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왜 "읽고 싶어했는지" 기억이 가물거릴 즈음 [아메리칸 파이어]가 손에 들어왔다. 책표지가 새빨갛다!  엉킨 곡선들로 채워진 표지와 부제-"쇠락하는 소도시에서 일어난 연쇄 방화 이야기"-로 미루어 추리 소설이겠거니 짐작했다.




그렇다. [아메리칸 파이어]는 범죄의 실타래를 푸는 책이었다. 미국 내 쇠락하는 소도시에서 벌어진 연쇄 방화사건의 전모와 범인들을 집중 조명한다. 꾸며낸 사건인 줄 알았는 데 읽다보니, 논픽션이다. 버지니아주 아코맥 카운티에서 발생했던 연쇄 방화사건 실화를 모티브 삼았다.  



Slowking4, GFDL 1.2 <http://www.gnu.org/licenses/old-licenses/fdl-1.2.html>,  CC BY-NC 3.0





저자 모니커 해시는 집필 전, 실제 아코맥 카운티에서 여러 달 머물면서 치밀한 사전조사를 했다. 2010년대 초반 있었던 방화사건을 기억하는 주민, 방화범, 방화범의 지인과 가족, 변호사와 법원 공무원들, 의용소방대원들, 수사관들, 순찰대, 아코맥 카운티 지역 특화의 사학자 등 100여 명을 직접 만나서 자료 수집하는 데에 저자는 상당한 공을 들였다. 아코맥 카운티 토박이들의 시선에서는 철저한 외부인이었지만 모니커 해시는 작가로서 환대받았다. 방화 사건들 당시 진압에 나섰던 소방대원들은 기꺼이 사건 보고서를 공유했고, 지역 역사학자와 수사관들도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심지어 방화범인 찰리조차 인터뷰에 협조했다. 모니커 해시는 아코맥 카운티 소방서에서 잠도 잤고, 출동하는 소방차에 타보기도 했다. 이런 다각도의 노력이 <아메리칸 파이어>의 생동감 넘치는 묘사와 전개에 녹아 나온다. 


입체적인 현장조사 자료를 토대로 집필된 [아메리칸 파이어]는 단순히 '연쇄 방화범 꼬리 잡기'의 차원을 넘어서는 작품이다. 다양하게 전개될 수 있는 사회적 이슈들을 시발점들을 묻어두고 있다. 장강명 작가가 [아메리칸 파이어]는 "읽는 이에게 저마다 깊고 강력한 체험을 선사"할 것이라고 추천한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프로파일링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아메리칸 파이어]에서 "보니와 클라이드"에 비견할 커플 범죄자들의 심리분석에 관심이 갈 터이다(모니카 헤시는 'murdurpedia.org'사이트 자료를 활용해 여러 커플 범죄자의 실화를 병렬 배치한다). 유년기 가정폭력의 경험과 성인기 범죄의 상관관계에 관심이 있었다면, 독자는 방화범들의 과거를 타고 올라가 범죄의 불씨 시발점을 찾고 싶을 것이다. 나는 아코맥 카운티, 한 때 번영했던 지방소도시의 몰락과 그 황량함에 관심이 갔다. (100여 년 전, 이스턴 쇼어는 특산물 감자로 유명했고 번영했다. 하지만, 감자 재배지가 전국단위로 확산되면서 가격이 떨어졌고, 감자를 가공한 과자들이 미국인의 입맛을 길들이면서 점점 이 지역 농민들은 곤궁해졌다.) 




"A Potato Harvest" W. H. Martin / CC0


* * *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A Potato Harvest 



[아메리칸 파이어]는 신문 기사, 법정 기록, 역사 논문, 소설 등 장르의 얇은 막을 가볍게 벗겨내고 새로운 형식으로 사건을 전한다. 배우고 싶은 글 쓰기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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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22-02-03 0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가 풍토인지 삶인지 여긴 진짜 연쇄방화가 꽤 종종 일어나는 범죄입니다. 인종에 따른 것이란 말도 있고 한데 작은 규모지만 숨어서 불을 지르는 것으로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하네요. 토파민상승도 갖은 방법으로 가능하네요.ㅎ

얄라알라 2022-02-03 06:26   좋아요 1 | URL
조밀한 한국에 살다보니, 소설에서 묘사하는 소도시는 잘 상상도 안 되었어요. 밤화가능성 높은 폐가, 잠복근무를 수개월해도, 범인을 잡을 수 없을 만큼 폐가도 많고 넓다는 묘사가...


transient님 말씀을 듣고 보니, 저자가 본문 중간에 연쇄 방화범에 대한 정교한 분류법이라든지 범죄심리에 대한 파트를 넣을 수 있을만큼 관련 정보도, 사례도 누적된 게 많다는 생각이 이제서야 드네요^^;;;

이 책에서도 방화범은 불 보고 희열 느낀다고 묘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