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능력이 곧 생존지수였던 외국 생활, 현지인의 입에서 쏟아지는 말들을 귀쫑긋 세워 외우던 시절이었다. 당시 한 번 듣고 강렬해서 잊히지도 않는 표현현이 있었는데 바로


Let's capitalize our time!


정확한 워딩은 잊었지만, "시간을 자본화한다"는 그 개념,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수다가 서로 시간 낭비이니 이쯤 끝내고 남은 시간 각자 잘 쓰자는 의미가 모욕이 되지 않는 사회는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하긴 이제 우리 사회도 점점 더 "시간=돈," "돌봄 = 돈," "이야기 들어주는 (노동)= 돈" "(거의) 모든 게 돈"의 사회로 급속 전환 중이긴 하다.


옛 기억을 소환한 이유는 오늘 우연히 들었던 7살 꼬마의 말 때문이었다. 줄 서서 먹는 이웃마을 맛집에서였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주인분께서 500ml 사이다를 들고 오셨다. 사장님이 가시자 테이블에 앉아 있던 귀여운 꼬마가 이렇게 말해서 나를 놀라게 했다.



세상 공짜 없다던데, 그냥 주네.




해맑게 웃는 꼬마를 나는 깜짝 놀라서 바라보았다.

'도대체 꼬마는 저 어른 말을 누구에게서 들어봤지?' '어떻게 저 어려운 말을 맥락에 맞게 쓸 수 있을까?'

꼬마의 부모님을 떠올려본다. 그런 말을 자주 쓸 것 같지 않은 분들이다. 그렇다면 꼬마가 다닌다는 어린이집 선생님? 그럴 리가.... 하지만 분명 아이는 그 말을 자주 들어보았을 터이다. 아이는 "세상에 공짜 없다고 어른들이 말했지만, 공짜가 있네요."의 뉘앙스 천진하게 말했으니까.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니 전모를 알면 아이가 슬퍼할 것 같다. 맛집의 규모가 작고 점심 피크타임이어서 5명의 손님을 4인석에 몰아 앉히셨던 사장님이 "미안해서" 사이다를 주셨던 것이다. "그냥"이 아니었다. 이유 없는 친절 없고, 세상에 공짜도 없다는 걸 보여주는 예시였다. "세상에 공짜 없다던데 아니네."가 아니라.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24-02-21 0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은오 2024-02-22 05: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아.... 공짜가 아니었다니...🤣

얄라알라 2024-02-23 14:48   좋아요 1 | URL
은오니~~~이이~~~임^^ 락방님께서 왜 글 안쓰시냐고 하시던데^^ 바쁘셔서 만약 못쓰시고 계셨다면 이렇게 제 낙서같은 글에 댓글 남겨주시는 마음에 감사드립니다^^

그러게요 사이다가 공짜가 아니었어요 ㅎ

은오 2024-02-24 08:05   좋아요 1 | URL
얄님 글은 항상 잘 읽고있습니다~! 💕💕 댓글은 매번 달지 못해 제가 더 아쉬운걸요 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