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의 아이 13호 라임 청소년 문학 43
알바로 야리투 지음, 김정하 옮김 / 라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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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읽어대면서도 가장 가까이하지 못했던 장르가 소설이었는데 간만에 참 재미있는 책을 만났다. [남극의 아이 13호 (La paz de las maquinas)]는 스페인 작가, 알바로 야리투Álvaro Yarritu가 쓴 첫번째 "청소년" 소설이라 한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청소년보다 훨씬 어른인 독자까지 팬으로 끌어들일만한 작품이다. 깜빡거렸던 유년기의 상상력 스위치가 다시 켜졌나 기뻤을만큼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캐릭터들이 영화의 장면처럼 마음 속에서 움직였다. 특히나 인간 주인공보다도 기계주인공이 더 잘 그려지다니 놀라웠다. 작가의 필력 덕분일까, 아니면 나름 Sci-Fi 영화 초보 마니아로서 그동안 보아온 영화들 덕분일까. 오래 기억할 소설이다. 


Jcurz / CC0


거슬러 올라가면 [걸리버 여행기]의 "공중도시"에서부터 [아키라] 혹은 [배틀 앤젤]에서의 "공중도시"까지, 다른 세계에 대한 상상은 수직, 주로 위로 올라가는 경향이 있는 듯 했다. 그런데 [남극의 아이 13호]에서는 지구 대기권을 벗어나지 않고 "남극"을 무대로 전개된다. 소설에서 "남극"은 파괴적인 대규모 전쟁 이후, 인간과 기계가 평화를 약속하고 유일하게 공존하는 중립지역이다. 하지만 말이 좋아 "공존"이지, 기계와 인간은 엄밀히는 "분리"되어 있다. 필요에 따라 "협력"은 하지만, 긴강관계이다. 이미 기술적 특이점을 넘어버렸고 기계에게 잔혹하게 사냥당하는 전쟁을 겪었기에 인간은 기계, 네트워크를 믿지 못한다. 단지 불신을 넘어, 아예 기계와의 공존이라는 발상 자체를 부정하고 기계를 몰살하려는 인간세력도 있다. 작가는 이 단체에 "러다이트"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과거의 러다이트만큼 소설 속 러다이트 역시 기계를 몰아내고 인간들만의 세상으로 돌아가기를 꿈꾼다. 


그러나 이미 많은 Sci-Fi 영화와 소설에서 보여주었듯이, 그런 이분 대립의 세계에는 늘 연결적 존재가 있게 마련이다. (관점에 따라서는 반역자가 될 수도 있겠다.) 인간은 상상 속에서나마 대립보다는 공존을 희구하는 것 같다. 스페인어 제목을 달고 나온 원서 표지색은 차가운 화이트와 블루이다. 한국어 번역판의 표지는 분홍빛이 감돈다. 마치 분홍빛 공존을 꿈꾸듯이.....어쩌면 우리는 이미 무서운 시나리오들에 충분히 압도되어왔기에, 가끔 분홍빛 미래도 상상해볼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사피엔스]의 유발 하라리는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면서도 회색톤 시나리오로써 경고하지만, [남극의 아이 13호]은 독자에게 다른 가능성도 그려보게 한다. 훨씬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방향의 가능성을.  그러나 내 안의 공포심 때문에 "13호"를 "아이"라고 부르기 어려우니 아이러니이다. "13호"가 인간과의 공존가능성을 보여주는 아이콘일지라 할지라도 "인간"이 아니기에, 더더욱 "아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나야말로 "러다이트"? 자학적 자문을 해본다. 그래도 작가가 [남극의 아이 13호]를 통해 그리고 싶어하는 공존의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 더 마음 편하다. 걱정인형을 미리 안고 사는 편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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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20-08-11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도 있네요. SF라니 관심이 갑니다. 나중에 기회되면 구해보겠습니다.

2020-08-11 1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