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다친 건 내 팔자예요”

"내 팔자八字"란 말을 권정생의 소설, [몽실언니]에서 만날 줄 몰랐다. 그것도 어린 소녀의 입을 통해서...

몽실이는 어이없는 사고로 다리를 다친 후, 동네 아이들에게 "찜발이" 낙인이 찍힌다. 무릎이 굽은 채 뼈가 붙어서 왼쪽 다리가 오른쪽 다리보다 한 뼘이나 짧아졌기 때문이다. 사고의 기승전결은 다음과 같다.


  • 몽실이의 새아버지가 몽실이 어머니에게 화를 내다가 주먹으로 얼굴을 후려쳤다. 옆에서 보고 있던 딸, 몽실이가 어머니께 친아버지에게 가자고 한다.

  • 그 말에 화가 더 커진 새아버지는 몽실이와 어머니를 완력으로 밀어낸다. 먼저 떨어진 딸 위로 어머니가 떨어졌는데, 그만 딸의 왼쪽 다리를 꺾어버렸다. 몽실이의 왼쪽 무릎이 반대로 젖혀저 부러졌다.

  • 몽실이는 기절했고, 깨어난 후에도 고통을 호소했다. 하지만 남편이 시끄럽다고 화를 낼까 두려워했던 어머니는 몽실에게 참으라고 했다. 몽실이는 비명과 울음을 삼키며 밤을 새웠다.

    다음 날, 몽실이의 가족들은 아무 일도 없던 듯 일상을 살았다. 어머니조차 남편 눈치 보느라 몽실이의 다리를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다. 밀가루 반죽을 약이라며 무릎에 붙여 준게 전부였다. 이후 몽실이는 한 달 동안 누워서 지냈다.


    동네 아이들은 몽실이를 놀린다. 절뚝거리는 조카 몽실이가 가여운 고모는 몽실이 엄마를 비난한다. "왜 애를 병신 만들었수?"라며. 몽실이는 속으로 생각한다. 엄마 잘못이 아니라, 새아버지 잘못이라고.나중에는 이렇게까지 말한다.

아버지가 오지 않았어도 김씨 아버지와 엄마는 자주 싸웠어요. 그러니까 언젠가는 내가 다리를 다치게 됐을 거예요....다리 다친 건 내 팔자예요.


아! 나는 어린 몽실이, 평생 불편한 다리로 살아야 할 아이의 입에서 "다리 다친 건 내 팔자"라는 말이 나오자, [몽실 언니]를 당장 덮어버리고 싶어졌다. 몽실이가 측은하고 몽실이 주변 어른들에게 화가 나서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어린 몽실이가 "희생자 비난" 논리를 그대로 삼켜 "팔자" 탓한다는 점에 화가 났다.

몽실이 다리 부러뜨려 놓고도 태연한 새아버지야말로 사람도 아닌지라 입에 올리지도 않게다. 몽실이 어머니. 그녀는 무릎뼈가 부러진 아이에게 조용히 해달라고 당부한다. 당대 조혼 분위기를 고려했을 때 그녀는 2-30대 였겠고, 본 남편 버리고 온 가난한 여자라는 이유로 몸 사릴 수밖에 없었겠지만, 어떻게 자기 아이 무릎이 부러졌는데 고작 밀가루 반죽으로 응급처치 한단 말인가? 밤새 차가운 바닥에서 방치할 수 있을까?


가장 날 슬프게 하는 사람은 몽실이, 그 아이. 어떻게 몽실이는 다리 불구된게 제 팔자 탓이라 생각해버릴까?

몽실이처럼 희생자 비난의 논리를 그대로 내면화해 도리어 자기 탓하며 억압과 불합리를 견뎌온 사람들, 특히 약한 사람들은 얼마나 더 많았을까?

[몽실 언니] 읽다가 두드러기가 난 이유이다.




몽실아, 다리 다친 게 네 팔자라니, 그게 무슨 말이니!

가여운 아가...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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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2-12-22 18: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중학생 때 몽실언니 필독도서라서 읽었는데 몽실이가 다치는 부분 너무 끔찍했어요.... ㅜㅜ

얄라알라 2022-12-23 11:05   좋아요 0 | URL
파이버님, 중학생 때 읽으셨네요.

요샌 초등 중학년 필독도서로 많이 추천되더라고요

저는 이제 막, [몽실 언니]를 다 읽었는데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벅찬 소설이네요....

가슴이 저릿하게 차 오릅니다...슬픔이니, 경이로움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