 

 

 













5. 유난히 언어 톺아보기 류의 책이 많이 나왔기에

일부러 찾아 읽은 것도 아닌데, 책 목록 생각하다보니 '언어'의 (잠재적) 폭력성에 주목한 책들을 두 권이나 읽었구나. 불어교육전공의 이화여대 장한업 교수의 <차별의 언어>와 언어학자 신지영 교수의 <언어의 줄다리기>.
















6. 아마 그 외 백여권은 읽었을 테지만.......정리는 머리 속에서나....

남은 2018년에는 

우선 유발 하라리의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과 <Disposable Future>를 마지막 챕터까지 다 읽기! 이언 매큐언 소설 마스터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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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12-03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작년에 이언 매큐언의 소설에 빠져 올해 나온
<솔라>까지 모두 읽는데 성공했습니다.

과연 <솔라>는 여느 매큐언 선생의 책과는 다른
결을 보여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출간 책인 <스윗 투스>의 출간도 기대해 봅니다.

2018-12-03 16: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두근두근 집 보기 대작전 푸른숲 새싹 도서관 31
정연철 지음, 유설화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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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집 보기 대작전



아무리 독후감의 ABC를 잘 모르는 꼬마라지만,  『두근두근 집보기 대작전』이 "너무 재미있어서" 세번이나 읽었다고 자랑하는 꼬마의 독후감답지 않네요. 이 사랑스러운 그림책의 핵심은 '엄마가 마트 간 사이 집을 보는 두 남매' 이야기인데, 독후감을 읽어보니 꼬마 입장에서는 집에 찾아온 고릴라, 코끼리, 늑대 아저씨가 못생겨서 불만인가 봅니다. 독후감이, 온통 찾아 온 불청객(?)의 외모에 대한 코멘트로 가득하네요. 역시, 꼬마들의 엉뚱함이란 문학자습서 인쇄판이라도 된듯 그림책을 해석하는 어른의 둔감함과는 차원이 다르네요. 
한 번 읽더니, 재밌다고 또 읽고, 다음 날 또 친구들에게 자랑한다고 아예 집밖으로 외출시킨 그림책 『두근두근 집보기 대작전』의 설정은 "늑대와 일곱마리 아기 염소"와 비슷합니다. 배경이 21세기 한국 사회 아파트로 바뀌었다는 점이 크게 다르고요흰 밀가루 손에 뒤집어 쓴 늑대 대신에, 학습지 아주머니, 택배 아저씨 등 현실감 있는 인물이 등장한다는 점도 다릅니다.


쌍둥이 남매 유리와 재리에게 어려운 미션이 떨어졌어요. 계란 사러 엄마가 슈퍼마켓 다녀오실 동안, 집을 봐야 하는데 글쎄 엄마께서는 "아무에게도 문 열어 주지 말라"시지 뭐예요. "네"라고 대답을 했어도 쌍둥이 꼬마는 집보는 일이 걱정되어 심장까지 콩콩 뛰는 걸 느낄 지경이었지요. 꼬마들의 걱정하는 마음을 읽은 걸까요? 오늘따라 왜 이리 초인종 눌러대는 사람이 많은지, 게다가 왜 다들 "문 열어 달라"고 하는지 재리와 유리가 바빠집니다. 
 동네 통장인 펭귄 아줌마, 공부하라고 권하는 학습지 아줌마, 방역하러 온 기린 아저씨, 우유배달 악어 아저씨, 예수님 믿으라고 전도하는 호랑이 할아버지, 자장면 배달해온 고릴라 아저씨와, 층간소음을 항의하며 올라온 아랫층 하마 아줌마까지. 정말이지 오늘따라 왜 이리 손님이 많은 걸까요? "더운데 물 한 컵만 달라"는 악어 아저씨의 부탁도 거절하고 꿋꿋하게 현관문을 지켰지만 왠지 지쳐갑니다. 



"아무에게도 문 열어주지 말라"는 엄마의 지시를 어찌나 충실하게 지켰던지, 유리와 재리는 결국 '엄마로 추정되는' 인물이 문 열어 달래도 꼭꼭 문을 닫고 지켰다지요. 똘똘한 쌍동이 꼬마들의 미션이 성공하나싶던 찰라, 밖에서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엽니다! 무서워진 꼬마들은 이불 속으로 쏘옥! 상상만 해도 귀여운 장면이네요. 
결국, 엄마는 사오신 계란으로 쌍둥이 남매에게 팬케이크를 만들어주시고, 집보기 대작전에 성공한 꼬마들은 쾌재를 부르며 으쓱해한답니다. 잠시라도 엄마와 떨어지면 불안해지지만, 때론 용감하게 혼자 집을 봐야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는 꼬마들이 읽으면 푸욱 빠져들 그림책이었어요.  『두근두근 집보기 대작전』은, 어른 없이 주체적으로 상황 판단해야 할 상황에서 꼬마들이 의외로 현명한 결정을 하고,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꼬마독자들에게 일깨워주며 어깨 으쓱 시켜줄 책이네요. 
아 참, 옥의 티가 있답니다. 눈 매서운 꼬마가 발견했어요. 엄마가 현관으로 들어오면서 사자 흉내 내다가 계란 한 판이 다 쏟아져 깨졌는데 어떻게 팬케이크를 저렇게 많이 만들 수 있냐고 묻네요. 귀여워서 또 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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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각자의 말로 사랑을 했다
조성일 지음, 박지영 그림 / 팩토리나인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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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각자의 말로 사랑을 했다



