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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계급론 (무삭제 완역본) ㅣ 현대지성 클래식 24
소스타인 베블런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10월
평점 :
유한계급론(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
1899년에 발표된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은 10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자주 인용되고, 많이 논의된다. 저자 스스로도 "추상적인 학술 자료들이 아니라...(중략)...일상생활의 사례들을 예시한"(9쪽) 글쓰기 전략을 택했으며 "출처와 전거를 일일이 제시해야 하는 학술적 관례를 따르지 따르지 않았"(9쪽)다고 밝히는 만큼, 경제학 문외한이라도 난독증 염려 없이 읽을 수 있다. 이제 그가 제시한 용어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은 학술용어라기보다는 일반 교양어로 쓰인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단 학계에서뿐 아니라 일반교양서로서도 고전이기에 한국에서도 여러 출판사에서 번역출간해오고 있는데 최근에는 현대지성에서 무척 반가운 13,800원이라는 정가에 그 번역서를 출간해주었다. 동인출판사의 1995년 번역서 한국어 제목은 『한가한 무리들』인데 반해 보다 원문에 충실하도록 『유한계급론』으로 번역했다.
번역자 이종인은 『유한계급론』을 두고 "말이 경제학 책이지 이 책은 사회 비판의 성격이 강한 인문서"(384쪽)이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실제 이 책은 독자의 렌즈에 따라 인간 심리에 대란 통찰, 소비의 메커니즘에 대한 문화분석 혹은 『1984년』의 학술적 버전 등 다양하게 읽힐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베블렌이 여느 학자들처럼 경제학 수식이나 전문용어를 써서 일반인이 넘기 어려운 높은 권위의 장벽을 세우는 방식을 택하는 대신 도리어 쉬운 언어와 수긍가능한 일상의 사례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는 자신감이 놀라웠다. 어찌보면 머릿속 그림을 스케치로 풀어내듯 풀어쓴 에세이식 문체인데도 그 주장을 곱씹게 되는 이유는 베블렌이 단순히 경제학의 측면에서뿐 아니라 역사, 법학, 심리학, 종교학, 인류학 등 광범위한 학문 분야를 아우르며 인간을 심도 깊게 탐색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인상적이게도 (무려 대한민국의 1970년) 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베블렌의 이론을 처음 접했다는 역자 이종인은 『유한계급론』에 대한 개인적 애정과 역자로서의 사명감으로 본문 구석구석 역주를 자주 달아준다. 읽으며 도움을 많이 받았다. 예를 들어, 베블렌은 소비의 수준에 이르지 못하면 사회로부터 추방당하거나 체면이 손상될 것을 두려워해서 가시적 소비는 선호하되, 상대적으로 보이지 않는 분야의 소비는 감추려하는 사람들의 이중성을 인구억제책으로 역이용할 것은 제안한다. 이를 두고 역자 이종인은 "소스타인 베블렌은 차라리 과시적 소비가 더 훌륭한 인구억제책이 되는 것이 아니냐고 앞에서 주장한다"(118쪽)고 친절하게 주를 달아주었다.
27세에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35세의 나이에 그 위세 높은 시카고 대학의 교수가 된 베블렌, 분명 타고난 총명함에 학벌이라는 후천습득 훈장까지 찬 그는 주류 학자일듯 하나, 실제로는 아니었을까? 역자 이종인의 표현대로 '외로운 늑대 lone wolf'였을까? 『유한계급론』을 읽다보면, 노동권에서 면제되고 과시적 소비와 대행적 소비, 대행적 한가로움 등을 통해 경쟁에서 자신의 승리를 가시화하고 싶어하는 '한가한 무리들'을 비꼬듯 학자들을 베베 비꼬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베블렌은 콕 집어 그렇게 표현하진 않았지만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다 보니 애 낳을 여유가 없는 대표적 집단으로 학자들을 꼽는다. 허허.