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작품 해설과 함께 읽는 작가앨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고정순 그림, 배수아 옮김, 김지은 해설 / 길벗어린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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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이모 댁 방문이 즐거웠던 이유는 이모 댁 서가에는 안데르센과 그림 형제의 작품 중 미처 읽어보지 못한 책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른들 담소가 계속되길 바라며 사촌들과 놀지도 않고 탐욕스럽게 읽어댔는데, 정작 책 제목들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 중 한스 안데르센의 [그림자] 도 읽었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나이테가 훨씬 두꺼워진 후 읽었어도 정서적 충격이 큰데, 유치원생 때 읽었다면 분명 또렷하게 기억했을 것이다. 


고 나니 씁쓸하고, 음울하고, 섬뜩한 느낌이 확 올라온다. 

마지막 문장이 압도적이다. "학자는 아무 소리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는 이미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학자를 죽인 것은, 학자의 그림자이다. 물질적 부, 명예, 생존에 필요한 교활한 셈법과 다중인격의 무기화라는 면에서 학자 본인을 능가하는 제 2의 자아다. 자기 자신에게 살해당하는 결말이라니! 


학자는 세계의 진실, 아름다움, 선함을 글로 써왔지만 아무도 읽어주지 않았다. 학자의 그림자는 시의 여신의 뜨락에 잠입해서 많은 것을 알았고 사람들의 이중성도 간파했고, 그 이중성을 어떻게 역활용할 수 있는지도 알아냈다. 그림자는 세속적 명성과 부를 얻었고 주인이었던 학자에게 일종의 침묵수행을 요구했다. 관계 역전. 그림자는 점점 세력이 커져갔고 학자는 그림자의 어둠이 세계를 덮칠까봐 진실을 밝히려했다. 그런데  "학자는 아무 소리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는 이미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아동청소년 문학 평론가 김지은의 해제를 읽어보니, [그림자]야 말로, 한스 안데르센의 내면에 가장 가깝게 다가가 있는 작품이라 한다. 김지은은 이렇게 말한다. "그림자의 힘이 커질수록 피폐해지는 학자의 모습은 작가로서 정점에 오른 1846년의 안데르센과 명망을 얻자 위축되어버린 진실한 예술가 안데르센의 자화상"이라고. 그림자와 학자의 지위역전에서 김지은 평론가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목숨을 건 인정투쟁을 이야기한다. 


안데르센의 작품이 화려하면서도 삶의 핵을 드러낸다고 생각해왔는데, [그림자]를 읽고나니 그동안 내가 안데르산 작품의 표면만 훑어왔나 자기검열 하게된다. 그림자의 힘이 초심을 압도해감을 감지할 수 있었던 안데르센의 순수함이 존경스럽기도 하고. 작가 안의 도플갱어가 확산형 파워를 발산하며 명성을 먹는 나방이 된다는 두려움, 지켜야할 '순수(?)한 초심'이 그런 확산형 욕망과 싸우는 경험, 아무나 못해보는 것 아닌가!  안데르센급, 이름 자체가 주석이 되는 작가들의 고민 영역이지 않은가. 부럽다. 그리고 작가로서 안데르센을 더 알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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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 2021-07-08 00: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구미가 화악 당깁니다. <목숨을 건 인정 투쟁> 이 표현 넘 멋지고 무서버요. <명성을 먹는 나방> 캬!! 나를 잡아먹는 그림자의 다른 버전. 북사랑님 어록 터짐요. 저 역시 안데르센은 작가로 인간으로 알고 싶은 분. 같이 알아나가 볼까요??^^

얄라알라 2021-07-08 11:11   좋아요 2 | URL
ㅎㅎ 별말씀을요. 5월 6월 읽은 책이 다섯 손가락 꼽을 지경이라 어록은 커녕 기초어휘도 잊었어요^^7월엔 분발각!!!

같이하자는 말씀은 언제나 정겹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