『우리는 각자의 말로 사랑을 했다책 제목이 과거형의 문장이기에, 이미 제목만으로 그 톤을 짐작할 수 있었지요. "지나 보니, 그게 사랑이었더라. 헤어지고나니, 더 잘 사랑할 수 있었겠더라"의 톤이라고 짐작하며 첫 페이지를 펼쳐씁니다. 이 아기자기하게 예쁜 책을 쓴 이는 조성일. 『차라리 우리 헤어질까』로 많은 독자들에게 공감의 사랑을 받았다는 문구를 보니, 전작을 쓸 때는 열애중이었나봅니다. 『우리는 각자의 말로 사랑을 했다 는 헤어지고 난 후의 아픔, 사랑을 추억하는 내용이 대부분인데 반해서요. 

'피뜨겁고 뺨 복사꽃같이 부드럽고 혈색 좋은 젊은 날의 사랑, 누가 안 하나? 누군들 책으로 엮어낼 이야기가 없을까?'하는 독자의 반응을 미리 읽기라도 하듯, 저자 조성일은  『우리는 각자의 말로 사랑을 했다 을 자기 연애담에 함몰해 쓰지 않았다고 "책을 내며"에서 밝힙니다.  "구체적인 상황보다 모호한 상황으로 열린 결말을 만들어서, 그 글에 각자(독자)의 경험을 넣어 완성하면 더 의미 있지 않을까(1쪽)"하여 "묘하게 독자의 글이 되는 느낌을 주고 싶어 (2쪽)" 썼는데 "(독자는) 어떻게 하면 사랑의 정체기에서 벗어날지 고민하면서 각자 자신만의 답을 찾"(3쪽) 바란다고 했습니다. 저자의 이야기에 따르면, 사랑에서의 각자 "답찾기"는 독자의 몫인 셈이고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땔거리 삼아, 독자 각자가 사랑의 기억을 더듬어 태우며 불의 형상을 각자 만들고 의미를 찾으라는 것이지요. 뭐, 제게는 꽤 어려운 과제이긴 합니다만.....태울 원료도, 태울 의지도 딱히 없어 작가가 보여준 사랑궤적을 따가가 보는 식으로 리뷰를 전개하려 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말로 사랑을 했다 을 서술형으로 거칠게 말하면, "내가 널 좋아했다. 나중에 보니, 내가 널 (너가 나 좋아한 것 보다) 더 좋아했던 것 같아. 그만큼 넌 사랑스러웠어. 그런데 내 뜨거운 사랑이 되레 독이 되어 네가 삼키기 힘들어했나봐. 헤어지고 나니, 이제서야 보여. 그래도 우리 사랑 너무 아름다웠지 않니? 난 여전히 네가 그리워"의 줄거리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제 좁은 해석으로는 그렇게 보였으나, 사랑 이야기야 워낙 줄기가 갈리는 해석을 낳을테니, 개인의 해석이라 한정해둡시다. 
그렇게 사랑했는데 헤어지니 "
내일 눈 뜨기가 두렵다 / 그냥 이 모든 게 장난이면 좋겠" (17쪽)을 정도로 실연의 고통이 큽니다. 실연의 고통은 삶의 물결이 흘러가는데도 다시 저자를 찾아와 자꾸 과거 회귀하게 합니다. "지겨울 때도 됐는데, 그만할 때가 맞는데"(105쪽)라며 머리로는 정리하면서도 자꾸 헤어진 이를 생각하고 궁금해합니다. "우리는 이미 1년 반 전에 헤어졌는데 말야"(105)

"여기 진짜 맛있다."

"어떻게 또 찾았어?"

"매일 취향 저격이네."

"역시 센스 있다니까." 

.

"혼자 오셨어요? 같은 걸로 드릴게요. 오늘은 늦으시나 봐요. 언제 오세요?"

.

"여기 계산해주세요."



