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크리스쳔 베일을 보러 새벽 극장을 찾았습니다. [겨울왕국2] 스크린 독점관련 문제제기 덕분일까요? [Ford vs Ferrari] 상영회차가 상당합니다.  새벽인데 상영관 좌석이 5-60%는 차 있습니다. 

읽을 수 있는 언어는 한국어 영어 뿐이지만 웹서핑해보니 [포드 vs 페라리], 해외에서도 호평 일색입니다. 하기야, 크리스천 베일이 주연인데요. 그는 연기를 위해 '고무줄 몸무게'의 리스크를 안고가며 캐릭터와 하나 되는 노력으로 유명하지만, 그 이상입니다. [Vice]의 딕 체니 캐릭터를 분석하며 딕 체니가 자주 쓰는 어휘를 적은 노트를 들고 다니며 입에 착착 그 말들이 붙도록 노력했다는데요. 이번 [포드 vs 페라리]를 찍으며 물론 카레이싱을 따로 배웠죠.  까다롭고도 무뚝뚝한 Ken Miles 캐릭터 표현을 위해, 입을 앞으로 돌출시켜 "나 불만있다. 그래서?"의 표정을 반영구화장처럼 입었네요. 


[이퀼리브리엄]에서 반해서, 그의 영화를 많이 보았습니다. 그의 인터뷰 동영상을 샅샅이 뒤지며 "크리스천 베일" 조각 모으기를 했었지요. 그는 캐릭터 연구가 재미있다고 합니다. 자료가 없으면 아무리 문필력이 좋아도 쥐어짜 쓸거리가 없듯, 캐릭터에 대한 고민이 없이는 아무리 연기경험 많은 배우일지라도 연기에 실패할 것 같아요. 이런 연기의 신, 크리스천 베일을 알아보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참 다행입니다. 


[포드 vs 페라리] 관람 포인트를 짚어주는 유투버들이 많더라고요. 더분에, 르망 경주의 의의, 귀족 스포츠로서 카레이싱의 역사, 레이싱을 두고 유럽과 미국의 자존심 대결이 어떤 맥락에서 일어났는지 등등 배웠어요. 하지만 저는 애시당초 오로지 크리스천 베일을 보러 극장 찾았기에, 계속 이 배우만 생각합니다. 



 [포드 vs 페라리]에서 켄 마일스(크리스천 베일)은 [Le Grand Bleu]의 주인공 자끄를 연상시킵니다. 그 둘 모두, 세속의 평범한 사람들이 경험할 수 없는 어떤 경지, 어떤 조우의 순간들을 만끽합니다. 언어화할 수 없는. 언어로써 타인에게 전할 수도 없는 황홀감. 초월감. 

비록 켄 마일스는 고도로 정교한 Machine이라는 매체를 통해 "7000RPM"으로 상징되는 일상성을 넘어버리고, 자끄는 광활한 바다에서 돌고래를 통해 다른 생명종의 세계와 만나지만 말입니다. 아, 또 차이가 있습니다. 자끄는 그 초월감에서 느끼는 편안함에 끌려서 현실의 끈을 놔 버리지만 켄 마일스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르망 경주 결승선 끊는 시점에서의 그의 타협(?)은 켄 마일스가 세속의 규범들에 전적으로 냉소하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니까요. 




[Ford vs Ferrari]에서의 크리스천 베일은 서부영화 [투 유마 3:10]에서의 댄 에반스와 일관된 속성을 보여줍니다. 

세속의 가치에 연연하지 않는 어떤 뚝심 고집, 고결하기까지 한 약속 지킴. 알고보니 두 영화의 감독이 같아요. 

제임스 맨골드입니다. 켄 마일스는 GT40개발을 위해 무려 1000시간의 시승을 했다하고, [투 유마 3:10]에서 댄 에반스는 누가 알아주지도 않을 사명을 목숨을 걸고 묵묵히 수행합니다. 두 주인공 모두 한 순간, 사라지죠. 허망하게 죽어요. 그런데 어떤 전기를 읽었을 때만큼이나 감동이 강렬합니다. Pale Blue Dot, 지구 위에서 스티브 잡스건 마르크스건 마릴린 먼로건 모두 하나의 더 작은 점이라면 이왕 찍고 가는 거 온점, 찌~진찐하게 찍고 가는. 조용히 찐하게 찍고 가는 모습.

 자크처럼 돌고래를 따라 저 세계로 건너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점을 꾹 눌러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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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9-12-29 1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완전히 크리스천 베일 때문에 봤어요!!!!!!!!!!!!! 영화 너무 좋았어요!!!!!ㅠㅠ 그런데 님의 글을 읽어보니 제가 모르던 것도 알게 되었어요. 저는 영화를 보고 나서 다른 건 생각을 안하고 켄 마일즈만 검색을 해서 읽고 그랬거든요. 지금도 영화에서 제가 좋아했던 크리스천 베일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오래 오래 기억에 남을 영화였어요!!

2019-12-29 21: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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