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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와 염소 새끼 ㅣ 우리시 그림책 15
권정생 시, 김병하 그림 / 창비 / 2014년 9월
평점 :
표지가 참 무던히도 단순하다 싶었습니다. <강아지와 염소 새끼>의 표지에는 파란 색을 배경으로 달랑 검은
염소 새끼 한 마리 뿐입니다. 그런데 눈빛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분명 혼자가 아닙니다. 눈빛에 장난기를 가득 담아 대상을 응시하고 있거든요. 곧
뭔가 재미나고도 생기발랄한 사건이 벌어질 것같아 독자는 책장을 열기도 전부터 설렙니다.
"염소야 염소야 / 나랑 노자아."하면서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네요. 새침쟁이, 먹음쟁이 염소는 귀로 눈까지
가리고 못 본 체, 못 들은 체. 새침떠는 염소를 점잖게 지나치면 강아지가 아니게요? 강아지 염소 귀를 앙앙 잘근 물면서 놀자고 보챕니다.
염소 새끼가 골을 부리네요. <강아지와 염소
새끼>의 삽화를 위해 무려 삼 년이나 공을 들였다는 김병하 작가가 어찌나 실감나게 잔뜩 골이 난 염소를 그렸던지, 염소가
종이를 뚫고 독자를 향해 달려들 듯 보입니다.
뿔대가리 내밀어 강아지를 콱 떠받으려 해봤자, 요놈의 꾀보쟁이 강아지는 어찌나 날랜지 살짝꽁 비켜서
염소의 속을 더 뒤집어 놓습니다. 자꾸자꾸 떠받으려해도 밧줄이 짧다보니, 기를 쓸수록 약만 더 오릅니다. 여기서 익숙한 그 대사,
"용용 죽겠지. 날 잡아
봐아라"가 등장하네요. "용용 놀리는 강아지"와 "엠엠 내젓는 새끼 염소"의 능청망청 귀여운 다툼을 김병하
작가는 어찌나 사랑스럽게 그려놓았는지요. 꼭, 아슬아슬 화를 돋우면서도 경계를 넘지 않고 아웅다웅 다투는 꼬마들의 모습을 보는 듯 합니다.
저렇게 "용용 죽겠지" 놀림 당하다가 약이 올라 염소 새끼가 제풀에 어찌될까
걱정스럽던 차에, 클라이맥스! 사실 권정생 선생의 원작 시에는 등장하지 않는 설정인데, 시의 행간까지 고민하여 읽어낸 김병하 작가는 염소를
묶어둔 말뚝이 뽑혀지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뽑힌 말뚝을 바라보는 염소와 강아지 둘 다 깜짝 놀랐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나는 게 불 구경,
싸움 구경이라고 독자는 은근 신이 납니다. 용용 약올림만 당하던 염소가 이제 말뚝에서 풀려났으니 강아지를 어찌 요리할까하고.
강아지는 똥줄 빠지게 달아나고, 염소는 작은 뿔이랍시고 반 뼘 길이도 안
되는 뿔을 들이밀고 죽어라 쫒아가는데 독자는 즐겁기만 합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한 넓디 넓은 언덕을 염소와
강아지와 함께 뛰어노는 듯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염소와 강아지 얼굴에서 모두 재미만 가득합니다. "나 잡아봐라,"
"그래 너 잡는다"하며 노는 폼이 부럽도록 재미나보입니다.
*
이 때 갑자기 나타난 제트기, 깜짝 놀라 깨갱거리는 강아지를 염소가 폭
감싸주었네요. 놀란 두 친구, 이젠 골대가리도 다 잊고 그냥 좋습니다. 언제 싸웠냐는 듯, 그냥 즐겁습니다. '내 편, 네 편, 내 친구,
친구할만하지 않은 아이' 야박하리만큼 철저히 잘 구별하는 요즘 아이들의 정서와는 상당히 다르지요? 놀다보면 미움도 다툼도 웃음으로 사르르
녹아버리는 옛 정서에 독자는 마음이 훈훈해집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권정생 선생은 불과 열다섯의 나이에 썼다합니다. 권정생 선생 사후,
2011년에 발견된 이 시를 창비 출판사가 김병하 그림작가의 그림을 입혀서 멋지게 소개해준 덕분에 독자는 강아지와 염소 새끼의 놀이 속으로
들어가 볼 수 있네요.
김병하 그림작가의 깜짝 선물 하나, 시를 쓴 권정생 선생님에
대한 애정을 담아 그림책 속에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어스름 해 질 녘, 염소 새끼와 강아지를 끌고 마을로 돌아가는 이의 모습에서 권정생 선생님이
보입니다. 물질적으로는 척박하고 어려웠던 시절, 그래도 따스한 온기로 세상을 품었던 소년 시인 권정생의 모습이 독자에게도 보입니다.
<강아지와 염소
새끼>야 말로 청명한 가을하늘 만큼이나 마음의 잡티를 싹 씻어내 줄 맑디 맑은 힐링그림책이네요. 많은 이들이 이 아름다운
동시그림책을 읽고 그 정화의 즐거움을 경험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