 

 - 조성일 "단골 손님" (134쪽) 



저자는 위에 전문을 소개한 "단골 손님"에서처럼 헤어진 여자친구랑 늘 찾던 맛집을 혼자 찾아 처연함을 안주 삼기도 하고, "누구를 좋아하거나 사랑할 수는 있어도/ 그 누구도 너처럼 성장통을 겪게 하진 않더라 (233쪽)" 며 사랑의 기억을 통해 자신이 성장했음을 돌아봅니다. 조성일 작가와 경험의 공감대가 많은 이들에게는 한 줄 한 줄, 일기장 들킨 기분으로 읽게 되는 글일테고, 경제신문 페이지를 한장한장 탐독하며 일상의 메모에서 형용사를 지워나가는 이들이 읽는다면 괴리감을 느낄 글이겠지요. 직접 읽고 확인해보세요. 

아 참, 일러스트레이터 '박지영' 님의 화사하면서 부드러운 일러스트레이션은 사랑경험의 편차가 어떻듯 모든 독자의 눈을 즐겁게 해줄 책 속, 보너스 선물임을 미리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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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줄다리기 - 언어 속 숨은 이데올로기 톺아보기
신지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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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줄다리기: 언어 속 숨은 이데올로기 톺아보기

 

 

사회적 아젠다를 던져주고 논의의 급물살을 일으키는 주체로는 주류 언론뿐 아니라 출판계 기획자의 마이더스손을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2018년은 바야흐로 "언어"를 화두 삼은 책들이 베스트셀러 등극하는 호황을 일으켰죠언어의 온도를 필두로 최근에는 이화여대 장한업 교수의 차별의 언어가 핫한가 하더니, 이 분야 돋보기 전문 식견을 가진 신지영 교수의 언어의 줄다리기: 언어 속 숨은 이데올로기 톺아보기가 최근 출간되었습니다. 출판계 덕분에 대한민국의 '언어 성찰' 아젠다가 2019년도에도 뜨거운 감자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언어의 줄다리기: 언어 속 숨은 이데올로기 톺아보기』는 국문학과 언어학을 전공하고 자신을 스스로 '언어 탐험가'로 자리매김하는 학자, 신지영 교수가 2014년 의뢰받아 일회성으로 진행했던 워크숍의 호응에 힘입어 4년간의 자료수집과 질필과정을 겪어 최근 세상에 나온 책입니다. 저자는 "글을 써가는 과정은 너무나 재미있었다. 혼자 맛보는 이 즐거움이 미안할 정도 (7쪽)"였다고 탈고 후의 소회를 밝히는데, 과연 『언어의 줄다리기』를 읽다 보면 신지영 교수가 어떤 문제의식하에 어떤 과정을 거쳐 자료를 모으며 문제의식을 구체화했는지 훤히 보이며 덩달아 신명남을 독자도 느끼게 됩니다.

 

작가는 언어표현을 둘러싼 논의를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가 충돌하며 벌이는 심각한 이념의 줄다리기(15쪽)"로 보고, 자신은 그 이데올로기 사이의 대결에서 "관전 포인트를 짚어주는 해설자(19쪽)"으로 자리매김합니다. 2018년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뜨거운 언어표현 논의를 총 9개의 대격돌로 나눈 신지영 교수는 신문자료, SNS를 떠도는 가쉽성 댓글, 본인이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 촬영한 사진 등 다양한 자료를 동원하여 현실감 넘치게 논의를 전개합니다. 예를 들어, '대통령 각하' 호칭을 비민주적 표현이라 주장하며 국가 기록원과 옛 신문자료에서 다양한 자료를 동원하지요. 마찬가지로 '비혼/미혼' 논의에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댓글을 자료 삼아 제시했고요.

 

'성숙한 소통'이라는 '미션 임파서블''미션 파서블'로 만들고 싶다는 저자가 제안하는 방법은 "언어 감수성이라는 근육의 힘" 키우기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성찰적 말하기''배려의 듣기'가 필요한데,  언어의 줄다리기를 읽으면 적어도 '성찰적 말하기'를 위해 내가 무심코 쓰는 언어 이면의 이데올로기를 톺아보는 태도를 배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9개의 '언어 이데올로기 충돌의 장'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장은 "짜장면을 짜장면이라 부르지 못했던(244)" 규범의 이면에는 언어의 주인인 언중의 생활언어를 무시한 '관 주도' 언어정책의 폭력이 있었다고 지적하는 장이었습니다. '자장'이나 '짜장'이냐 발음에 따라 세련됨을 표현하는 거로 생각해왔는데, "짜장" 발음의 해금 사건을 '/'의 주도권 경기장이라는 틀로 해석하는 점이 참신했습니다. 또한 초등학교 교육의 여성화는 사회 문제로 지적하면서, 그런 논리의 틀이라면 남교사가 많은 고등 교육과정의 남성화도 진작에 문제로 제기되어야 하는데 잠잠했던 것은 젠더 이데올로기가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에도 수긍할 독자가 많겠더라고요.  

 

언어 표현을 둘러싼 논쟁 이면의 이데올로기간 줄다리기를 이처럼 삶과 밀착되는 사례로 흥미롭게 풀어낸 신지영 교수 덕분에 한국의 많은 독자들의 언어감수성 근육이 키워질 듯 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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