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땡 展" 입소문이 대단하길래, 궁금했지요. 왠지 강아지 애칭 같은 이름인지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이미지랑 매칭이 안되는데, 도대체 왜 그리 칭찬들인지. 알고 보니 "땡땡"은, 유럽 만화의 아버지라는 에르제가 탄생시킨 만화 캐릭터 Tintin의 우리말 발음이더라고요. 예술의전당 측에서 벨기에 물랭사르 재단(The Hergé Foundation 혹은 Moulinsart) 과 1년간 공들여 준비한 전시라는데, 지난 겨울부터 차일피일 미루다 드디어 다녀왔습니다.



'미루기' 능숙한 관람객은 저만이 아니더군요. 전시회 종료일이 임박한 주말, "에르제: 땡땡" 展 보러 온 이들이 어찌나 많았던지요. 불안한 마음에 기념품샵부터 기웃거렸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미 "sold out"된 아이템이 반은 넘었어요. 도슨트 해설은 아쉽게 놓쳤지만 여느 때처럼 오디오 가이드의 안내를 받을 수 있으니 든든합니다.



전시장은 총 10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해당하는 Room에 들어서면 자동으로 오디오 가이드에서 친절한 해설이 흘러나옵니다. Room1부터 Room10을 차근차근(개인차가 있겠지만 평균 1~2시간) 둘러보고 나오면, 마치 에르제(Herge)의 긴 인생을 허가받고 엿보는 느낌마저 들거예요.



입장권 티켓팅을 하면 전면에 Herge의 멋진 서명과 함께 비밀의 공간으로 이끄는 듯한 독특한 색감의 복도로 발을 내딛게 됩니다. Room1과 Room2에서는 화가로서의 재능과 가능성을 갖춘 Remi가 정통회화와 만화 사이에서 왜 만화가를 천직으로 택하였나를 생각해보게 합니다. "집중과 선택"이 그 답이었고, 탁월한 선택이었죠. 그가 남긴 작품은 단순히 만화가 아니라 세계의 과학, 문화, 역사, 예술을 총망라한 예술작품으로 칭송받아왔고, "땡땡" 역시 세계인의 마음 속에 살아 있으니까요. 이 '땡땡' 캐릭터가 어찌나 유명한지 벨기에에서는 문화유산급 콘텐츠로서, 매년 최고의 낙찰가를 경신할 정도로 예술적 가치도 인정받는다 해요. 마치 영국의 'Peter Rabbit,' 핀란드의 'Moomin'캐릭터 급 스타인가봐요.



"에르제: 땡땡 展"에서 가장 흡족했던 부분은, Remi(본명) 그러니까 에르제(가명)가 얼마나 (폭 넓은 의미의) 예술과 예술가를 사랑해왔고 만화가로서의 소명의식이 강했던가를 분명히 드러냈다는 점입니다. 에르제는 지금처럼 SNS, 미디어가 발달하기 훨씬 이전 '호랑이 담배필 적'에도 한 컷의 만화를 위해 철저한 고증과 연구를 했던 완벽주의자였습니다. "달나라에 간 땡땡" 삽화를 그리기 위해 특별히 제작한 로켓 모형을 좀 보세요.



물론 천부적인 재능에 더해 장인정신이 더해진 집요함도 있었고요.

나는 이 단계에서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미친 듯이 그린다. 지우고, 다시 수정하고, 소리를 지르고, 분노하고, 극단적으로 행동하고, 작업에 집착하고, 욕을 한다...(중략)...연필로 종이를 뚫어 버리기도 한다.

Herge 어록 중



"땡땡"을 만화책과 에니메이션으로 이미 접해본 꼬마들이나, 만화가 등 이 분야 전문가에게는 Room5와 Room6에서 가장 오래 머무르고 싶은 공간이 아닐까 합니다. 한 권의 "땡땡" 만화책이 나오기까지의 작업과정을 알 수 있는 데 더해, 벨기에 사회가 아니 시대가 에르제에게 무엇을 기대했는지 막연하나마 그려보게 해주거든요.



"에르제: 땡땡 展"에서 만난 뜻밖의 인물은 에르제의 중국인 친구, 챙(Chang)이었지요. "티벳으로 간 땡땡" 편에서 땡땡이 중국인 친구, 창을 구하러 가는 설정인데 실존인물이자 에르제가 임종이 다가와서도 만나고 싶어한 귀한 인연이라니. 멋졌어요. 과연 20세기 중후반 유럽의 어떤 예술가가 에르제처럼 동양을 기존 고정관념이 아닌 실제 모습에 가깝게 그리려 노력했겠어요?





어린시절 보이스카웃을 경험했던 에르제는 TinTin을 모범적인 보이스카웃 스타일로 그려냅니다. 부모가 없는 소년인데 그래서 더 자유로울 수 있고 에르제가 애착을 가졌다하네요. 아독선장 (Captain Haddock) 캐릭터와 캐미가 참 잘 맞아요.


"에르제: 땡땡 展" 다 보고 나와도 끝이 아닙니다. 땡땡의 모험 만화를 상영하고 책을 전시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거든요. 쾌적합니다. 책을 소장하고 싶다면 Goods샵에서 구매할 수 있어요. 개인적으로 하드커버보다 페이퍼백을 선호하는지라 "The Adventures of Tintin" 시리즈 한국판의 날렵한 편집이 반가웠어요.

땡땡 덕분에 에르제라는 멋진 예술가도 알게 되었느니, 기회가 닿으면 에르제와 땡땡의 나라 벨기에도 더 알아보고 싶네요. 이것이야말로 문화교류의 힘인가보지요? 2019년 3월 벨기에 국왕이 27년만에 한국을 찾았다는 소식이 더욱 반갑게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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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9-04-02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시회, 음악회 참 많이 다니시는것 같아요. 저도 얄리알라북사랑님 서재에서 많은 정보와 도움 얻고 간답니다.

얄라알라 2019-04-02 22:42   좋아요 0 | URL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고맙습니다. 오랜 취미라 쉽게 안 바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