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에 1500원이면 우유 200cc 사면 끝이다. 컵라면도 1500원 넘는다. 그런데 1500원짜리 커피를 파는 무인카페가 있다. 커피 맛, 좋다. 게다가 점주분께서 매장 관리를 어찌나 철저하게 하시는지 "무인카페"라 적고 "18시간 유인 카페" 수준이다. 점주님께서 매장에 거의 항상 나와 계신다. 이 카페 단골 지인들의 정보를 종합해서 과장한 말이다.

오늘 딱 24시까지만 책 보다 올 생각에 21시 40여 분에 도착했는데, 음료를 뽑아들고 보니 10분 후 마감이다. 허망함. 차라리 23시까지 운영하는 카페에 갈걸...

동시에, "무無인 카페의 18시간 유有인 카페 화"를 선도하신 점주님께서도 쉬실 시간이 필요하니 22시 마감, 나쁘지 않다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음료만 챙겨들고 카페를 나오려는데 웬 남자의 전신 사진이 게시되어 있다. 출입문 쪽에도, 게시판 쪽에도, "05:46"라는 타임라인과 함께. 호기심이 동해 읽어보니 사진 속 남성은 무인카페에서 절도를 했고 점주님께서는 원만한 해결을 희망하셨다. 훔쳐 간 물건을 다시 되돌려 놓으면 법적 대응까지는 안 가겠다는 메시지를 남기셨다.

무인 카페에서 도대체 훔쳐 갈게 뭐가 있지?

놀랍게도 도난당한 물품은 "메모리폼 방석 2개"

검색해 보니 개당 약 1만 원대 제품인 듯하다. 이름 모를 숱한 시민의 엉덩이를 보듬어주었던 그 방석을 몰래 가져가서 쓰면 기분이 찜찜하지 않을까? 남이 신던 양말이나 속옷을 훔쳐 입지 않듯 방석도 절도 품목으로 안 어울리는데? 다 큰 어른이 새벽녘 몰래 무인카페에서 방석을 훔쳐 가는 그 마음은 뭘까?


갑자기 고등학교 때 생각이 난다. 한 반에 50여 명씩 꽉꽉 들어차 있던 그 시절 교실, 아침에 등교했더니 '수학의 정석' 2권 (기본 + 실력)이 온데 간데 없었다. "수1, 수2...기본 + 실력"을 쌓아놓으면 희대의 벽돌책으로 변신했던 [수학의 정석] 시리즈는 워낙 무거워서 다들 학교에 두고 다녔다. 내 책 뿐 아니라 반 친구들 책 전체가 싸그리 사라졌다. 옆 반, 그 옆 반 '수학의 정석'도 사라졌다. 어떤 도둑인지는 몰라도 아마 꽤 큰 자루(?? 트럭?)를 가져왔어야 백여 권의 책을 제대로 훔쳤을 것이다. 그런 걸 다 훔쳐 가나? 헌책방에 팔면 얼마나 받는다고 고3 수험생 책을 훔치나?

그러고 보니, 내가 봉사하는 도서관에서도 "분실"이라는 이름 하, 꾸준히 책이 사라진다. 아주 간혹이지만 막 나온 따끈따끈한 소설책 세트가 사라질 때도 있다. "책도둑은 도둑이 아녀.... 허허허..." 하며 넘어가는 분도 있지만, 나로서는 분개만 할 뿐 결코 용서가 안 된다.

별걸 다 훔쳐 가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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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24-02-13 0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둑은 도둑이죠...액수나 종류에 상관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